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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작은애 얘긴 심심찮게 했지만 오늘은 큰애 얘기도 조금 해보려한다.
과거 대대로 벼슬을 하던 집안이라선지 아직도 보기 드물게 경상도의 보수적인 시댁은 딸을 낳았다고 대단히 섭섭하게
생각해 나는 지은 죄없이 죄인같이 눈치만 보았다. 설마 다음엔 아들을 낳겠지하는 기대와는 달리 두번 째도 딸을 낳자
섣달 추위속인데도 내방에 연탄불도 안 넣어주고 미역국은 커녕 물한모금 주지않아 그래선지 두째애는 몸이 약하고 나는
그 후로 허리병을 얻어 내내 고생을 좀 하였다. 그리고 겁이 나서 다시는 애를 안 낳았다.
첫애는 낳아서부터 그리 예쁜아기가 아니었고 커 가면서도 피부는 까먼색이라 모두 메주같다고 놀려댔다. 애 삼촌은
'형수님 얘는 그냥 메주가 아니라 옥상에서 떨어진 옥떨메 같네요' 하며 재밌다고 웃는데 나는 얼마난 가슴이 아프던지.
초등학교에 들면서 나는 미리 한글을 가르킨다고 법석 떠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학교 선생님이 가르켜 주겠지 하고 가만
두었다. 그래도 좀 심하다싶어 2월에 국어공책을 하나 사서 윗줄에 지 이름석자와 그냥 TV광고에 나오는 제품이름을 써서
그밑에 세로로 보고 써내려가라 하였다. 소고기라면 서울우유 새우깡 등등 그애는 온종일 책상앞에 앉아 아무 불평없이
촘촘이 몇페이지를 써내려가는데 내가 생각해도 어린애가 인내심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더니 드디어 TV광고에 나오는
상품광고들을 혼자 읽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애는 발랄하고 머리가 좋아 제언니가 써내려가는 걸 어깨넘어 슬쩍 보고는
한번도 써보지도 않고 언니보다 먼저 대번에 한글을 깨우치고 있었다.
시골학교라 큰애 첫반은 총 35명인데 첫 학기 성적은 거기서 15등을 하였다. 나는 아무리 그렇치만 내 아이가 그정도밖에
안되나 싶어 섭섭했지만 그래도 암말도 안하고 가만 두었다. 그런데 다음 해 입학한 작은 애는 온종일 뛰어 놀기만 하고
공부라곤 하는 꼴을 못보았는데 그래도 늘상 1등을 하였다.
그러니까 큰애는 평생 노력파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작은애는 그저 동네애들을 모아 골목대장만 하고 노는 파였다.
그런데 문제는 작은애는 공부하는 것 보단 노는 것에만 익숙하였으니 중학교부턴 사정이 달라지고 있었다. 점점 공부안하고
놀기만 해선 성적이 오르지 못했던 거였다. 공부한다는 습관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큰애는 학교갔다오면 늘상 숙제하고 또 예습복습을 하고 아뭏튼 책상앞에 붙어 앉아 있어 노는 법도 모르는 것 같았고.
중학에 들어가자 나는 당시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미국인이 영어교과서 읽는 카세트를 사다 주었는데 그애는 그걸 집에만
오면 온종일 수시간이나 되풀이해 들어 나는 지겹지도 않나? 의아스러웠다.
그런데 그것이 지 평생을 좌우하는 큰 잇점이 될 줄이야. 그애는 거기서 영어의 기본을 완전히 터득하여 나중에 외국인회사
에 취업해서도 유학갔다온 애들보다 훨씬 우수하단 평을 들었다. 외국어란 그 나라의 독특한 흐름과 기(氣)가 있는데 그
발음이나 문장의 structure엔 독특한 영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해도 회화를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중1영어가 아무리 간단하다해도 이미 거기엔 가장 기본적인 줄기 S V O 가 있고 등급이 아무리 올라간다
해도 그 기본에서 점점 잔가지가 붙어가는 것이니.
두 베짱이와 여치는 그렇게 중고교를 보내 각각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작은애는 잘 노는 교내 명물이 되어 소풍을
가서나 교내 행사에서 유명해져서 성적은 중간치였고 큰애는 성적이 점점 올라가 고3 올라가선 전교 1등을 하였다. 그리고
지가 원하는 대학에 쉽게 합격하였다. 작은 애는 대학에 갈 때가 되어 원서를 냈는데 나는 조용히 하느님께 기도를 하였다.
물론 합격되기를 원했지만 과연 이번에도 덜컥 합격하면 그애의 인생에서 그것이 득이 될 것인가. 쉽게 놀기만 해도 인생은
잘 흘러가는 거구나 하게 되면.. 하느님 어떤 것이 그애에게 도움이 될지 판단하셔서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고.
과연 하느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그애는 톡 떨어졌다. 나는 평소 교단에서도 학벌 지상주의를 타파해야한다고 주장
하는 바이라 '꼭 대학갈 필요없다. 너는 예술에 재능이 있으니 의상디자인학원이나 아뜨리에나 어느 학원이라도 엄마가
보내주겠다' 했더니 한사코 대학은 가야한다고 거절을 했고 그 실패는 지 인생에서 큰 교훈이 된 듯 했다. 노량진 학원에
1년을 다니며 처음으로 공부라는 걸 해 보았으며 다음 해에 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런데 큰애는 평소 지가 못생겼다는 열등감이 많아 TV에 예쁜 탈렌트가 나오면 나는 왜.. 하며 눈물을 흘리고 고1땐가
거울앞에 서서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불공평해 하며 혼자 우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하였다.
그런데 점점 대이변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니. 고 2, 3학년이 되면서 그애는 갑자기 얼굴도 하얘지고 예뻐지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대학 가서는 남자애들이 따르기 시작하고 어떤애는 음독자살까지 하고..
대학에 가서도 그애는 열심히 공부를 하여 대학4년 말에 한 외국인회사에 높은 경쟁을 뚫고 합격을 해 졸업도 하기 전부터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열심히 일을 하고 발전을 하여 나중엔 Head Hunting 회사(두뇌좋은 우수사원을 소개해주고 회사로부터 소개료를 받는 인간
복덕방)의 일류사원으로 유명해져 다른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의 회사를 소개해 주겠다며 유혹을 자꾸하여 몇번 직장을 옮겨
다니기도 하였다. 남들은 취직이 안되어 난리인데 소개받은 회사에선 소개비로 8백만원을 내고(요즘은 그보다 훨씬 올랐
겠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엔 이해가 안가는 얘기지만 회사측에선 유능한 인재를 뽑아야 회사수익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라 한다.
해마다 성적우수한 졸업생들은 많이 배출하지만 정작 일을 잘하여 회사에 큰 이익을 주는 사람은 참 드물다고 한다. 우리 대학
들이 얼마나 비 실질적인 헛공부을 시키는가 반성해야할 국가적인 큰 문제라고 본다.
외국인 회사에선 본국에서 회장들이 한국을 가끔 방문하여 감사를 하는데 우리나라회사에 오면 외국인 사장말고 한국 현지인
직원과 상담을 원한다고. 유창한 영어는 물론이고 회사사정을 물었을 때 무엇이든 조리있게 대답을 잘해내야 하는데 거기엔
항상 우리애가 가장 적합하다나. 문답뿐이 아니라 분위기를 잘 이끄는 entertain 까지 잘해내면 물론 금산첨화인데 우리애는
그 분들을 after service로 일류 한식집까지 안내해 멋진 음식문화해설까지하고 때로는 노래방까지 데리고가서 혼을 빼놓는다.
다음말이 걸작인데 게다가 저처럼 예쁜아가씨가 재미있게 얘기를 해주고 분위기를 맞춰주니 남자들이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라
누가 반하지 않을소냐 란다. 그애의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미꾸라지 용된다는 게 진짜구나 싶어 나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대충 짧게 쓰려했는데 그애의 찬란한(?) 인생 후반부 얘기를 하려니 또 길어질 것 같아 다음편에서 계속해야겠다.
첫댓글 일 마치고 나오며
길거리에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다음 얘기 또 고대합니^^
햐~~ 재미있네요^^
큰 아이의 성장과정의 대반전...
성격도 밝아지고..ㅎㅎㅎ
두 딸 낳고 산후조리 못하셨다니
그 서운함은 평생가겠지요.
애들 이야기가 나오니 두 아들을 키운 제 심정도 헤아리게 되네요
첫애는 숫기가 없고 얌전한데
둘째는 발표력도 많고 제 의사을 전달하는게 여간 발랄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울때 학원에 의지 하지않고 자유롭게 키웠는데
나름 스스로 자아를 갖게 되더군요
작은애는 그림을 잘그리고 큰애는 글을 잘쓰고
부모를 닮아가더라고요
지금도 제가 바라는 아이들 보다도 지들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데로 가만 둡니다
그게 아이 들의 행복 같아서요
아이들이 일기를 묶어놓은 책이 12권입니다
아래 사진은 그 일기 묶음입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밟아버린 풀한포기가
어떤 종류의 품종인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거기에 의미를 주는 것은 스치는 바람이
사람을 차별하여 불어주는 듯한
생활리듬이 달라져 와서 그렇다죠.
제맘대로 오가는 유희들이 지난하게 지속되고
미지의 불꽃파동은 항상 그자리에 맴돌죠.
이지로 이뤄가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라지만
언제나 사유몽은 그렇다죠.
자식듥 커가는 얘기라 놓으니 여성동지분들의
댓글관심이 뜨겁군요.
세리랑님은 남자분인가 했는데 오늘 댓글을 보니
여성아니면 나올 수 없는 섬세함이 느껴지네요.
저는 결혼생활내내 시어머니로부터 아들 안낳는
다고 구박을 많이 받았었지요..
신정주님처럼 아들을 둘 처억 낳았으면 좀 편했
을 것을.
그 얘기도 다음편 머리에 제일 먼저 쓰겠습니다.
댓글들 정말 고맙습니다.
지나온 얘기이고 가슴아팠던 사연이지만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얼굴 생김과 살색이 반전한다는것도
공감되네요
우리 애들도 그렇되요
성격도 바뀌더군요
이제는 추억으로 마음편히 할수있는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지네요
감사합니다
후속편이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