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대표적 총액계약제 시행 국가인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5년 이른 1995년, 크고 작은 10개 보험을 통합한 건보체계 '전민건강보험'을 구축하고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노인인구 증가와 보험수입 저조, 의료 이용 왜곡 등 급격한 의료비 증가에 따른 재정위기 복병을 만났다.
1998년에 이르러서는 국민 한 사람당 지출하는 의료비 증가율이 연 10%에 이르는 등 최악의 건보재정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전민건강보험' 수입보다 지출이 평균 2.2% 더 많아
|
▲ 대만 중앙건강보험국. |
1998년 이전까지 전 의료기관에서 행위별수가제를 실시했던 대만은 의료 서비스 남용으로 인한 지불체계 왜곡과 질 관리 문제 등이 얽혀 심각한 재정 위기와 맞딱뜨렸다.
'전민건강보험' 시행 이후 연평균 보험수입 증가율은 5.4%인데 반해 급여 지급 등 지출 증가율은 연 7.6%로 연 평균 편차가 -2.2%가 벌어져 현재까지도 불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만 당국은 연평균 10% 이상 폭증하는 의료비 증가를 포괄할 능력이 저하됨에 따라 담배와 복권에 포함된 보험 안정화기금으로 충당했지만 이는 지극히 단기성 방안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중앙건강보험국 관계자는 "수차례 보험료율을 인상하려 노력했지만 임금이 장기간 정체된 국민들의 반발이 극심했으며 건보 지출의 간극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대만 당국은 심각한 건보재정 악화를 타계하기 위한 복안으로 본인부담금 인상을 비롯해 신약, 검사, 다빈도 이용자에 대한 본인부담금 등 여러가지 대안을 강구했다.
그 과정에서 대만은 이를 총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재정관리 개혁 필요성에 주목하게 됐다.
이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심해 매년이 아닌 5년에 한 번씩 올릴 수 있도록 법적 장치가 돼 있다"면서 "그럼에도 15년 동안 인상된 횟수는 단 두번에 불과해 총액계약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고 설명했다.
지불제도 개혁으로 보장성 강화-지속가능성 추구대만은 보험료 인상이 요원한 상황에서 의료비 비중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보장성 강화와 지속가능성의 양대 과제를 내걸고 1998년 지불제도 대개혁에 착수했다.
먼저 기존의 행위기준 지불체계를 전환해 총액의 '캡'을 씌우고 그 범위 내에서 행위별 수가를 인정토록 했다. 즉 개별 의료기관이 총액예산 범위 내에서 행위에 따라 지급을 받게 된 것이다.
총액으로 결정된 예산의 배분은 전국 단위로 결정한다. 책정된 전국 단위 예산은 행정원, 위생서, 비협회, 건보국 총 4개 부문 예산으로 나뉘고 이는 다시 인구조정공식에 따라 6개 지역별로 재배분시키는 형식이다.
특히 6개 지역 재배분 방식은 일종의 '지역 쿼터제' 형식으로 단일 보험자가 시행하는 총액계약제 상에서의 경쟁 기전으로 작용, 의료의 질 관리와 향상을 도모키 위한 효과적 방식이라는 것이 대만 건강보험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
▲ 대만은 재정위기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총체적 재정관리 개편 필요성에 주목하게 됐다. 사진은 대만 의원급 의료기관인 '진소'와 약국. |
이를 통해 지역에서는 의사들의 행위별수가제 및 병원 일부 진료에 대해 포괄수가제를 적용, 배분한다.
다만 일부 지역과 질병의 종류에 따라서 예외적으로 인두제 방식도 함께 채택했다.
의료기관이 부족한 오·벽지 등의 의료 편차를 고려해 의료인과 의료시설을 지정해 진료케 하고 해당 진료비는 인구 1인당 정액 방식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늘어나는 진료비를 억제시키기 위해 총액계약제를 관철시킨 대만은 현재 제도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거시적 전략과 미시적 전략을 동시에 운용하고 있다.
거시적 전략으로 협상을 통한 지출상한을 비롯해 부문별 예산과 지역별 예산을 설정하고 미시적 전략으로는 효율성을 위한 인센티브 형식의 지불단위 개편과 NHI 수가표(Fee Schedule) 개혁, 의료이용도 조사 등이 있다.
의료계 강력 반발…치과부터 병원까지 순차 편입1998년 총액계약제를 도입 당시 대만은 공급자 측의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특히 치과와 한방보다 수입 타격이 클 것을 우려한 의료계는 정부의 통제를 문제삼아 거세게 반발했다.
대만 당국은 1998년 치과외래를 시작으로 2000년 한방을 총액계약제 안에 순차적으로 편입시켜 의료계의 제도권 진입을 유도했다.
이에 따라 2001년 의과외래가 총액계약제를 수용했으며 이듬해인 2002년 병원까지 확대돼 전 항목 지불제도 대개혁이 완성됐다.
대만 당국은 공급자가 총액계약제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정부의 통제와 간섭이 심화될 수 있는 다보험자 시스템이나 관리 경쟁체제보다 의료계 스스로 관리가 가능한 총액계약제가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의원급 공급자들은 종별로 예산이 분리된 총액계약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의료체계 붕괴로 인한 병원과의 경쟁에서 수익을 보전받고 지불 시스템과 수가표를 개선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병원보다 먼저 제도권 내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건보재정 위기 한국…"지불제도 개편 수순 밟아야"대만과 유사하게 건강보험 통합으로 짧은 시간 내 보장성 60% 이상의 성과를 낸 우리나라도 늘어나는 진료비 압박과 노인인구 증가 등으로 올해 누적적자만 1조3000억원을 바라보는 등 건보재정 파탄 위기에 몰렸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 재정안정화의 우선 과제로 꼽히는 지출구조 개선이 시급함에도 명확한 통제기전이 없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내달리고 있다는 것이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건강보험 보장성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한 현안보고서를 통해 "보장성 제고를 위해서는 행위별 수가제 중심의 현 지불제도에 대한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며 총액계약제에 대해 언급했다.
|
▲ 우리나라 재정수지 현황. |
대만의 총액계약제을 성공적 모델로 평가하고 있는 서울대 이태진 교수도 심평원 국제심포지엄에서 "민간 의료공급자들의 서비스 내용을 보면 근거 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현재 요양기관 유형별 수가계약이 총액계약제의 단계적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통합 건보제도가 시행된 2000년부터 2009년까지의 총 진료비가 204.7% 증가한 것은 지출구조의 개선 없이는 유의미한 재정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지향하는 보장성 확대와 유지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만의 단일보험 '전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 |
|
대만은 1995년 정부가 보험자로 직접 나서 난립했던 크고 작은 보험들을 통합해 '전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을 이뤄냈다.
그 이전까지의 대만은 다보험자 체제로, 총 10개의 크고 작은 다보험자들이 난립했었다.
이 가운데 직정보험과 공무원보험, 농민보험은 전민건강보험의 큰 축이 된 주요 보험자로, 나머지는 군소 보험자에 속했다.
1995년 통합 이전의 가입자율은 국민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 수준인 59%에 머물렀으며 단일보험자체제로 전환하면서 전 대만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됐다.
'전민건강보험'은 약사와 간호사에게 급여비를 지급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치과와 한방을 포함한 의료기관에만 국한하고 있다.
약국은 처방전 발행 주체인 의료기관에, 간호사 또한 업무가 귀속된 의료기관에 급여분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불 범위에는 입원과 외래, 검사, 처치, 치과, 한방이 속한다.
연간 짜여진 총 급여비 예산은 한화 약 20조원으로, 인구 2312만명(2009년 기준)을 나눠 산출해보면 1인당 연간 865만원 꼴의 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1년 건강보험 급여비를 30조로 놓고 비교해 볼 때 1인당 연간 약 600만 선원의 혜택을 받고 있는 우리보다 265만원 가량이 높은 편이다.
대만은 노인인구 증가세와 의료전달체계 미확립이 우리나라와 닮아 있다. 현재 대만은 급격한 노인인구 증가로 전체 인구 가운데 노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10.5%에 달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10.1%와 흡사하다.
의료전달체계 또한 불명확해 의원과 병원 사이에서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이 자유로운 편이다.
또한 선택분업인 탓에 병원 내 약국 설치가 가능해 환자 의향에 따라 원내 조제도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