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앞 특정대 합격 현수막 걷어야 한다
누구나 한번쯤 학교주변을 지나면서 교문이나 담벽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을 것이다.
“××대학 합격 ○○○”, “우리학교를 빛낸 자랑스런 ○○○”
그것을 보면서 “저 아이의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 “ 우리집 아이도 저렇게 잘하면 좋겠다”하면서 부러움과 한숨으로 쳐다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에는 학교교문 앞에 걸린 특정대학 합격 현수막은 너무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육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교수 학습하는 일과 그 과정”, “지식을 가르치고 품성과 체력을 기름”이라고 쓰여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 2조의 교육이념을 살펴보아도 “교육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로 되어있다.
학교는 이러한 것들을 제도적인 틀속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을 통해 사회구성원으로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힘을 갖도록 길러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쳐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자랑스럽게 내건 교문앞 현수막에는 학교가 스스로 교육이념을 포기하고 특정대학에 몇몇 아이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1년동안 노력한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수백명의 동기들이 3년동안 함께 부대끼며 졸업하고 교문을 나서건만 정작 학교를 명예를 빛내고, 교사를 만족시켜준 아이들은 고작 현수막에 걸린 몇 명이란 말인가?
이렇게 걸린 현수막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고, 현장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학생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고, 학벌이나 점수에 상관없이 특기와 적성에 맞게 과를 선택한 학생들에게도 상대적 패배감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학부모들에게도 사교육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교사에게도 입시위주의 강사만을 요구함으로써 결국 학교는 공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학벌을 위한 입시학원화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우리지역에서 이러한 특정대학 합격 현수막 철거를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에 현수막을 철거할 것을 공문으로 요청했으며, 해당학교에 전화를 걸어 철거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요청 이후 몇 학교에서는 자발적으로 현수막을 철거하였으나 그렇지 않은 학교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할일도 없느냐”며 당당하게 철거를 거부하였다. 결국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는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집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정보과에서 각 학교에 전화를 걸고 나서야 마지못해 현수막을 걷어내는 눈치들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교육으로 인한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의 핵심요인이 되고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가난에서 벗어나고, 집안도 살려 게층상승의 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교육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학교에서조차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기 보다는 오직 경쟁에서 승리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승자독식의 법칙을 가르친다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자긍심이나 자신감보다는 어두운 미래에 대한 심리적 위축감을 먼저 갖을수 수 밖에 없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교문앞에 현수막을 내걸어 몇 명의 아이들만을 위한 잔치를 벌일게 아니라 사회에서 나가서도 3년동안 함께 한 우정을 통해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수 있도록 서로서로 격려를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학교 교문앞 현수막 철거를 위한 활동에 대해서 “그렇게 할 일이 없냐”며 훈계와 야유를 했던 어떤 교장선생님의 말씀에도 아랑곳 없이 생활속에서, 내 주변에서, 낮은 단계에서부터 우리의 의식을 바꾸는 일을 끊임없이 실천해 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은순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장 무등일보
첫댓글 광주시내 수 많은 학교 앞에 걸린 현수막을 거둬내는 작업을 지부회원들이 직접 했답디다. 너무 자랑스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