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많은 문학적 경험을 하라 / 김영천 (시인)
다시 반갑습니다. 권일송 시인은 『이 땅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는 시집을 냈었지요. 저는 어제 하늘 때문에, 너무 너무 푸른 하늘 때문에 술을 좀 마셨지요.
아침부터 왜 술 이야기를 하느냐 하시면 죄송합니다만, 사실 어제 저희 문협 임원들과 여기 저기를 좀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야생화의 이름도 가르쳐 주고, 문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 창작의 비법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많은 문학적 경험을 해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요. 상사화도 처음 본 친구가 있던데요. 잎과 꽃이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는데는 더욱 신기해 하더라구요. 도시에 가까이 있었어도 가보지 못한 절에 가서는 풍경 소리며, 해우소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정말 밖에 나가면 많은 시적 소재가 너무나 많이 있는데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그 경험을 시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학 경험은 꼭 자연이나 시적 소재와 직접적인 접촉만 말하는 건 아닙니다.
풍부한 독서가 시 창작의 경험에 아주 큰 분야를 차지하지요. 이러한 독서체험은 실제의 체험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고대 중국의 당송팔대가 중의 하나인 구양수는 3다(三多)가 좋은 글을 쓰는 관건이 된다고 했는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우리가 해야 될 그 세 가지 중에 첫 째가 독서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글을 쓰려면 이 삼다 정도는 알아야 겠지요. 요즘 학생들이 삼강오륜의 삼강을 쓰라하니까 한강, 낙동강, 영산강이라 했다하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지요. 삼다는 다독-많이 읽고, 다사유-많이 생각하고 다작-많이 쓰라는 것입니다. 쉽지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독서체험을 풍부하게 가져야 하는 것이 시 창작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 글 쓴이의 체험, 사고 , 감정, 인격, 사상 등의 총체적인 것과의 만남이 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조태일 선생님은 말하기도 했지요.
우리가 좋은 경치를 보거나 즐거움, 슬픔, 기쁨, 괴로움 등 여러가지 감정을 경험하여 시를 쓰게 되는 실제적 경험도 있겠지만, 우리는 어떤 좋은 시를 읽거나 감동적인 소설을 읽고 나서는 그와 같은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 다음은 사고를 깊게, 자유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조병화님의 시 <오산 인터체인지>를 한 번 읽어볼까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조히 떨어져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리
우리가 평상시 늘상 만날 수 있는 안개 낀 인터체이지를 보고 쓴 시입니다. 거기서 서로 헤어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자세히 읽어 보면, 무조건 그 경치나 자기 마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고가 깊고, 아주 자유스러운 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우리가 늘 만나는, 늘 경험하는 것으로 시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일상의 것에서 시를 끄집어 낼려면 사물을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시를 쓰는 건 어떤 심오한 사상이나 거창한 사고가 아니라, 자기 삶 주변의 사물들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말과 같습니다.
시 하나를 더 읽어볼까요?
고은 님의 <열매 몇 개>인데요.
지난 여름 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옳거니, 새벽까지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아주 짧은 시입니다. 산에 가면 빨갛게 익은 찔레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 열매를 그냥 이쁘다 그렇게 넘어가지 않고 한 생명체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숱한 고뇌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땡볕, 불볕, 어둠, 귀뚜라미 울음소리들이 이 열매를 익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삶을 고통과 희락과 슬픔의 소리들까지가 다 우리를 성숙시킨다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시인은 찔레 열매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 속에 지닌 진실과 아름다움까지 찾아내어 시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훈련을 해야합니다. 지난 시간에 강조한 낯설게 하기 위해서는 깊은 사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 여러분이 써놓으신 작품을 한 번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너무 깊은 생각 없이 겉에 나타난 것만 그대로 옮겨 쓴 것은 아닌가 하고요.
윤동주님의 <서시>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참 쉬운 것 같으면서도 아주 깊은 뜻이 있는 시입니다. 이런 시 한 편 정도는 외워두면 어느 모임에서나 좋지요. 노래 대신 이 시 한 편 쯤 외우시면 두 배의 박수를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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