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님은 시민군의 최초무장시점이 5월 21일 오후라고 여전히 우기고 계십니다. 님의 그런 주장들을 대표하는 두 문장을
인용합니다.
<<시위대가 무장하는 장면은 도청 앞 집단발포 이후의 장면이며. 기어이 날조하시려거든 힌츠페터님 앞에서 한번 우겨보십시오.
방송원본에서도 시위대가 무장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찍으신 뒤
시위대가 무장하는 장면은 21일 오후의 장면이라고 벌써 몇번을 설명해드렸습니까? >>
시민군 차량 안전사고에
의한 사망자가 이외에도 많이 있었거니와 최초 발포자는 시민군이었음을 당시 18세의 시민군 김수영(당시 전남고 2학년)은 5월 21일 시민군 오발
사고로 시민군이 죽어간 사건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광주은행 반대편에 위치한 최희천이비인후과 앞에서 청년이 총을 나누어 줘 나도 실탄 5발과 카빈총을 받았다. 광주은행 앞에선 총 조작중
오발사고가 나 고등학생 한 명이 어깻죽지에 총을 맞고 죽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총구는 하늘로'라는 구호를 외쳤고, 지나가던 지프차 위에서 또
오발사고가 나 차에 탔던 학생이 어깨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내가 하늘을 향해 공포 2발을 쏘고 나자 어떤 아저씨가 메가폰을 통해 총을 못 쏘는
사람이나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총을 반납하라고 했다. >
자, 여기 당시 시민군 총기 및 실탄 사진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광주시민들이 이런 철모들이며 30만발의 실탄을 어디서 구해온
것이었나요?
힌츠페터의 영상물을 다시 한번 봅시다. (지금 21일의 시위대 총기무장 상황만 동영상 잘라내기를 하여 올리기는 어려우므로
관전자들은 01:58부터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22“ 나는 사람들이 건설장비를 몰고 나오는 모습을 촬영했다.
군대와 직접 대결을 할 모양이었다.
시위대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36“ 시민들은 어디에선가 총과 실탄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이를 서로 나누어 가졌다.>>
즉, 시민군 총기 및 실탄 분배 이전에 이미 그런 무장 보급조가 있었습니다. 시민군 김수영도 그 상황을 똑같이 표현합니다. "광주은행
반대편에 위치한 최희천이비인후과 앞에서 청년이 총을 나누어 줘 나도 실탄 5발과 카빈총을 받았다." 자, 탈북군인들의 증언을 따르면
총과 실탄을 분배한 자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당시 시민군 혹은 시위대 사망자 대다수는 시민군 편에만 있던 총기에 의해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아실 것입니다. 이
사실은 시민군 증언으로도 명백하므로 시민군 김수영의 증언을 좀 더 자세히 읽어 봅시다.
<<광주은행 반대편에 위치한 최희천이비인후과 앞에서 청년이 총을 나누어 줘 나도 실탄 5발과 카빈총을 받았다.
광주은행 앞에선 총 조작중 오발사고가 나 고등학생 한 명이 어깻죽지에 총을 맞고 죽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총구는 하늘로'라는 구호를 외쳤고,
지나가던 지프차 위에서 또 오발사고가 나 차에 탔던 학생이 어깨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내가 하늘을 향해 공포 2발을 쏘고 나자 어떤 아저씨가
메가폰을 통해 총을 못 쏘는 사람이나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총을 반납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총을 반납해 버렸다. 동구청 옆(현재)
야광카바레 부근으로 갔는데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총알이 3-5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청년의 다리를 맞혔다. 청년이 다리를 잡고 뒹굴었다. 또
한 청년은 복부에 총을 맞고, 임신한 아줌마는 가슴에 총을 맞아 즉사했다. 사람들이 시체를 상가 통로를 통해 후문 쪽 식당 담 밑에 나란히
뉘어놓았다.>>
자, 21일 오후 1시경의 시민군 사망자 대다수는 이처럼 시민군 총기 사고에 의해 사망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민군의 증언은 미국 3대 방송사 ABC, CBS, NBC가 1980년 5월 22일에 보도한 광주사태 뉴스와 동일합니다.
동영상 시작후 3분 3초부터 3분 10초에서 NBC 기자는 분명히 시민 총기에 의한 총상으로 죽임을 당한 시민 사망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이데아님, 이제 시민군 총기사고에 의한 시민군 및 시위대 사망자가 있었다는 사실 분명하게 확인이 되셨습니까?
이외에도 시민군 총기사고에 의한 시민군 사망에 대한 시민군 증언들이 무수히 많이 있어요. 만약 이것이 고의적인 사고였다면
이것은 탈북군인들의 증언으로만 설명됩니다. 탈북군인들은 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군이 시민군 뒤에서 시민군 혹은 시위대를 향하여
총을 쏘았다고 증언하거든요>
시민군 김수영은 자신이 무기를 탈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무기 보급조가 주는 무기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기 보급조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많은 무기들을 확보하였는지를 우리는 물어야 됩니다. 만약 여전히 이데아님이 시민군이
최초로 무기를 확보한 시점이 21일 오후 1시 이후라고 주장하신다면 저는 님에게 세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힌츠페터가 저녁까지 서울에 도착하기 위해 광주에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자, 과연 힌츠페터가 광주를 떠나기 전에 광주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해 오는 것이 가능하였을지 분명하게 확인해 볼까요? 그것이 가능할지 님이 근거자료나 답변으로 입증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세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첫째 질문, 5월 21일 시민군이 어디서 무기를 탈취하였는가요? 두번째 질문, 무기 탈취 후 시민군이 다시 도청 광장으로
왔나요? 세번째 질문, 시위대 혹은 시민군이 무기를 탈취하여 도청 광장으로 돌아오는데 몇시간 걸렸나요?
첫댓글 아마 이데아님과 제가 똑같은 글번호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님 글이 06이면 저의 반론은 07이 되는 것 같습니다.
* 글등록을 완료하였습니다. (07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