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각 25시
“저기요. 김형사님.”
짜증나는 인간이었다. 그는. 곱슬머리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아이패드를 들고 슬슬 뒤꽁무늬를 쫓는 그가 영 거슬렸고, 대체 뭘 원하는지 몰라 더 짜증이 나는 부류였다. 기자들이야 특종 못잡아 안달이나있어 입이 깃털만치 가벼운 김형사의 동기 최형사에게 기자들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이 기자는 왜 자꾸 자신을 못잡아 안달인지 모르겠다.
“왜, 또 뭡니까?”
“까칠하시기는…. 다름이 아니고 위에서 지시 받았습니다.”
“지시?”
“예에. 아무래도 이름은 밝혀야 할것 같아 미리 찾아뵙습니다. 제이름은 고경식이고요. 으음, 직업은 굳이 말하자면 기자로 치죠. 그럼, 조만간에 다시 뵈요.”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뜨려놓곤 고경식이 떠났다. 마치 내일이라도 당장 만날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부장 검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닌데, 기자들마저 난리니 세상이 어찌 돌아갈지 알 수 없다.
그런 착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맑았고, 푸르렀다. 덤으로 구름까지 그려 넣은 마냥 선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정 흡연 구역에 서서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냈다. 겨우 세개피가 남은 담배곽을 보자니 가슴 한 켠이 아쉬워 다시 도로 집어 넣는다.
부장 검사를 만나면 울화통이 터질테니 아껴두었다가 나올때 몰아서 피리. 김검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검찰청을 향해 느릿느릿 걸었다.
“뭐라고요?”
“나라에서 추진중인 개발이 있습니다. 총칭 25시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 개발팀에 합류할 검찰측 사람을요. 헌데, 비공식적인 개발이라 검사나 판사 또는 이름 굵직한 직책분들을 투입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의견과 함께 김형사님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개발의 검찰측 대표로 한낱 형사인 내가 들어가라? 그것도 비공식 개발을?”
“예. 그렇습니다.”
뭐 이런 미치고 파치는 새끼가 다있어. 혼자 궁시렁 거리던 김형사는 마른 세수를 하고 이마에 맺힌 땀을 쓰윽 닦았다. 그리곤 벅벅 자신의 점퍼에 문질러 닦았다. 윽. 외마디의 더럽다는 부장검사의 비명이 뒤따랐지만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다. 하긴, 이 일에 투입 될 인물은 자신 그러니까 김형사뿐이었다. 말했듯이 비공식적인 지시이고 그 말은 즉 위험이 뒤따른다는 소리다. 아주 뭐 같게도 자신에게는 딸린 자식도 부모도 없었고, 결혼을 할 여자도 없었다. 일 처리는 적당하게 잘 해내는 편이었고 승진 속도도 그저그렇게 평범했다. 그러니까 즉, 그런 귀찮은 일에 투입용으로 딱 알맞은 인물이라는거다. 암묵적으로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자신은 그저 그 지시를 받으러 온 아랫 사람이니 별 말 없이 김형사는 부장검사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어린놈이 싹수가 없어. 혼자 중얼거리다가 뜨끔해서 뒤돌아보면 그 여느때처럼 부장검사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김형사니임.
“내일 그 쪽으로 같은 지시를 받은 검찰쪽 아니지, 언론쪽 사람이 갈겁니다.”
“그게 무슨”
“비공식적 개발이지만 정부에서 온 관심을 받고 있고, 투자금도 만만찮아 아마 정부쪽 사람 입장으로서 한 분이 더 참여 하게 될겁니다. 그분이랑 같이 행동하시면 되고요.”
“아, 예.”
“그리고 저 싹수있습니다.”
뒷끝 심한 부장검사의 말에 어설프게 허허 웃던 김형사는 겨우 검찰청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아까 벼르고 벼렀던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파하. 공부 좀 더 해볼걸 그래서 사법고시 볼 걸.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처지를 탓하던 김형사는 깊게 담배를 빨았다. 빠르게 타들어가는 담배처럼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현재 시각. 오후 5시.
“예에. 정부에서 오셨다고요?“
담배를 끊겠답시고 사탕을 쪽쪽 소리나도록 저급하게 빨던 최형사가 정장 차림의 어느 한 남자를 귀찮다는 듯 대하고 있었다. 머리는 체 말리지도 못하고 출근도장을 찍은 김형사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어?”
“안녕하십니까.”
“고경…고경석!”
“경식입니다. 고. 경. 식.”
아, 맞아 맞아. 고경식! 담배를 대충 비벼 끄며 어설프게 웃은 김형사가 다시 고경식을 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아침에? 컴퓨터 키랴, 책상을 정리하랴 정신이 없는 와중에 성의 없이 묻던 김형사의 머릿속에 문득 어제의 부장검사의 말이 떠올랐다. 정부에서 오는 남자.
“…설마?”
“예. 맞습니다. 지시 받고 김형사님과 함께 움직일 고경식입니다. 이름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야, 당신이 어제 소개했으니까…“
“예? 아직 잠이 덜 깨셨나봅니다.”
사람 민망하는 재주가 탁월한 고경식의 비웃는 듯한 웃음에 기분이 확 상한 김형사는 대충 고경식이 내민 악수를 받아쳤다. 그런데 왜 벌써 오셨습니까? 김형사의 말에 머뭇거리던 경식이 김형사 책상에 널부러진 연필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입을 뗐다.
“개발이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좀 일찍 서둘러서 투입되어야 합니다.”
머리를 긁적거리던 고경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폭발음이 들렸다. 연이어 두번째 폭발음이 들렸고 형사 몇몇은 일제히 소리가 나는 근원지로 달려갔다. 폭발음은 점점 다가 오기 시작했다. 고경식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안경을 제대로 고쳐쓰며 머리를 계속 긁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폭발음이 잠시 멈추었을때 고경식은 어설프게 김형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제가 할 말은…
‘쾅!’
경식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아쉽게도 머진 줄 알았던 폭발음이 귀가 찢어 질 정도로 크게 들렸다. 졸지에 먼지 바다가 된 서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아무도 없는듯 고요한 정적이 귀에 닿았다. 고경식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눈 앞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픈 머리를 이끌고 김형사가 자신의 손목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전자 시계의 숫자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25:00.
“현재 시각 25시. 현재 시각 25시.”
알 수 없는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곧이어 당황할 새도 없이 무거운 눈꺼풀에 김형사는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