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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인터넷 불교 사이트에 게재하도록 허락해주신 <미주현대불교> 잡지사에 감사올립니다.
한국의 불교음악과 그 감상
여섯째 마당. 영산회상(靈山會上)
1. 들어가는 말
한국시간으로 4월 28일 밤 10시 45분으로 바뀌기 직전에 이 글을 시작한다. 글을 쓰기 조금 전 1시간 10분 가량 악보 넘기느라 잠시 중단되는 시간 말고는 내내 영산회상으로 대금을 연주했다. 필자로서는 저녁예불인 셈이다.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설법하시고 보살 성중이 환희하며 들었던 장면을 그리는 음악이라 한다. 아마추어 연주자로서 필자는 대금으로 다른 어느 곡보다 이 영산회상을 가장 많이 불었다. 내일도 적어도 2시간 이상을 《현악영산회상》 곡과 조옮김한 다른 종류의 《영산회상》 곡을 연주할 것이다.
필자에게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있는 《영산회상》이지만 정작 어떤 곡이고 무슨 느낌이 드는가 묻는다면, 정말 답하기 곤란하다. 내가 과연 《영산회상》에 대해 어떤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소개에 값할 만한 내용을 제공해 드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 과연 내게 《영산회상》은 어떤 메시지나 느낌을 주는 걸까? 부처님이 가히 폐부를 찌르는 적확한 비유로 일승(一乘)의 법문을 설하시고 성불의 수기를 줄 때, 보살 성중의 환희작약하는 모습은 어떠했고 그런 다양한 장면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재현했을까? 관현악으로 연주될 때 각 악기는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등등,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한 대답이 필자의 머릿속이나 가슴 속에 없다. 그러나 국악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습하고 연주해보았고, 오늘도 내일도 또 연주하고 연습할 곡이지만, 지루하거나 밋밋하지 않고 아름답고 뜻깊고 웅혼하고 신비로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내게 전해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반적으로 《영산회상》 곡은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의 불보살을 노래한 악곡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 영산(靈山)이란 영취산(靈鷲山; Vulture Peak: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王舍城:현재의 비하르주 라지기르] 주위에 있는 산)의 약칭이며 회상(會上)은 석가여래의 설법회상을 뜻한다. 세존이 어느 날 영산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꽃비가 내렸다. 세존은 문득 그 꽃송이 중에서 하나를 들어 제자들에게 보였다. 하지만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 염화시중(拈花示衆: 이심전심의 뜻)이란 말의 유래가 되었던 이 설법을 그리워하며 세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영산회상》 곡이 아닌가 한다. 불교에서는 영산회상을 부처님의 대표적인 설법으로 보아서인지 영산에서의 설법 광경은 많은 불화를 통해 묘사되고 있는데 많은 사찰의 본존 부처님 뒤편에 《영산회상도》가 바로 그것이다.
《영산회상》은 원래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上佛菩薩)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옛 악보집을 살펴보면 처음엔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7자 가사와 선율이 함께 있었는데, 나중엔 가사없이 거문고 악보로만 전한다. 맨처음 성악곡이던 것이 기악곡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성악곡이었을 때 《영산회상》은 궁중 무용의 반주로 기생과 악공들에 의해 불렸으니 궁중무용인 향악정재의 하나였던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이라는 춤의 반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기생들이 영산회상불보살을 제창하며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빙빙 도는 모습이 마치 스님들이 부처에게 공을 드리는 모습을 본뜬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영산회상》의 가사는 중종 때 아마도 너무나 불교적 색채가 짙은 가사인지라, 수만년사(數萬年詞)로 바뀐 후 조선 후기 동안에 이르는 동안 아주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기악화하면서 《영산회상》은 차츰 풍류방에서 풍류객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해, 선비를 중심으로 애호가들이 늘면서 연주 방법도 점점 다양해지고 변주곡이 첨가되면서 현재와 같은 다양한 《영산회상》이 등장하였다.
보통 《영산회상》이라 하면 ‘중광지곡’(重光之曲) 혹은 ‘줄풍류’라 부르는 《현악영산회상》을 가리킨다.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라 해서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한다. 이 곡은 합주음악이지만 여러 악기 중 으뜸으로 일컬어지는 백악지장(百樂之丈)인 거문고가 10박을 연주한 뒤에라야 다른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한다. 요즈음에는 장단이 없는 다스름(국악에서 본곡[本曲]을 연주하기에 앞서 악기끼리의 호흡을 맞추기 위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생략하지만, 과거에는 다스름을 연주한 뒤 본곡을 연주하였다.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영산회상인 《관악영산회상》은 ‘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 ‘삼현(三絃) 영산회상’, 또는 ‘대풍류’로 불린다. 악기편성은 피리2, 해금, 대금, 북, 장구로 된 삼현육각의 기본 편성법이다. 이는 끝 곡인 〈군악(軍樂)〉을 제외하고 나머지 곡 모두 무용 반주곡으로 사용된다.
향피리가 주가 되는 영산회상인 《평조회상》은,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 ‘취태평지곡’(醉太平之曲)이라고도 한다.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현악영산회상》은 우조(羽調: 높은 조)의 계면조(황종계면조)인데 반해, 《평조회상》은 4도 낮은 평조의 계면조(임종계면조)로 조옮김한 회상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조회상은 향피리 중심의 음악이기 때문에 음량이 약한 현악기나 다른 관악기의 수는 향피리의 수에 따라 더 많이 편성하게 된다.
애초에 가사가 붙어 있을 때의 《영산회상》은 관악 합주곡이었으니, 꿋꿋한 관악기의 특성이 잘 살아있던 이 곡은 관악기를 중심으로 연주했다고 해서 ‘대풍류’라 했다. 우리 나라 관악기가 대부분 대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선율을 이끄는 피리도 관악연주 시 힘찬 느낌이 들게 향피리를 사용한다. 대금 연주도 힘껏 불어 높은 음역의 장쾌한 소리를 내는 역취(力吹: 고음을 힘주어 불어 갈대의 부드러운 섬유질로 된 대금의 청공을 울리게 한다)를 택하고, 장구 역시 채편으로 복판을 쳐서 전체적으로 합주 소리가 크고 시원하다. 반면에, 현악기가 주가 되는 《현악영산회상》에서는 현악기의 섬세한 소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피리도 향피리가 아닌 상대적으로 음량이 더 적은 세피리를 쓰고, 대금도 낮은 음역의 맑고 화평한 소리를 내는 평취로 연주한다(이래서 필자가 밤 11시 지나서도 영산회상을 연주할 수 있다). 장구도 섬세한 현악기의 소리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변죽을 친다. 대풍류가 힘차고 씩씩하다면, 줄풍류는 그윽하고 은근하다 하겠다. 《평조회상》은 《현악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이조한 곡이다. 거문고에는 그대로 적용이 되지만, 향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등의 악기는 4도 아래로 이조한 상태에서 한 옥타브 올려 연주한다. 《평조회상》은 거문고, 가야금, 해금 같은 현악기에 음량이 큰 향피리를 편성한 관현 합주곡이다. 부드러움과 유장함이 돋보이는 《평조회상》 중 첫 곡 〈상영산〉은 주로 대금, 피리, 단소 등의 독주곡으로 많이 연주되고, 〈상영산〉 이하 여러 곡들은 궁중 정재의 하나인 〈춘앵전(春鶯囀)〉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된다. 《현악영산회상》은 조선 후기 지방의 선비나 부유하고 지식을 갖춘 중인 출신의 풍류객들에 의해 발전되었고, 《관악영산회상》은 주로 궁중에서 정재반주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전승되었다. 그리고 《평조회상》은 《현악영산회상》을 완전4도 아래로 이조하여 만든 악곡이므로 음악사적으로 후대의 것임에 분명하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곡인 만큼 《영산회상》은 다양한 변주곡을 갖게 되었으니, 첫 곡인 〈상영산〉은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노랫말을 얹어 부르던 성악곡이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가사가 탈락하여 순수한 기악곡으로 전승되면서 변주곡인 〈중영산〉, 〈세영산〉, 〈가락더리〉가 나중에 추가되었고, 〈상현(上弦)도드리〉와 그 변주곡인 〈하현(下弦)도드리〉, 그리고 〈염불도드리〉와 〈타령(打令)〉, 〈군악(軍樂)〉 등의 악곡이 추가되어 현재와 같은 장대한 곡으로 되었다. 〈상영산〉과 〈중영산〉 두 곡을 ‘긴풍류’, 〈세영산〉 이하를 ‘잔풍류’라 부르기도 한다. 〈상영산〉에서 〈군악〉에 이르는 《영산회상》 한 바탕의 연주를 마치면,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로 구성되는 ‘뒷풍류’를 계속 연주하기도 하는데, 뒷풍류는 ‘천년만세’(千年萬歲)라는 아명으로도 부르며, 이들 악곡 중 〈양청도드리〉와 〈우조가락도드리〉는 당악인 〈보허자(步虛子)〉 계통의 변주곡이다. 호남지방의 향제(鄕制) 줄풍류에서는 〈굿거리〉라는 곡을 마지막에 덧붙여 연주하기도 한다.
먼저 독자여러분이 음악을 듣고서 최소한의 느낌을 갖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현단계에 알맞은 음원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네이버 검색창에 ‘상영산’이라 쳐서 열리는 화면에서, 왼쪽 메뉴 중에 동영상을 클릭하라. 여러 개의 동영상이 뜨는데 프로 연주단 또는 프로연주자의 연주도 있고 아마추어들의 연주도 있다. 제대로 온전하게 감상하기 위해 프로 위주로 안내하면, 2011년 4월 30일 현재 서울악회 연주의 첫 번째 동영상인 ‘취태평지곡 중 상영산’과, 우리나라 피리의 최고 명인 정재국 선생이 연주하는 피리 상영산 실황인 세 번째 ‘동영상’을 권한다. 짧게 한 2분 정도 연주된다. 하나는 합주고 하나는 독주곡인데, 둘다 앞에서 설명한 평조회상 중 상영산의 일부다. 동영상으로 보고 또 듣다보면 영산회상의 가장 원류가 되는 곡의 분위기와 느낌을 체험할 수 있을 테고, 서두에서 필자가 말했던 《영산회상》에 대한 소감을 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 《영산회상》의 구성
《영산회상》은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빨라진다. 첫 곡인 〈상영산〉은 한 장단이 20박으로 매우 느리다. 서양에서 가장 느린 라르고 (Largo)가 1분에 40박 정도라 할 때 〈상영산〉은 1분에 25박-35박 정도이니 얼마나 느린지 독자 여러분도 감이 잡힐 것이다. 《현악영산회상》에서 ‘슬기둥 둥’하고 울리는 거문고의 은은한 소리에 세피리 등 관악기의 가락이 휘감기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상영산〉의 느릿한 가락에 이따금 울려 주는 거문고 소리는 고요한 절간에서 바람에 묻혀 들려오는 풍경 소리를 듣는 듯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앞서 말했듯이 《평조회상》의 상영산은 대금이나 피리 등의 독주음악으로도 많이 연주된다. 합주를 해도 아름답고 오묘하고, 독주를 해도 손색이 없다. 《관악 영산회상》의 〈상영산〉은 향피리와 대금, 해금 등이 서로 주고 받는 연음형식이 특징적이다. 이 〈상영산〉을 변주시킨 것이 〈중영산〉, 〈세영산〉, 〈가락덜이〉다. 본격적 감상은 동영상은 없지만 국내 최대의 국악음원을 내장하고 있는 풍류마을(www.kmusic.org)을 통해 최고의 연주로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상단 메뉴중 ‘국악감상’을 클릭한 다음, 왼쪽 메뉴 중 ‘풍류방의 음악’을 클릭하라. 여기서 1페이지와 2페이지 중에서 상영산을 클릭해서 모두 들어보라. 이어 검색창에 ‘평조회상’을 쳐서 상영산을 듣고, 또 검색창에 ‘표정만방지곡’을 쳐서 상영산을 들으면 세 가지 판본의 상영산을 우리나라 최고의 대가들이나 연주단의 훌륭한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우리 나라 국악학자 분 중 101세까지 사셨던 이혜구 박사님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이 〈상영산〉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에 맞춰 체조하는 걸 건강비결로 삼았다는 얘기가 있다. 이 분은 90세 시절에도 대학원생 강의를 하셨으므로, 필자는 학부생이어서 강의를 직접 듣지는 않았어도 국악과 여러 교수님들의 영접을 받는 노교수님의 모습을 가끔씩 뵌 적이 있다. 그분의 그런 노익장의 배후에 〈상영산〉의 공력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몸과 마음의 수련에 큰 도움을 주는 음악이라 생각된다.
〈중영산〉은 〈상영산〉과 장단은 같으나, 빠르기가 〈상영산〉보다는 조금 더 빨라져 1분에 30박-40박인데 여전히 상당히 느린 편이다. 첫 곡인 〈상영산〉의 2장부터 4장까지를 변주한 곡이다. 거문고의 경우 〈상영산〉을 제4궤에서 연주하는데 비하여 〈중영산〉은 제7궤에서 연주하는데, 이는 〈상영산〉을 4도 높게 변주하였기 때문이다. 현행 5장의 4장단은 돌장이라 하여 속도가 빨라져서 사실상 그 다음 곡인 〈세영산〉의 초장 역할을 한다. 필자로서는 매일 개인적으로 저녁 예불 삼아 《현악영산회상》을 연주할 때, 이 곡이 끝나면 아직 남은 곡이 7-10곡이나 되지만 워낙 〈상영산〉, 〈중영산〉 연주가 오래 걸리므로 내심 ‘오늘 하루가 저무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감상 요령은 〈상영산〉의 경우를 응용해서 최고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세영산〉은 필자가 대금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때, “산에서 내려오는 거뜬한 마음으로 연주하라”는 조언을 들으며 연습했던 곡이다. ‘잔영산’이라고도 한다. 《영산회상》의 첫째 곡인 〈상영산〉을 변주해 속도를 약간 빠르게 한 곡이다. 〈중영산〉보다 빠른 10박을 1장단으로 하며 장구치는 법도 다르다. 대개 합주음악로 연주되지만 독주곡이나 중주곡으로도 연주된다. 네이버 검색창에 ‘세영산’을 입력해 클릭하면 맨 위에 뜨는 ‘국악정보’ 세영산에서 하단의 ‘동영상 바로보기’를 클릭하면 동영상으로 일류 연주자들의 연주를 통해 〈세영산〉을 감상할 수 있다.
〈가락덜이〉는 〈중영산〉, 〈세영산〉과 같이 〈상영산〉의 변주곡이다. 〈상영산〉은 1분에 30정간(井間) 정도로 연주되는데 세영산은 1분에 45정간 정도로 빨라지며 가락도 장식음이 많아진다. ‘가락덜이’라는 말은 선율을 덜어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가락덜이〉는 음악의 속도는 〈세영산〉과 같으나 음이 덜어져서 선율이 간결해 지는 특징을 갖게 된다. 음계는 황종·태주·중려·임종·남려의 5음 음계인 황종(黃鐘) 음이 중심이 되는 황종계면조이다(평조회상의 가락덜이는 임종계면조이다). 장단은 10박 장단으로 〈세영산〉과 같은 장단형을 가지고 있다. 감상요령은 네이버로 ‘세영산’을 검색했을 때 두 번째 항목에 나오는 ‘관련동영상’ 중에서 역시 두 번째 나오는 6분 6초짜리 가락덜이를 클릭하면 된다. 연주자와 악기를 보면서 들을 수 있으니 거의 공연을 관람하는 수준이다.
다섯 번째 곡인 〈삼현도드리〉는 ‘삼현환입’, ‘상현도드리’라고도 한다. 《관악영산회상》에서는 ‘함녕지곡’(咸寧之曲)이라고도 한다. 초장의 첫 3장단은 현행 〈세영산〉 4장의 첫 3장단을 변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현도드리〉는 《현악영산회상》에만 있고 《평조회상》과 《관악영산회상》에는 없는 곡이다. 느린 〈상영산〉,〈중영산〉을 지나 좀더 빨라진 〈세영산〉, 〈가락더리〉를 경과해 〈삼현도드리〉에 이르러 더욱 빨라지고 악상도 씩씩하고 웅혼하게 전개되다가, 이 지점에서 좀더 느려지고 낮은 음으로 연주되면서 전체 곡의 흐름을 다시 한 번 추스르고, 악곡의 기본 정신이랄까 기본 악상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그 다음으로 나아가려는 곡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필자가 연주할 때도 한번 더 에너지를 충전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그윽한 효과를 늘 체험한다. 몇몇 연주자들이나 감상자들이 이 〈하현도드리〉의 배치야말로 《영산회상〉 곡을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는 대단히 절묘한 음악적 구성이라는 소회를 밝힌 바도 있다. 대체로 《현악 영산회상》이 어쨌든 다른 두 개의 영산회상곡보다 《영산회상》을 대표하는 곡으로 생각되는 게, 어쩌면 이 곡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곡으로 인해 음악적으로 《영산회상》을 더욱 풍부하고 좀더 아름다우며 깊이있게 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하현도드리’를 클릭하면 열리는 창의 중간에 위치한 ‘국악정보’ 아래 4개의 동영상 중 첫 번째 동영상을 보라. 국악정보 바로 밑 동영상은 엉뚱한 곡이 흘러나오니 조심하라.
일곱 째 곡은 〈염불도드리〉다. 삼현도드리의 일부를 변주한 곡이다. 필자로서는 이곡에 왜 ‘염불’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연주할 때마다 곱씹어진다. ‘염불’이라는 명칭으로 미루어보아 원래 전형적으로 불교음악이었던 것이 《영산회상》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전반부는 불교의 ‘나무아미타불’ 육자염불(六字念佛) 가락을, 후반부인 볶는 염불부분은 경쇠소리를 묘사한 것이라 한다. 빠르기는 《현악영산회상》의 경우 1분 70박 정도 된다. 볶는 염불 부분은 1분 110박 정도이다. 〈염불도드리〉의 2장 제 13장단 이하는 악곡의 두 장단을 제외하면 〈삼현도드리〉 2장 제 8장단 이하와 같다. 관악합주로 연주하는 《관악영산회상》에서는 특히 무용 반주음악으로 자주 사용된다. 네이버 검색창에 ‘염불도드리’를 쳐서 열리는 화면 상단의 국악정보 바로 밑의 ‘동영상 바로보기’를 클릭하면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일류 연주를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두 곡 〈타령〉, 〈군악〉은 불교음악과 관계없이 덧붙여진 곡이다. 〈타령〉은 3소박 4박을 한 장단으로 삼는 타령장단이다. 소박을 기준으로 볼 때 12박 한 장단으로 볼 수도 있다. 제 9소박이 강조되는 점이 특징이다. 빠르기는 1분 130소박 정도로 흥청거리는 느낌의 곡이다. 〈군악〉 장단도 똑같이 타령장단이다. 〈타령〉에 비해 장2도 높은 조로 구성되어 있고, 빠르기는 〈타령〉보다 좀더 빠른 1분 150소박 정도로 경쾌하게 연주된다. 특히 군악의 3장 부분에 권마성(勸馬聲) 가락이 특징적이다. 권마성이란 원래 임금이나 고관이 행차할 때 사령이 행찻길을 정돈하기 위해 높고 길게 외치는 소리인데, 곡에서는 관악기가 고음으로 길게 뻗고, 현악기가 대점(거문고에서 오른손을 들어 술대로 위에서 아래로 현을 내려치는 것)을 짚으며, 양금이 채를 굴리는 부분을 특별히 가리킨다. 〈염불도드리〉와 〈타령〉 및 〈군악〉은 거의 민속악에 가까운 음악이다. 〈상영산〉에서 〈삼현도드리〉 정도까지 이성에 치우친 아악(雅樂)적 음악이 위주였다면, 감정에 치우치는 민속악적 음악이 뒤를 잇는 셈이다. 필자가 《영산회상》을 감상하고 연주하며 해석해 보건대, 이성을 위주로 하는 대목에서도 미묘한 감성의 흐름이 감지되고, 감성을 위주로 하는 대목에서도 엄정한 정신적 기상과 절제가 느껴진다. 이성과 감성, 이 양자의 통합이 인간적 성숙의 척도이듯이, 영산회상에서도 이런 이상을 추구한 게 아닌가 한다. 〈타령〉 감상요령도 〈염불도드리〉와 동일하다. 〈군악〉은 네이버나 다움을 이용하기 어려우므로(검색해보면 군대음악이라는 뜻의 ‘군악’에 관한 자료 일색이다!) 풍류마을(www.kmusic.org)로 들어가서 앞서 안내한 상영산 감상요령대로 감상하면 된다. 동영상은 없지만, 3가지 판본의 군악을 다 들어본다는 장점이 있다.
모든 《영산회상》이 이와 같은 아홉 곡 전부를 연주하는 건 아니고, 《관악영산회상》과 《평조회상》은 여섯째 곡인 하현도드리가 빠진 여덟 곡만 연주한다. 아홉 곡 전부 연주한 뒤 〈천년만세〉(千年萬歲)라는 짧은 모음곡을 잇대어 연주하는 것은 ‘가진회상’, 그냥 아홉 곡만 연주하는 것은 ‘민회상’이라 한다. 〈천년만세〉는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 등 세 곡으로 이루어지는데, 가락이 매우 깨끗하여 〈타령〉과 〈군악〉으로 조금은 고조된 분위기가 된 《영산회상》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필자로서는 〈양청도드리〉 끝부분에서 빨라졌던 곡이 느려지는 대목을 언제나 깊은 감동에 젖어 연주하곤 한다. 마치 세상사 시름을 모두 달래주고 위로해주면서 끝없는 기쁨에 젖게 하는 대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천년만세〉는 네이버 검색창을 이용해 앞서 설명한 식으로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천년만세〉를 제외한 《영산회상〉 아홉곡을 석굴암의 부조 및 여래좌상의 감상에 빛댄 이효분 교수님의 글이, 매우 아름답게 《영산회상》을 묘사해준다는 생각이 들어 좀 길긴 해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영산회상》의 첫 곡인 〈상영산〉은 낮은 음으로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 조심스레 차근차근 한 장단 20박의 가락을 길게 여미고, 다시 시작하여 여미고, 다시 시작하고. 마치 본존불 선을 그어가듯 여유롭게 흐르는 가락이 평화스럽다. 즐겁지만 난잡하지 아니하고,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다. 고요함 속에 활기가 있으니 경망하지 않고, 화사하되 야하지 않은 가히 미의 극치 아니겠는가. 〈상영상〉을 지나 〈중영산〉에서 높이 시작한 가락은 본존불 뒷자리 십일면 관음보살같이 더욱 화려하게 수를 놓으며 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섬세하게 흐르는 선을 따라 십일면 관음보살의 목걸이는 그 화려함을 더해간다. 왼손에 잡은 꽃병에는 활짝 핀 연꽃이 부처를 향한 지성스러움을 절절히 전한다. 그 마음으로 드디어 본존불의 광배를 보름달같이 둥글게 자신의 위로 올려놓았다. 유독 자신의 머리 위로 부처의 광배를 올린 십일면 관음보살의 아름다운 마음이 제석천과 범천, 문수와 보현 보살에게 이어진다. 한 장단 20박이 〈중영산〉 끝에서 속도감을 내어 〈세영산〉과 〈가락덜이〉의 한 장단 10박으로 넘어갈 때처럼, 아름다운 팔등신의 몸에 동적으로 흐르는 선에는 속도가 붙어 있다. 배 앞의 치마 주름은 두 허벅다리를 강조하며, 얇은 옷 주름 속에는 여성스러운 곡선미가 감춰져 있다. 이들 모두 마음을 비우고 정리한 듯 얼굴에 안정된 표정을 담고 있다. 〈세영산〉, 〈가락덜이〉 한 장단 10박은 어느덧 한 장단 6박으로 흘러간다. 십일면 관음보살 양쪽으로 제자 다섯씩 서 있는 십대 제자 모습에 눈길이 닿는다. 이들 제자 모두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어깨에 걸치거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여섯 박 장단 ‘덩-기덕 쿵 더러러러-’가 군더더기 없듯, 이들 제자 모습도 꾸밈이 없고 깊이가 있다. 제자들의 각자 각자 표정은 특징적이다. 《영산회상》도 〈삼현도르리〉에서 낮은 가락 〈하현도드리〉를 잇고 불교 노래인 〈염불도드리〉는 2장에서 ‘나무-아미-타-불-’하며 육자 염불로 부처의 가르침을 염원한다. 2장 후반에 가서는 볶는 염불로 속도감을 내며 빨라져서 마무리한다. 〈삼현도드리〉와 〈하현도드리〉 그리고 〈염불도드리〉의 마지막 악장인 4장은 모두 같은 도드리 악장으로 부처의 중요한 가르침을 반복하듯 한다. 석불 위쪽 본존불 얼굴 높이에는 열 개의 감실이 있다. 보살 일곱 구와 유마거사상으로 보이는 보살들이 앉아 있다. 두 개의 감실은 왠지 비어 있다. 감실에 앉은 이들은 본존불의 얼굴을 바라보며 설법을 듣는 모습으로 한층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헌데, 이들 보살 틈에 끼어있는 유마거사가 특이하게 머리를 깎지 않았다. 부처님 세상에서 머리를 깎지 않음은 부처의 무한 사랑과는 무관하다. 무관함으로 치면 한 장단 12박의 〈타령〉과 〈군악〉도 불성과 무슨 관련이 있으랴. 《영산회상》 마지막 곡 〈군악〉에 들어서 3장 열두번 째 장단부터 권마성의 솟구치는 가락을 따라 천장의 연화문에 이른다. 높은 하늘에서 하나의 진리가 큰 돌을 중심으로 햇살깥이 빛처럼 퍼지는 것 같지 않나.”
3. 영산회상의 의의
서울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등 국악과가 설치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국악과에 들어가려면 《영산회상》을 잘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대학에 편입할 때도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신 두 분 선생님 앞에서, 대금으로 〈세영산〉을 연주했다. 국악과 대학원 시험도 마찬가지다. 대학원의 경우는 아예 전곡을 암기해서 연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주단에서 전문악사가 되기 위한 시험에서도 《영산회상》은 가장 중요한 시험곡목 중 하나다. 국악 하는 사람에게 《영산회상》은 시작이요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토록 중요한 《영산회상》은 과연 어떤 음악인가?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에 대한 강한 배타정책으로 거의 일관했던 이조에서 어떻게 기본적으로 불교적인 곡이 이조 후반기에 들어 융성할 수 있었을까? 가사가 바뀌고 얼마있다 아예 기악곡으로 되고, 일부 곡은 불교와 관계없어 보인다 해도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유교측을 긍정적으로 보면, 예술 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그 배경이나 기본사상에도 불구하고 존중할 줄 아는 미덕을 지녔다고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유교의 예악사상에서 ‘악’은 통치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임을 감안할 때, 이조 후기의 《영산회상》의 대유행은 그 의의가 자못 크다 하겠다. 또한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근본 정서를 꿰뚫고 심오한 진리에 입각한 상태에서 세속의 다양한 음악까지도 포용·섭수하는 위대한 음악은, 그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게 아닐까 한다.
영산회상의 작곡방식은 변주가 주를 이룬다. 조선시대 음악의 전반적 창작수법은 변주가 위주다. 왜 새로운 선율을 만들지 않고 변주곡을 많이 만들었을까? 이를 이해하는 데는 조선시대 음악의 사상적 지주 역할을 한 유교 5경(五經) 중의 하나인 『예기』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예악(禮樂)이 정, 즉 그 근본을 아는 자는 능히 예악을 창작할 수 있고, 예악의 의식과 절차를 아는 자는 능히 예악의 이치를 가르쳐 논술할 수 있다. 예악을 창작하는 자는 성자(聖者)라 하고, 예악의 의리를 훈술(訓術)하는 자를 명자(明者)라 하는데, 그러므로 명성(明聖)이란 예악을 창작하고 훈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성자(聖者)만이 새로운 것을 창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필자가 연재를 처음 시작하는 글에서 세존의 음악관을 이야기한 바 있는 데, 세존의 음악관을 다만 공자나 유학자의 입을 빌어 표현한 게 『예기』가 아닌가 한다. 진정으로 수행에 도움이 되고 진리에 이바지 하는 음악 이외의 음악을 절절히 금기시하던 세존의 말씀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세종도 수많은 곡을 지었지만, 선율은 고려 시대의 음악을 이용하고, 노랫말만 새로 지었다 한다. 『예기』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할 점은 《영산회상》곡을 실제 사정을 모르는 이가 들으면 이 곡들이 모두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린다는 사실이다. 변주이되, 자유로운 예술혼이 창조적으로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곡들처럼 연결되어 있는 게 《영산회상》이 아닌가 한다.)
이조시대에 ‘오불탄’(五不彈)이라는 게 있었다. 이는 거문고 연주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금기 사항을 밝힌 것으로, 첫째, 빠르고 요란스런 음악을 거문고로 타지 않으며, 둘째, 교양 없는 속된 사람 앞에서 타지 않으며, 셋째, 장터에서 연주하지 않으며, 넷째, 정좌해서 바르게 자리잡은 후가 아니면 타지 않으며, 다섯째, 의관을 바로하고 정장한 상태가 아니면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불탄에서 이조 시대 선비의 음악관을 일부나마 살필 수 있는데, 저자거리에서 음악을 듣는 비구, 비구니를 경책하며 가벼운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며 금하였던 세존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음악적 태도는 참으로 찬탄할 입장일 듯하다. 오불탄적 자세로 선비들이 자기 몸을 바로잡고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수양삼아 연주했다는 《영산회상》은, 지금 이 시대에 수행 정진에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는 불자들에게도 연주를 하든 감상을 하든 좋은 수행의 조도(助道)가 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자녀를 둔 불자라면, 웬만하면 배우는 단소를 통해 자녀들이 《영산회상》을 연주할 수 있게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것도 훌륭한 불교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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