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불
김민율
어떤 열정 어떤 설렘으로 타오르던
순수하고 불온한 책들이 꽂혀 있다
천장에 닿을 만큼 바닥에 층층이 쌓여 있는 헌 책들
바벨탑 같아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세계의 높이들
우리는 헌 책방 골목에서 골목으로
영혼에 불지를 불씨를 찾아다닌다
예수와 부처 위에 과학서들 철학서들 소설과 역사서들
맨 꼭대기에 두꺼운 세계 대전이 몰려져 있지
사랑의 단상이 모든 세계를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있지
갖고 싶은 책이 있어요
저는 근원적인 것에 끌린답니다
영혼의 고결함만큼은 꺼지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의 마음이 재가 되지 않게
잔혹해지지 않게
사람의 슬픔까지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우리는 순수와 이성과 감각과 사랑의 불을 찾아
윗 문장과 아랫 문장 사이
이 골목 저 골목 배회하는 사냥꾼들
어떤 책꽂이에는 죽은 신들이
실패하고 몰락한 왕들이 질서 있게 꽂혀 있다
운이 좋으면 구석을 뒤지다
타오르는 첫사랑의 신을 집어 들겠지
최초로 아름다운 사유의 불을 발명하겠지
―계간 《포지션》 2023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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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율 / 1978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15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