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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서화군 가전리 인근 군용 전술도로의 배수로에서 발견한 물매화의 매혹적인 모습 | "이제(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는 꽃다운 나이에 군복무를 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악명이 높은 곳이다. 이 곳은 그만큼 산세가 깊고 타지역에서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디어다음이 9월 셋째주 환경연합과 함께 동부산악지역의 민간인 출입통제선(CCL : Civilian Controlled Line) 생태조사를 떠난 길도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이번 조사지역이었던 인제군 서화면 가전리와 고성군 현내면 사천리 일대는 민통선에서 각각 30분, 1시간30분 동안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는 반세기 동안 군사분계선 155마일을 허리띠처럼 두르고 지금까지 왔다. 협정에 따라 한반도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각각 남·북쪽으로 2km씩 비무장지대(DMZ : Demilitarized Zone)를 설정했다. DMZ가 끝나는 곳에 우리나라는 3중 철책으로 남방한계선을 한정지었고, 그곳에서부터 5~20km를 민통선으로 정해 민간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덕분에 DMZ와 민통선에서 인간이 소외되는 대신 동식물들의 낙원이 됐다.
민통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DMZ는 인간의 발길에서 벗어나 잘 보존돼 왔다. 그러나 DMZ는 중립지역으로서 UN과 협의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DMZ가 ‘생태계의 보고’로 불리며 수많은 생태학자에게 꿈의 연구대상이 되어왔지만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인 이유다. 이에 비해 민통선은 군부대와 군인들로 인해 DMZ보다 자연생태의 보존 상태가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발논리에 눌려 황폐화돼 가는 국토에 비해 여전히 살아있는 자연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곳이 민통선이다. 그간 언론을 통해 소개된 DMZ도 대부분 민통선 지역을 대상으로 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럼 생태조사는 어떻게 이뤄질까. 가장 기초적이면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식물의 꽃과 열매, 동물의 배설물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번 생태조사의 이름이 ‘꽃과 똥을 찾아서’인 까닭이다. 동부산악지역으로 분류되는 이곳에서 만난 꽃과 똥은 ‘싱싱’한 반면 조사결과는 조사단의 기대치와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군대의 보급과 전시를 위해 개통된 비포장 도로인 전술도로 주변에는 귀화식물들이 이미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고, 1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에서만 산다는 산양(천연기념물 217호)도 조사기간의 한계상 볼 수 없었다. 미확인 지뢰가 산재한 초야 때문에 민통선 내에서 전술도로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군부대 규정상 민간인이 숙박을 하며 야간에 야행성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간 조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사단은 “남한은 거대한 섬이다. 그 섬 가운데 인간의 발길이 끊기거나 드문 DMZ와 민간인 출입통제선은 살아있는 생태계의 섬 역할을 하고 있다”데 모두 동의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자유로운 야생동물의 남·북 교류를 막고 있는 게 3중 철조망과 분단의 현실이지만, 한반도 내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태지역이라는 것이 분단의 선물로 다가온다.
민통선 생태조사를 계획한 환경연합 황호섭 생태보전국장은 “환경연합은 제한된 조사환경에서도 지난해 10월부터 1년간 민통선 지역의 생태조사를 계속 해오고 있다”며 “남북교류의 활성화와 통일 이후 잘 보존돼 왔던 DMZ와 민통선이 ‘막개발’의 논리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훗날 봇물 터지듯 개발이 시작되더라도 생태적으로 중요한 보존 지역을 조사를 통해 미리 파악해 그 곳들만이라도 미리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해 지속적인 보호를 하자는 것이다. 이에 환경연합은 서부해안의 석도·비도와 한강하구, 철원인근, 화천지역의 북한강 상류, 동부산악지역, 고진동·오소동 일대의 동부해안지역의 생태조사를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에는 환경연합 생태보전국을 비롯해 ‘산양지킴이’ 설악녹색연합의 박그림씨, 아마추어 식물연구가 김태영씨가 동행했다.
민통선 지역의 특성상 제한된 영역이었지만, 미디어다음은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에 걸친 민통선 내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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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조사 지역의 전경
동부산악지역인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가전리 인북천 배후습지(사진 화살표)와 북한의 무산(巫山)이 보인다. 조사단은 첫날 인북천 배후습지를 중심으로 조사를 했다. 이튿날에는 사진의 전경에서 1시간여를 더 까마득히 들어가야 하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사천리의 남방한계선 일대를 조사했다.
청정1급수를 자랑하는 인북천은 무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경을 포착한 언덕은 '개고개'로 불리며 이 곳은 불에 타 죽을 뻔한 주인을 기르던 개가 구했다는 의견(義犬)설화가 구전되는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생태조사 1일차, 인북천 배후습지 일대
인북천 일대는 분지의 형태로 분단 이전에 논밭농사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환경연합 최김수진 간사는 "인북천 배후습지는 생태적인 가치에 더해 문화인류학적인 의미도 있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물을 좋아한다는 버드나무들이 흐르는 물에 뿌리를 담그고 있는 인북천 배후습지의 모습.
민통선 안으로 들어서면 흔히 볼 수 있는 지뢰표지판과 사람의 출입을 가로막는 철조망. 그 뒤로 쑥부쟁이만 신나게 꽃을 지피고 있다.
여전히 산재한 미확인 지뢰 때문에 생태조사는 애초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잠시 조사단을 흥분시킨 순간이 있었다. 산양의 흔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산양지킴이' 설악녹색연합 박그림씨는 멧돼지의 발자국으로 최종 판정했다.
박 씨는 "산양은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물가로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군용차량의 바퀴 흔적과 야생멧돼지의 발자국이 대비를 이뤄 묘한 느낌을 준다.
잠시의 기쁨을 뒤로, 귀화식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군용 전술도로를 따라서 돼지풀, 달맞이꽃, 미국 쑥부쟁이, 개망초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인북천 배후 습지 주변도 마찬가지. 달맞이꽃(사진 왼쪽 아래)과 돼지풀(사진 왼쪽 위)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다. 요통이나 신경통에 좋다는 큰엉겅퀴의 자태가 외롭와 보인다.
귀화식물 가운데서도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골칫거리에 속한다. 돼지풀이 꽃피는 봄이면 군부대에서는 '돼지풀 박멸작전'을 벌일 정도다. 돼지풀의 꽃가루가 인체에 알레르기와 천식을 일으키기 때문. 단풍잎돼지풀은 한 술 더 떠서 주변의 풀 종류를 몰살시키고 저 혼자만 살아난다. 이른바 탁암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식물인 것.
고만이라고도 불리는 고마리(사진 위)는 양지바른 들이나 냇가에서 주로 자란다. 어린 풀은 먹을 수 있고, 줄기와 잎은 비상시에 지혈제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의 빨간 열매는 몇 해 전부터 시중에 흔히 유통되고 있는 술의 재료인 '산사'나무의 열매다. 민간에서는 고기를 많이 먹은 뒤 소화제로 사용돼 왔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씨에서는 용담(사진 왼쪽)의 꽃을 볼 수 없다. 제가 알아서 꽃잎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용담은 그 뿌리가 용(龍)의 담(膽)처럼 맛이 써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주로 산지의 들녘에서 자란다.
오른쪽 사진의 쥐방울덩굴은 '쥐방울만하다'는 말을 금새 떠올리게 한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쥐방울덩굴의 열매는 가래와 천식, 치질에 좋고 뿌리도 장염과 이질 등에 좋으며 둘 다 혈압을 내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전술도로 옆켠에 난 배수로에서 '물매화'를 발견했다. 김태영씨는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꽃의 형체에 캐내 가고 마는 인간의 손길에 시달려 최근에는 보기 드문 꽃"이라 귀띔한다. 물매화는 하얀색의 꽃을 피기 위해 달랑 하나인 잎을 뚫고 올라오는 특이한 모습도 보여준다.
생태조사 2일째, 고성군 사천리 일대와 철책선을 따라..
전장의 포화가 사라진 휴전선, 긴장감은 여전히 맴돌지만 그래도 꽃은 피고 동물은 뛰어 놀았다.
철책으로 이어진 남방한계선을 지키는 GOP부대가 곳곳에 위치한 사천리 일대는 인북천 인근보다 생태보전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차량의 출입과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 지닌 이념의 장벽은 철책 너머의 조사를 불가능하게 했다. 첩첩산중인지라 길 주변에 산재한 지뢰의 위험도도 하루 전날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길과 사람을 따라 귀화식물은 어느새 철조망 주변까지 잠입해 있었다. 철책을 따라 오르내리는 계단에 맺혀 있는 서양민들레가 왠지 낯설었다.
그래도 멧돼지도 직접 목격할만큼 숲은 일정수준 이상으로 살아 있었다. 박그림씨가 산양의 흔적을 찾는 눈길이 매서워졌고, 김태영씨가 '아, 그래도 여기는 괜찮네'라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자연'이 거기에 있었다. 조사단이 심심치 않게 따먹을 수 있는 다래, 왕머루 등의 열매도 많았고 애기바위솔 등 쉽게 보기 어려운 식생도 만날 수 있었다. |
GOP로 가는길, 드디어 '똥'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노루의 배설물이었다. 하지만 박그림씨는 "노루는 흔히 발견된다"며 "오히려 그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연환경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고들빼기는 산과 들의 건조한 곳에서 자란다. 그는 건조한 땅에서 꿀을 품고, 나비는 이를 일용할 양식으로 즐긴다. 이고들빼기의 어린 순은 나물로 인간의 밥상에 오르기도 한다.
GOP로 가는 길목은 험했다. 큰 산봉우리를 넘고 굽이진 계곡을 지나야 했다. 군작전도 이처럼 험한 산세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도로를 위해 형편 없이 깎여나간 백두대간을 잇는 능선의 모습은 서글프기까지하다.
김태영 씨는 "이상적인 자연숲은 큰 나무와 중간 나무, 작은 나무와 그 아래 이끼류 등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저들끼리 일정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라며 "마구 흘러내리는 토사와 절단된 봉우리가 주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끔찍하다"면서 한탄했다.
흘러내리는 토사 앞에 설치된 낙석주의 표지판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인 행태를 가늠케 한다.
생태계의 하위 구조인 이처럼 작은 이끼들은 제 아무리 잘 성숙한 포자를 머금고 있어도 한 번 흘러내리는 토사에 묻히면 번식과 생존이 불가능해 질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GOP 소초가 지척으로 보이는 을지로 정상 바위에 구절초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모양이 아름다운 구절초는 관상용으로 재배되기도 하고, 그 꽃은 술을 담그는 재료로도 쓰인다.
하루 전 못다핀 용담(사진 오른쪽)을 3중 철조망 바로 옆 계단에서 다시 만났다. 제법 화창한 날씨였기에 꽃 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용담은 오전을 지나 정오가 넘어야만 꽃을 피워 그 자태를 드러낸다.
좀닭의장풀은 개맥문동·금관초·벌개미취·골잎원추리·산바랭이 등과 함께 한국의 특산종으로 꼽히는 종이다. 이 역시 가파른 계단 옆에 위태롭게 피어있었다.
산박하(사진 왼쪽)와 산부추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우리나라 야산 등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종들이다.
산박하 꽃에서는 따로 박하향이 나지 않고 그 잎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산부추는 시장에서 흔히 보는 부추와 외형에서 차이가 나지만, 실제로는 부추맛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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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그림] | 조사단은 사천리에 있는 소초막사를 뒤로 하고 주변 식생을 확인하기 위해 도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날 인북천 주변보다 자연적인 생태가 완연히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조사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멧돼지를 실제로 만난 것이다.
박그림씨에 따르면 사진에 보이는 새끼멧돼지는 어미 몸집의 1/4수준으로 태어난지 3개월 정도 된 놈들이었다. 그는 "산에서 만약 새끼멧돼지를 만난다면 주변에 있을 어미멧돼지를 고려해 주의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누리장나무(사진 왼쪽)는 냄새가 고약해 누릿대나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냄새로 악취를 제압하기 위한 것일까.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화장실 옆에 주로 심어왔다. 누리장나무의 열매는 냄새와 다른 분위기로 보석 같은 느낌을 준다.
물봉선화는 산기슭의 습지에서 주로 자란다. 봉선화 종류는 '손 대면 톡하고 터지기'때문에 주로 '인내'가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다. 영어 학명도 'Impatiens'다. 사진에 보이는 원형 부분이 조사단이 만지자 씨를 '톡' 내뱉고 말려 들어가버린 부분.
애기바위솔은 주로 습기찬 숲속 바위 위에서 자란다. 자생지는 주로 제주 인근으로 알려져 있는데 강원도에서 발견된 점이 특이하다.
애기바위솔의 꽃은 흰색으로 꽃이 피게 되면 붉은 색의 꽃밥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한 동요의 가사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그들과 다른 고추나무(사진 왼쪽)와 다래나무지만, 조사단이 길가의 풀숲에서 간간히 따먹을 수 있는 왕머루, 다래 때문에 사진여행이 절로 흥겹다.
고추나무는 잎의 모양이 고추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골짜기와 냇가에서 주로 자라는 이 나무는 주로 정원수로 심고, 그 목재는 나무못, 젓가락 등으로 쓰인다.
다래나무는 시장에서 자주 접하는 '참다래'의 할아버지격인 나무다. 주로 깊은 숲에서 자라며 맛은 참다래와 거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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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행이 산세가 깊었기에 자연 생태학적으로 보존이 잘 되고~ 지난번에 공부한 돼지풀, 애기 바위솔, ... 헉 ~ 멧돼지는 롱다리입니당. 캬캬캬 오늘도 좋은 공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