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아왔을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수군거리는 것은 계속 불평한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모습에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 하십니다. 양 백마리 중 한 마리를 잃으면 누가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나머지 아흔 아홉을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또 찾으면 즐거워서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기자고 하지 않겠냐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에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더 기뻐합니다. 기뻐하지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의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드라크마(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은으로 된 동전) 열 개를 가진 여인이 하나를 잃어버리면 부지런히 찾고, 또 찾으면 친구와 이웃을 불러 함께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1-10).
예수님은 계속해서 두 아들 비유를 들려줍니다.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이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모두 탕진하고 돌아오는 악한 아들로 나옵니다. 그리고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것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그저 일만 열심히 하는 아들로 등장합니다. 큰 아들의 관점에서 작은 아들은 죄인입니다. 이렇게 죄인인 둘째 아들의 돌아옴 때문에 기뻐하고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큰아들은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첫째 아들은 돌아 온 아들을 반기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는 바리새인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세리들이 회개하고 돌아옴에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합니다. 함께 즐기기를 청하는 아버지에게 맏아들의 대답은 딱 바리새인다운 대답입니다. 여러 해 섬기고 명을 어긴 적이 없는 자기에게는 그만한 댓가를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계명을 잘 지키면 댓가를 받는다는 논리에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하시고, 죄인과 세리들의 회개함을 기뻐하시고,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는 것에 불평이 있는 것입니다(11-32).
예수님의 세 비유에서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렸다가 찾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 찾음에 기뻐 다른 이에게 기쁨에 함께 동참하기를 청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죄인을 찾으러왔습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은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할 때 그것은 명령을 잘 지킴이 아니라 은혜와 긍휼입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같은 우리를 찾으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기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다른 불신자가 회개하고 신앙을 가질 때 그 사람이 누구이든 우리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떠난 부분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를 기꺼이 받아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돌이키고, 회개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그리고 이번 한 주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받은 자로서, 그 부분을 돌이키며 살아갑시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부족한 부분들을 돌이키는 모습을 볼 때 함께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