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문학기행
행촌수필문학회 정석곤
아이들과 서울 현장체험학습으로 경복궁,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을 다녀왔는데 KBS한국방송을 빼놓아 서운했다. 여의도를 지날 때면 KBS한국방송이 차창밖으로 내 곁을 스쳐 갔다. 방송국 견학 꿈은 간절했다. 오늘은 그 꿈을 이루는 문학기행 날이라 가슴이 설렜다.
아침나절 날씨는 잿빛 하늘이었다. 난 동심이 되어 한강을 보고 63빌딩과 여의도공원을 지나 KBS한국방송을 찾아갔다. 정면에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보았던 한반도 기 밑에 ‘함께 하는 평화, 함께 여는 미래’라 써진 대형 현수막이 우리를 환영해 주어 그 아래서 전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입구 왼쪽엔 ‘1박 2일’과 ‘불후의 명곡’ 포터 존이 눈길을 끌었다. 불후의 명곡의 액자에 얼굴을 내밀고 카메라에 담았다.
국민방송답게 현관도 넓었다. 견학을 마치고 나오는 중학생들과 견학하러 들어가는 어른들로 북적거렸다. 왼쪽 벽의 KBS 2TV와 1TV 모니터는 각각 현재 방송 프로그램을, 이 시각의 독도 모니터도 독도가 분명히 우리 영토임을 방송하고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KBS 離散家族(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순수 TV 프로그램으로는 세계 최초, 최장의 기록이란다. 대전의 허현철 오빠와 제주의 허현옥 누이동생이 전화로 만나는 장면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특별생방송은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38일, 453시간 45분 동안 이어졌고, 총 100,952명의 신청자 가운데 10,289명이 상봉했다고 한다. KBS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상봉을 돕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천명(闡明)한 걸 읽었을 때는 가슴이 뿌듯했다.
30여 분 동안 안내자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빠짝 따라다니며 견학을 했다. 입구에 ‘방 송 중(ON AIR)’이라고 빨갛게 켜진 스튜디오였다. 밝고 산뜻한 조명을 받으며 ‘여유만만’을 녹화했다. 출연자 열 명이 반원으로 된 하얀색 책상에 삥 둘러앉아 있고, 뒤에는 주부들이 시청했다. 대형 카메라 3대가 앞을 지켜보고, 지미집 카메라도 기린처럼 목을 길게 빼고는 상하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조영구 MC와 김승휘 아나운서는 출연자들과 열띤 토크 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주부들에게 가장 궁금하게 여길 생활 정보를 펼쳐 아침을 여유롭게 열어주는 인기 프로그램이라는데, 나는 보지 않아 외계인 같아 부끄러웠다. 내일 9시 30분, 아침방송이 기다려졌다. 바로 옆 스튜디오는 ‘아침마당’ 생방송을 마치고 철거 중이라 서운했다.
아트비전인 소품실로 내려가자마자 제작한 경찰 모자와 배지 그리고 계급장 몇 백 개가 쌓여 있어서 놀라웠다. 제사용품, 사극 주방용품, 현대극 장식용품, 가전제품, 문구류, 가방류, 무기류, 악기류, 장난감류, 모형 인체류, 액세사리류 등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활용되는 소품박물관 같았다. 소품은 20만 점이 넘고, 별관과 수원 디지털센터에도 소품실이 있다고 하니, 방송하는데 소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방송을 볼 때 출연자들이 대기실과 분장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보니 실감이 났다. 대기실마다 프로그램별 대기 시간표가 걸려있었다. VIP 대기실에는 일부러 들어가 액자에 있는 사자성어 居安思危(거안사위)를 읽어 봤다. ‘생생정보’와 ‘아침이 좋다’ 고정 스튜디오의 천정은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혔고, 조명등은 하늘의 별같이 박혔다. 방송하는 무대에 올라가 출연자가 되어 보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 밤 7시 30분에 방송하는 ‘우리말 겨루기’ 스튜디오에 들렀다. 내가 좋은 글을 쓰고 싶어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두 번이나 출연한 임영희 문우님이랑 왔더라면 좋았을 걸…. 사회자 엄지인 아나운서가 ‘맞습니다. 틀렸습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출연자, 사회자, 응원자 자리와 문제 판은 낯설지 않았다. 서보고 앉아보며 꼼꼼히 살펴 보았다. 출연자가 되어 출연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남자끼리 찍었는데 아무래도 서운해 남녀 둘씩 섞어 찍기도 했다. 출연석 양쪽에 있는 발신 신호기를 빨리 눌러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녹화하는 걸 보았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아쉬웠다.
몇 년 전, 아내와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을 위한 열린음악회를 녹화하는데 참석하려 방청권을 예약해놓고 그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세월호 사건으로 음악회가 취소되어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견학 코스에 대한민국 대표 음악 프로그램인 열린음악회를 녹화하는 공개홀이 빠져 섭섭했다.
KBS한국방송은 라디오가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구가 아닌가? 다른 방송국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고는 KBS한국방송 뉴스, 교양, 연예, 스포츠, 드라마 등은 언제나 내가 즐겨 시청하고 있다. 왜 KBS한국방송만 시청하느냐고 자녀들의 핀잔을 들어도, 광고 시간이 아까워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KBS한국방송은 그동안 정권에 따른 언론의 편파 보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었다. 2,300명의 사원이 방송의 민주화를 위해 148일간의 봉급을 받지 않고 파업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 한국의 대표방송으로서 앞으로는 프로그램과 직원의 조직 운영이 변화를 일으켜 가고 있으니, 건강한 공영방송으로 자리매김 할 거라 기대한다. 견학을 하고 나니, 앞으로는 더 KBS한국방송의 애청자가 될 성싶다.
※ 居安思危(거안사위) : 편안히 살 때 위태로움을 생각한다.
(2018.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