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을 자신에게 주지 않는다고 삐친 트럼프(1946)가 귀엽지 않습니까? 구리 꽃 축제 장소가 구리 왕숙천인줄만 알았는데 구리 한강 공원이었어요. 내일은 일찍 서둘러 코스모스 축제에 조인할 생각입니다. <꽃멍하러 구리로 ON> 타이들 죽이지 않습니까? 노벨 평화상은 나비 필라이(85/남아공)가 수상헸고, 나보다 무려 16살 위인 앤 카슨(1950/카나다) 누님이 2026 노벨 문학상을 거머줬다는 것 아닙니까? <빨강의 자서전>은 무슨 내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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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SNS '도망'의 닉네임이 '빨강'인데 좌빨인가. 그녀의 수상 소식에 불만은 1도 없지만 황석영(1943) 옹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1949)는 노벨상과는 인연이 없나 보네요. <빨강의 자서전>은 원제가 Autobiography of Red (1998)로 시적 소설, 신화의 재해석, 성장과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붉은 괴물 게리온을 현대의 외로운 소년으로 다시 탄생시킨 작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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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인간이 사랑과 상실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자기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는가? 앤 카슨은 이 질문을 신화와 시, 철학과 사랑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괴물에게도 자서전은 있다" — 타자의 사랑에서 자기 존재로. 세상은 언제나 영웅의 이야기를 먼저 기록합니다. 승리한 자에게는 역사가 주어지고 패배한 자에게는 침묵이 강요됩니다. 그런데 앤 카슨은 헤라클레스에게 죽임당한 괴물 게리온을 불러내어 그의 자서전을 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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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위대함보다 괴물의 상처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게리온은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을 통해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헤라클레스가 떠나자 세상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는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타인의 사랑으로만 규정되는 존재가 아님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철학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존재의 가치는 타인의 인정에 의해 결정되는가? 아니면 타인의 인정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존재 방식을 창조할 수 있는가? 게리온의 날개는 처음에는 감추어야 할 결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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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를 날게 하는 가능성이 됩니다. 변한 것은 날개가 아니라 날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입니다. 결국 앤 카슨이 보여주는 것은 상처의 소멸이 아니라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괴물은 인간이 되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괴물인 채로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빨강의 자서전> 은 사랑의 실패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 이후에도 계속되는 존재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앤 카슨은 게리온이 완전한 주체로 성장했다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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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여전히 상처와 모순이 남아 있습니다. 그 불완전함이 이 작품의 문학적 힘입니다. <빨강의 자서전>은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날개를 숨겼던 존재가 마침내 그 날개로 날아오르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게리온은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괴물입니다. 그러나 앤 카슨은 이 이야기를 뒤집어 괴물의 시선으로 다시 씁니다. 주인공 게리온은 붉은 몸과 날개를 가진 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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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형에게 학대받으며 성장한 그는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고 세상과 거리를 둡니다. 열네 살이 되던 해, 게리온은 자유분방한 청년 헤라클레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를 떠나고, 게리온은 깊은 상실감에 빠집니다. 세월이 흘러 게리온은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그러던 중 헤라클레스와 재회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안카시라는 새로운 연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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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남미의 화산 지대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게리온은 자신이 감추었던 날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날개를 펼쳐 화산 위를 날아오릅니다. 타인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던 소년이 자기 존재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왜 여전히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는가?
2026.10.1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