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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하 24;1-25. 오늘 날 드러나는 현상은? 2. 2020. 3. 15.
먼저 지금의 상황입니다. 작년 12월부터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병한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중국을 넘어 세계 모든 나라에 바이러스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문제는 그 확산속도가 지금까지 발생했던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빠르며, 걸리면 폐를 경화시켜서, 굳게 되어서 숨을 쉴 수 없게 만들고, 무엇보다 아직까지 코로나 19에 대한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이 코로나19에 걸리면 해열제, 항생제, 포도당 등으로 자가 면역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2주 만에 킷트를 개발하고 하루에 거의 18000명 이상을 검진 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메르스나 사스나 신종 프루 때에 일반적인 치료약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습니다. 어제까지 22만 명이 넘는 분들이 검진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에 대하여 3-5번 검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8000여명이 넘는 확진된 사람들이 있고 70여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선진 의료체계와 엄청난 검진 시스템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곡점을 맞이하고 서서히 매듭이 되는 단계에 진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진 의료체계와 엄청난 검진 시스템이 준비 되어 있지 않고 정확한 킷트가 부족한 나라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제 뉴욕 타임스가 미국에 대하여 염려스러운 분석 모델을 기사로 발표를 습니다. 이제 미국은 시작입니다. 한국의 검진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고 비상사태가 선포가 되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미국이 코로나 19를 방치할 때는 1억6천명에서 2억 명이 감염이 되고, 사망은 20만 명에서 170만 명까지 사망을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코로나 19로 엄청난 손실이 눈앞에 있습니다. 도쿄 올림픽을 예정대로 개최하기를 소망하지만 여기저기서 부정적인 견해가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습니다. 연기나 취소가 되면 일본의 경제손실을 정확하게 추계를 했는데 7조8천억 엔에서 8조 엔이라고 합니다. 한국으로는 80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입니다. 지금부터 빠르게 겁진을 한다고 하지만 이제까지 검진한 인원이 2만 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문에 소문을 달고 불안한 상태입니다. 중동의 이란은 8천만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의심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유럽의 이탈리아는 어제 3/14일 기준으로 17660명이 확진이 되고 1266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프랑스 독일 순서로 유럽이 위태롭습니다. 처음 시작이 되었던 중국은 80824명이 확진이 되고 3189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기준으로 총 134405명이 확진이 되고 5316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는 이미 빌게이츠가 말한 것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의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감이 증폭되었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선진국과 후진국이 없습니다. 전 세계 산업의 전분야가 타격을 입어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가져오게 되겠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우리 교우들의 삶의 현장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동안 일본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선진국들은 세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우상화가 되었지만 지금 이 현실은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 까지도 존재의 의미와 위상이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것을 차단하고 방어하고 전진하는 것이 전혀 없는 속수무책 입니다.
또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과 목회와 선교가 이제는 코로나 전후로 양분되면서 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시대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는 시대가 급변하고 일상의 트렌드가 전반적으로 바뀌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입니다. 세계화로 인하여 그동안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글로벌 시대가 되었지만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장벽을 쌓아가고 나만의 폐쇄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개혁과 개방사회가 가져온 순기능과 역기능을 차지하고라도 오늘 우리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오늘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고 코로나 19때문에 세상과 사람들이 무서워합니다. 코로나 19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어떤 분은 이렇게 현 상황을 진단합니다. 어두운 세상과 우상과 이단 사이비를 쫒고 자연의 섭리를 마구 도용하고 끌어다 사용한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하면 항상 어떤 일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거기에는 우연이 아니고 세상과 믿음의 사람들을 보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 이번 신종 바이러스를 코로나 19로 명명 했을까요. 세상의 사람들은 모르고 WHO는 모릅니다. 겉으로 표현하면 그냥 결정을 했습니다. 회의에서 결정해서 코로나 19로 부르는 것이 현 상황에 맞고 신종 바이러스의 상황에 적절하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예전처럼 사스. 신종 푸루. 메르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19로 명명했습니다. 물론 2019년에 발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로나는 다 압니다. 그런데 왜 하필 20으로 안하고19로 했을까요? 아이러니 합니다. 하지만 이를. 19를 뒤집어 보면 91이 됩니다. 여기서 참으로 오묘하게 자상하게 신기하게 현 상황을 그대로 표현한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91편입니다. 시편 91편을 읽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여러분,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치는 재앙이 지금의 상황이 아닙니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사재기를 하고 나만 홀로 이렇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이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을 통해서 나에게 주는 멧세지가 무엇이고 나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먼저 말씀에 나오는 전염병입니다. 전염병에 관한 단어는 여러 가지로 전염병, 염병, 온역, 역병 등으로 번역이 되며 원어에는 네 가지 정도가 사용되었습니다. 여러 단어가 있지만 그 뜻은 거의 대동소이하며 개역개정에서는 전염병과 염병, 역병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1-1. 데베르(ר pestilence)라는 단어인데 부순다는 의미입니다. 흑사병, 페스트, 역병, 전염병입니다. 레26;25,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민14;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삼하24;13,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입니까? 대상21;12,14.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렘42;22, 너희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1-2. 마게파(ה plague)라는 단어는 염병, 패배, 재앙으로 친(맞은)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의 사건에서 사용된 용어로 민25;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에 사용 되었습니다.
1-3. 마베트(ת death)라는 단어인데 죽음, 염병, 멸망이란 의미입니다. 욥27;15.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에 사용되었습니다.
1-4. 로이모스(λοιμός pestilent) 인데 유행병, 페스트, 악질적인 질병이란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특별한 예로 사용되었는데, 변호사 더둘로가 벨릭스 총독에세 바울을 고발할 때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사용된 용어입니다.
2. 본문에 나오는 전염병은 인구조사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모세의 경우와 다윗의 경우가 있습니다.
2-1.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인구조사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본 원칙이 있었습니다. 민1;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만 백성을 계수했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떤 경우에 인구조사를 했습니까?
2-1-1. 성막제조를 위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출38;25-26. 계수된 회중이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로 백 달란트와 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계수된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로 각 사람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 하나님께서 성막제조를 위한 준비로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을 계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 나온 은금은 성소기구를 제조하는데 사용했습니다.
2-1-2. 지휘체계를 위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민1;1-4.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하게 하라. 하나님께서 지휘체계를 위한 인구조사를 모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2-1-3. 생명의 속전(贖錢)을 위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출30;11-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인구조사를 할 때에 사람의 수대로 반 세겔의 속전을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 부담시켰습니다. 생명의 속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계수를 했습니다. 다른 용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모세는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고 백성들이 평안합니다.
2-2. 다윗의 인구 조사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원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만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왜 자신을 위해 인구조사를 했습니까? 사람은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하늘과 저 멀리 봉우리를 쳐다봅니다. 다윗이 어려울 때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10년 이상을 광야와 험지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이것이 삶의 습관이 되어서 좋은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크고 작은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이 형통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평화롭다가 전쟁이 있을 때에는 믿음 생활을 잘했는데, 계속 전염병이 없고 계속 전쟁이 없고 계속 흉년이 없어 경제가 잘되고 사방팔방으로 형통하니까? 신앙이 느긋해졌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못 사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셔도 살만 하네. 전에는 골리앗 같고 자기 자신은 작아서 하나님 없이는 승리하지 못할 줄을 알았는데, 이제는 자기 군대가 많고, 명장들이 많아서 한 장수가 팔백 명의 적군을 쓰러뜨려 죽이고 한 장수가 적의 부대를 싸워서 이기고, 세 용사가 적진 한가운데 들어가서 샘물을 길어오니, 적이 당할 수 없는 명장들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셔도 승리하고 이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던 신앙이 주변에 있는 자기 것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탄이 와서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당신 나라가 얼마나 강한지 한번 세어 보아라. 오늘 1절,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시키사 인구 조사를 하게 하셨다고 했지만, 표현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역대 상21장에서는 마귀가 다윗의 마음에 나쁜 계략을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냥 간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냥 두셨습니다. 그러니까 좋지 않은 길로 빠져 들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별 수 없습니다. 다윗 같은 신앙의 용장도 하나님께서 잠시 뒤로 물러서시고 그냥 두시니까 실수하게 됩니다. 별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팔 장을 끼시고 잠시라도 돌보지 않으시면 실수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1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감동시켰습니다. 역대 상 21;1절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이 일어나 다윗을 격동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행위를 막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격동케 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는 것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셨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다윗을 유혹하여 범죄케 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1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대상 21;1, 그들을 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진노하시사 다윗을 대적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시사 그들을 대적하셨습니다. 이유는 삼하15;12, 그들이 일시 동안 압살롬의 반역을 따랐고 삼하20;1-2, 또한 세바의 반란을 지지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벌하시기 위하여 다윗 왕의 실수함을 그대로 방임하셨습니다. 그 결과 15, 하나님께서는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므로 죽은 자가 칠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용입니다. 그래서 9개월 20일 동안 브엘세바와 단과 전국 각처에 다니면서 사람들의 신체검사를 했습니다. 신체검사를 한 후에 칼을 뽑아 싸우는 것을 테스트해서 잘 싸울 수 있는 용사를 조사했습니다. 그 용사가 이스라엘에 80만 명, 유다에 50만 명으로 130만 대군이었습니다. 여러분, 대단하지 않습니까? 지금 일본의 자위대가 얼마입니까? 지금부터 3000년 전의 한 나라 군인이 130만 명이면 엄청난 것입니다. 그래서 요압 장군의 보고를 들은 다윗은 ‘야! 내 나라 군대가 130만이구나. 하고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믿음이 엄청난 보유와 능력으로 작아졌고 신앙과 믿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2-1, 그러면 인구조사의 본래의 의미가 무엇 입니까? 내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교만입니다. 여러분, 인구조사와 인구센서스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인구조사를 하는 사람 다윗의 지시에 의해서 인구조사가 되면, 그 밑에 인구조사를 당하는 백성들은 누구의 소유가 되느냐, 누구에게 소속이 되느냐, 다윗에게 소속이 됩니다. 그래서 내꺼다 이 말입니다. 마치 집에 통장 몇 개를 세는 것처럼 이 사람은 내 것입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치시려고, 만들어낸 작업이 무엇입니까? 내 것이라는 것을 부수는 과정입니다. 부수게 되면 하나님!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가 됩니다. 교만을 내려놓게 합니다. 여러분, 내 것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 합니다. 세상은 내 것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세상은 내 것으로 권위가 세워지고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교만하게 됩니다. 본인은 모릅니다. 여러분, 나를 향한 사단의 유혹 중에 하나가 바로 숫자를 계수하게 하고, 교만하게 합니다. 사단은 계수하는 숫자를 크게 보이게 만들어서 내 자신 안에 헛된 자부심과 교만함을 극대화 시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욕심을 자극하여 더욱더 숫자를 늘리기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이런 저런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세력을 키웁니다. 결과만을 중요하시는 사역과 방법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 아니한지 그리 고민 하지 않습니다. 사용하는 방법이 성경적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방법이 원하는 숫자 증가라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 것 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요압 장군에게 명령합니다. 요압 장군, 어서 단에 가서 브엘세바까지 전국의 모든 군인들을 조사하라. 사실 인구조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와 노인과 아이들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칼을 뽑아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요압 장군은 신앙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깨달았습니다. 아, 다윗 왕이 변했구나. 하나님만 의지하던 분이 군사를 의지하는구나. 저러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겠구나. 그래서 진언을 합니다. 왕이시여,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지금의 백성보다 백배로 많게 하실 수 있는 분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이런 일을 하시나이까? 다윗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어서 인구조사를 해서 보고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장관들에게도 그 일을 도우라고 합니다. 보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찔하게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깨닫고 회개하듯이 다윗이 깨달았습니다. 내가 잘못했구나. 나의 깃발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의 수를 의지했구나. 다윗은 주저앉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큰 죄를 범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은 일과 미련한 일을 했습니다. 9개월 20일 동안 10개월 동안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시인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현실을 보면서 이 시간이 여러분에게 닭 울음소리가 되고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2-2. 다윗 자신의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성경은 이 시기에 대해서 정확히 언제였는지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구별하여서 조사하라고 했고, 요압을 군사령관으로 부른 정황을 보아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후 다윗왕의 집권 후기로 추정이 됩니다. 이때는 사울의 정적들도 사라졌고, 반역자 압살롬을 좇던 무리들도 제거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여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인구조사를 하지 않을지라도 이스라엘 왕국은 충분히 강했으며 만약 필요한 것이 있다면 여호와께서 수락해 주십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왕국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지를 파악했습니다. 이는 여호와보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며 자신의 계획을 앞세워 자기를 나타내려는 불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힘이나 능력과 자신의 영광이나 소유로 삼으려는 불신앙 입니다. 칼을 뽑아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요압 장군은 신앙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깨달았습니다. 아, 다윗 왕이 변했구나. 하나님만 의지하던 분이 군사를 의지하는구나. 저러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겠구나. 그래서 진언을 합니다. 왕이시여,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지금의 백성보다 백배로 많게 하실 수 있는 분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이런 일을 하시나이까? 다윗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어서 인구조사를 해서 보고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장관들에게도 그 일을 도우라고 합니다.
3. 오늘의 현상과 같은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보내어 세 가지 징계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13절,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입니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입니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세 가지 징계 내용은 삼하24장에는 7년 기근과 원수에게 3달 동안 쫓김과 3일 동안 전염병입니다. 그런데 기근과 칼과 전염병의 세 가지 형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주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징계를 하나님의 처분에 맡겼습니다. 그 결과 전염병으로 사흘 동안 죽은 자가 칠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19로 희생을 당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다윗의 결정으로 죽은 생명이 7만 명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요원합니다. 그러면 그냥 기다리나요? 예전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3-1. 일상의 중요함입니다. 일상이 진심으로 은혜입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습니까? 언제 알 수 있을까요? 코로나와 같은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압니다. 일상이 그립다합니다. 라는 시입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말 합니다. 시간이 멈추었다고도 말합니다. 코로나와 마스크.
달나라도 가고 동물도 복제하는 시대에 속수무책 속절없음입니다.
세계가 내 손안에 있고 모든 정보가 다 내 것이 되어도 내 것이 아닙니다.
글로벌시대에 창살 없는 감옥을 만들었습니다. 14일간 격리가 되고 주는 것만 먹어야 합니다.
그저 그렇고 밋밋하던 일상이 그립다합니다. 어제 같은 오늘도 축복이고 오늘 같은 내일이
주어진다면 아! 그것은 한량없는 은총입니다. 우린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피조물인지라.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일상이 그리웠습니다. 도망을 다니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왕궁의 생활이 은혜였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예배드림이 얼마나 기쁨이고 소망입니까?
3-2. 잠시 멈춤이 은혜입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삶의 행동반경이 줄어들었고 믿음의 삶도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상이 그립기도 합니다만 이 시간은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행동은 멈춤이지만 위를 보고 하늘을 봅니다. 주님을 보고 주님을 그립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동작그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여러분, 새 자동차를 팔려고 자동차 회사가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습니다. 그 광고에 굵은 글씨로 이 자동차는 당신이 태어나서 40세까지 산 것만큼이나 빨리 달립니다. 라고 적었습니다. 또 이런 말을 추가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중간고사 준비를 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20년이 지나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나한테 그 동안 아내와 두 자녀가 생긴 겁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너무 빠릅니다. 잠깐 졸다보면 40세이고, 또 조금 졸다보면 60세입니다. 조금 더 있으니까 종점에 왔다고 다 내리라고 합니다. 정말 살같이 빠른 광음입니다. 세월은 한번 지나가면 되찾을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보람이 있는 일을 하나도 못하고 하차할 수도 있습니다. 후회는 항상 나중에 찾아옵니다. 시간이 최고의 자산입니다. 그래서 잠시 멈춤입니다. 돌아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동작 그만!”이라는 표현이 무엇입니까? 군대 용어인데 동작그만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동작을 중지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을 합니다. 상황을 예의 주시합니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나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코로나로 하나님께서 동작 그만! 이라는 신호를 주셨습니다. 가정생활도 스탑하고, 사업도 스탑하고, 취미 생활도 스탑하고, 운동도 스탑하고, 세상의 모든 일을 그만하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여러분, 오늘도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지만 삶의 작전 타임이고, 동작 그만입니다. 예배는 참회와 설교와 순서를 통하여 주님의 코치를 받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다시 시작하게 되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뜻을 갖게 되고, 다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힘이 드셨습니까? 너무 불안하십니까? 잘 안 풀리십니까?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 오셨는데 코로나 때문이 아니고 주님 때문에 내 자신 때문에 이웃 때문에 잠시 멈추시고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잠시 멈춤이 주님이 움직이고 코로나도 끝이 나고 나의 삶의 잘못된 부분도 해결이 됩니다.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3. 이 상황에서도 결론은 주님입니다. 시91;1-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여러분,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치는 재앙이 물러나고 끝나게 될 줄로 믿고 오늘도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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