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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전시관을 둘러보고 점심 시간이 되어
저희 가족은 가까운 금마 읍내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작은 읍내의 금마 터미널은 그렇게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정겨운 시골 마을마을마다 읍내로 나오시는 어르신들의 교통 요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금마 터미널 바로 맞은편 중화요리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더군요.
점심 시간이라서 그런지 식당 가득 앉아계신 어르신들...
우리 바로 앞 테이블에서는 농사일로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신 60대 남자 어르신들 세 분이서 한꺼번에 들어오시더니
그 중의 한 분께서 아직 치우지도 않은 그릇들을 손수 주방으로 치우시고 행주로 테이블을 닦으시고
물컵과 물병도 직접 가져다 놓으시는 이 어르신의 행동을 보며 이 식당의 단골이라는 것도 저는 곧 눈치채게 되었지요.^^*
그러시면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시더니 곧바로 하시는 말,
"아우야! 여그 터미널 중화요리집이여~! 너, 당장 일루 오그라. 내가 간짜장 시켜 놓았으니께 얼른 먹고 일혀~!
먹으려고 일하는 거 아닌감? 면 불면 맛 없응께 ~ 얼른 오시게. 여그 찬이 애비랑 진우 성님도 계시당께.
오늘 내가 큰 맘 먹고 쏘는거니께 얼른 오토바이 타고 오드라고. 그려... 쐬주랑 한 잔 같이 허드라고. 그려.. 기다리것소!"
그러시며 주인 아줌마께
"어이~! 주인아줌씨~! 여그 간짜장에 돼지 비게 양껏 넣어서 4인분 가져오드라고!
글고 쐬주 2병도 갖고오소~ 여그 테이블은 내가 치웠응께~ 그 팁으로 짬뽕 국물도 고냥 주쇼! " 하시는
말투 속에 주인 아줌마와의 돈독한 친분도 저는 알수 있었답니다.
"예예~~!! 암만요~! 곰방 대령하드랑께용~ 쫌만 기다리시요~!" 하시면서
또 계속 울려대는 전화벨을 받으시며
"아~ 예. 곰방 갔스라. 쫌만 기다리시요~! 곰방 도착한당께요~!"
정말 분주한 점심 시간의 식당입니다.
저의 가족 옆의 한 테이블에는 남루해 보이고 지쳐보이시는 어느 어르신 한 분이 말없이 앉아 계시다가
주문하신 뜨끈뜨끈해 보이는 짬뽕 한 그릇이 나와서 너무 흐믓하게 드실려고 하는 그 찰나,
그 테아블 바로 뒷편에 계시던 60대 중반의 어르신의 한 마디.
"거시기~ 보소. 아줌씨. 우리가 먼저 주문하지 않었소? 우리가 먼저 온 것 같은디...?"
"아, 예.. 이 분이 먼저 오셨당께요. 글고 손님네는 간짜장 2인분 주문하셨응께, 메뉴도 다르당께요.
곰방 나오니께 쫌만 참으소. 워낙 시방 주문이 밀려서 그러허요."
주인 아줌마의 공손한 대답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40대 중반의 아저씨께서
"아부지, 아직 차 시간 남았으니께 너무 재촉하지마소~" 하자
그 어르신은 "흠." 하셨고
"예. 아버님 . 저희는 괜찮아요. 차 시간 충분해요." 하는 며느리로 보이는 분의 말씀까지 반찬이 되어서
얼큰해보이는 짬뽕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시는 우리 옆에 앉아계신 어르신을 보며
저의 남편도 한마디 합니다.
"나도 짬뽕 먹을걸 그랬나?..."
정말 저의 옆 테이블의 그 어르신은 마치 며칠이나 굶으신 듯, 너무 맛있게 감사하게 짬뽕 드시는 모습을 보며
저도 잠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저 분은 짬뽕 CF를 찍으시면 딱이겠네. 정말 그냥 군침이 저절로 도니...' ^^;;
그러면서 친구분을 휴대폰으로 불러내신 그 어르신의 친구분이 드디어 홍길동처럼 번쩍 하고
식당 문을 여시면서 들어오셨습니다.
모두들 반가워하며 어깨를 툭툭 치시며 같이 한 테이블에 앉으시는 어르신 네 분.
"잘 왔소. 워낙 여그가 바빠서 아즉 간짜장 안왔으니께 여그 있는 김치랑 쐬주 먼저 드시게.
땡볕에 오토바이 타고 오느라 덥구마.. 어이~ 한 잔 받으소~!" 하시며
하하하하하 웃으시며 담소 나누시는 네 분의 우정을 보면서 저도 그냥 배가 불러옵니다.
드디어 왜 먼저 안 나오냐고 재촉하시던 아들내외와 그 아버지 되시는 분의 식사가 나왔는데
달랑 간짜장 두 그릇이었습니다.
나온 간짜장을 비비며 며느리 되시는 분의 말,
"아줌마~! 여기 빈 그릇 하나 더 주세요.
아버님~ 저는 양이 적어서 이거 다 못 먹으니까 같이 드세요." 하자마자
"아그야~ 나 괘않다니께. 내는 얼른 집에 들어가 먹으면 되니께 걱정 마소. 어여 느나 츤츤히 많이 먹으소."
간짜장을 덜어내는 며느리의 손을 뿌리치시며 그 며느리 손에 쥐어주시는 차표 두 장.
"잘 먹고 잘 가소.또 오랑께." 하시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셔서 식당 문을 밀고 나가셨습니다.
그 앞의 아들은 아무 말도 않은 채 묵묵히 간짜장을 먹고 있었지요.
아들이 4살이건 40대건 간에 아버지의 눈에는 언제나 철없는 자식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그렇게 벌떡 일어나 나가시는 아버지를 붙들지도 않는 40대의 중년 아들과
갑작스런 시아버님의 행동에 몸둘바를 모르는 며느리까지
부모님이 계시는 한 우리들은 언제나 내리사랑을 당연하게 받기만 하는 그런 자녀들인가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주인 아줌마의 말,
"여기 간짜장 계산도 아까 미리 주셨당께요. 천천히 드시고 고냥 나가시면 된당께요."
그러던 차에 짬뽕 CF를 찍어도 될 만큼 맛나게 드시던 어르신이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시고 다 드시고 난 후에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천원짜리 세 장과 동전 500원을 꺼내서 내시고 나가십니다.
아마 저 어르신은 오늘 큰 맘 먹고 금마 읍내에 짬뽕을 드시러 오신 분 같아보였습니다.
늘 먹던 점심꺼리를 뒤로 하시고 오늘 특별한 날로 읍내까지 나오셔서 짬뽕을 드시고 가시는 그 뒷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옷은 비록 남루해도 정직하게 농사일 지으시며 사시는 초로의 농부 할아버지이셨습니다.
금방 농삿일을 하시다가 나오셨는지 윗옷과 바지에 흙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모습을
식사값을 내시면서 나가실 때 저는 살짝 봤거든요.
초로의 농부 할아버지가 나가시는 그 문에 주인장 아저씨가 철가방을 들고 허겁지겁 들어오십니다.
얼굴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상태로 들어오시며
" 다음 배달이 어디여? 주문한 것 나왔남 ? 빨랑 배달해야 하는디.. 빨랑 주쇼~! 또 한바퀴 돌아야니께!"
주인장 아저씨의 재촉에 주방에서 대기하던 음식들이 우르르 두 개의 철가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또 아저씨는 쌩~ 하고 바람을 일으키시며 나가시고
드디어 우리 가족이 주문한 짜장면 세 그릇과 제가 주문한 초록색깔의 오가피 비빔냉면이 나옵니다.
중화요리집에서 무슨 냉면이냐고 남편이 핀잔을 주어도
서울에서는 먹을 수 없는 "금마 터미널 앞 중화 요리집" 에서만 맛볼수 있는 오가피 냉면~! 언제나 맛 볼 수 있는 건 아니죵~!
저는 아랑곳하지않고 씩씩하게 비빔냉면을 비빕니다.
식초도 넣구요~ 참기름도 더 달라고 해서 그렇게 우리 가족도 식사를 합니다.
우정의 4인방 어르신 테이블은 소주를 벌써 두 병 더 추가하셔서 드시고 있고
초로의 농부 할아버지가 나가신 그 자리에 어린 아들아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어느 30대 부부가 또 앉습니다.
그리고 아까 우리 가족이 했던 것처럼 메뉴판을 보며
또 주위 사람들의 먹는 음식을 바라보며 어떤 음식을 먹을까 잠깐 고민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중화요리집의 영원한 베스트 음식인 짜장면을 주저없이 2인분을 주문하더군요.
짜장면을 맛나게 먹던 남편의 말,
"아~ 이 집이 이래서 손님이 많구만! 짜장면이 먹어도먹어도 줄지를 않네.ㅋ
서울에서 짜장면 곱배기 시켰을 때의 양과 같아. 그리고 돼지고기도 듬뿍 넣었네. 자주자주 씹히는 걸 보니..."
그러면서 연신 젓가락을 움직입니다.
그렇게그렇게 점심이라는 같은 시간 안에
중화요리집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우리들은 2008년 6월 어느 정오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지난 6월 연휴 때 금마 터미널 앞 중화요리집 풍경이 자꾸만 내 마음에 남아서 적어봅니다...^^*
아 훈훈해 지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해에서 일을 하면서 어머니가 농사지으신 채소로 반찬을 해서 밥을 먹었는데 당연한 진리인 농사는 노력한 만큼 결실이 있는 순수한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글 자주 교감했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