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게에도 있는 이야기에서 든 의문점이라 적어봅니다)
명-청 교체기의 조선의 외교를 보고는 사이비역사학이나 대중들을 호도하는 역사학에서는 조선이 무너져가던 명나라를 단순히 의리만으로 붙잡고서 청나라가 성장하는것을 지켜보지 못해서 결국 병자호란과 같은 끔찍한 굴욕을 겪었다고들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반박하는 분들은 당시 명나라는 지금의 미국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힘을 과시하는 곳이었고, 비록 사르후에서 패배는 했지만 영원성을 20년간 돌파하지 못하고 끙끙 거렸던 것을 봤을 때 명나라의 실력을 믿는것이 전혀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부에서 썩어간다는 것을 당시 조선의 능력으로는 파악해내기 힘들었다.
뭐 대충 이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몇가지 의문점처럼 보이는 점은 이러합니다.
1.사르후 전투의 참상을 조선은 직접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명나라의 병력운용술이 개판이라는 것과 적어도 청나라가 회전에서는 절대 만만치않은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명나라가 아무리 국력이 쎄다한들 사르후 전투때 보여준것처럼 계속해서 병력을 운용한다면 도와준다고 한들 전혀 믿을만한 우군이 되어줄 수 없다고 봅니다.
2.조선과 명의 연결통로가 사실상 차단당했다.
사르후 전투이후 사실상 요동지역은 청나라의 영향력아래 들어가게 되었고 직접적인 육로를 통해서 증원이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명나라가 회전에서도 패배했고 조선과의 육로연결도 차단당한다면 결과적으로 조선은 단독으로 청나라와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것을 감안했어야 되지 않나는 생각이 듭니다.
3.조선군은 적지않은 병력손실을 겪었다.
부차전투(심하전투)로 파병갔던 강홍립의 병력이 대패를 하여 간신히 살아돌아왔고, 이후 얼마안되는 1624년에는 이괄의 난으로 소중한 북방정예병력이 사실상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는 조선이 상당한 병력의 공백이 생긴것이고 과연 전쟁이 발발했을시에 버틸만한 힘이라도 마련해놓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 드는 바입니다.
(대략적으로 사르후에서 1만, 이괄로 1만, 정묘로 1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군이 9만을 운용했으니 1/3정도가 타격을 입은 것이겠지요 물론 10년이라는 세월이지만...)
4.병자호란 이전 조선은 두번이나 당했다.
부차전투뿐만 아니라 정묘호란에서도 조선군은 청의 군대를 막기에는 상당히 버거웠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인조역시 급하게 강화도를 피하는 등의 청나라의 군사적 역량을 충분히 보았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제 생각엔 이정도의 패배를 당했다면 군사적 힘싸움에서 과연 조선군이 청군에게 저항을 할 만큼 충분한 힘을 갖추었는지 물음표가 생기게 됩니다.
종합하자면.
1619~1636년 사이의 전란과 정치적 상황에서 조선의 군사적역량으로 청의 역량을 막아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고, 과연 명나라를 믿어도 될만큼 혹은 적어도 조선이 위기에 처하면 도와줄 수 있을만큼 믿을만했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어느분들은 영원성 전투에서 누르하치가 전사하는 등의 명군도 다소의 성과를 냈다고는 하지만, 그런분들이 얘기하는 것중에 제대로된 '회전'에서 승리를 거두어서 후금에게 타격을 줬다는 얘기는 보지 못했습니다. 명이 수성에 성공한다 한들 도움을 못주면 조선에겐 있느니만 못한 허울뿐인 승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조선이 백성을 위한 국가였든지 왕실을 위한 국가였든지 간에 병자호란과 같은 대굴욕을 겪는 것은 백성한테도 왕실한테도 안좋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호란이 있기전 20년간 그런 비극이 벌어질 수 있을만한 조각들은 상당히 갖추어졌다고 봅니다.
이런 의문점이 해결되기 위해선.
1.조선은 충분히 후금을 버틸만한 역량이 있었다.
2.명은 수성뿐 아니라 회전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혹은 수성이라도 큰 성과를 거두어 후금에게 큰 압박이었다)
3.명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조선을 도울 수 있었다.
정도만 제공된다면 충분히 의문이 해소될 것 같습니다.
P.s 명청전쟁의 다른 전투사례를 안보고 넘겨짚은 것이다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찾아봤을 때 사르후와 영원성 말고는 다른 전투사례를 보기 힘들었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만큼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뉴에이지 죄송합니다.
@kweassa 괜히 사람 무안하게 왜들 그러십니까.
@구경하는사람24 누가봐도 랄까, 전 그 누가 아닌듯 하네요.
여기 병자호란 당사자가 있는것도 아닌데 농담도 못할까요
@구경하는사람24 보니까 사람 성향에 따라 반응이 비슷하네요. 마음에 여유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kweassa 사람 무안하게 왠 난립니까 2
일단 알아두셔야할건
후금은 부족정으로시작했습니다.
누르하치의건주여진부족연합으로시작한거라 보시면되죠
부족정은 지지도가중요합니다.
근데 1620년대 후금에 수차례기근이있었고
요서지방공격도 수차례실패합니다.
그리고 지금우리는 과거일을안다지만
옛날사람들이 미래를알까요
조선이보기에 명은 밀려도
국력으로는 무너지지않는 철옹성으로보였을겁니다.
실제로 산해관러쉬만봐도 알수있었죠
그리고 조선은 양자택일외엔 선택이없었습니다.
명을버리면 후일 명이후금을 몰아냈을때
조선에게 어떤입장을취할까요
십중팔구는 배신자취급받을겁니다.
그렇지않더라도 관계는 악화되겠죠
그리고 객관적으로봤을때 후금을택할이유는 없어보였을겁니다.
뭐랄까. 과거에서 비춰 현재를 가늠한다고 쳤을 때, 조선 위정자와 식자층이 떠올렸을 상황은 북송과 거란, 여진의 시대이지 않을까요. 신흥 동북민족의 기세와 중원왕조의 저력을 가늠했을 때 명이 완벽하게 무너지리라 예측하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게 진짜 사실이죠..명에게도..우리 완전히 찧은거 아니거든요..라고 말 할 수 있고.. 후금에게는 이거봐봐..우리 지금 완전히 숙인거거든요..라고 말 할 수 있는..하지만 까들은 그딴거 없다..로만 일관하니..
사극드라마 등에서 너무 자극적이고 말도 안되게 그려서 "상국의 예를 저버리고 오랑캐에게~"이런 이미지가 무척 강하죠 저도 얼마전에 관심을 가지고 검색해가며 마치 전혀 새로운걸 알게되듯 같은 역사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역적투표 할때쯤이군요 이자성,오삼계가 궁금해서 검색하다가요 저말고도 상당수가 저처럼 사극등에서 악역계열의 신료들을 떠올리며 사대주의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일부 페이퍼 언론의 정치칼럼들도 진보,보수 안가리고 딱 저수준의 인식으로 현재의 외교문제등에 '당시 조선의 신료들이 사대주의에~' 하는글도 종종보았죠
@님아 술 깨신후 글 싸세요 22222222
역사교과서는 좀 오래된 주류의 의견이 실리지 않나요? 그럼 예전 사학계는 사대때문에 호란을 두번 일으킨 게 주류였다는 것 같은데, 그런 연구들은 어떤 경위로 나온 걸까요.. 요즘은 사대는 전혀 문제 없었고 시대상황상 청에 완전복종 하는 것 빼고는 방법이 없었다가 학계 주류인지, 10~20년쯤 뒤에는 그렇게 교과서에 올라갈거로 기대해도 되나요?
@하히해 식민사학의 잔재인가봐요. 감사합니다.
글의 명제가 문제가 있는데.. 다 지금 우리는 과거를 알고 있는 중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청나라가 중원을 재패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현재에 알고 있는 바탕으로 결과에 가정을 추측하는 것은 쉽지만.. 당대에 앞일을 연추해 결과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평가죠.. 1997년. IMF, 2008년 모기론 사태를 유추하고 대비한 국가가 있습니까?
저는 그것을 생각하고서 글을 쓴겁니다. 명이 무너지는건 몰라도 청이 공격하는건 당시로선 충분히 고려가능한 사안이 아닌가요?
@gakamoz 당시 청나란 명과 대치중인데 대치중에 조선을 친 것은 남북한이 대치중인 북한이 일본을 친 격이죠, 과연 당시 그변수를 얼마나 알아 차릴수 있었을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