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실 전호
이월 끝자락 수요일이다. 올해는 윤년이라 이월이 하루 더 늘어 내일이 마지막이고 한 해가 366일이다. 일선 학교는 봄방학에 들어 삼월 신학기를 앞둔 때다. 오리가 수면에 가만히 떠 있어도 물속에서 물갈퀴를 쉬지 않고 저어야 하듯 학교도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내부는 세밀한 설계를 짜고 있지 싶다. 농사나 병영 생활이 한 해를 주기로 하듯 학교 학사 일정도 마찬가지다.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창원천 상류는 잦은 겨울비에 냇물이 넉넉하게 흘렀고 쇠백로 한 마리가 물속 먹잇감을 찾아 부리를 겨누었다. 대학 앞 삼거리에서 캠퍼스로 든 공학관 뜰에는 방학을 틈탄 리모델링으로 폐자재가 쌓여 있었다. 조경수인 매화와 산수유꽃이 화사하게 피어 봄기운이 번졌다.
창원대학 공학관 뜰에는 매화와 산수유와 함께 높이 자란 목련이 두 그루 보였다. 한겨울을 건너오면서 그 목련을 유심히 살펴보는 중인데 솜털이 붙은 꽃눈은 겨울 추위에도 조금씩 부풀어 갔다. 한 주 전 문우들과 빗속에 우산을 받쳐 쓰고 도청과 창원대학을 두르는 산책에서는 목련 망울이 더 봉긋했다. 이제 그 목련은 볕 바른 자리 가지부터 하얀 꽃잎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창원중앙역으로 올라 순천을 출발해 부전으로 가는 무궁호 열차를 탔다. 진주권에서 타고 온 회사원들이 내리고 삼랑진 방면으로 갈 사람들이 탔다. 열차 승객은 많지 않아 객차는 고작 두 량으로 운행하지만 근래 주말에는 넘치고 평일에도 손님이 늘어난 듯했다. 그럴 만한 까닭은 삼랑진을 지난 원동역에 내려 매화를 구경하려는 이들이 있을 듯했다. 예년보다 매화 개화가 일렀다.
나는 설을 쇤 직후 이미 원동 순매원으로 나가 꽃망울이 부푸는 매화를 보고 왔고, 거기서 강 건너편 김해 용당 매화공원까지 두 차례 다녀왔다. 이번에 가는 걸음은 삼랑진이나 원동이 아닌 그 이전 역인 한림정으로 나갈 참이다. 창원중앙역을 출발한 열차는 곧장 깊숙한 진례터널로 들어 빠져나간 들녘에서 진영역에 멈춘 다음 화포천을 지나다가 다시 잠시 선 한림정역에서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가 들판으로 뻗은 북녘 찻길에서 원형 교차로를 돌아 장재교를 건넜다. 창원 북면부터 강변 따라 신설되는 자동찻길은 철길과 화포천 습지 구간에서는 높다란 주탑을 세워 상판을 쇠줄로 당겨 산허리를 뚫은 터널로 진입해 생림으로 갔다. 공사 현장을 비켜 오서에서 금곡 본동으로 들었다. 광주 노씨 집성촌인 금곡은 본동에 딸린 외오서 내오서와 모정까지 네 마을이었다.
금곡에는 일제 강점기 군수물자 공급을 위한 철광석을 채굴한 동굴이 있어 쇠 금(金)에 골 곡(谷)인 ‘쇠실’로 불렸다. 마을 안길을 지나 쇠실고개로 가는 길섶 쑥을 캐다가 전호나물도 보여 캐 모았다. 작년 봄에 지기들과 쇠실을 찾아 전호를 잘라 와 봄나물로 잘 먹었는데 생태계는 바뀌는지라 올해는 개체수가 현저히 줄었고 아직 더 자라야 할 듯해 몇 줌만 캐고 고갯마루로 올랐다.
고갯마루 쉼터에서 삶은 고구마를 먹으면서 맞은편 웅장하게 버틴 무척산을 바라봤다. 고개 아래는 주물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둔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나를 뒤따라 올라온 두 할머니에게 쉼터를 비켜주고 고갯길을 내려서니 봉림 공단 산성마을이었다. 찻길에서 조금 나아가니 생림면 소재지였고 강변 도요를 출발해 시내로 가는 61번 버스를 탔더니 나전고개를 넘어 삼계로 갔다.
고분 박물관에서 동상동을 지날 때 내려 재래시장을 찾아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폰 문자로 ‘쇠실 전호’를 남겼다. “화포천 샛강 되어 본류로 흘러드는 / 노씨들 모여 사는 쇠실에 들렀더니 / 산기슭 볕 바른 자리 전호나물 자랐다 // 지난해 답청에서 잎줄기 끊어 모아 / 끓는 물 삶아 데쳐 나물로 무쳐 먹어 / 이른 봄 다시 찾아가 일용 찬을 구했다” 2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