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행 열차를 타고
올겨울 우리 지역에서 첫눈을 구경하기는 지난해 십일월 중순이니 석 달 전이었다. 상강 이후 소설 절기를 며칠 앞둔 늦가을 새벽녘 잠시 내린 눈이 세상을 순백으로 덮어주었다. 그날은 간밤 저녁 비가 부슬부슬 오다가 새벽에 기온이 곤두박질쳐 눈으로 바뀌어 아침이 되어 햇살이 번지자 연기처럼 금세 사라졌다. 어느 해는 눈을 한 차례도 구경하지 못하고 겨울을 보내기도 했다.
해가 바뀌어 입춘과 우수가 지난 이월 하순이다. 봄이 오는 길목 며칠째 장마 같은 비가 내리는데 그칠 기미가 없다. 정월대보름이었던 어제는 종일 흐린 날씨여서 전국 어디서나 보름달을 보지 못했지 싶다. 일요일 새벽잠을 깨 어제 다녀온 함안보 근처 내봉촌 주민이 쇠는 대보름 풍경을 시조로 한 수 남겨 놓고, 용화산 기슭 노아 무덤에 전해오는 얘기로도 시상을 다듬어 놓았다.
안방 책상머리에서 거실로 나와 베란다를 바라보니 한밤중 내리던 비가 새벽녘은 눈이 되어 내렸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고층이라 베란다에서 보면 창원대학과 도청 일대가 훤히 드러나는데 순백의 설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파트단지와 가까운 학교와 주택지는 눈이 녹아 지상에 쌓이지 않았다. 날이 밝아오면 금방 녹아 사라질까 봐 폰 카메라로 사진을 남겨 몇몇 지기에 보냈다.
아침 식후는 산책이나 산행이 아닌 대구에 소재한 예식장 하객이 되어 길을 나섰다. 열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부터 걸어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대학 앞으로 향했다. 새벽에 집에서 봤던 정병산과 비음산의 설경을 더욱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휴일을 맞아 대학 캠퍼스는 한적해 오가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대학 구내에서 공학관 앞뜰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산수유와 매화를 완상했다.
일전 빗속에 문우들과 도청 뜰에서 창원대학으로 건너와 살폈던 수목에 일찍 피는 꽃들이었다. 높이 자란 목련에서도 솜털이 부푼 꽃망울이 연방 꽃잎을 펼칠 기세였다. 대학을 먼발치서 병풍처럼 에워싼 정병산은 눈으로 덮였는데 교정은 화사한 꽃이 피어 겨울 속의 봄을 느낄 수 있었다. 영하로 내려간 날씨가 아니라 가늘게 비가 내려 우산을 받쳐 쓰고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갔다.
정한 시각 도착해 서울로 가는 itx새마을호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진영에서 한림정을 지난 삼랑진에서 선로는 원호를 크게 그려서 밀양강을 따라 밀양역에 멈췄다가 다시 미끄러져 갔다. 차창으로는 얼마 전 국보로 승격된 영남루가 바라보였고 유천 상동역을 무정차로 통과해 청도에 닿았다. 내가 청년기 대구권 야간강좌 대학을 다니느라 4년간 오르내려 눈감고도 훤한 산천이었다.
청도 일대는 반시용 감나무와 복숭아 산지로 유명했다. 봄날이면 복사꽃이 아름다웠고 가을날은 홍시가 주렁주렁 달렸다. 남성현터널을 지나 경산 철로 변에는 포도밭이 펼쳐졌다. 젊은 날 밀양에서 초등교사로 재직하며 일과 후 경산에 올라가 학생이 되어 밤늦은 시각까지 보냈다. 대학 앞에 방을 정해 쪽잠을 자고 새벽 열차로 밀양으로 내려가 아이들 앞에 서는 생활을 반복했다.
엊그제 젊은 날 방을 함께 썼던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는 학부 이후 박사 학위를 잘 살려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정년을 맞아 고향 하동에서 전원생활을 보내고 있다. 동대구행 열차에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동대구 역사를 빠져나가 친구 여식의 결혼식이 있는 호텔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예식까지 시간이 남아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망우당 공원을 둘러봤다.
이번 예식의 혼주는 교육대학 동기로 아직 사립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얼굴이 익은 동기들과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선 신부와 신랑을 축하해 주었다. 거기서 인생 후반전에 접어들어 대구에서 교직 생활을 보내고 은퇴한 세 동기를 만났다. 40대 중반 졸업 20주년에 보고 다시 봤으니 20년이 흘렀다. 한 남학생은 무덤덤했으나 두 여학생과는 … 24.02.25
첫댓글 그렇지...
오래 전 그대는 4년 동안
주경야독(?)
밀양에서 이쪽 동네로
밤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었지...
그때는 힘이 들었겠지만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빛이 나고 아름다워지므로...
그대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ᆢㆍㆍ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