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편백림을 거쳐
그제는 창녕 도천 낙동강 강가 망우정을 다녀왔고 어제는 곽재우를 기린 대구 망우당공원을 둘러봤다. “임진년 초여름에 왜구가 침범하자 / 양반가 한낱 서생 서안을 물리치고 / 현고수 북을 두드려 의병 모아 싸웠다 // 홍의에 백마 타고 들려온 승첩 소식 / 칠 년을 시달리던 전운이 잦아들자 / 만년은 우강 강가서 근심 잊고 보냈다” 이월 끝자락 월요일 새벽 남긴 ‘망우정’이다.
일주일째 흐리고 비가 오던 날이 그쳤다. 아침 식후 산행과 산책을 겸한 길을 나섰다. 이른 시각에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서북동으로 가는 73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73번은 다른 70번대 버스와 달리 역 광장에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둘러 삼성병원을 거쳐 어시장으로 향했다. 밤밭고개를 넘어 동전터널을 지난 태봉에서 진동 환승장을 들러 진북으로 갔다.
덕곡천을 따라 골짜기로 드니 벼농사 뒷그루로 심은 보리는 파릇한 이랑이 드러났다. 이목마을에서 부산마을을 지난 금산마을에서 내렸다. 마지막 남은 한 아주머니는 학동이나 종점 서북동까지 갈 손님이었다. 금산마을은 동네가 산기슭을 따라 흩어져 형성되고 마을 앞으로 농지가 펼쳐졌다. 서북산이 봉화산을 건너가는 넓은 산자락은 독림가가 애써 심은 편백 숲이 우거졌다.
학동 저수지에서 가까운 산기슭엔 공직 은퇴 후 전원으로 귀촌한 시인이 산다. 내가 속한 문학 동아리 회장을 역임한 원로로 서예와 서각에도 능한 예술가다. 지난해 봄이 오던 길목에 지기 넷과 탐매를 나섰다가 시인 댁을 찾아 차를 마시고 환담을 나눈 적 있기도 했다. 금산마을 바깥에서 편백 숲으로 가는 길을 걸으니 시인 내외가 노후를 보내는 전원주택이 시야에 들어왔다.
진북 어울림 캠핑장으로 가는 길가는 고목으로 자란 매실나무가 꽃을 활활 피워 향기를 뿜었다. 멀리 아스라한 서북산 정상부는 어제 아침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희끗희끗했고 볼에 스친 바람은 차갑게 느껴졌다. 캠핑장을 지나 편백 숲 들머리 묘법사 계곡에는 여름 장마철 같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벼랑에는 넉넉한 비에 포말을 이룬 폭포수가 수직으로 쏟아졌다.
편백 조림지로 드니 산중 임도는 우거진 숲으로 그늘을 드리워 볕을 볼 수 없었다. 관리인이거나 치병을 위해 머무는 이가 있는지 산막이 나왔다. 인기척은 없어도 묶어둔 견공이 세 마리나 되었는데 낯선 방문객에게 적의를 품고 짖어대다 제풀에 지쳐 그쳤다. 산막을 지나 지그재그를 그리는 임도 따라 해발고도를 점차 높여 올라 베틀산 방향으로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앞으로 갔다.
수형이 멋진 소나무 아래 바위를 쉼터 삼아 앉아 간식으로 가져간 삶은 고구마를 꺼내 먹었다. 솔가리가 흩어진 자리에 춘란이 한 포기 보여 눈여겨 살펴봤다. 겨울 추위에도 시들지 않고 파릇한 잎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듯했다. 춘란에서 꽃대가 솟아 꽃을 피우면 봄을 알려준대서 보춘화로도 불리는 춘란은 수집가들 눈에 띄면 업어가겠지만 외진 곳이라 그럴 일 없지 싶었다.
서북산에서 감재로 건너온 낙남정맥 봉화산으로 가고 대부산에서 진동만으로 뻗친 지맥은 베틀산으로 이어졌다. 베틀산 허리로 난 임도를 따라가면서 산야를 누비는 주특기 채집 활동을 했다. 산마루 고지대라도 볕 바른 남향이라 보드라운 쑥이 돋아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캐 모았다. 겨울이 따뜻했고 비가 잦아 쑥은 웃자라다시피 했고 산중이라 깨끗함은 말할 나위 없었다.
임도 길섶에는 쑥만이 아니라 이른 봄에 데치면 나물로도 좋고 부침개 재료가 되는 전호가 더러 보였다. 전호는 명이나물과 함께 울릉도에 자생하는 특산 나물이다. 나는 우리 지역 산중에서도 전호가 자라는 곳을 알고 있는데 베틀산이나 진례산성 너머 임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쑥을 캔 봉지와 별도로 전호를 캔 봉지까지 채워 비탈길을 내려가 이목마을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