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미술을 시작하면서(1)
서양 문명의 바탕은 헤브라이즘(유대주의-기독교)과 헬레니즘(그리스-그리스인은 자신을 헤레네의 자손이라고 함)이다.(2H라고 함) 서양 예술은 헬레니즘의 영향이 크다. 서양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문명, 특히 그리스 예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그래서 그림 이야기에서 그리스 미술은 조금 더 많이 하겠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계보를 보면, 고대 문명은 에게해 문명(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다. 그리스 문명은 이 두 문명을 이었다. 미케네 문명 때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다. 이때는 청동기 시대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났을 때 북쪽에서 철기로 무장한 야만인인 도리아 인이 처내려 온다. 이들은 철기로 무장하여 청동기로 대항하는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을 싹 쓸어버린다, 도리아인은 철기라는 청동기보다 뛰어난 무기를 사용하였지만, 문명으로는 원시 그대로이어서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보다 뒤떨어져 있었다. 도리안인은 그리스에 문명의 암흑기를 가져와서 기원 전 8세기 까지 지속한다. (시대별로는 에게(크레타) – 미케네 – 그리스 문명 – 헬레니즘 문명이다.)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은 앞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을 받아들였다. 도리아인이 지배하던 시절에도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은 그리스 주민의 가슴에 남아서 문명의 바탕을 이루므로, 그리스 문명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신화를 공유하여 올림푸스 신을 모시고, 제우스를 최고의 신으로 받들었다. 그들은 교역을 위해 배를 타고 지중해를 돌아다녔다. 공동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민족으로서가 아니고, 공동의 신화와 공동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뭉뚱거려서 그리스 인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유랑하는 음유시인을 불러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함께 즐겼다.
그리스 인은 좁은 땅에 작은 도시국가를 형성하여, 이웃 도시국가와 끊임없이 다투었다. 작은 도시국가는 씨족 공동체로 구성되었다. 씨족 공동체는 군사조직에도 유리했다. 씨족원이 전사이다보니, 그들은 공동의 권리와 이익 그리고 자유를 가지는 자유민(즉 시민)이었다. 또 자기들이 농사를 짓고 사는 땅이 자기의 소유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이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 나오는 영웅을 자신의 지역 출신으로서, 자신의 조상으로 삼는 이유도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제우스를 최고 신으로 모신 것은 전쟁이 많았다는 뜻이다. 제우스의 능력은 싸움이라면 도시이기 때문이다.)
씨족사회가 지역중심 사회로 바뀌면서 부족공동체 사회조직으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지역사회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 있는 남성이 사회 조직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민회도 생겼다. 자유민(=시민)이 민회에 참여하여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결정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테네가 대표적인 민주시민도시국가이다.
그리스 문명은 오늘날 서양 문명의 뿌리임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진 그리스 지도. 미케네 유적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