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도덕이 상실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상대를 속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각계 각층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특정 정치권의 세력 확장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 자금이 많이 필요한 정부는 기업과 국민을 속여서 조금이라도 많은 세금을 부과시키려고 합니다. 또 기업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사용자는 근로자 복지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들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가 하면, 근로자는 지출 명세를 거짓으로 작성해서 회사 공금을 유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크고 작은 속임수가 횡행하는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은 일상에서 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정직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익을 챙기겠다고 속임수를 쓰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에스겔서 45장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생활 필수품인 곡식과 포도주의 양을 재는 저울을 속여서 사리 사욕을 채우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공평한 저울을 사용해서, 공정하고 정직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분명히 세상의 가치관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을 재는 공평한 저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사명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편안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세상적인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살아있는 물고기 만이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다고 해도, 우리는 마땅히 천국을 소망하는 거룩한 자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이쪽의 작은 속임수는 상대의 더 큰 속임수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정직해 주기를 바라는 만큼, 우리도 그들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공평한 저울로 삼아,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힘있게 사는 하루가 되길 다짐하셨습니까?
잠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1. 구정 명절은 잘 보내셨습니까?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속에 생업과 사역을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길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자아를 비추는 거울 성경 : 창 3:1~14
아프리카의 리니안티 사람들은 리빙스턴(Livingston)이 가지고온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저마다「내가 이렇게 생겼는가? 내이입 왜 이렇게 크지? 왜 내 눈이 이렇게 작지? 광대뼈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름다웠을 텐데」하고 떠들썩거렸다. 하루는 리빙스턴이 모로 누워 있는데 미개인 남자 한 사람이 리빙스턴의 방에 들어와 입을 씻으면서 모두 나를 더러운 사나이라고 하는 까닭을 이제야 알았노라 고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외모를 알게 하는데 거울의 효과가 크듯이, 우리의 마음을 보여 주는데 있어서 성경의 역할은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는 비추는 거울」에 대하여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거울은 나의 죄악을 알게 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꿰뚫는 예리한 능력이 있어서 그 앞에서는 무엇이라도 숨길 수 없다는 점을 히브리 기자는 히 4:12-13에서 강조하고 있다. 요일 1:9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는 말씀으로 공평하게 다루심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삼상 17:47에 보면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며 오직 하나님께 속함을 알게 한다 는 믿음 하나로 승리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에 왕이 되어 한 나라를 다스릴 때 삼하 12:9에 보면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는 말처럼,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도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영과 육에 속한 죄는 말씀 앞에 바로 설 때 비췸을 받는다. 눅 18:11-14에 보면 바리새인처럼 자기의 신앙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보지 못하며, 세리처럼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통회 자복할 때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러므로 나의 죄를 알게 하는 성경 말씀으로 치유하며 은혜의 자리에 함께 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둘째, 거울은 나의 과거를 알게 해 준다. 아브라함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며 겪어야 했던 쓰라린 체험담과 세상 천지가 물바다를 이루어 모든 생물의 수를 끊고 노아 가정으로 하여금 구원하여 아브라함 대까지 이른 사실의 간증이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길 만큼 신앙이 투철하게 하였다. 아브라함이 75세의 나이에 고향 땅을 등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 고향이 아닌 다른 고장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 이러한 조상들의 신앙과 쓰라린 체험이 뒷받침한 것이다. 고전 10:6에 보면 악을 즐겨하다 멸망 받는 것이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악을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한다 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켜 행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 과거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범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음으로서 우리에게 죄를 막는 좋은 거울이 되고 있다. 비참한 생활 속에 놓인 사람은 반드시 즐거웠던 과거를 돌아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때처럼 비참한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것을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만 바라보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셋째, 거울은 나의 모습을 알게 해준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무흠하여 죄가 없다고 할 사람도 없다. 인간 사회에는 비리와 유혹이 꼬리를 물고 늘어선다. 하나님의 비췸속에서 심령이 평안한 요셉에게는 새로운 유혹의 손길이 괴롭히다가 죄악의 쇠사슬을 씌워 옥중에 투옥시킨다. 맹수의 왕인 사자는 바위틈에 숨어살지만 순진한 양은 넓은 초원을 집을 삼고 평안히 산다. 옥중에 있는 요셉은 하나님께 자신의 양심을 비추어본다. 이때 여호와께서도 그를 떠나가지 아니 하시고 창 39:23에 보면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만의 눈, 정욕의 눈, 시기와 질투의 눈, 탐심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본다면 수은 없는 거울처럼 아무 기능이 없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 그가 산 것이 아니요, 예수께서 그의 육체 가운데서 사신다 (갈 2:20)고 하였다. 율법의 눈, 지식의 눈, 권세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은 없고 율법과 지식과 권세만 있었으나 주님을 만난 그는 심령의 눈으로 죄의 몸을 발견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믿음의 눈으로 거울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말갛게 씻겨진 깨끗한 육신이 비취어질 때 평안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량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심령 속에 메아리 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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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