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성전에서 복음을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나아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이러한 일들(가르치는 것과 병 고치는 것과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일련의 일들)을 하는 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인지 사람으로부터 나온권세인지 묻습니다. 그들의 논의 과정을 보면 결국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사람에게 많은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핵심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을 것임으로 무슨 권위로 이런 일들을 하시는지 말해 주시기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불신앙입니다. 성전에서 권위는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 스스로에게 있습니다(1-8).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서 비유로 더 구체적으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종들은 선지자,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 농부는 백성들의 지도자, 아들은 예수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맡겨서 백성들을 율법으로 잘 돌보고삶의 열매를 맺게 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낸 종들, 선지자들을 죽이거나 때리고 거저 보냈습니다. 하나님은여러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마침내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보냈지만 그 아들마저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포도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부를 당하시고 죽임 당하실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결국 농부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을 심판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종들에게 줄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이후 초대교회와 그 교회의 지도자들 중의 많은 수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유대인들은 그렇게 되어지지 않기를 바랬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건축자의 버린 돌, 곧 유대인들에게 거부당한 이 돌이 결국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모퉁이의 머릿돌 (건물을 지을 때 주축이 되는 첫 돌)이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 돌은 또한 시험하는 돌로서 그분을 거부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8-18).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이 말씀이 자기들을 향한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 때문에 예수님의 말을 책잡아 총독에게 넘기려고 계획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묻는 것은 함정이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시면 친로마적인 유대인들이 반역으로 치부하여 총독의 손에 넘기려고 했던 것입니다. 로마의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형상과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황제)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19-26). 또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두개인들의 시험에는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살아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27-40).
이를 본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잘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셔서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잘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의 시편110편 1절을 인용하시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서기관들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그들은 정작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외식은 심판 받을 것입니다(41-47).
예수님이 가지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위였습니다. 그 권위로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각자 예수님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생각만 하고, 그분을 참되게 주님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분의 말에 트집을 잡을 것이 없나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지도자 집단(대제사장, 서기관, 사두개인 등)에게 유익이 되는 말을 하는가 아니면 우리 집단에 유익 되는 말을 하는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집단에 이익을 줄 수 없자, 예수님을 없애는데 두 사람들은 뜻을 모읍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잘못을 설교와 말씀 묵상을 통해서 지적할 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 느껴질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 각자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예수님을 나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말고, 참된 권위를 가지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된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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