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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05
씬1. 준희의 집, 전경. 밤.
준희 : (문 두드리며 안타까운, E) 은수야, 은수야!
씬2. 준희의 집, 화장실 앞.
준희, 답답한 얼굴로 화장실 문을 열려하면서,
준희 : (안타까운) 문 열어, 은수야!
씬3. 화장실안.
은수, 변기에 앉아 아픈 얼굴로 킁킁대고 있다.
은수 : (짐짓 밝게) 나, 괜찮아. 안아퍼. 쪼끔만 기다려. 곧 나갈께. (하며 인상쓰고)
씬4. 거실.
준희, 은수, 쇼파에 나란히 앉아 얘기하고 있다.
준희 : (어두운) 왜, 병원 안가?
은수 : 참을만, 해.
준희 : (화난) 참을만 하긴 뭐가 참을만해. 번번히 생리할 때마다, 한웅큼씩 진통제 먹고.
오늘도, 벌써 몇시간째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거야. (참고, 사이) 은수야, 수술받자.
은수 : (준희 외면하고, 어렵게) 준비가 덜-, 됐어.
준희 : 무슨 준비가 필요해? 니가 수술 하는 것도 아닌데. 넌, 하루 시간내서 병원만 가면 돼. 고집 부리지마라.
은수 : (화난, 어렵게) 그렇게 쉽게 말하지마. 여자한테 자궁 들어낸다는게, 어떤 의민지.... 넌, 몰라. (눈물 나는 것 참는다)
준희 : (은수 안타깝게 보는)
은수 : (애써, 담담하게) 물론. 지금 내가, 자궁이 있다고해서...애를 날 수 있는 건 아닌 줄 알어. 하지만, 자궁이 있다는 건,
(입술이 다 떨리는) 아직은 그래도 내가 여자라는 거야. (눈물나고, 손바닥으로, 눈가며 코밑이며 닦아내고,
여전히 준희 안 보고) 이제, 이거 드러내면, (말 잇지 못하는) 내가 준비될 때, 수술할래.
준희 : (안타깝다) 언제 준비가 되는데? 어리석게 좀 굴지마. 넌 태어날 때부터 여잔데, 그게 없다고, 어떻게 여자가 아니니.
(한숨 몰아쉬고) 통증이 심하다는 건, 몸이 그 만큼 상하고 있다는 얘기야. 제발 말 들어라. 너, 아픈 거 싫어.
은수 : (화가나, 서운한) 바보, 넌 왜 내가 하는 말, 하나도 귀담아 듣질 않니, 왜, 그래, 정말?
내가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몰라? 막말로, 누가 너한테 거세하라면 하겠니?
준희 : ...
은수 : 첫생리 시작하고, 십년을 훨씬 넘게 여자다, 여자다, 그렇게 교육 받으면서 살았어. 근데, 하루 아침에 여자가 아니라,
니말대로 그냥 난, 인간일 뿐이다. 이렇게 인정하는 거, 어려운 일이야. 차라리 그걸 인정하느니 아픈게 골백번 났다구.
준희 : (마음 아퍼, 고개 숙이고 외면하고 마는)
은수 : 보기 힘든 거 알어. 그래서, 어제두, 그제두 아팠는데...말 못했어. 너, 화낼 줄 아니까. (훌쩍이며) 매달 하던 생리가
어느날부터 안나오는거, 생각만 해도 끔찍해. 아플 땐, 건강할 땐, 그런게 귀찮아서, 확 들어내버리까,
그런 웃긴 생각도 안한건 아닌데, 이젠 아니야. (눈물 닦으며, 맘아퍼, 소리치는) 제발, 나 좀 놔둬!
씬5. 베란다에 있는 테이블.
봄바람 들어오고 두사람 나란히 앉아있다. 차 마시는.
준희 : (은수 잡은 손만 보며, 작게 한숨 쉬고, 어렵게) 내가 얘기 했지. 처음 여자를 만났을 때...
군대가기 전날, 경수 선배가 총각딱지 떼라고... 그 일 말했지.
은수 : (외면하며) 엉.
준희 : 여자랑, 돈 주고 잠자고. 새벽에 도망치듯 나왔다는 얘기도...
은수 : 엉.
준희 : 그때 내가 거기서 나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알어? (천천히) 다신 여잘 만나지 말아야지, 친구를 만나야지.
인간을 사랑해야지, 여자로서만은 사랑하지 말아야지... (사이) 난 니가 여자라서 이뻤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
친구처럼 뭐든 얘기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어떤 얘기도 오해하지 않아서 좋았어. (입가에 잔잔한 미소 띤) 어쩌다 사람들이
니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나는, 그는 아주 좋은 친구다. (은수 어깨 돌려 보며) 나는 그와 아무짓도 안하고
밥만 같이 먹어도, 좋다. 그랬어. (은수 따뜻하게 본다)
은수 : (눈가 그렁해 준희 보는)
준희 : 아프니까 수술한다, 그렇게 생각해라. (은수 얼굴 만지며) 그리고, 그래. 니가 편할 때 수술하자.
하지만, 그 결정이 빨리 내려졌으면 좋겠다. 진통제 먹는 거 안좋대.
은수 : 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젠 정말 하나도 안 아퍼. 못 믿겠으면, 배 때려봐라, 참을 수 있지.
준희 : (은수 이쁘다, 볼 툭쳐주며) 안아프면 됐어. (미소띤) 업어줄까? 너, 업히면 잘자잖아. 업자. 업혀서 빨리 자자. 아픈거 잊게.
(하며, 은수에게 등 보이고)
은수 : (그런 준희 울먹이며 보다, 씩씩하게 업히며) 아우, 좋다.......
씬6. 성우의 집, 전경.
새벽에서 환한 아침 되는.
전화벨 소리 요란하게 울린다.
씬7. 거실.
영희, 서서 열받지만, 간신히 참고 전화하고 있다.
영희 : 전화 끊어. 식전 댓바람부터 니 목소리 듣고 싶지 않어.
선주 : (E, 탐색하는듯한) 너, 유란이 한테 무슨 소리 들었니? 유란이가 내가, 실수한 거, 혹시 꼰질렀니?
영희 : 걔가 꼰지르지 않으면, 내가 니 수준을 모를 것 같니?
선주 : (E) 그때 그 상황이.. (버버대다, 단호하게) 야, 내가 지금 갈테니까, 너 꼼짝말고 집에 있어. 가서 얘기하자.
영희 : 웃기네. 나 할일 많어, 꼼짝말고 못있는다고. 좋은 말할때, 오지마.
그때, 성우 출근차림으로 나와서, 영희 툭친다.
영희 보면.
성우 : (웃으며 작게) 선주 아줌마?
영희 : 전화끊어, 우리 딸내미 배웅해야돼.
성우 : (웃으며) 그냥 전화하세요, 갈께요. 저녁에 뵈요. (하고, 나가고)
영희 : (나가는 성우보고, 짜증난다) 야, 송선주, 너, 나랑 무슨 웬수가 져서 이래? 30년 딸내미 아침배웅하는걸, 낙으로 사는 사람,
그짓도 못하게 하고. (사이) 나, 너 안 보면 그뿐인 사람이야. 뭐, 너무해? 야, 내가 만약 너한테 그짓거리 했어봐,
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 머릿털 닭털처럼 뽑았을 거야. (크게 한숨 쉬고) 나, 지금 참고 있어. 내가 이렇게 참는건,
고등교육이라도 받은 때문이야. 너, 내가 중퇴만 했어도 (버럭) 죽었어, 이 기집애야!
씬8. 주차장.
성우, 자신의 집, 올라다 보고, 웃으며 차문 열어 타고, 주차장 빠져 나가고.
씬9. 아파트 단지 입구+차안.
성우의 차, 빠져 나와 우회전해 가려는데, 누군가 불쑥 그 앞을 가로 막는다.
성우, 놀라 클락숀 울리며 서고, 놀란 얼굴로 고개 들어 앞을 보면, 이교수다.
성우, 한숨 쉬고, 차에서 내려 이교수 무섭게 보며, 가라앉은.
성우 : 뭐하는 짓이예요?
이교 : 얘기하고 싶어서 왔다.
성우 : 나 지금 출근길이예요.
이교 : 아는데... 우리 얘기하자. (하고는 성우의 차, 운전석에 탄다)
성우 : (기도 안차다, 차문 잡고 서서) 나와요. 이게 무슨짓이야.
이교 : (앞만 보며) 옆에 타.
성우 : (가라앉은) 좋은 말할 때, 내려요. 아침부터 소리치고 싶지 않아.
그때, 어느새 뒤에 차 한대와 클락숀을 울린다.
이교 : 사람들 본다, 타라.
성우 : 일하러 가야돼요.
이교 : (꿈적도 않는)
성우 : 당신은 강의있을 때, 내가 죽어 뒤로 넘어진다고해도, 안만나줬으면서, 나한텐.. 이래도 돼?
이교 : 나 오늘 강의있어, 빠지고 온거야. 타.
성우 : (화난)
씬10. 달리는 성우의 차안.
이교수 앞만 보며, 운전해 가고 있고,
성우, 답답하고 화난 얼굴로, 창밖만 보고 있다.
이교 : (앞만 보며) 회사에 못나간다고 전화해.
성우 : (이교 보는)....
이교 : 할 얘기 길어. 오늘안에 못들어갈 거야.
성우 : (가라앉은) 당신, 정말 하나두, 안 변했어.
이교 : (앞만 보고, 무표정) ...
성우 : 언제나, 멋대로야.
씬11. 사무실.
전화벨 울리고, 준희 전화 받는.
준희 : 네, 이메집니다.
성우 : (E) 주성운데, 사장님 계셔?
준희 : (걱정) 출근, 왜 안해요? (사이) 아파요?
성우 : (E) 사장님 바꿔줘.
준희 : (잠시 머뭇대다가, 성우 자리에 앉아 서류보는 하숙을 쳐다본다)
하숙 : (일하다가 준희 보고) 주실장이야?
준희 : 네.
하숙, 전화 받고, 준희 전화내리고, 답답하고 조금은 굳은 얼굴로 서류를 들척인다.
하숙 : 나다. 너 안오고 뭐해?...뭐?...아퍼?.....감기? 큰일 났네, 큰일났어. 야, 요즘 감기, 살인감기야..... 걱정마.
오늘 나갈 일은 김대리가 대충 알고 있잖아. 그래, 몸조리 잘하고 쉬어. (끊고, 한숨 쉬고 서류 보며) 많이 아픈가 보네.
왠간해선 아프다 소릴 안하는 앤데.
준희 : (답답한)
하숙 : (서류 보다, 갸웃) 이게 뭐라고 쓴거야. 내가 사장인지, 주성우가 사장인지 모르겠네, 내 회사일을 내가 모르니...
낼은 나와야 될텐데.
준희 : (서류 접고, 나가는)
씬12. 복도.
준희, 담배 피워물고 창밖을 내다 보고있다, 심란한 얼굴이다.
씬13. 성우의 차안.
성우, 운전하는 이교수를 화난 그러나 간신히 잠재우고 보고 있다.
성우 : 도대체, 어딜 가는 거예요?
이교 : (가만).....
성우 : (어이없다, 작게 고개 끄덕이며, 체념하는) 좋아. 좋아. (이교 보며) 갈데까지 가보자구요.
씬14. 식당 안.
준희, 현주, 재석, 미선 부대찌재 놓고 점심을 먹고 있다.
현주 : (재석에게 비아냥) 서준희씨! 김재석씨, 업무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준희 : (웃음 띤).....
현주 : 저 능력갖고 바람을 폈다니, 여자들 골이 벼도 한참 볐지.
재석 : (현주 꼬나보며, 짜증나지만 참고) 내가 참는다. 성질 같아선 콱 치고 싶지만, 참는다.
(하고 밥 한숟가락 크게 떠 먹고, 현주 보고) 야, 너 울엄마가 좀 보잔다.
현주 : (재석 놀리는) 왜 보시잘까? 보험하신다드니, 보험들라고 하시려나?
재석 : (눈 부라리며) 이걸 그냥!
미선 : (준희 보며) 근데, 우리 주실장님 문병 가야 하는 거 아니예요?
준희 : ?
재석 : 문병은 무슨? 감기 같은 건 문병가는 거 아냐? 그러다 옮으면, 서로 고생이라고.
현주 : (재석 밉게 보는)
미선 : 한번도 편찮으신 적, 없었는데. 모른척하긴 그렇잖아요. (준희 보며) 준희 아저씨....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문병가요?
준희 : (미선 보고)
현주 : (국 떠먹으며) 그래, 6시쯤 칼퇴근해서 잠깐이라도 들렀다 가자.
재석 : (그러지마라고, 식탁 밑에 발로 현주를 툭친다)
현주 : 치지마. 말로 해, 발로 하지 말고. 어쩜 인정머리라곤....
준희 : (물 먹다가, 문득 성우 생각에 답답해지고)
씬15. 종합병원 약국 창구 앞.
세미, 장어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약 타는 번호판을 보고 있다.
그때, 번호판에 불들어오고 방송 나온다.
방송 : 116번 손님 약 나왔습니다.
장어 : (벌떡 일어나며) 나다.
씬16. 창구앞.
세미, 장어 기분 좋아 걸어나오고 있다.
장어 :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약봉지 있는 주머니를 탁탁 친다)
세미 : (기분좋고) 좋아?
장어 : 엉, 근데 이거 며칠치야?
세미 : (자랑하듯) 하루.... 아니, 십오일치.
장어 : 와우, 그럼 십오일은...나 안아플 수 있겠다. (하며, 주머니 열어, 다시 약 봉지 보고)
세미 : 이제 옷사러 가자?
장어 : (세미 보며) 너, 증말 돈있어? 어디서 났어?
세미 : (대수롭지 않은) 오랜만에 카드 슬쩍 했어. 가자. (하고 앞질러 가고)
장어 : (카드 훔쳤다는 말에, 기분 별로다)
씬17. 옷매장 계산대 앞.
옆에 옷가지 산더미처럼 싸여있다.
세미, 벙찐 얼굴로 판매원 보는, 얼굴 오버랩 된.
세미 : (O. L) 비, 비밀번호?
판매 : (웃는) 네.
장어 : (무섭다)
세미 : 옛날엔.... 그거 몰라도 옷 샀는데.
판매 : 법이 바꿨어요. 비밀번호 모르면, 카드를 받을수가 없네요.
세미 : (열받는다, 머리를 긁적이다가, 옷가지를 보고, 판매원 보고) 너, 내가 돈 없어보이니까. 혹시나, 쓰리한 거 아닌가해서,
확인하고 줄려는거지, 지금?
판매 : (굳은 표정으로, 세미 보는, 알조다 하는 얼굴이다)
장어 : (겁먹은 얼굴로, 두사람 두리번 거리는)
세미 : (판매대에 있는 카드 집어 주머니에 넣고, 판매원 보며) 간다. 그리고 여기 다신 안올 꺼야.
(하고는 돌아서려다, 옷 보고, 그것 바닥에 내팽겨친다) 이깟 옷, 안사면 그뿐이야!
씬18. 백화점 앞.
세미, 씩씩대며 나오고 있다, 장어, 뒤쫓아나와 그런 세미 팔 잡는다.
장어 : 세미야, 세미야, 나, 새옷 안입어도 돼, 화내지마.
세미 : (장어 보며, 버럭 짜증) 알어! 나같은 자식, 새옷 입을 자격 없는 거 알어!
장어 : (놀랐지만, 짐짓 침착하게) 우, 우리 지하철역 가자. 거기 가면, 형 있을지도 모르잖아.
세미 : 무슨 형? 어떤 형?
장어 : 기, 기자형. 그 형이, 우리 이뻐하잖아. 그래서 여관비도 내주고, 약사먹으라고 돈도 주고, 밥사달라면 밥도 사줄꺼야, 가자.
오늘은 니가 (눈치 보며) 사람들 하고 안놀았으면 좋겠어. 형, 찾으러 가자.
세미 : (화나서 비아냥) 그 사람이, 니 친형이나 되는 거 같다. 미안하지만, 이젠 다시 그 기자(강조) 형, 못봐.
장어 : 왜애?
세미 : (버럭) 카드 그사람꺼, 훔쳤단 말이야, 알어?!
장어 : 너...나뻐. (눈가 붉어지고, 소매로 닦는)
세미 : 그래, 나 원래가 나쁜 년이야, (버럭) 울지마! 울기만해, 길거리에 아무데나 버리고 갈테니까!
장어 : (물기 밴 목소리) 잘해주는 사람한테 그럼 안돼. 너, 자꾸 왜 비딱해져. 니네 엄마두, 그래서 도망간거 알면서.......
세미 : (몹시 화나, 차라리 가라앉은) 엄마? (장어의 가슴을 밀치듯치며) 너 내가 울엄마 얘기하지 말랬지?
좋아. 너두 나한테서 도망가. (버럭) 울엄마 처럼 도망 가면 될거 아냐!
장어 : (울며) 그러지마.. 난 너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밥두 못 먹는단 말이야...
세미 : 시끄러, 입다물어! 너랑 끝났어. (돌아서고)
씬19. 문화센터 복도.
동진, 인쇄지와 펜데 들고 강의실을 이리저리 찾는다.
마침, 강의실 팻말 눈에 들어오고, 들어간다.
씬20. 강의실안.
현철, 텅빈 강의실, 학생의자에 앉아 생각이 많다. 동진이 들어서도 현철 모른다.
동진 : (옆에 앉으며)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으세요?
현철 : 뭐, 이런저런 생각 (미소띤, 장난기) 죽은 여편넨, 하늘나라서 새서방 만났을까? 뭐 그런 쓸데 없는 생각.
(동진 손에 든 종이 보며) 기사 썼냐?
동진 : (현철 앞에 놓며) 모레 날짜 나갈 건데, 편하실때 한번 봐주세요.
현철 : 내가 글 볼 줄 아냐. (종이 주머니에 말아넣고)
동진 : (눈치보며, 웃음 띤) 설마, 외로우세요?
현철 : 외롭긴... 임마, 남잔 그런 표현 쓰는 게 아냐. 넌 그러니까, 기사가 맨날 그 모양이야.
동진 : 남잔, 왜 그런말 쓰면 안되는데요.
현철 : 남잔 말이다. 외로울 줄 모르는 동물이 되야 한다. 왜냐? 으른이거든.
(동진 보며) 너, 사내 남자가 일하는 동물이란 뜻인거 알지?
동진 : 네.
현철 : 그말은 남잔, 여잘 먹여살리는 위치다, 그런 뜻이거든, 다시말해, 번민 같은 건, 일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뜻이거든. (서글픈 웃음 띠며) 한데..
동진 : (현철 물끄러미 보며) 그런데요?
현철 : 여편네 죽고, 내가 밭을 갈아 얻은 쌀을 멕일 사람이 없어지니까. 그게, (동진 보고, 웃으며) 외롭다.
난, 이제 남자는커녕 늙은 놈팽이, 그래 늙은 놈팽이다.
동진 : 그런 말씀 마세요. 선배님 칼럼 나가는 날은 판매부수가 십프로는 뛴다는데...
현철 : 짜식..... (동진 어깨 툭치고, 웃으며) 너, 왜 장가 안가냐?
동진 : (어색한 웃음) 글쎄요. 남자가 아닌가, 보죠.
현철 : 웃기지마. 넌 남자야. 남잔 남잘보는 눈이 있어. 니속에 무슨 생각이 많은줄 모르겠지만, 가끔은 단순해져라. 간다. (나가고)
동진 : (어두워지고)
씬21. 문화센터 사무실.
현철, 서류철 보고 있다.
여자 : 그런데, 수강생 명부는 왜 찾으세요? 혹시 사고 친 사람 있어요?
현철 : (서류 보며) 아뇨....강읠 하려면, 학생들에 대해 잘 알아야 되거든요. (하고, 보다가 뭘 발견했는지 유심히 보며) 여깄구나.
씬22. 영희의 집, 거실.
영희(기분 나쁜, 고개 옆으로 틀고 앉았다), 선주, 유란은 눈치 보는. 커피마시며 얘기하고 있다.
선주 : (유란 아랑곳 않고, 영희 보며, 애교스런) 니가 안나가면, 우리가 무슨 재미로 거길 나가니.
우리 열입곱에 만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떨어져 다닌적, 없었잖아. 아무리 화가난다고 친구연까지 끊으려하고...
이러면 안돼. 남자한테 말 한번 실수 한 것 가지고..
영희 : (열받는다, 차라리 웃음이 다 난다) 너 지금 날 가르치냐?
(굳은 얼굴) 야, 송선주, 너 도대체 나랑 붙어다니려는 그 저의가 뭐냐?
선주 : (말하려 말문 열면)
영희 : 입 닫어. 평생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초치고, 침뱉고. 송선주 남들이 들으면 웃어. 다 늙어빠진 유부남 사이에 두고,
과부 둘이서, 줄다리기 하는 것도 아니고.... 난 손 턴다. 그 오빠 너 가져. 됐지?
선주 : (짐짓 기죽은) 안됐어. 되긴 뭐가 돼. 미안해, 영희야. 나 너랑은 정말 죽어서 저승까지 같이 가고 싶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 오빠한테, 그 말한건, 솔직히, 샘이 나서.. 너는 뭐랄까, 나보다는 지적인데가 있잖니...
영희 : (비아냥) 무슨 적? 지적? (유란에게) 얘가 지금 아주 날 가지고 논다.
유란 : (외면하며) 난 몰라.
영희 : 송선주, 난 널 미안하게도 너무너무 잘알어. 넌 내가 좋은게 아니라, 다만 혼자 있질 못할 뿐이야.
너, 니남편 살아있을 때 우리 안중에나 있었니?
유란 : (영희 치며) 그만해. (하며 선주 보라고 영희친다)
선주 : (고개 숙이고, 슬픈 얼굴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영희 : (기도 안차다) 쇼를 하네, 쇼를해. 아주 캉캉춤을 춰라. 울어? 야,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톡까놓고 얘기해서 왜 붙어다녀야 되는데 우리가, 사귀니?
선주 : (슬프게) 사귀진 않지만....우린 친구잖니?
영희 : 친구? 하! 말이 좋아 친구다. 의리라곤 눈꼽 만치도 없는게... 내가 너같은 애가 뭐가 아쉬워 만나?
니가 공주야? 내가 왜 니 수행을 들어야 돼냐구? 고등학교때도 변소칸도 혼자 못가서, 공부하는 사람 들들볶아,
기어이는 변소문 지키게 하고..... (말하다 열받아, 일어나 버럭) 내가 너 때문에 대학도 떨어졌어, 기집애야!
(유란에게) 얘 데려가. 얼굴만 봐도 소름끼쳐. (하며,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문 쾅닫아 버린다)
유란 : (한숨 쉬고, 선주 보며) 꼴좋다. 이제 너 어떡할래?
선주 : (고개 숙이고, 잠시 있다가, 킥킥거리며 입을 막고 웃는다)
유란 : ? 얘가, 얘가, 너, 왜 웃어?
선주 : (입가에 손가락대고) 쉬! (하고는 웃음띤 얼굴로 작게) 우리 가자.
유란 : ?
선주 : (작게) 쟤 화풀렸어. 다다다다 말 많으면, 화 다 풀린거야. 이제 참회하는 척하고, 가면, 낼부턴 히히닥 거릴 수 있어.
(하고, 일어나 영희 문쪽으로 간다, 문쪽에 대고, 힘없는 척 말을 한다) 영희야, 나 갈께. 낼은 꼭 보자.
(하고는 유란 보고, 함박 웃으며, 작게) 가자.
유란 : (어이없다)
씬23. 영희의 방.
영희, 안경 쓰고 바늘질을 한다.
영희 : (혼잣말처럼, 궁시렁) 예나지금이나 그저 남자만 보면, 눈이 벌개 가지고 (하다가, 바늘에 손 찔리고) 앗따거!
그때, 마침 전화벨 울리고, 영희, '뭔 전화야'하며 전화기 들고.
영희 : 네, 여보세요?
현철 : (E) 저... 영희냐? 나, 현철이다. 니네집, 유정아파트 맞냐?
영희 : 그, 그런데, 왜?
현철 : (E) 지금 그 아파트 앞에 와 있다.
영희 : 뭐?
씬24. 아파트 현관.
엘비에터 문 열기고, 영희 내린다.
영희 문밖으로 나가려다가, 제 모습 아래 위로 훑어 내리며.
영희 : (머뭇대는, 혼잣말) 신발이라도 갈아신고 올 걸 그랬나. 젠장, 더이상 내 본전에 쪽 팔릴 것도 없고, 밑질 것도 없다.
연앨 하잘 것도 아닐텐데, 뭐..... (가고)
씬25. 아파트 공원 벤치.
현철, 벤치에 앉아 고개 숙이고 담배 피우고 있고,
영희, 그 옆에 앉아있다.
영희 : (현철 안보고) 왜, 왔어?
현철 : 왜, 왜오긴, 너, 보고 싶어 왔지.
영희 : (어이없어 보며) 오빠, 언니가 나 만나고 이러고 다니는 거, 알어?
현철 : (못보고, 어렵게) 정말이야.
영희 : (기도 안찬다 체하며) 늙으니까 말만 느나보네. 우리집 전화번혼 어떻게 알았어?
현철 : (멋적어, 계속 머리 긁으며) 센타, 사무실에서......
영희 : (눈쌀 작게 찌푸리며) 무슨 머릴 그렇게 득득 긁어, 안감았어?
현철 : (놀라, 머리 긁던 손 내리며) 감았어. (영희 얼굴에 머리 디밀며) 봐라, 감았지.
영희 : (피하며) 뭘 들이밀어.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웃음. 고개 돌리고 웃으며) 참내.... (하다가, 다시 현철 보고는)
오빠 머리 일주일에 한두번 감지? 매일 감어. 요즘 공기가 안좋아, 시내 나다니면 금방 더러워져.
현철 : (영희 못보고, 어렵게) 영희야... 나, 사실은 말이다.
영희 : (보면)
현철 : (머뭇대며) 나, 사실은.... (영희 보고, 말을 못하고 괜히) 나, 아들 둘이다.
영희 : 난 딸만 하나야, 누가 뭐래?
현철 : 다들 장가 갔어. 손주도 둘 있다.
영희 : 누구 부아지를 일이 있나? 내 딸은 시집도 못간 노처녀다. 그래서 난 손주도 없다. 어쩔래 오빠가?
현철 : 그게 아니라...
영희 : 그럼 뭐?
현철 : (머뭇대다) 에이....
하며, 씁쓸한 얼굴로 다시 담배 피우고, 머리 심하게 긁는데,
그 바람에 소매끝 와이셔츠 담추가 떨어져 영희의 슬리퍼 위에 튕겨진 후, 굴러간다.
영희 뭔가 싶어, 눈길 굴러가는 단추에 주고,
현철은 '이런'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굴러간 단추를 찾아 서너걸음 간 후에, 주워서는 다시 자리로 온다.
영희, 그런 현철을 보는데, 바지 밑단이 뜯어져 있는게 보인다. 이상하다 싶다.
현철 : (단추 보며) 이게 드디어는 떨어졌군. (하며, 주머니에 넣고, 영희 못보고 어렵게) 영희야....
영희 : (이상하다) 잠깐만.
현철 : (영희 보는) ?
영희 : 오빠 나한테 할 얘기 있지?
현철 : (왜 그런지 모르고) 그래, 있어...
영희 : (하늘 보고, 어이없는 웃음) 하-. (황당하다, 다시 현철 보고) 오빠, 홀애비-, 지?
현철 : (어이없는 웃음 슬몃 지으며, 멋적게 고개 끄덕이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영희 : (웃음 띤) 우-리, 비긴거지?
현철 : (고개 끄덕이며, 멋적게 웃고)
영희 : (조금은 놀라 현철보다, 어이없이 웃고, 다시 현철 보고)
그런 두사람 한화면에 잡히고.
씬26. 호숫가+성우의 차안.
성우의 차. 서서히 와서는 멈춰선다.
잠시후, 이교수, 차에서 내린다.
이교수, 성우쪽으로 가서는 차문 열고.
이교 : 나와라.
성우 : (굳은 얼굴로 가만히 앞만 보며 앉아있다)
이교 : 나와.
성우 : (이교수 한번 보고, 차에서 내려 차문을 쾅소리나게 닫는다)
이교 : (성우 보고)
성우 : (작게 한숨 쉬고) 말해요. 나왔으니까.
이교 : 기분 풀어라. 그래야 편하게 얘길하지.
성우 : 미안해요. 말하라곤 했지만, 난 들을 얘기가 없어요.
이교 : 지금 이런 모습 너 같질 않다. 툭치면 부러질 사람처럼 ...왜그래?
성우 : (어이없는 웃음 짓고 보며, 비아냥) 왜 그래? 당신이......이렇게 만들어놓고, 왜 그래?
시간경과.
성우, 이교수 조금 떨어진 채 차에 기대 강가를 보고 있다.
이교 : (O. L담배 피워물고, 어렵게) 아내가 많이 아팠었다. 아픈 사람 놔두고, 너한테 갈 수 없었어.
성우 : (호수만 보며, 무관심한, 담담하게) 그랬겠죠....
이교 : 내가 두 아이 아버지인거, 이해해야 한다. 내 입장을 이해해줘야 해.
성우 : (무관심한) 물론 이해했어요. 그래서 안찾은 거구. 그럼 된 거 아냐?
이교 : 너한테 늘 미안했어. 첨엔 단순한 미안함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어.
널 다시 본 순간, 내가 아직도 널 사랑한다는 걸 확인했다.
성우, 어이없어 웃음 이 다난다, 들을 말 없다 싶어, 차문을 열려 한다.
이교, 성우의 팔목을 잡는다.
이교 : 얘기 안 끝났어.
성우 : (가라앉은) 이 손 놔.
이교 : (놓는다) 얘기하자.
성우 : (조롱 섞인 웃음이 난다) 날 아직도 사랑해? 어떡하지, 난 아닌데? 남자들은 참 몰라, 남자가 변하면 여자도 변할 수 있어.
(사이)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한번도 안 그리웠어. 안 그리울만큼 정 뗐어.
이교 : (성우 무표정하게 보는)
성우 : (비웃음) 아내가 아팠다구? 그런 사람이 그 다음날, 부인하고 여행을 가? 아이 아버지라고? 지금은 아니야?
당신은, 당신 자신한테 그렇게 자신이 있어?, 당신이 버린 여자가, 끊임없이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살거라고..사람 잘못봤어.
당신 헤어지고, 바로 연애했어. 불행히 그 남자도 당신처럼진실하지 못해서...이뤄지진 않았지만, 당신은 잊었어.
하고는 차문 열고 차안에 탄다, 이교 문열고 옆자리에 앉고.
성우 : (이교 보고).....
이교 : .......
성우 : (팔짱끼고, 비웃음이 가득한)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유, 세가지만 말해줄까?
이교 : ...
성우 : (이교 뚫어지게 보며, 비웃음 섞인) 첫째, 당신은 아내가 있으니까, 둘째, 당신은 아이가 있으니까.
셋째, 이제 난, 당신을 정말로, 정말로 사랑하지 않으니까.
이교 : (성우의 말을 다 듣고, 참담한 얼굴로 외면하고)
성우 : (잔인하게) 어쩌나... 당신의 그런 모습조차도, 가짠 거 같애. 내려요. 차가 없는 곳이라, 안됐긴 했지만, 같인 못 갈것 같네.
이교, 담담하게 차에서 내려 차문 닫아준다.
성우, 매몰차게 운전해 가고.
이교, 답답한 얼굴로 한숨을 쉰다.
씬27. 달리는 성우의 차안.
성우, 화난 것 참고 이 앙다물고 가는데, 서서히 눈가가 눈물이 차오른다. 애써 안울려하지만, 눈물나는 가라앉은.
성우 : 이왕 버리고 갔으면... 차라리 행복하면.. 누가 뭐래. 얼굴이 그게 뭐야. 천치 같은 사람....
씬28. 성우의 사무실.
준희, 컴퓨터로 인테리어 공간을 보고 있다. 열심이다.
카메라(현주와 재석은 인부복입은 사람들과 서서 모형을 보고 얘기하고 있다), 돌아서면 하숙 들어오며.
하숙 : 퇴근들해. 참, 미선아, 오늘 주실장집에 병문안 간댔지?
미선 : (재석, 현주 눈치보고)
재석,현주 : (미선 보고, 눈짓주고)
하숙 : 뭐해들?
미선 : (억지 웃음) 아녜요. 가, 가요.
하숙 : 가서, 피곤하게 하지말고, 일찍들 일어나. 나두 가고 싶은데, 애들하고 약속이 있어. (준희에게) 서준희씨, 낼보자.
준희 : (일어나서, 인사하고) 네.
하숙 : 씨유, 낼아침. (하고, 나가고)
준희 : (자리에 앉아, 컴퓨터 치고)
현주 : (재석을 툭치며, 작게) 니가 말해.
재석 : 니가 말해.
현주 : (눈치주고)
재석 : 알았어. (하고는 준희 앞으로 가서, 머뭇대며) 저, 서준희씨.
준희 : (컴퓨터하다, 보면) ?
재석 : 저, 어떡하냐? 현주씨랑 나랑은 오늘 병문안 못갈것 같은데.. 오늘 현주씨 우리집에 간다고.
현주 : (옆에 와서는) 내가 언제 간댔어. 막무가내로 어머님이 오랬지?
재석 : (눈치주고, 준희에게) 우리 어머님이 말이야, 벌써 음식을 다 했다네. 음식 버리면 벌 받는거, 서준희씨도 알지.
현주 : 죄송해요.
준희 : (자리 치우며, 웃음띤) 아니예요. 미선씨랑 가죠 뭐. (미선 보며) 미선씨, 괜찮지?
미선 : 저, 저두 약속이....친구가 극장표 끊었다구. 같이 보러가자구.
재석 : 그 친구, 매너없네. 묻지도 않고. 표 찢어버리라 그래. 암푤 팔든가.
현주 : 안가면 사장님이 뭐라하실텐데, 집 알아요?
준희 : (어색한) ....
미선 : (준희 앞에 쪽지 주며) 이거 주실장님댁 전화번호 거든요.
준희 : (머뭇대며, 쪽지 받고)
씬29. 은수의 갤러리.
손님, 공예품을 보고 있다, 은수 그 옆에서 설명하고 있다.
은수 : 정원쪽은 이 작품하고 안 어울리는데, 낼쯤 새로 작품이 들어오는데, 그걸 보시는게, 어떨까요?
손님 : 난, 이걸 놓고 싶은데...
은수 : (애매한 웃음, 약간은 짜증스런) 이건, 정원용이 아니예요.
그때, 전화벨 울리고, 은수 전화기있는 테이블쪽을 보고, 작업실 문 쪽을 본다. 전화벨 계속 울리고.
은수 : (인정이 안나오나 답답한데, 작게 혼잣말) 인정이 얜 어디간거야.
손님 : 전화 먼저 받으시죠?
은수 : 고맙습니다. (하고, 테이블로 가서며, 궁시렁) 작품 놀때도 구분 못하는....무식한 자식, 안팔까보다.
(전화 받는, 피곤한) 네, 착한 생각 정은숩니다.
씬30. 준희의 사무실.
준희, 가방에 물품 챙기며 전화받고 있다. 텅비었다.
은수 : (E) 왜 걸었어?
준희 : (웃음띤) 왜 걸긴, 목소리 들을려고 걸었지.
은수 : (E) 바뻐, 긴말 못해.
준희 : 주실장님이 아프셔...병문안 갈려그러는데, 같이 갈래?
씬31. 은수 갤러리.
은수 : (주실장이라는 말에 약간, 아주 약간 기분 상하는) 그 사람 병문안을 내가 왜 가? 많이 아프대?
준희 : (E) 그런가봐.
은수 : 걱정되니? (사이) 너 요즘 부쩍 그여자 걱정 너무 많이 한다. 기분 나쁠 정도로.
그 여자 걱정하는 거 반만큼이라도 내 걱정 좀 해봐. (하고, 끊고)
씬32. 준희의 사무실.
준희 : 은수야....
하는데, 전화기에서 삐-하는 부저음 소리 들리고, 천천히, 전화기 내려놓고, 눈길 성우의 자리로 주고.
씬33. 동진의 신문사.
동진, 퇴근준비하며, 전화 받고 있다.
은수 : (E) 술 마시러 가자.
동진 : (웃음띤) 오늘? (멈춰서서 생각난듯) 아, 오늘이 내 생일이었어..
은수 : (E) 얘봐라, 우리 이쁜 신랑 재쳐두고 만날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는 거 아냐.
동진 : 미안... (사이) 그래. 아버지 가게서 보자. (하고, 전화 끊고, 가방 마저 챙기는데, 전화 오고, 전화 받고) 네, 이동진입니다.
(사이) 뭐요?
남자 : (E) 신일백화점에서 손님카드로 수상한 여자가 물건을 살려했대요. 카드 분실 안하셨습니까?
동진 : 안햇는데요. 잠시만요. (하고, 지갑 꺼내 카드를 본다, 그중 하나 거내 보고, 앗차 싶다) 이런...
씬34. 신문사 밖.
카메라, 돌아가면, 한쪽에 세미와 장어 서 있다.
세미 : (명함 보며) 여기맞는데....
동진 : (신문사 안에서, 나와 갈길 가고)
장어 : (두리번 거리다) 혀, 형이다. (하고, 따라가려하면)
세미 : (장어 잡는다)
장어 : ?
세미 : (입가에 장난스런 웃음 띤) 우리 저 사람 미행할래? 어차피 오늘은 일두 못하고, 남아도는 시간도 떼우고....
재밋을 것 같지 않니?
씬35. 전철 타는 곳.
동진, 타고. 다른 입구에서 장어과 세미 탄다.
씬36. 전철안.
동진, 서서 세미 생각에 기분 나쁘다.
세미, 장어 동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장어, 동진을 힐끗힐끗 보고.
세미, 고개 돌려 동진을 물끄러미 무표정하게 보고 있다. 동진이 좋다.
장어 : (작게) 세미야....
세미 : (동진만 보며) 응....
장어 : 저 형 멋있지, 터프하지, 무슨 생각하나봐.
세미 : (동진에게서 눈 안 떼고) 그래...
장어 : 대학 나와도 부자는 아닌가봐? 차두 없이, 약간만 부잔가봐, 그지?
세미 : (여전히 동진 보는) 그래......
장어(둘레 구경하는)와 세미(동진 보는), 동진(생각하고), 한 화면에 잡히는.
씬37. 편의점 앞.
세미, 장어 둘레를 두리번 거리고 있다.
사람들, 그 앞을 분주히 지나가고.
장어 : 어, 형, 어디갔냐? (세미에게) 여기로 왔는데, 분명히 일로 왔지?
세미 : (입맛 쓰다) 가자. (하고 돌아서, 두어걸음 가는데)
장어 : (세미 뒤에서) 형, 형이다!
세미 : (그말에 순간 뒤돌아 보면)
동진, 안으로 들어가려 문 여는데.
그때, 은수의 차 그 앞에서 클락숀을 울린다.
동진 돌아보면, 잠시후, 은수 내리고, 동진 반갑게 '왔어.' 하고 두사람 어깨 동무 하듯하고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세미, 부러운듯, 화난듯, 그런 두사람을 보고.
씬38. 편의점 안.
동진, 계산대 안에 있고, 은수 그 앞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다.
동진 : 아직도 기분이 안풀리니?
은수 : (동진 안보고, 서글픈 웃음지으며) 왜 이렇게 자신이 없는 줄 모르겠어.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 준희가 날 싫어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다른 남자들처럼, 애를 죽자사자 원하는 것도 아닌데. 걔가 조금만 이상해도, 날카로워지고...
동진 : 조금이라도, 이상은 한 거야?
은수 : (술한모금 마시고, 캔을 보며)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 여자 얘길 자주해. 걔는 못 느끼는데...
(동진 보고, 애써 장난기 있는) 아주 자주 해. 너두 알지? 어떤, 사람의 얘길 필요이상 자주 하는건,
그 사람이 마음에 조금이나마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동진 : 과민한 반응 같은데.
은수 : (웃으며) 맞아. 지금 몹시 과민해.
동진 : 원래 준희씨 성격이 그렇잖아. 자상해서 그래. 자기가 생각하는거, 니가 다 알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잖아.
딴 생각있으면 그렇게 얘기하겠냐?
은수 : (고개 끄덕이며) 아까, 일두 바쁘긴 했지만, 그 여자, (속상하다) 주실장 얘길 하는데, 순간, 나두 모르게 짜증이 나드라...
(동진 보고, 웃으며) 이럼 안되는데. 남자들은 이런 거 싫어 하는데... 애두 못났는 여자가 시기까지....
동진 : (은수, 조금은 아프게, 그래도 따뜻하게 웃으며 보는)
은수 : 일하는 애 언제와? 귀 빠진 날인데, 너무 시시하다. 나가서 술먹자.
동진 : 다커서 생일은...걔 물건 가지러 가서 늦을거야.
은수 : 아버님은?
동진 : 무릎이 안좋으셔. 시간 날 때는 내가 자리 지켜야지. (테이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게 우리집 전 재산인데...
두시간만 기다릴래? 그땐 시간 낼 수 있는데....
은수 : (가방매고 일어나며) 돌았니? 집에 갈래. 가서 오랜만에 우리 신랑 따뜻한 밥도 해놓고, 혹시 모르니까, 목욕도 하고....
동진 : (웃고)
씬39. 편의점 앞.
동진, 은수 나오고, 은수 차에 타고, 동진과 인사나누는데,
카메라 돌아가면, 한쪽에 세미 장어, 건물 앞에 앉아있다.
장어 : (자리에서 일어나, 동진 쪽 보고, 세미 보며 반갑게) 저 여자 간다.
세미 : (은수쪽 서운한 눈길로 가며) 기집애가 차는, 재수없어. (일어난다)
은수의 차 가고. 동진, 은수 가는 것 보는데.
세미, 그런 동진 보며, 바닥에 침 뱉고, 기분 드러운데.
장어, 어느새 동진 앞으로 간다.
장어 : 형!
동진 : (돌아보고) ?
장어 : (웃으며) 안녕하세요. 나, 장언데...
동진 : (주위 둘러보면, 세미 보이고)
세미 : (고개 숙이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저벅저벅 와서는, 장어를 툭치며, 땅만 보고) 어서 주고 가자.
동진 : ?
장어 : (주머니에서 카드 꺼내 동진 주며) 형, 이거....
동진 : (카드 받고, 작게 한숨 쉬고, 구겨버린다)
장어, 놀라고, 세미, 만만찮게 동진 보고.
동진 : 분실 신고했어. 니들 이렇게 밖에 못살겠어?
장어 : (굳은 동진의 얼굴에 갑자기 긴장하며, 말더듬는) 우, 우리, 우리 이거요. 주웠는, 아니, 아니... 슬쩍했는데... 안썼어요.
하나도 안썼어요. 정말이예요. (세미 보며) 그지, 세미야?
세미 : (짜증난 한숨 쉬고) 미안해요. 장어, 봄옷이 없어서 하나 사줄라고... (그러다 변명하는것 같아 기분 상하고) 기분 나빠요?
동진 : (세미 무표정하게 보는)
세미 : 화났으면 화풀릴 때까지, (얼굴 디밀며) 쳐요. 권투선수했던 우리 양아버지한테 죽도록 맞고 자라서,
아저씨같은 샌님 주먹은 개발에 사발이니까, 쳐요.
동진 : ......
장어 : (세미 막아서며, 버버대는, 두려운) 혀, 형.. 때리지마세요... 우, 우리 점심도 안 먹었어요. 때리지 마요.
세미 : (버럭) 궁상 좀 떨지마! (동진 앞으로 오며) 난 역전이 집이예요. 고소하고 싶음 맘대로해!
(하고, 장어 손 잡고 돌아선다) 빨리 와!
장어 : (끌려가며, 동진에게, 두려운, 인사하고) 형, 안녕히 계세요.
동진 : (잠시 생각하더니) 야!
세미(화난), 장어(반가운)(돌아보면)
동진 : 밥 먹고 가라.
세미 : 싫어요. 드러워서 안 먹을래.
동진 : 자존심이냐?
세미 : (동진 뚫어져라 보는) 자존심이야.
동진 : (세미 보며) 동정아닌, 데이트 신청이다, 먹을래?
세미 : (동진 보는)
씬40. 은수 달리는 차안. 몽타쥬성.
은수, 카폰의 재다이얼을 누른다. 신호 가고, 떨어지고.
스피커 : (준희 웃는 목소리) 외출했습니다. (은수 웃는 목소리) 우린 정말 정말 외출했습니다. 메모 안하면, 전화 안걸어줘요!
(강아지소리) 컹컹!
은수, 카폰 끄고. 담담한 얼굴로 가고.
씬42. 애견센타 앞.
은수, 유리문 밖에서 개를 부르며, 좋아하고 있다.
씬43. 불꺼진 준희의 집, 전경.
카메라, 이동하면, 은수 차안에서 강아지 쓰다듬으며 자기집 창가를 올려다 보고 있다.
씬44. 꽃집 전경.
유리문 안에 준희 보이는.
씬45. 꽃집 안.
준희, 꽃구경을 이리저리하고 있다.
주인, 장미다발을 주며,
주인 : 오늘 장미가 좋은데...한번 보세요?
준희 : (웃음 띤) 네. (하면서도 둘레 구경하고, 그러다 작은 투명 상자에 든 선 인장 화분 발견하고는 들어보이며) 이거 주세요.
씬46. 성우의 아파트 단지 + 공중전화 부스 앞.
준희, 꽃상자 든 주머니 만지며, 서 있다.
그때 성우의 차 입구쪽에서들어와서는 주차장에 멈춰선다.
준희, 성우의 차, 시선 두고.
카메라, 성우의 차로 가면, 성우 차 안에서 내린다.
어느새 그 앞에 준희 서있다.
성우, 담담하게 준희 보는.
준희 : 안 아파요. 아프데서 왔는데, 괜찮아요?
성우 : (차문 닫으며) 안아파.
준희 : (보는)
성우 : (준희 보며) 이렇게 와준건 고마운데. 내가, 기분이 별로 안좋아. 미안하다, 그냥 가라. (현관쪽으로 가고)
준희 : (성우 보는)
씬47. 거실. 바깥의 건물 불빛만 들어오는, 어두운.
성우, 거실로 나와, 빨래 들고 베란다로 간다.
씬48. 베란다.
성우, 세탁기에 빨래 넣다가, 문득 이상해 베란다 문 열고 내다본다.
밖에서, 준희, 주머니에 손넣고 땅바닥만 보며 서 있다.
성우, 그런 준희 보는.
씬49. 현관앞.
준희, 무표정하게 땅만 보고 서 있다, 그러다 문득 고개 현관쪽으로 돌리면,
성우, 평상복 입고, 준희를 물끄러미 보며 옆에서 있다. 준희, 성우 보는.
성우 : (웃음 띤) 걷자..... (앞장 서 걷고)
씬50. 아파트 둘레를 나란히 걸어가는 두사람.
준희 : 어디 가요?
성우 : (생각하며, 걷는) 어디, 들어가고 싶어?
준희 : (웃음 띤) 아뇨.
성우 : (멈춰서 준희 보는) 괜찮으면, 조금만 더 걷자. (걷고)
준희 : (걸어가고)
걸어가는 두사람 오래 보여주고.
씬51. 아파트 공원으로 걸어가는 성우와 준희.
성우 : (웃음 지으며) 밤늦게 여자집에 간다고 말했는데도 니 부인이 보내주디?
준희 : (작게 웃음 짓다가, 성우 보며) 걘 바쁜애거든요.
성우 : 부인이 바뻐서 싫어?
준희 : (작게 고개 젖고 웃으며) 싫긴요, 부럽죠.
성우 : 부,러워?
준희 : (선하게 웃으며, 그러나 서글픔이 밴 목소리로, 성우 안보고) 작업하는 게 부러워요. 나두, 손 안다쳤으면, 작업했을텐데...
그리고, 누가 내 그림에 탐을 내면, 참, 감사했을 텐데.....
성우 : 손, 못, 고치니?
준희 : (양손을 부비고, 주머니에 넣고 웃으며) 안된대요. (앞서 가고)
성우 : (뒤에서서, 안된 마음 든다)....
씬52. 공원내 벤치.
두사람 앉아있는.
준희 : 오늘 회사 왜 안왔어요?
성우 : (준희 안보고 생각하는, 담담한) 글쎄 왜 안갔을까. 사실 안간게 아니라 못갔어, (준희보며, 농담조) 납치 당했거든.
준희 : (부담스럽지 않게) 이교순가, 그사람 왔었어요?
성우 : (외면하고, 서글픈 웃음 띤) 서준희.... 넌 사랑이 아픈거라 그랬지?
준희 : (성우 보면)
성우 : 그건 사치야. (준희 못보고, 마음 아픈) 나는 말이야. 너무 아파서, 하루에 도 열두번씩 너무 아파서, 이젠 더 아프기 싫어.
사랑이 니가 말한 그런 거라면, 죽을때까지 안해도 좋아. (눈가 그렁해지는 한숨 쉬고, 준희 보며, 편히 웃는) 오랜만에
너랑 잠시, 길을 걸으면서, 나 조금 행복했다.
준희 : 다행이네요. (담배 꺼내, 옆에 놓고, 주머니 만지는)
성우 : (그런 준희 보다, 감정 털어버리려 괜히 웃으며) 누가 보면 내가 너 꼬시는 줄 알겠다.
너, 주머니에 자꾸 손넣고 만지는거 뭐니?
준희 : (편하게 웃으며, 선인장 성우 손에 놓아준다)
성우 : 왠, 성인장?
준희 : 선물이예요.
성우 : (선인장 보며) 이거 선물치곤, 너무 따갑고, 모나지 않았니?
준희 : (성우 안보고, 입가에 웃음 띠고) 미국에 있을때, 사막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나보다 더큰 선인장을 봤어요.
그때, 가이드가 그랬어요. 생긴건 이래도 이 세상에 이꽃처럼 여린 꽃은 없다.
성우 : 여려? 이렇게 독하게 가시 까지 가진게?
준희 : 선인장 잘라봤어요? 선인장을 잘라보면, 온통 그 안에 물이예요. 눈물처럼 찝찔한 물이요.
성우 : 눈, 물?
준희 : 그때부터 선인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나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
난, 성우 선배가 왠지, 선인장 같아요...
성우 : !....
시간경과.
성우 : (준희 보며) 넌, 왜, 사랑이 아픈거라고 했니?
준희 : (성우 안보고, 맘아픈, 그러나 웃음 잃지 않고) 그 얘길하려면 길어요. 친 어머니가, 지금 계신분은 양어머니세요.
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어려서 돌아가셨어요. 한 사흘 앓으셨나.....엄마가 짧은 시간인데도 참 많이, 많이 아파했어요.
난 그때, 어린 맘에 엄마아픈게 싫어서, 이렇게 빌었어요. (맘 아프지만, 웃으며) 엄마, 죽어라. 아프지말고, 죽어라...제발.
(사이) 엄만 내 소원대로 빨리 죽었어요..... (눈가 그렁하다. 여전히 입가에 웃음 띤)
성우 : ......
준희 : (웃음 띤 채, 그러나 맘아픈) 그리고 많이 후회했어요. 살려달라고 기도할 걸. 그땐 하느님이 내 편인줄 몰랐어요.
성우 : (준희 물끄러미 보는)
준희 :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엄말 사랑했어요. 엄말 생각하면, 지금도 난 맘이 너무 아파요.
그때부터, 사랑을 하면 맘이 자꾸만 아팠어요.. (애써 맘다잡고, 성우 보고, 씩 웃으며) 이건 기쁘고, 밝은 얘기예요.
왜냐면, 그 이후로, 난 아주 낙천적이 됐거든요. 아픈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희망할 수 있는.. 맘,
아프지마요. 기도해요. 아프지말게 해달라고. 혹시 모르잖아요. 하느님이, 성우 선배 편인지도....
성우 : (눈가 그렁해, 준희 보는)....
씬53. 아파트 현관 입구.
성우, 앞서 걸어오고, 준희 걸어들어온다.
성우,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준희 보고. 준희 멈춰서고.
성우 : (조금은 장난스런) 오늘 설랜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주 잘생긴 남자가, 집앞에서 날 기다려, 울적한 맘을 풀어주고,
마지막 배웅까지 해주고... (그러다, 고개 갸웃하며, 자기 맘을 자기가 모르겠다는듯 웃으며) 이거 안되겠다,
나 이러다 일내겠어. 가.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버튼 누른다)
준희 : (성우 뒤모습 보며, 마음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멈추고, 성우 그 안에 타고. 열림 버튼 누르고 서서는.
성우 : (준희 본다, 문득 그를 사랑하는 느낌이다)
준희 : (자기 발끝을 보고 서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들어, 성우를 본다)
성우 : (준희 보는)
준희 : ?
성우 : (준희에게서 눈 안떼고 보다가) 서준희.
준희 : ....
성우 : 우리...연애할래?
준희 : ?
성우 : (준희 보는)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