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최경환(경북 경산청도, 3선) 의원은 당내에서 유일하게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전화통화가 가능한 이른바 ‘정권 실세’로 통한다.
박 대통령은 최 의원이 원내대표로 있던 지난 5월 초까지 자주 통화하며 내각 추천 등에 있어서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국무총리로 지명된 지 6일 만에 낙마한 안대희 대법관을 직접 만나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한 사람도 최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최경환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최 의원은 사람을 만날 때 경상도 스타일로 친분을 나누는데 익숙하다고 한다. 5월 초 안대희 전 대법관을 비공개로 만났을 때도 단둘이 저녁식사를 하며 거나하게 술잔을 나눴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날을 때만 해도 서로 ‘대법관님’과 ‘원내대표님’으로 상대를 존칭했지만 이날 저녁자리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땐 ‘안형’과 ‘최형’으로 친구가 됐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 각자 차량에 오를 때까지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에게 친근감을 표시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최 의원과 안 전 대법관은 1955년생 동갑내기다.
최 대표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진다. 처음 본 사람이라도 자신과 통한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호형호제’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내에서는 “적(敵)이 없고 씀씀이가 넉넉한 정치인”이라고 최 의원을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 의원은 그러나 동료 정치인과 자주 만나기보다 언론인이나 정치권 주요 관계자들을 주로 만난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최 의원을 신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로열티(충성심)’와 열정, 그리고 능력이다. 박 대통령은 또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성격이다. 지난 2007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캠프의 살림과 기획을 책임졌던 A씨가 불법행위로 물의를 빚자, 박 대통령은 2008년 이후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
새누리당 친박 핵심 인사는 이와 관련, “로열티와 열정, 그리고 능력을 갖춘 인물에 대해 박 대통령은 두터운 신임을 보낸다. 대표적 인물이 최경환 의원인데, 그의 또 다른 장점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4년 4월 17대 총선 직후였다. 최 의원은 초선 때 당 정책위원회 제4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았는데, 현재로 보면 국토교통부 등의 영역을 담당하는 정책 분야였다. 얼마 뒤 최 의원은 수도이전대책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유독 이 사안에 관심이 높았던 당시 박근혜 대표는 최 의원과 수시로 상의하며 가까워졌다.
박 대통령은 수도이전 문제에 있어서 원칙론을 고수해왔다. 2010년에는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고 박근혜 대표를 설득했지만, 그는 ‘국민과의 약속’을 이유로 수정안 통과를 거부하며 정치적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로 인해 보수층 일각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의 원칙론은 흔들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수도이전특위 간사로서 자신의 의중을 잘 읽어 낸 최 의원에게 신뢰감을 갖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박근혜 대표가 비서실장직을 초선인 최 의원에게 제안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최 의원은 대표 비서실장에 유승민 의원을 천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 의원은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 접근방식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스타일이다. 2012년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상정됐을 때, 당내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을 적극 주장하고 나선 사람이 윤상현 현 사무총장이었다. 윤 의원은 당시 “솔로몬저축은행 오너의 구두진술만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다면 국회 스스로 부패집단임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로 비공개 의총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 결과 국회 본회의에서 정두언 체포동의안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당시 윤 의원은 박근혜 대선 캠프의 공보단장을 맡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은 알게 된 박 대통령은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보고 대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당시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최경환 의원을 불러 “정두언 의원의 출당과 윤상현 의원의 공보단장직 사퇴를 처리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의원은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의 지시를 어긴 것도 아니다. 최 의원은 우선 홍사덕 당시 선거대책위원장과 상의를 하고 다시 보고하겠다고 말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윤 의원을 만났다. 최 의원은 “윤 의원은 일단 공보단장으로서 (박근혜) 후보 수행을 잠시 중단하라”고 말한 뒤에 상황 수습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최 의원은 홍사덕 위원장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숙의한 뒤 다시 박 후보를 찾아갔다. 처음 지시를 받았을 때는 “알았다”고만 하고 물러났던 최 의원이 이번에는 정두언·윤상현 의원에 대한 변호를 했다.
최 의원은 박 대통령을 대할 때 항상 이처럼 단계적인 접근방식을 취한다고 한다. 직언보다는 에둘러 표현하며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 상대가 결국 설득될 수 있게 만드는 게 최 의원의 업무 스타일이다.
지난 15일 열린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이완구 원내대표가 최경환 전 원내대표를 찾아와 귀엣말을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한 친박계 재선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과 의견이 다를 때 최 의원은 덩치에 맞지 않게 인상을 구겨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게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대개의 정치인이 직설화법을 쓰거나 눈치를 보는 데 반해 최 의원은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결국 최 의원의 설득으로 박 대통령은 화를 누그러뜨렸고 “정두언 출당과 윤상현 공보단장 사퇴에 관한 일은 (최 의원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답을 얻어 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접근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이 최 의원을 아끼는 또 다른 이유는 동료 의원들과 의리를 지킬 줄 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최 의원은 성격이 내성적이며 무뚝뚝한 편이지만 인간미가 있다는 평이다. 윤상현 의원은 이와 관련,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 당시 처음에는 모두 잘했다고 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역정을 내셨다는 얘기가 돌자, 모두 나를 손가락질했다. 그때 나를 변론해준 사람이 최 의원이다. 최 의원은 마음이 넉넉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고 난 뒤 최 의원을 불러 “대선 캠프를 직접 짜 보라”고 지시했고 최 의원을 후보 비서실장에 앉혔다. 최 의원은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나 ‘2인자’라는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도 그를 좋아한다. 또, 최선책을 찾다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반드시 차선책을 만드는 업무 스타일이다. 1978년 행정고시(22회)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하며 몸에 베인 최 의원만의 스타일이다.
최 의원은 지금으로 치면 기획재정부 과장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실 보좌관을 지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뒤에는 한국경제신문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한때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그와 친한 정치인 중 유승민 의원이나 경기도 교육감 후보로 나선 조전혁 전 의원 등이 위스콘신대 동문이다.
최 의원은 2002년 이회창 총재의 경제특보로 처음 정치에 입문했다. 최병렬 전 대표와 김용환 전 장관 등이 최 의원의 정계 진출 당시 그를 이끌어준 인사들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원로그룹 ‘7인방’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최 의원이 수시로 안부를 챙기는 관계다. 이명박 정부 때는 박근혜 대표의 동의를 얻어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당내 경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친이 대 친박의 긴장구도가 형성됐던 때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당시 최 의원의 부드러운 정치스타일을 좋게 평가했다고 한다.
최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출입기자들이 그의 발언을 알아듣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말수 자체가 적은데다가 경상도 사투리가 강해 가까이에서 들어도 서울말에 익숙한 기자들은 도통 해석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최 의원 본인이나 주변 측근들도 그가 언변에 능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일부 친박계 인사들과의 불화설이 나돈 적이 있다. 실제로 지난 총선 등을 거치면서 일부 친박 인사는 최 의원의 전횡을 비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보좌진은 “몇몇 분들과 사이가 멀어진 적도 있지만 최 의원은 원래 악의를 갖고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최 의원이 워낙 신뢰를 받다보니까 이를 시샘하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또 자기 색채가 약한 정치인으로서 지목되기도 한다. 한때 친박계 좌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이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유승민 의원이 사실장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최 의원은 보좌진들에게 ‘일벌레’로 통한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조간 신문을 꼼꼼히 읽고 아내가 챙겨주는 아침식사를 하고서야 국회로 출근한다. 오전 8시50분이면 습관적으로 의원회관에 도착한다.
그는 세월호 사건 이후 공직사회 기강을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잦다고 한다. 공직경험을 바탕으로 관피아 문제를 타개하는 데 어떻게든 일조를 하고 싶다는 말도 한다. 박근혜 정권의 성패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도 자주 피력한다.
이 때문에 최 의원은 새 내각이 구성될 때 경제부총리로 다시 입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의 한 측근은 “가장 힘센 부처로 알려진 기획재정부를 개혁하려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인사가 가야 한다. 경제통인 최 의원이 적임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것은 맞다”고 했다.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약 최 의원이 지난 정부 지식경제부 장관에 이어 현 정부의 경제부총리가 된다면 두 정부에서 연달아 장관과 부총리를 한 유일한 정치인이 된다. 최 의원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