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따르릉"
"여보세요?"
"저 영수예요 지금 풍곡에 왔어요 동생 장수도 같이 왔어요"
라고 합니다.
"어서오너라 빨리왔구나 장수도 보고 싶다. 풍곡 안에 덕풍으로 들어가는 곳이 있으니
그리로 해서 오면 차로 20분이면 되는데
오다가 큰 쌍둥이 아치형의 다리가 나올텐데
그러면 다리 건느지말로 바로 위의 언덕으로 오르면 거기아 우리집이다"
"예 잘 알았어요"
그런데 20분이면 오리라 생각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습니다.
`계곡이 아름다우니까 놀다 오려나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르릉"
"여보세요?>"
"형 저 영수예요,"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느냐?"
"처음이라서 풍곡에서 덕풍계곡을 들어가는 곳을 지나치고
삼거리에서 산길로 계속 올라가는데
거기는 전화도 안돼요. 경북 석포로 가는길을 한참 헤매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와 삼거리에서 사람듦들에게 말 하자
"이쪽에서도 덕풍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소"
라고 가르쳐 주어 우리는 그들이 가르쳐주는 산판도로(소방차, 나무 운반의 길)들어가서
깊은 산속을 한 참 헤매다가 드디어 덕풍마을에 왔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 형의 집으로 갈껍니다."
나는 밖에 나가서 동생들을 기다립니다.
그러자 차 두대가 우리집 언덕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영수와 장수가 내립니다.
"와 이게 얼마 만이냐 한 40년은 될것 같구나"
우리들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렀습니다.
내가 1955년에 청주시 북문로 성당에서 일할 때
나는 무심천 밑동네에서 하숙을 하고 있을 때
이웃에 사는 어린이들을 무척 사랑해 주었던 것입니다.
나는 동생이 없어 국민학교 1학년 아이들10명을 데리고 다니며
내가 겪은 6.25이야기도 해주고 무심천에서 물고기도 잡으며 즐겁게 지냈던 것입니다.
영수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 장수는 아직 국민학교도 들어가지 않던 아이이지만
나는 그 아이도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영수는 후에 성균관대학을 다니고
장수는 서깅대학을 다닐때 몇번 만나기도 한 후 헤여진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