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설명
▲열등감(Inferiority Complex): 의식·무의식 속에서 항상 자기를 비하해 남보다 못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만성적 정신상태. 특징은 대인공포, 불안심리, 보상심리가 강하여 돌발적인 행동을 잘하고 방어심이 강하며, 타인비판이나 책임 전가에 열을 올린다. 불필요한 아집이 있고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때로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
▲우월감(Superiority Complex): 자기의 능력이나 사회적 조건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자만심. 특징으로는 자기 과실에 대한 반성이나 죄책감이 희박하고, 자기 행위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거나 졸속한 일을 용감하게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대체적으로 허영심이 강하고 오만불손하며, 자기보다 약한 자에 대해서는 관대하나 자기의 자존심을 해치는 일에는 잔인하다. 자기가 저지른 일의 사후 수습에 대해서는 철저하지 못하다.
성격구성의 요인
인류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독재자로 인정받은 김정일의 인간성을 어떻게 짧은 글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심리학자들은 인격형성의 보편적 요소를 세 가지로 본다. 첫째는 선천적 요소, 둘째는 교육적 요소, 셋째는 환경적 요소이다. 미국 정부에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 대한 정신분석과 리더십을 연구하는 전문부서가 있다.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들과 정치학 교수들이 동원된다.
그들이 설정한 기준에 입각해 김정일의 인간성을 짧게 묘사하면 그는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서 오는 심각한 ‘존재적 열등감’과 평생을 절대 권력을 누리며 살아온 ‘환경적 우월감’이 배합된 특이한 인격의 소유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등감 속에도 약간의 우월감이 있으며, 우월감 속에도 약간의 열등감이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경우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거의 대등한 두 개의 콤플렉스(complex)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상호모순’과 ‘상호보완’의 끊임없는 갈등에 시달리던 일종의 정신적 기형아였다. 김정일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를 말하자면 그는 비겁하고 교활하며 잔인하다는 것이다. 또 돌발적이며 방어심이 강하고, 반칙과 편법을 능력으로 착각하는 동시에 허세와 과시를 즐기는 인간이라고 한다. 김정일 본인도 자신의 그런 부정적 측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불안하며 그런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발생하는 행동방식은 대개 예측불허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모계우성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이 그의 인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자. 자녀들은 대개 母系優性(모계우성)이나 父系優性(부계우성)이 태어난다. 김정일의 경우는 모계우성이었다. 북한에서는 역사를 날조해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을 항일투쟁의 영웅으로 추모하지만 그녀는 사실 참으로 볼품없는 천한 여자였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할 때 장백현 산간 야영지에서 빨치산 대원들의 옷을 세탁하고 페치카(pechka)에 불을 때는 하녀와 같은 여자였다. 빨치산 동료 최현의 주선으로 김일성이 그녀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으며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후 그녀를 절대로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죽을 때까지 심한 구박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과거 북한의 부주석을 지낸 김일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김정숙은 김정일이 여덟 살 되던 해 3남매(유라, 수라, 경희)를 남겨두고 32세에 죽었다. 북한에서는 그를 절세의 미인처럼 예쁘게 초상화를 그려놓고, 항일빨치산이었다고 추앙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열등감의 특징
북한에서는 외국의 외교사절이나 중요한 외국인을 접견할 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이 그 일을 담당한다. 최고통치자인 김정일은 거의 모든 경우 외국인과의 대면을 회피했다. 불가피하게 외국인을 만나 대화할 때 김정일은 천장이나 방바닥을 쳐다보며 상대방을 정면으로 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군부대를 방문하고 생산현장에 나타나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집무와 관련해 여러 사람들과 접촉했지만 한 번도 대중 앞에서 긴 연설을 한 적이 없다. 김정일은 비행기를 못 타는 ‘고소공포증’과 더불어 대중 앞에 나타나는 것을 싫어하는 ‘무대공포증(stage fright)’도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러한 그의 심리현상은 모두 ‘존재적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김일성대학을 졸업했지만 성실하게 학업을 이수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재학 시절 김일성의 아들이란 후광을 업고 여학생들과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들을 거느리고 ‘문예서클’ 활동을 한다면서 설치고 다녔다. 오직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과 ‘일인독재 수령절대주의’와 ‘날조된 조선역사’를 배웠고 절대 권력의 위력이 가져오는 모든 매력과 그런 힘의 실효성에 대해서 체득했다. 즉, 계급투쟁을 위한 철저한 ‘증오심’이 그의 두뇌와 세포 속에 입력됐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세계에서 지향하는 윤리교육 같은 인성교육은 북한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일개 평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열등감이 많은 겁쟁이로 물려받은 부모의 재산이나 탕진할 그런 위인밖에 못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그가 자라난 사회적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김정일을 만나고 온 김대중과 한국의 모 대학 총장, 그리고 클린턴 前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역임한 모 인사는 김정일을 평가하면서 ‘해박한 지식과 판단력이 있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무대에 출연해 대본을 외우고 연기를 하는 배우 김정일을 보고 왔을 뿐이다. 사탄과 같은 김정일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김정일은 1만5000개가 넘는 세계 각국의 영화 필름을 갖고 있었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허구성이 농후한 애정영화, 공상과학영화, 폭력영화 등이었다. 제임스 본드의 ‘007’ 영화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보았다고 한다. 그는 비현실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강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보상심리가 강하고, 상상력이 뛰어나며 허무맹랑한 공상을 즐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표준이나 합리적 방식이 아닌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능범들의 범행기법을 분석해보면 보통사람들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방법을 구상하고 사용한다. 열등감의 소유자가 우월감을 유지하려면 약세에 몰릴 때 무리수를 둔다. 그리고 惡手(악수)를 두면서 妙手(묘수)라고 자만한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반칙이나 편법을 쓰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거의 본능에 가까운 ‘약자의 생존수단(survival mechanism of the weak)’ 이라고 한다.
환경적 우월감
살아온 환경에서 조성된 김정일의 ‘환경적 우월감’이 그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분석해 보겠다. 그는 평생을 아버지 김일성의 절대 권력의 하늘 밑에서 살았다. 30대 초반에 후계자로 책봉을 받고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는 환경 속에서 지나칠 정도로 우월감에 도취되어 설치고 다녔다. 이로 인해 겁이 없고 불가능이 없는 그의 정신세계가 형성됐다.
권력승계에 대한 반대와 도전이 있었으나 김정일은 이를 모두 폭력으로 제압했다. 정적들을 숙청으로 처단하면서 자신감이 더해졌고, 잔인한 독재자로서의 뼈가 굳었다. 그러나 권력으로 조성된 그의 ‘환경적 우월감’은 쓴 약의 糖衣錠(당의정)과 같은 것으로 그 속에는 숙명적인 열등감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그는 생애 최대의 위기감을 느꼈다.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상한 것이 바로 先軍政治(선군정치)라는 것이었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직전 김일성과 黨(당) 지도부는 對南정책에서 경제 실리를 우선으로 하는 유화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김정일과 군부는 그와 반대로 조국통일은 오직 무력과 對南적화공작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강경노선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부자간에 갈등이 있었고 김일성이 죽자마자 당의 일각에서는 김정일 거부운동과 김평일 옹립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재빨리 군부와 손을 잡고 당을 견제했으며, 최고정책협의 기구인 당의 정치위원회를 국방위원회의 시녀로 만들고 인민군 총참모부 내에 보위사령부를 신설해 유례없는 폭압정치와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매년 약 300명 정도의 체제도전 세력을 처형했다.
실력을 갖춘 ‘보통의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대담하면서도 관대하다. 그러나 실력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환경적 우월감’의 소유자들은 편협하고 비겁하고 잔인하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김정일과 그의 추종자들이 취한 모든 행위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수단과 방법이 인류평화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북한 내부에서 김정일 추종자들은 그를 ‘대범하고 통이 큰 지도자’라고 추앙해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을 상대로 호통을 치는 ‘희대의 위대한 전략가’라고 떠벌였다. 그러한 그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협상하고 설득한다는 것은 그의 우월감을 부추기는 일이었다. 이러한 행태는 김정일이 파놓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는 행위였다. 일례로 6자회담은 싫다고 발버둥치는 아기를 강제로 태우려는 유모차에 불과하다. 6자회담은 관련국들의 공동책임 속에서 미국의 숨은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수단이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호의 방법은 아니다.
비정상적 행동
혹자는 김정일이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을 한 이후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절대로 방심할 수 없었다. 미국은 2006년 10월20일 오후 2시29분(동부표준시간) “북한은 중국의 압력에 못 이겨 더 이상의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발표문의 영어표현은 ‘may be’였는데, 구체적으로 ‘North Korea may be backing off’로 되어 있었다. 북한은 2009년 5월25일 또다시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001년 9월 11일에 미국을 공격한 알카에다 자살특공대 대원들은 북한의 對南공작기구 가운데 하나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작전부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란, 레바논, 시리아에서 들어오는 국제테러 대원들을 훈련시켰다. 이들을 훈련하기 위해 작전부는 평양의 삼석구에 15개, 평안남도 강동군에 15개 비밀초대소를 운영했다. 이 외에도 북한은 1960년대부터 중남미 지역, 특히 멕시코,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쿠바, 니카라과, 우루과이, 파나마, 엘살바도르 등지에 교관들을 파송해 게릴라 훈련을 시켰다.
일례로 코스타리카의 인민전위당(People's Vanguard Party)에는 재정지원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미국의 접경지역 국가들에는 북한으로부터 훈련을 받고 북한과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 수천 명의 국제테러 특공대원들이 잠복해 있다. 미국이 한때 멕시코와의 국경에 담을 쌓으려고 한 것도 단순히 불법입국을 막으려는 것만은 아니었다.
북한의 통일전선부 부장 임동옥이 사망했을 때 그의 사망이 자연사나 병사가 아니라는 의혹이 있었다. 2006년 5월 남한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7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데 대해 임동옥은 김정일로부터 심한 책임추궁을 받았다고 한다. 남한 내 정치활동에 북한의 對南공작기구가 얼마나 치밀하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일면이다. 그래서 그때까지 對南적화공작의 주역이었던 통일전선부는 일보 후퇴하고, 대신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작전부가 對南공작의 주역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2009년도에는 인민군 정찰국과 노동당 작전부와 35호실(舊대외정보조사국)을 통합해 정찰총국이 창설됐다. 이들 조직 산하에는 과거 김신조 부대와 같은 12만 명이 넘는 비정규전 자살특공대원들이 맹훈련을 실시하며 ‘결정적 시기’를 대기하고 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은 ‘정찰총국’의 소행이었다.
김정일을 평가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정신상태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답이 달라진다. 김정일은 리더십, 사고방식, 인간성, 통일정책, 대외정책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사건들의 실례를 들어보자. ▲그가 지시한 아웅산 폭파사건 ▲KAL기 폭파사건 ▲전 세계에서 이미 폐기처분된 사회주의 혁명을 고집하는 것 ▲수백만 명의 인민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데 김정일 자신은 극에 달하는 초호화판의 사치생활을 하는 것 ▲남한은 부강하고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적화통일을 하려고 하는 것 ▲그가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인민들을 폭력으로 학대하는 것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을 상대로 螳螂拒轍(당랑거철)하는 것 등등이다. 왜 우리가 이런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어야 했는가.
김정일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우월성과 사회주의 중앙통제 경제의 비효율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영화감독 신상옥과 배우 최은희에게 누차 그런 의견을 피력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로 북한을 개방할 수 없으며 인민들의 돌에 맞아죽지 않으려면 철저한 공포정치와 내부단속을 위해 끊임없이 위기를 조성해야 했다. 대외적으로는 극한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구매력 기준으로 북한의 연간 GDP는 400억불이 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매년 GDP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약 60억불 이상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강대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며, 對南적화공작을 위해 매년 약 30억불을 사용했다.
사이비종교의 교주와 같은 我執(아집)
김정일은 온갖 범죄수단과 인민착취로 조성되는 노동당 39호실 비자금으로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며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실험 등으로 인류평화를 위협하며 한반도의 위기를 극한상황으로 몰아갔다. 1차 핵실험(2006년 10월9일) 이후 UN 안전보장이사회는 對北제재결의안 1718호를 만장일치로 가결(2006년 10월16일)했다. 2차 핵실험(2009년 5월25일) 이후 UN은 對北제재결의안 1874호를 채택(2009년 6월12일)했으나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노력은 북한의 핵개발 야욕을 좌절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역사는 김정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는 묘수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김정일은 계속해서 악수를 두고 있었다. 국제사회의 요구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었으며, 김대중과 노무현의 햇볕정책으로 포식을 했던 그가 한국과 미국의 枯死(고사)정책으로 통치자금의 영양실조에 견디지 못해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김정일이 인류역사에서 특히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는 本有的(본유적) 열등감과 절대 권력의 환경 속에서 형성된 우월감이 교차된 비정상적 아집의 소유자로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같은 인간이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남미의 가이아나 인민사원(People's Temple) 교주 짐 존스(Jim Jones)가 생각난다. 아무도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은 신도 900여 명과 집단 자살(1978년 11월18일)로 끝났다.
미국이나 UN,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범한 실책은 김정일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하고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협상이나 대화나 경제 지원과 같은 외교적인 노력으로 그를 설득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마치 늑대에게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강요한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의 인내와 결단의 臨界線(임계선)이 선명하지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비장의 방법을 모두 동원해 북한의 체제를 종식시켜야 한다. 선과 악의 투쟁에서 선은 반드시 승리하고 악은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있다. 그것을 우리는 역사의 正道(정도)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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