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봤을 푸념이다. 하지만 처음 잡지사에 들어가 동료 디자이너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무슨 해괴한 사대주의적 미감인가 싶어서 귀를 의심했다. 아니, 글자가 다 거기서 거기지, 영문자를 깔았을 때는 근사하던 디자인이 그 자리에 한글을 넣었다고 밉상이 된다고? 혹시 영어를 섞어 쓰면 같은 사람도 더 유식하고 고상하게 보는 촌스러운 사고의 소유자가 아닌지, 함께 일하는 동료를 새삼스레 뜯어보기도 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오해는 저절로 풀렸다. 디자이너들의 미감은 멀쩡했고, 우리 글자에는 그 엄청난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당최 해결이 안 되는 조형상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예를 들어보자. 다음의 영어 문장을, 뜻을 새기지 말고 외형적인 모양새로만 관찰해보라. He is a policeman. 따로 선을 긋지 않아도, 문장의 하단에 ‘가상선(假想線)’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우리말 번역문을 보자. 그는 경찰이다. 어떤가? 앞서 영어 문장에서 보았던 ‘가상선’과 같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가?
여기엔 조형적인 의미에서 일관적인 흐름을 잡아주는 요소가 전무하다. 한 자 한 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뒤죽박죽이다. 그러니 우리 글자를 오브제로 삼는 편집 디자이너들이 걸핏하면 체머리를 흔들 수밖에. 흔히 편집 디자인의 백미로 치는, 활자만 빼곡한 지면에서 배어 나오는 고졸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영어 원서에서는 흔히 만나는)을 우리 글자 갖고는 실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말 난 김에 부연하면, 이 문제를 보완하려고 디자이너들이 흔히 택하는 방법이 지면의 상하좌우에 의미 없는 선을 긋고, 꼭 필요치도 않는 박스를 씌우는 일이다. 구미의 알파벳에는 있지만, 우리 글자에는 없는 ‘가상선’을 억지로라도 새겨 넣으려는 것이다. 문제점이야 나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능상으로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를 보태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요소가 하나하나 추가될 때마다 디자인이 간결성을 잃고 텁텁해지기 때문이다. 간결성이란 디자인의 핵심 아닌가.
(중략)
하지만 길게 얘기해봐야 이미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다. 누구나 알다시피, 한글 세로쓰기는 가로쓰기와의 싸움에 밀려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도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서 말이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한자 문화권, 달리 말해 ‘붓의 문화권’의 언어는 전통적으로 세로쓰기였다. 그 편이 붓놀림도 편안하고, 동양적 사유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즉, 위에서 아래로 글줄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들떴던 기운은 차분히 아래로 가라앉고, 밖으로 활개 치던 생각의 방향은 골똘히 내면을 향한다. 마음 한복판에 자연스레 사유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읽다 보면 문장의 리듬감을 몸으로 체현하고 체득하게 된다.
반면에 가로쓰기는 횡으로 펼쳐진 현실세계의 작동 원리를 그대로 수용한다. 사람이 걷고, 말이 뛰고, 기차가 달리듯이, 두 눈은 횡으로 이어진 글자를 따라서 또 달리고 달린다. 현실세계를 관찰하던 습성을 고스란히 글쓰기의 영역으로 이어온 것이다. 그만큼 두 눈의 움직임이 기민하며, 편의성도 뛰어나다. 가로쓰기가 가진 현실추수적인 특성은, 현실과 유사한 체험을 제공하는 게 목표인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다. 가로로 4대3이었던 화면이 1.85대1로 커지고, 2.35대1로 확장한 데 이어 지금은 파노라마로 진화 중이다.
한 50년대쯤부터 세로쓰기, 가로쓰기 혼용하다가 90년대 중반부터 모든 출판물이 가로쓰기로 바뀌었대 근데 영화관 자막은 00년대초반까지 세로쓰기였어 아무래도 세로쓰기가 90년대 중반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거의 쓰지 않았으니까 스마트폰에 맞는 레이아웃이 따로 없는 게 큰 듯
첫댓글 좋은 글 잘 봤어
헐... 가로로 쭉쭉 읽다가 세로로 쓰인 글 읽으니 훨씬 눈도 편하고 집중이 잘되는 기분이야
오.. 세로로 필사 해보고싶어지는 글이다 세로로 잠깐 써봤는데 이어쓰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덜 날려쓰게되고 본문내용처럼 차분해지는 느낌이 있다
근데 세로쓰기하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데 글쓸때 오른손잡이면 번지겠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로로 쓰여져 있는게 스크롤 내렸다 올렸다 해야해서 읽기 불편한 거 같은디...그러고보니 예전 신문기사 보면 세로로 쓰여져 있는데 언제부터 갸로로 쓰기 시작했지??
한 50년대쯤부터 세로쓰기, 가로쓰기 혼용하다가 90년대 중반부터 모든 출판물이 가로쓰기로 바뀌었대 근데 영화관 자막은 00년대초반까지 세로쓰기였어 아무래도 세로쓰기가 90년대 중반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거의 쓰지 않았으니까 스마트폰에 맞는 레이아웃이 따로 없는 게 큰 듯
@비디오 테이프 어 영화관 자막 세로였던거 기억나 기억나!!ㅋㅋㅋㅋㅋ갑자기 추억돋네 신기하다ㅋㅋㅋ책도 보면 책 표지는 가로쓰기인데 책등은 또 세로쓰기이기도 하고..은근 세로로 쓰는게 아직 남아있는게 있네
세상에…! 세로쓰기에 완벽한 문자였구나..!
졸라 분위기있어...
가로쓰기로 쓰인 글씨들도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세로쓰기로 보니까 훨씬 예뻐보인다
글 너무 재밌다 고마워!
마침 가로 공책있어서 세로 필사했는데 훨씬 쓰기 편하다
띄어쓰기 간격조절이 어렵긴한데 이건 금방 익숙해질듯??? 내일부터 이렇게 써봐야지 ㅎㅎ
한글 이쁘기만 한데🩶🩶
그래도 저런 의미라면 세로로도 즐겨 쓰는 날이 다시 오면 좋겠네~~
명조체 너무좋아
글의 디자인자체가 세로쓰기에 적합하기는 한데 버릇이 되서그런가 가로읽기 아니면 너무 불편해
새로운 관점이네
맞아 필사할때도 느낀건데 세로쓰기가 더 편함
오 세로로 읽는것도 가독성이 진짜 좋다 여시야 마지막 글은 어디에 나오는거야?! 너무 좋아서 ㅠㅜ 내가 걷는 낯선길~ 이거
나도 저 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저 폰트 만든 디자이너가 따로 어디서 인용한 게 아니라 저 폰트 만들면서 생각한 걸 적으신 거 같아! 보통은 일일이 어디서 온 글인지 적으시던데 저건 따로 인용했다는 설명이 없더라
@비디오 테이프 아 그래서 찾아도 안나온거구나!!! 고마워!!
맞아 받침때문에 가로가 쫌 안예뻐보여 ,,, 세로로 쓰니까 훨씬 이뿌다
오 근데 진짜 세로로 쓰인 글 읽으니까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서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 같아.. 새로운 관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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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세로쓰기 하고 좌-우 읽기가 생기면 괜찮지않을까?
세로쓰기 우-좌로 눈이 움직이니까 읽기가 힘들다
헐 너무너무 흥미로운 글이다....
옛날 신문 세로쓰기였는데 읽기 힘들어서 가로쓰기된 연재소설란이랑 스포츠란만 읽었던 기억 남. 본문처럼 공간 많이 띄우고 쓰면 몰라도 신문처럼 빼곡하게 세로쓰기 해놓으면 가독성 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