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은 내가 1986년부터 나는 서울을 떠나 산골에 들어가 살려고
전국의 오지마을들만 찾아다닐 때입니다.
내가 설악산 일대를 살펴보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양양에서 버스를 타고 살악산 한계령을 지나
원통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앳띤 처녀 도 올라오기에
`저 처녀가 내 옆에 앉았으면`
하고 바랬을때 정말로 그 처녀가 내 옆에 앉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동안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전하였고
나는 이제 서울을 떠나 산골에 가서 살 것이라고 하였는데
3년이 지난후 그 처녀가 강원도 덕풍계곡 우리집을 찾아온 것입니다.
내가 몰라보자
"저예요 김미옥"
이라고 하여 나는 깜작 놀랍니다.
"그동안 어려움이 있었는지 얼굴이 많이 상하셨어요"
라고 합니다.
이때 또 한무리의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더니 호산 공소에 게시던 강수사님이 서울 처녀 4명을 데리고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집을 오르는 길이 두 갈래인데 조금 전에 김미옥이 올라온 길은 왼쪽길로
밑으로 냐려가면 바로 덕풍계곡이지만
오른쪽으로 올라온 길은 150m를 가야 덕풍게곡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임마누엘씨 오늘 갑자기 서울 구로동 성당의성가대 처녀들 4명이 불쑥 공소에 찾아왔기에
연락도 못드리고 찾아왔습니다."
라고 합니다.
나는 건너방 2개를 내어주면서 김미옥도 함께 쓰라고 하였습니다.
처녀들은 좋다고 하며 옷을 가라입고 왼쪽의 언덕을 내려가 바로 장마로 불어나 덕풍게곡으로 뛰어들며
좋아라 합니다.
거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가래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됩니다.
"애들아 여기가 너무 좋다, 우리 오늘 저녁 여기에서 만들어 먹자"
라고 합니다.
나는 김미옥을 데리고 바구니를 하나주며 따라오라고 하고 집 옆의 밭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아직 캐지도 않은 감자를 캐주고 고추도 따주고,상추도 뜯어주고 파와 부추도 뜯어주고
덩굴콩도 따서 주면 미옥이가 바구니에 담습니다.
나는 처녀에게 그동안에 있었던 두명의 청년들에게 맞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무리 악해도 그런 악한자가 다 있다니, 벌을 받아 마당한 놈들인데 왜 용서를 해 주었어요?"
라고 분노 합니다.
"이것 처녀들에게 갖다주세요"
(계속)
첫댓글 김미옥씨를 만남에
기뻐요^^
얼마나 반가우셨을까요
어서오세요 윤주님 감사합니다.
예 반갑고 말고요,
좋은 나날 되세요.
안녕하세요 형광등등님
청년들에게는 맞은 건 요사이
아닌가요
미옥님은 오래전 얘기고요
조금 헷갈리는 시기가 있어서
여쭙니다
어서오세요 대방구님 제가 매를 맞은 날은 1989년 6월 24일입니다 하하하 감사
@형광등등 그럼 지금 쓰시는글이
예전에 일어난 일들을
쓰신거군요
@대방구 예 제가 1살때부터 제 역사를 쓰는 중이에요
그리고 지금 85세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