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번지는 산기슭에서
이월 하순 화요일이다. 지난 한 주는 연일 흐리고 비가 왔는데 어제부터 날이 개기 시작했다. 새벽에 잠을 깨 전날 서북동에서 베틀산 허리로 난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채집한 전호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예년보다 봄기운이 일찍 번짐은 매화가 피어남과 함께 들나물 산나물 채집에서도 알 수 있다. 냉이야 한겨울에도 몇 차례 캐왔고 볕 바른 자리 쑥도 캐서 국을 끓여 잘 먹고 있다.
어제는 전호나물도 몇 줌 캐 왔는데 나는 우리 고장에서 자생하는 곳을 알고 있다. 여러해살이인 전호는 이른 봄 울릉도 특산이나 진북 베틀산 허리로 난 임도에 자랐다. 용추계곡에서 진례산성 동문 너머 평지 임도에서도 봤다. 작년 봄에는 몇몇 지기와 한림정 쇠실을 찾아 현지 주민들은 자생하는지도 모르는 전호를 외지인이 넉넉하게 캐서 각자 집에서 유용한 찬거리로 삼았다.
화요일 아침 식후는 도보로 가능한 산책 코스를 택해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외동반림로 보도를 따라 퇴촌교로 향했다. 겨울비가 잦아 수량이 넉넉해진 창원천 상류에는 왜가리와 중대백로와 쇠백로를 한 마리씩 봤다. 텃새로 머무는 녀석들은 포란기가 아니면 단독 개체로 서식지에서 먹이활동을 했다. 창이대로 건너 사림동 주택지에서 사격장 운동장으로 향해 올랐다.
잔디 운동장 가장자리 자라는 여러 그루 고목 벚나무는 가지마다 꽃눈은 도톰해 예년보다 빨라진 개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산책하는 이들이 몇몇 보였는데 나도 그들과 같이 걸었다. 실내 사격장 외벽이 바람을 막아준 남향에는 작년 가을에 자란 토끼풀은 시들지 않고 하얀 꽃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씀바귀와 지면패랭이꽃도 볼 수 있었다.
운동장 바깥 트랙을 두 바퀴 걷고는 소목고개로 향해 올랐다. 겨울이나 봄이면 등산로에 먼지가 폴폴 일었는데 지난겨울 잦은 비로 그럴 여건은 아니었다. 돌부리가 드러난 등산로였기에 질척거리지 않아 보행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소목고개 못 미친 약수터에서 샘물이 콸콸 쏟아졌는데 한 모금 받아 마셨다. 소나무 숲속 운동기구에는 먼저 올라 몸을 단련하는 중년들이 보였다.
소목고개에 이르러 오솔길 따라 소목마을로 내려섰다. 고갯마루를 내려서자 단감과수원에 이어진 산지를 개간해 텃밭으로 바꾸어 놓은 곳이 나왔다. 길섶에 자라는 쑥이 보여 몇 줌 캐면서 방가지똥이 보여 놓치지 않고 캐 모았다. 소목마을 맞은편은 구룡산이 백월산으로 이어지고 25호 국도와 남해고속도로가 마을을 섬처럼 에워싸 질주하는 자동차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산리 횡단보도를 건너 칼국수로 점심을 요기하고 용전마을 곁 구룡산 산기슭으로 향했다. 다육이 농장과 양봉장을 지나 내가 목표한 곳은 민자로 뚫은 터널 요금소 근처 절개지다. 연전 터널이 개통되면서 단감밭과 산자락이 잘려 나간 언덕배기 자라는 방가지똥 순을 칼로 도려 모았다. 방가지똥은 왕고들빼기와 가시상추와 함께 산야초 가운데 천연 비아그라로 통하는 3총사다.
언덕에서 방가지똥 순을 캐다가 머위도 갓 움이 트는 녀석이 보여 몇 줌 캤는데 잎사귀에 달린 땅속줄기는 부드러운 자주색을 띠었다. 이른 봄 진전 둔덕골로 가면 거기서도 머위 순을 캐 올 수 있는데 언제 틈을 내서 한번 다녀와야겠다. 허리를 굽혀 쪼그려앉기도 하면서 방가지똥과 머위 순을 캤는데 쑥과 달리 검불이 달라붙지 않아 별스레 가릴 것이 없어 뒷마무리가 수월했다.
구룡산 산기슭 양지 켠에서 배낭을 추슬러 둘러매고 남해고속도로 걸쳐진 높다란 교각 밑에서 용암마을 앞으로 갔다. 북향 비탈을 올라 진영으로 가는 찻길에서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소답동에서 집 근처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무학상가 카페에서 꽃대감 친구와 접선해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바깥으로 나와 산야초가 든 배낭을 열어 방가지똥을 건넸더니 가뿐했다. 2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