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웅 具本雄 (1906~1952)】한국 입체파 대명사〈우인상(友人像)〉
1. 이상(李箱), 구본웅(具本雄), 박태원(朴泰遠)의 우정
- “까치머리 이상, 꼽추 구본웅이 걸어가면 곡마단 온 줄 알고 환호했다”
일제강점기는 혹독했으나 문학과 예술은 꽃피었다. 20세기 초반 온 세계가 사상 철학 문예 생활방식까지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문화적 충격을 흡수하고 튕겨내야 했던 역동의 시대였다. 나라 잃은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지성인들은 유토피아적 안식처를 찾아 문학과 예술의 가치에 헌신했다.
시와 그림, 소설과 철학에 두루 능한 ‘경성의 천재들’이 태어났다. 이상과 구본웅,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이태준과 김용준, 구상과 이중섭 등 천재들은 서로 우정을 나누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암흑기 르네상스를 일궈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경성 시대의 문학과 예술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교과서에서 그들의 이름과 삶을 단편적으로 들었을 뿐이다.
조선일보와 함께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를 히트시킨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이 그 시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성 천재들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사랑을 근현대 명작들과 더불어 만끽할 수 있는 ‘천일야화’다.
구본웅이 1935년 발표한 ‘친구의 초상’.
이상의 얼굴로 붉은 눈자위 등 병색이 짙은 시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승만이 그린 ‘이상과 구본웅’.
까치집 머리, 털북숭이 수염의 이상과 작은 키에 질질 끌리는 외투를 입은 구본웅의 기묘한 조화가 곡마단 행차에 비유됐다.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구본웅의 ‘인형이 있는 정물’(1937).
이상이 운영하던 다방에 걸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상(왼쪽), 박태원(가운데), 김소운이 함께 찍은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