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은 거기서 머물다가
지난달 중순부터 주중 목요일 오후 2시간은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받고 있다. 연금공단에서 은퇴자 대상으로 수강 희망을 받았다. 창원대로 들머리 공단 업무 빌딩에서 신중년을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월 하순 목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지기들에게 보내는 시조는 어제 빗속에 문우들과 동선을 같이 한 도청과 창원대학을 거쳐 창원의 집에서 본 매화와 산수유가 글감이었다.
도청 신관 뒤쪽과 창원의 집 경내 담장 곁 자라는 홍매의 개화 상태는 절정을 지나 하강하고 있었다. “아직은 때 이른데 점지된 망울마다 / 화사한 꽃잎 펼쳐 달달한 향기 뿜자 / 꿀벌이 꼼지락거려 몸살 할 듯 바빴다 // 봄이 온 길목이면 해마다 그 자리서 / 토담을 배경 삼아 그럴 듯 보였는데 / 우수절 비바람 맞고 속절없이 저문다” ‘홍매 낙홍’ 전문으로 사진을 곁들여 보냈다.
목요일은 아침에 도서관으로 나가 반나절 보내다 오후에 스마트폰 교육장으로 나감이 정해진 일과였다. 며칠째 내리는 비가 긋지 않아 우산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이른 시각에 출근하는 직장인이 차를 빼내 아파트단지 입구로 나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걸어서 외동반림로를 따라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 스포츠파크 동문에서 운동장 삼거리에서 폴리텍대학 구내를 지났다.
지난 일요일 저녁부터 며칠째 장마철과 같이 연일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유튜브에서 날씨 정보는 구하는데 운영자 소 박사는 계절이 바뀔 때면 이런 경우가 나타난다고 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북쪽 차가운 고기압과 남쪽 습한 저기압이 서로 맞서 그 사이로 기압골이 생겨 머무는 전선이 비를 내리게 한다고 했다. 바람의 움직임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이 생기면 비가 내린다.
소 박사는 봄이 오는 길목에 연일 비 소식을 전하면서 제주도에서는 잦게 내리는 비를 ’고사리 장마‘로 불린다는데 예년보다 빠르다고 했다. 제주 산간지대 자생하는 고사리는 봄비를 맞고 쑥쑥 자라는데, 올해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 봄도 일찍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지역도 매화는 활짝 폈고 곧이어 벚꽃이 기다리고 개나리나 진달래도 뒤이을 차례를 다투고 있는 듯하다.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지나다 시야에 드는 장복산 능선으로는 운무가 걸쳐져 여름 장마철 날씨 같았다. 교육단지 차도의 보도를 따라 걸어 도서관에 닿아 출근하는 직원들과 같이 2층으로 올라갔다. 열람실로 향하는 서가를 지나다가 제목이 눈길을 끌어 한 권 집은 책이 만들라 마틴이 엮고 정미화가 옮긴 ‘밥벌이로써의 글쓰기’였다. 창가에 내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자리를 차지했다.
미국에서 저술가로 활약하는 록산 게이 외 32인이 작가로 먹고살기 싶은 이들을 위해 펴낸 책이었다. 필진은 주로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아메리카 합중국답게 이란이나 중국계도 보였다. 남성 필자는 적어도 흑인 한 명이 눈길을 끌었다. 각 장은 ‘배가 고파야 예술가라는 말’,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출판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그리고 남은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점심때가 다가와 펼쳤던 책을 덮고 서가로 다가가 미류책방에서 펴낸 김형석의 ‘인생 문답’을 뽑아 관외 대출을 신청했다. 노철학자는 100세를 넘긴 나이에 왕성한 강연과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 칼럼을 쓰는 영원한 현역이었다. 편집자가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일반인 100명에게 철학자에 여쭈고 싶은 궁금한 점을 받아, 다시 공통된 질문으로 추린 31가지에 답한 형식의 글이었다.
도서관을 나와 올림픽공원에서 창원대로를 지나는 버스를 타고 공단 들머리 교육장으로 향했다. 팔룡터널 근처 업무 빌딩 1층 뷔페에서 공사 현장 인부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나이 차가 있고 드물게 여성도 보였는데 건장한 몸으로 신성한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의 직업의식을 경건하게 여겼다. 식후 공단 주변 커피믹스와 주류 생산 공장 주변 보도를 거닐다 교육장으로 올라갔다. 23.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