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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소통운동본부(CCCC) 원문보기 글쓴이: 평택 소통 김평탁
○ 대적들의 음모 | |
1. |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
2. |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
3. |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 하매 |
4. | 저희가 네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
5. | 산발랏이 다섯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
6. |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
7. |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찌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
8. |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
9. |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
10. |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
11. |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
12. |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
13. |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
14. |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
○ 완성된 성벽 | |
15. |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
16. |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
17. | 그 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
18. |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
19. |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
② 잠언 25장 전문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 왕 앞에 서는 자의 주의점
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
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스6:1, 에6:1, 욥29:16
3.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4.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말3:2, 말3:3
5.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잠20:8
6.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체 하지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7.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눅14:10
8.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마18:15
10.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14.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Jude12
○ 이웃과 원수에 대한 교훈
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16.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17.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18.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 시57:4, 잠12:18
19.
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욥6:15
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
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22.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23.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26.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 마26:69
27.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28.
대하32:5, 느1:3
③ 시편 25장 전문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애3:41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시103:17
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시69:16, 시86:16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시88:3, 시107:6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오늘의 역사
① 제1차 왕자의 난 : 1398.8.25 방원을 비롯한 신의왕후 한씨 소생 왕자들이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 반대파 세력을 불의에 습격하여 살해하고, 세자 방석과 그의 동복형 방번을 죽인 사건을 ‘제1차 왕자의 난’, ‘방원의 난‘ 또는 ’무인정사’, ‘정도전의 난’이라고 한다.
⇨8월 26일.
②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들 : 1982.8.25 세계적인 천재 과학자 250명이 이태리에 모여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 천재 실력자를 투표로 선정했다.
투표 결과 인류의 역사상 제일가는 천재는,
1 ‘최후의 만찬’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레오날드 다빈치’였 으며,
2 두번째는 상대성 원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인슈타인’,
3 세번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4 네번째는 영국의 사상가․역사가․문필가인 ‘칼라일’,
5 다섯번째는 ‘팡세’라는 명저서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그린 ‘파스칼’이었으며,
6 여섯번째는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슈바이쳐’였고,
7 일곱번째는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독실한 크리스찬이라는 사실이었다.
역사를 움직이는 참다운 실력자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 딸 거룩한 무리(聖徒)일 수밖에 없다.
③ 국립 중앙 박물관 개관(1972) : 경복궁 안에 자리.
단일 박물관으로는 동양에서 손꼽는 규모.
겉 모습은 우리나라 고유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5층의 충북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3층의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9호), 2층의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등을 우아하고 웅장하게 재현해 놓았다.
정면의 돌 층계는 경북 경주 불국사의 백운․청운교(국보 제23호)를, 기단(基壇)위의 난간은 경복궁 근정전을 본떠 세웠고, 내부시설은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 않게 현대식으로 꾸며졌다.
④ 제암교회 건립(1970) :⇨4월 15일.
⑤ 고려사 139권 완성(1451) : 고려 34왕 475년간의 정사(正史)로서 이조 태조가 개국 후 정도전․정총 등에게 명하여 「고려역대실록」․민지(閔漬)의 「강목(綱目)」․이제현의 「사략(史略」․이색의 「금경록(金鏡錄)」등을 참고하여 펀찬하였으나 그것은 37권의 편년체(編年體)로된 조잡한 것이어서, 다시 태종이 유신(儒臣)들에게 명하여 교정케 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종때에 와서 왕명으로 사국(史局)을 열어 정인지․김종서 등이 개찬(改撰), 1451년(문종 1)에 완성하였다.
⑥ 박정희 고려대에 군대 투입 (1965) : 1965년 오늘 !
한일 협정의 철회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확산되자 박정희 정권은 고려대학교에 무장군인을 투입합니다.
저녁 7시 박정희 대통령은 학생시위대책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합니다.
중앙청 제 1회의실에서 내무장장관과 각 대학 총학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한 대통령의 특별담화 !
(박정희 대통령 육성...정부 불러가라, 국회해산하라, 그 다음엔 학생이 정치를 하겠단 말입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담화를 발표하는 이 시각부터 철저하게 강한 단속을 할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다음날 서울지역에 위수령이 발동되고 대학은 휴교에 들어갑니다.
⑦ 이동전화 가입자 2천만명 돌파(1999) : 1999년 오늘 !
정보통신부는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가입자가 사상 처음으로 2천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합니다.
SK텔레콤, 한통프리텔, 신세기통신 등 5개 이동전화업체의 당시 가입자 수는 2천2만5천여명. 국민 2.3명 당 한 사람꼴로 휴대전화를 보유한 셈입니다.
20일 뒤 이동전화가입자 수는 유선 전화가입자 수 2천78만명을 넘어섭니다.
보급률 44.8%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 이어 세계 6윕니다.
이동전화업계는 가입자 천만명을 넘어선 뒤 1년 2개월만에 2천만명을 돌파하는 고속 성장을 구가했지만 과당 경쟁과 경영 부실이 문제로 대두되기도 합니다.
⑧ 일장기 말소사건-손기정 마라톤 우승 보도(1936) : 1936년 미나미(南次郞) 조선총독이 부임하자 조선 민중에 대한 학정은 더욱 심해졌다.
미나미대장은 우매하고 무식한 군인으로 역대 총독 중에서 가장 악독한 행동을 자행했다.
1936년 8월 10일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15회 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孫基禎)은 일본팀으로 출전,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에서 우승하게 되었다(2H 29M).
이에 전국민이 환호했고, 이어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손기정이 월계관을 쓰고 수상대에 오르는 사진을 실었는데 이 사진은 일본의 [아사히 스포츠]라는 조일(朝日)신문 발행 주간지에서 전재한 것인데 그 사진에서 일장기를 교묘하게 흐려버리고 발행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이길용과 삽화가 이상범을 검거하고 신문은 무기한 정간처분을 내렸다.
(그때 [조선 중앙일보]도 일장기를 말소한 뒤 발행했으나 발각되지 않았음.)
그러나 운동부 기자 유해붕을 경찰에 자수시키고 9월 5일자로 자진 휴간하기도 했음)[동아일보]는 그 이듬해 발행권이 취소되었다.
일제시기의 민간지 창간의 배경은 이른바 『굴뚝론』으로 설명되어진다.
즉 굴뚝을 만들어 열기를 빼내듯 민간지 창간으로 민중들의 독립열기를 가라않히고,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보듯 민간지에 나타난 내용을 보고 민심을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그 배경에서 태어난 여러 신문 중 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었던 것이다.
즉 이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의 통치구도속에서 출발을 했던것이다.
따라서 일제는 『채찍과 당근』의 정책으로 신문을 길들였다.
대표적인 예로 "일장기 말소사건"을 들수 있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신문정간이라는 조치를 당하고 이를 해제하기 위해 동아일보는 총독부와 타협으로 기자해고라는 조치를 취하고 만다.
조선일보 역시 독자의 신망을 얻기 위해서 배일적인 신문임을 자처하지만 총독부와 타협해 정간해제의 조건으로 역시 기자를 해고하는 양면적인 행위를 보인다.
이런 조선, 동아일보도 역시 친일적인 논조가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기라 상업주의적 논조와 식민지적 황색 저널리즘의 경향까지 나타나게 된다.
예로 높은 문맹률과 경제적 빈곤으로 신문 판매 부수를 늘리기가 매우 어려웠고 국내광고도 거의 없던 상황에서 기업적 이윤추구에 집착하던 두 신문은 일본광고 유치에 주력하게 된다.
그리하여 "기생관광"이라는 매족적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따라서 이 시기의 조선, 동아일보는 민족지가 아닌 『친일지』의 성격을 가진 신문인 것이다.
이런 두 신문은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조선어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폐간이 된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사주인 "김성수"와 조선일보의 사주인 방응모 는 그 뒤에도 『매일신보』나 『조광』등에다가 친일적인 논조를 펼치고 전쟁협력단체와 친일단체에 간부로 역임을 한다.
⑨ 美딘 장군 북한군에 체포(1950) : 6․25전쟁 기간 내내 북한군의 포로였던 미국 장군이 있다.
미 보병 제24사단장이었던 윌리엄 딘.
그는 포로였던 사실을 평생 부끄럽게 여겼지만 미국은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여겼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은 미 사단장이었다.
임무는 대전 지구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최대한 저지하는 것.
미군의 증원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북한군 T-34탱크의 공세를 간신히 견뎌 내다 결국 대전 철수를 결정한 날은 1950년 7월 20일. 한국 정부는 이미 부산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는 부상병을 어깨에 메고 퇴각했다.
그의 지프에는 중상을 입은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는 부상병에게 줄 물을 구하러 험한 산비탈을 내려가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신했다.
그렇게 실종된 그는 36일간 산속을 헤매다 8월 25일 전북 진안에서 북한군에 체포됐다.
포로 생활 중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치지 않는 설사였다.
그는 훗날 하루에 변소를 36번이나 간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심문도 그를 힘들게 했다.
당신이 딘 장군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소?(북한군)
구태여 나는 그것을 증명하고 싶지 않소.(딘 장군)
왜 미국인들이 이곳(한반도)에 왔소?(북한군)
남한 사람들이 국가 안전을 지키고 북 침략자를 방어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요.(딘 장군)
그에게는 산책이나 일광욕도 허용되지 않았다.
서 있지도 못하게 했다.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볼일 보러 갈 때뿐이었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1953년 9월 전쟁포로 교환 제1호로 풀려난 그는 포로 기간을 주검으로서의 3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기나긴 세월을 앉아서만 사는 경우,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가 명예훈장을 수여할 만큼 그는 미국의 전쟁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나무로 만든 훈장도 탈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왜였을까?
나는 전투 중에 몇 번씩이나 철수를 했고, 빼앗겨서는 안 될 땅을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자랑스럽지 못한 사실이 영웅적 전투였다는 환상 속에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
부끄러움을 아는 영웅이 진정한 영웅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2006)
⑩ 영국 크리슈나교도 시위(1971) : 기원전 7세기쯤 인도에서 창시된 종교 크리슈나교 !
크리슈나교를 믿는 영국의 젊은이들이 1971년 오늘 런던 거리에서 시위를 벌입니다.
술과 고기, 도박과 문란한 성생활 등을 금지한 크리슈나교 !
시위에 참가한 크리슈나교 신도들은 히피 집회의 금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자유로운 60년대"라고 이름 붙여진 히피들의 런던집회에 반대하는 시윕니다.
⑪ 미국 보이저2호 해왕성 최근거리 도착(1989) : 미국의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2호가 1989년 오늘 해왕성에 도달합니다.
1977년 발사돼 12년동안의 항해 끝에 해왕성에 도달한 보이저 2호 !
보이저 2호는 해왕성의 2천9백5km 상공을 지나며 지구로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미국의 항공우주국까지 사진 전송에 걸린 시간은 4시간 6분 !
사진 분석 결과 해왕성은 한개의 고리에 둘러싸여 있고 위성은 8개임이 밝혀집니다.
*********8월 25일은 내가 태양에서 약 45억 km 떨어진 해왕성에 다가간 날이다.
명왕성이 2006년 8월 행성의 지위를 잃어 지금은 태양계 제일 바깥 행성이 된 바로 그곳이다.
1977년 8월 지구를 떠났으니 12년 만이었다.
지구인은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나를 우주로 보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이 해왕성 고리와의 충돌을 염려하며 지켜본 그날, 나는 해왕성에 4950km까지 접근했다.
해왕성은 목성이 받는 태양에너지의 3%밖에 받지 못하는 먼 곳에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역동적인 행성이었다.
남반구에는 목성의 거대 폭풍인 대적반과 비슷한 대흑점이 꿈틀거렸고, ‘스쿠터’라 불리는 하얀 반점이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모습도 보여 줬다.
누구보다 앞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해왕성의 위성인 트리톤의 첫인상은 ‘스키장’이었다.
표면온도 섭씨 영하 235도. 지구인이 알고 있는 태양계 최저온도였다.
인간이 해왕성을 관측한 1846년 이후 아무도 존재를 몰랐던 위성 6개도 새로 발견해 줬다.
해왕성을 끝으로 12년간 날아온 길을 벗어나 더 먼 여행을 떠났다.
지구 출발이 나보다 16일 늦었던 쌍둥이 형제 보이저1호는 내가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하는 동안 목성과 토성에 접근한 뒤 바로 태양계의 경계로 향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들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는 지구인에게 작은 열쇠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태양에서 약 125억 km, 1호는 155억 km 지점에 있다. 태양풍이 영향을 미치는 태양권의 안과 밖이다.
지구와 태양 간 거리(약 1억5000만 km)의 100배 정도 되는 길이다.
그리고 아직도 교신 중이다.
비록 광속의 신호가 지구에 도달하는 데 12시간이 걸리지만….
지구를 떠난 30년 동안의 여정(旅程). 느낀 것이 있다면 제아무리 특별한 존재인 양 뽐내더라도 인간은 지구 위에 사는 생물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을 가늠해 본다면 동감할 것이다.
그때 부디 우리 형제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추신=우리 몸체에는 외계 생명체를 만났을 때를 대비해 지구정보를 담은 ‘레코드’가 있다.
55개 언어의 인사말 중에는 한국인 여성이 녹음한 ‘안녕하세요’가 있다.
가장 먼 곳에 있는 한국말이다.
-인간에게 영감(靈感)을 주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보이저2호가.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07)
⑫ 쿠바 난민 사태(1994) : 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미국을 향하는 쿠바 난민들 !
1994년 오늘도 바다를 건너는 쿠바 난민의 행렬은 계속 이어집니다.
8월 한달동안 미국에 망명한 쿠바 난민들은 만6천여명 !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쿠바 난민들의 처리를 둘러싸고 경제적인 이유와 인도적인 이유사이에서 곤경에 빠집니다.
쿠바 난민 사태는 보름후인 9월 9일 미국과 쿠바 사이에 쿠바 난민 사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일단락됩니다.
이에따라 미국은 쿠바인을 한해 2만명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⑬ 제17회 로마올림픽 개막(1960) : 1960년 8월 25일 제17회 올림픽 경기가 84개국 5396명의 선수가 참석한 가운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막됐다.
경기가 치뤄지는 가운데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에티오피아 마라톤선수 아베베였다. 그는 고대 로마제국의 아피아 가도를 맨발로 달려 콘스탄티노플대제 개선문에 골인했다.
가장 극적인 우승자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에 걸렸던 미국의 여자 육상 선수 루돌프였다.
그녀는 100m, 200m, 400m 3종목에서 우승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복싱 영웅 케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도 라이트헤비급에서 폴란드 선수를 물리치고 우승해 그의 시대를 예고했다.
⑭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제작 화제(1964) : '워너 브라더스,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 제작에 5백만 달러를 투자하다 !'
1964년 오늘 미국 신문들에 실린 톱기사의 제목이다.
워너 브라더스사가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7년 동안 장기 공연된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를 신문기사대로 거금 5백만 달러를 들여 영화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큰 규모의 분장실과 수많은 가발, 완벽에 가까운 소품 등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만들어진다.
'My fair lady'는 1964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렉스 해리슨과 오드리 헵번이 남녀주연상을 받는 등 7개 부문을 휩쓴다.
⑮ 옐로 캡 택시조합 출범(1910) : 서양 택시 역사의 첫 장에는 17세기 초 전세마차가 적혀 있다.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운행을 시작한 이 마차는 꾀죄죄한 좌석, 난폭한 마부, 바가지요금으로 비난받기 일쑤였다.
요금을 둘러싼 분쟁은 어느 때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로마시대에는 일정 거리에 다다르면 조약돌을 던지거나 눈금이 새겨진 초를 사용해 운행시간을 가늠했고, 중국 진나라 시절엔 이(里)마다 마차에서 징이나 북을 쳤다고 한다.
미국 택시회사 ‘옐로 캡’은 거리측정기를 장착한 택시를 운행해 승객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옐로 캡의 모체인 ‘월든 W 쇼 동업조합’이 설립된 날이 1910년 8월 25일이다.
전직 기자이자 자동차 판매원인 존 허츠와 사업가 월든 쇼가 손을 잡았다.
이 동업조합에서 출발한 ‘원조’ 옐로 캡 회사는 1915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이미 운행을 시작한 택시회사들이 있었다.
허츠는 택시사업의 성공비결은 눈에 잘 띄는 데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먼 거리에서도 또렷하게 식별할 수 있는 색상이 무엇인지 시카고대에 연구를 의뢰한 뒤 노란색을 채택했다.
훗날 렌터카 사업으로 명성을 떨친 허츠는 택시 서비스의 경영혁신으로도 유명하다.
몇 년간 택시를 운행해 본 결과, 기존 승용차로는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웠다.
그는 택시용 차량인 ‘모델 J’를 직접 디자인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노란색과 택시가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미 전역에 옐로 캡이 성행했다.
‘미국 택시의 왕’ 허츠의 옐로 캡은 유니폼 착용, 요금 인하, 노사협력, 정비 전담팀을 비롯해 자동 윈도브러시와 극초단파 라디오, 승객용 안전띠를 처음 도입했다.
지난해 겨울 뉴욕에서는 옐로 캡의 디자인을 두고 뉴요커들이 논쟁을 벌였다.
뉴욕시 도시디자인위원회가 택시 지붕 캡에 새긴 ‘TAXI’라는 글자를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로고로 대체하고 차량에 꽃무늬를 가득 그려 넣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뉴욕 시민들은 “옐로 캡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뉴욕 시민들이 사랑하는 옐로 캡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색깔을 지닌 택시가 있었으면 좋겠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2008)
⑯ 폴란드 비공산연립정권 탄생(1989) : 야루젤스키 폴란드 초대 대통령은 1989년 오늘 자유노조 기관지의 편집장 마조비에츠키를 총리로 지명한다.
이로써 동구 사회주의권에서 사상 처음으로 비공산당 주도의 연립정권이 출범하게 됐다.
폴란드에서는 1981년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연대 노동자들이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이래 공산정권의 탄압에 맞서 꾸준히 싸워 왔다.
⑰ 자유 프랑스군, 파리 탈환(1944) :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2차 세계대전의 전세는 연합군 쪽에 유리해졌다.
프랑스 파리의 해방도 시간 문제였다.
8월 22일 베를린으로부터 파리 주둔 독일군 사령부로 1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파리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지시였다.
전문을 받은 통신장교는 고민에 빠졌고, 12시간이 지나서야 이를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사령관 폰 촐티츠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적국이지만 인류문화의 보고인 파리를 파괴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명령을 거부했고 파리는 보존될 수 있었다.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에게 파리 진격 명령을 받은 프랑스 제2기갑사단은 24일 파리에 들어갔고, 촐티츠는 1944년 오늘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8월 25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의 기갑부대가 파리에 입성했다.
전운이 감돌던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련 사이에 독․소불가침조약이 성립되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에 맞서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강화 제안이 거부당하자 곧 진격을 개시해 1940년 5월 스당 근처의 프랑스 방위선을 돌파했다.
6월 10일 독일군이 파리에 접근하자 프랑스 정부는 투르로 떠나고 파리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6월 18일 샤를 드골 장군은 전투를 계속할 것을 호소했으나 페탱 내각은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6월 22일 휴전 조약을 맺었다.
또한 7월 9~10일 비시에서 열린 의회는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를 수립했다.
그러나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서는 지하운동인 레지스탕스 운동의 불길이 일었으며, 드골은 '자유 프랑스'를 조직했다.
자유 프랑스군은 비시 정부에 의해 반군으로 매도되면서도 국내외의 전투에 참가하는 등 독일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44년 8월부터 프랑스 국내군(FFI)으로 조직화된 레지스탕스 단체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프랑스 본토로의 진입작전이 벌어졌고, 1944년 8월 25일 마침내 자유 프랑스군이 파리에 입성했다.
같은해 10월 드골의 임시정부는 미국․영국․소련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⑱ 엉터리 왜곡 기사 :‘달에 박쥐인간들이 산다.
아름다운 호수와 루비ㆍ사파이어로 만든 거대한 궁전까지 관측됐다.’
1835년 8월25일자 뉴욕 선(Sun)지에 실린 머리기사의 골자다.
‘천체 대발견’이라는 제목이 붙은 충격적인 기사를 뉴욕 시민들은 믿었다.
당대의 천문학자인 존 허셜 2세가 학술지에 발표할 내용을 미리 보도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허셜이 4만2,000배율, 무게 7톤짜리 거대한 망원경을 제작해 아프리카 희망봉에서 관측한 결과라는 보도에 독자들은 깜빡 넘어갔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모두 엉터리였다.
허셜이 1834년 천체를 관측한 적이 있다는 기록 하나로 써내려간 소설이었다.
엉터리 기사의 배경은 경쟁. 창간 2주년을 앞둔 신생지 ‘선’은 독자 확보를 위해 왜곡을 저질렀다.
독자들의 열띤 반응으로 6회까지 시리즈 기사가 나갔을 때 판매부수는 1만9,360부로 이전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시간이 흘러 전모가 밝혀졌어도 ‘선’지는 정정기사 대신 ‘허위라는 주장도 일부 있다’는 기사만 실었을 뿐이다.
왜곡은 선정보도 경쟁을 낳고 일부 과학자들은 달에 4억2,000만, 태양계를 통틀어 22조개의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터무니없는 학설을 내놓았다.
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조차 날조기사를 ‘선’지에 실었다.
달 기사 소동은 ‘완전 엉터리 달 기사(Great Moon Hoax)’라는 별칭으로 역사의 모퉁이에 처박히고 말았을까.
글쎄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악의적인 왜곡으로 평생 매도 당한 채 눈감은 사람도 적지않다.
새내기 기자들이 귀가 따갑도록 듣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된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삿거리다’라는 구절도 ‘선’지의 편집국장을 지낸 찰스 다나라는 인물이 지어낸 말이다.
선정보도의 뿌리는 길고도 질기다.
(인터넷한국일보, 2009/08/24)
⑲ 기타 오늘의 역사⑳
1033(고려 덕종 2) 장성 쌓기 시작함
1718 프랑스, 미국 뉴올리언스시 건설
1828 우루과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912 중국동맹회, 국민당으로 개편
1913 예수힝적도 발행.저자는 캐나다 장로교 여선교사 매컬리이다. 예수의 탄생에서 승천까지 생애를 8부분으로 나눔.
1919 이승만, 워싱턴에서 임시정부한국위원회 결성
1921 미국 독일 평화조약 성립
1933 조선 사방사업령 공포
1945 미군 인천에 상륙. 미국 소련 양군의 북의 38도선 분담점 령을 방송
1948 북한, 총선거 실시
1948 한미군사협정 성립
1959 중국-인도 국경분쟁 표면화
1961 브라질에 군부 쿠데타. 쿠와드로스 대통령 사임, 후임에 굴 라르
1965 무장군인 고려대학교에 난입
1969 북한, 통일혁명당 창설을 발표
1972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대구권 지정
1972 경복궁 중앙국립박물관 개관
1972 방글라데시의 유엔 가입, 중국의 첫 거부권 행사로 부결
1975 제5회 비동맹제국 외상회의(30일까지 페루의 리마), 북한 가입
1977 금산 제2위성통신지구국(인도양지구) 완공 개통 : 상주인 구 50인 이상 섬마을에 무선전화시설
1978 중공 베트남 국경서 유혈분쟁
1979 태풍 주디호 강타. 135명 사망 및 실종, 피해액 340억원
1979 먼데일 미국 부통령 중국방문
1980 폴란드, 자유노조 허용
1981 다께이리(竹入), 일본 공명당위장(公明黨委長) 방한
1981 소말리아, 리비아와 단교
1984 방사능물질을 대량 적재한 프랑스 화물선, 벨기에 해상에서 침몰
1985 첫 공인중계사 자격시험 실시
198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전 개관
1988 남북교류특례법안 제정
1989 보이저2호 해왕성 접근
1990 유엔안보리 무력 사용 허용을 결의, 이라크 외국공관 포위
1991 구소련 벨로루시공화국 독립선언
1991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 처음 공개
1991 우크라이나 등 8개 공화국 소연방으로부터 독립선언
1992 북한, 당기관지 로동신문 통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 강조
1992 독일 극우세력, 베트남 난민숙소에 방화
1992 통일교주최 세계최대규모의 합동결혼식 열려 131개국 3만625 쌍 참가
1992 노태우 대통령 민자당 총재직 사퇴 김영삼 최고위원이 승계
1992 전 민중당 대표 김낙중씨 등 4명 보안법 위반 구속
1994 파리, 나치통치해방 50주년
1996 영화배우 활동중이던 폭력조직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 사기 및 폭력행위 혐의로 출감 17개월만에 재구속
1997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의 주 이집트 대사 장승길 일행 미 국 동부에 도착함
1997 위성교육방송 첫 전파 발사
1999 '황혼이혼' 소송을 낸 70대 할머니 승소
오늘의 인물
① 경종(景宗 ; 1688 ~ 1724.8.25) : 조선 20대 왕(재위 1720~1724).
본명(諱) 윤(?).
자 휘서(輝瑞).
어머니는 희빈 장씨(禧嬪張氏).
비(妃)는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
1690년(숙종 16) 송시열(宋時烈) 등이 반대하는 가운데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이복동생인 연잉군(延?君 : 뒤의 영조)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고 그는 소론(少論)의 지지를 받았다.
1717년 대리청정(代理聽政)하였으나, 그해 숙종이 몰래 노론의 이이명(李?命)을 불러 세자가 무자다병(無子多病)함을 이유로 그의 즉위 후의 후사는 연잉군으로 정할 것을 부탁한 일이 있어 노 ․소론이 크게 대립하였다.
1721년 연잉군을 세제(世弟)로 책봉한 뒤 다시 노론이 그의 병약함을 이유로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대리청정의 부당함을 극간(極諫)하는 소론 이광좌(李光佐)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친정(親政)하였는데, 김일경(金一鏡)의 탄핵으로 세제 대리청정의 발설자인 김창집(金昌集) ․이이명 ․조태채(趙泰采) ․이건명(李健命) 등의 노론 4대신을 유배보냈다.
1722년 노론이 시역(弑逆)하고 이이명을 추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이 있자, 유배 중인 노론 4대신을 사사(賜死)한 뒤 노론을 모두 숙청하였다.
이것이 신임사화(辛壬士禍)이다.
이후 소론의 과격파인 김일경 중심의 정권은 노론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벌여서 그의 재위 4년 동안은 당쟁(黨爭)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능은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이다.
② 김옥길(金玉吉 ; 1921.3.10 - 1990.8.25) : <치마입은 남자><여장부><고집쟁이><무서운 사람> 등으로 사람들에게 불리우면서 이화여대 총장을 18년간이나 지냈으며 여성으로는 세번째로 입각해서 문교부장관을 지냈던 김옥길 선생 !
평안남도 맹산(孟山)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의 기숙사 사감으로 있다가 미국에 유학, 웨슬리언대학교와 템플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52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되고, 1961~1979년 임기 6년의 총장직을 3번 연임하였다.
1979년 12월부터 1980년 5․17사태까지 문교부장관으로 재직, 학원자율화와 교복자율화를 추진하였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충북 괴산(槐山)에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1986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재단이사장 겸 명예총장으로 재직하였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활달한 성품과 능변으로 교육계․그리스도교계 등에서 폭넓은 사회활동을 하였다.
1976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에서 수여하는 유니언메달을 받았고, 1982년에는 인촌문화상을 받았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③ 박두성(朴斗星 ; 1888.3.16 - 1963.8.25) : ⇨3월 16일.
한국의 교육자.
1906년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를 졸업하고, 어의동(於義洞)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1913년 제생원 맹아부(濟生院盲啞部:서울맹아학교 전신) 교사에 취임, 맹인교육에 나섰다.
1920년 한글 점자연구에 착수하여 1926년 완성했고, 1935년 부면협의원(府面協議員) 선거에서 한글 점자투표(點字投票)를 인정받았으며, 8 ․15광복 후 제헌국회에서도 승인을 얻었다.
1931년 성경의 점자원판 제작에 착수하고 1941년 《신약성서》를 완성, 1935년 제생원 교사를 정년퇴직하고, 1936년 인천 영화학교(永化學校) 교장에 취임하여 1939년 사임했다.
6 ․25전쟁으로 신약의 점자 아연판이 소실되자 다시 제작에 착수, 1957년 성경 전서의 점역(點譯)을 완성했다.
또한, 기독교 신자로서 서울 정동교회와 인천 내리교회(內里敎會)에 교적을 두고 맹인들에게 전도했다.
점역 도서만도 76종에 달하며, 생전의 공적으로 맹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④ 윌리암 허셜(Sir William (Frederick) Herschel ; 1738.11.5 - 1822.8.25) : ⇨11월 5일.
영국 천문학자 프레드릭 윌리엄 허셜이 84세로 사망했다.
허셜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은하계 구조론의 첫 걸음을 내딛은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만든 당시 최대의 반사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해 2,500개의 성운.성단 목록을 작성하고 태양계의 운동을 입증했다.
항성이 천구면에 고정돼 있다고 본 당대의 우주관을 수정해 허셜이 제창한 우주모형은 그의 이름을 따 허셜의 우주라고 불린다. 이 우주는 지름이 7,400광년, 두께가 1,350광년으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규모에 견주면 매우 작은 것이었다.
허셜은 또 1781년 황도(黃道)를 관찰하다가 태양계의 일곱번째 행성 천왕성을 발견해 태양계의 크기를 그 때까지 알고있던 것보다 갑절로 넓혔다.
공전 주기가 84.02년인 천왕성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근일점에서 17억 3000만 km, 원일점에서 29억 9000만 km다.
미란다, 아리엘, 움브리엘, 티타니아, 오베론 등 10여 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다. 천왕성이라는 한자어 이름은 유럽어 우라누스(또는 우라노스)의 번역어다.
우라누스는 그리스촵로마 신화에서 하늘의 신 이름이다. 그의 아내인 땅의 신은 가이아라고 불린다.
허셜은 독일 하노버 출신이다.
슐레지엔의 영유를 둘러싸고 유럽 국가들이 둘로 나뉘어 싸운 7년전쟁(1756~1763)에 종군하다가 탈주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런던 교외의 한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며 천문학 서적을 탐독했고, 마침내 당대의 일급 천문학자가 되었다.
지금의 영국 왕실인 윈저왕조도 본디 하노버 출신이다.
18세기 초 하노버왕조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왕가는 영국이 독일과 제1차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던 1917년(조지5세 치하) 독일에 대한 국민감정을 고려해 윈저가로 이름을 바꿨다(고종석,2004).
⇨3월 13일.
⑤ 루이스 드 생 쥐스트(Louis(-Antoine-Leon) de Saint-Just ; 1767.8.25 - 1794.7.28) : 프랑스의 여류 정치가. 프랑스 혁명때의 자코뱅당의 국민공회의원.
독재,공포 정치수행에 뛰어났으나 반대파의 반동으로 처형당했다.
생 쥐스트는 프랑스 혁명 이데올로기를 신봉한 프랑스의 혁명가이다.
혁명적 격변이 한창이던 당시 그는 프랑스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자 했지만 나이가 너무 젊다는 이유로 번번이 실패했다.
25세가 된 직후인 1792년 9월 국민공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재정․경제․군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방식 덕분에 곧 로베스피에르와 더불어 극좌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국민공회에서의 그의 지위는 점점 높아져 1793년 5월초 공안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력 제2년(1793~94)에 국민공회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혁명적인 조치로 평가되는 방토즈 법령을 통과시켰다.
1794년 6월 26일에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지금의 벨기에)의 플뢰뤼스에서 프랑스군을 이끌어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했다.
권력을 잡기는 했지만 공포정치를 주도하며 로베스피에르 못지않게 포악해지면서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이 시작된 테르미도르에 체포되어, 그 이튿날 단두대의 이슬(1794.7.27)로 사라졌다.
⑥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 1844.10.15 - 1900.8.25) : 독일의 철학자.
시인.
실존철학의 선구자.
키에르케고르와 더불어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주장은 20세기 유럽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비극의 탄생><선악의 피안><도덕의 계보학><권력에의 의지> 등.
라이프찌히 근처에서 태어났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니체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나움부르크의 할머니 집으로 이사했다.
음악과 시를 좋아했고 이미 14세 때에 「나의 인생에서」라는 자전적 소품을 썼을만큼 조숙했던 니체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벌써 권위주의적인 모든것에 저항적 태도를 보였고, 학교 수업 과정을 우습게 보고 그리스 철학 서적을 주로 탐독했다.
20세에 본 대학에 입학하여 고전 문헌학을 전공하게 되지만, 처음에는 공부보다는 술과 여자 등 쾌락을 좇는 생활을 했다.
그러나 곧 그런 생활에 혐오감을 느끼고 다시금 엄숙하고 고독한 생활로 돌아갔다. 본 대학 문헌학 교수였던 유명한 처칠 교수가 라이프찌히 대학으로 옮겨 가자 니체 역시 친구 로데오와 함께 라이프찌히 대학으로 옮겨 갔다.
이 라이프찌히 대학 시절에 그는 헌 책방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의<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을 사 읽고서 충격적인 감동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그가 평소 그 음악을 좋아해 왔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후기 낭만주의의 두 대표인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와의 만남은 청년 니체에게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
1879년 그는 25세의 나이로 바젤 대학 문헌학 조교수로 임명되었고, 이 바젤 대학 재임시에 그는 바그너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가 그에게 환멸을 느끼고 그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1879년 그의 나이 35세에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자 그는 10년간 강의해 왔던 바젤 대학 교수직을 사임했고, 그 이후 그가 정신병 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약 10년간을 이탈리아 해안가나 스위스 산중의 요양지를 전전하면서 병과 고독과 싸우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중에서 82년에는 이탈리아에서 루 살로메와 사귀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결혼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5개월 만에 헤어졌다.
병과 고독과 싸우는 이런 생활 중에서도, 점점 더 원숙해져 가는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는 그치지 않았고, 그리하여 진행성 뇌마비의 발병에 의해 정신 착란에 빠질 때까지의 그 짧은 몇 년 동안 그는 자신의 무르익은 사상들을 수많은 저술들을 통해 쉴새없이 토해 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1889년 1월 튀린에서 그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켰고, 그로부터 11년 후인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 정신 병원애서 결국 그는 가장 사랑했고 가장 친했던 누이 엘리자베드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⑦ 제임스 와트(James Watt ; 1736.6.19 - 1819.8.25) : 영국의 기계 기술자. 발명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학교조차 변변히 다니지 못하였으나 기계를 만지고 그 구조를 연구하는 데 깊은 흥미를 가져, 1763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끓는 물의 힘으로 피스톤을 움직이는 증기 기관을 발명하여 영국의 산업 혁명의 발판을 만들었고, 아어 오프셋 인쇄기도 발명하여 인쇄술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6월 19일.
⑧ 번스타인(Bernstein, Leonard ; 1918.8.25 ~ 1990.10.14) : 미국의 지휘자․작곡가․피아니스트.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출생하였다.
⑨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 1852.12.15 ~ 1908.8.25) : ⇨12월 15일.
프랑스의 물리학자.
파리 출생.
아버지 알렉산드르(1820~1891)와 할아버지 앙투안(1788~1878)도 물리학자이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공부하고, 토목국 기사장을 거쳐 1895년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가 되었다.
초기에는 편광(偏光) 현상과 인광(燐光), 결정(結晶)에 의한 빛의 흡수 등을 연구하였으며, 지구자기(地球磁氣) 연구도 하였다.
1895년 뢴트겐의 X선 발견을 프랑스에 소개한 푸앵카레와 토론을 벌인 것을 계기로, 형광(螢光)과 방사선(복사선)의 관계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자연적으로 형광작용을 가지는 물질들을 조사한 결과 우라늄염(鹽)에서 모종의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1896).
이것이 베크렐선이며, 이 방사선이 기체를 이온화한다는 것, X선과는 달리 전기장이나 자기장에 의해 굽어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업적으로 1903년 퀴리 부부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아들 장(1878-1953)도 물리학자이다.
⑩ 데이비드 흄(David Hume ; 1711 - 1776.8.25) : ‘현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한 사람을 지칭한 문구다.
주인공은 데이비드 흄. ‘
계몽주의 철학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였다.
‘화폐수량설과 정화 유출입 분석에 있어 20세기 중반까지 흄의 이론이 최고였다’는 슘페터의 평가도 있다.
흄의 경제학적 연구가 가려진 이유는 철학에 남긴 흔적이 크기 때문. 영국 공영방송 BBC가 ‘사상 최고의 철학자’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마르크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대표 저술은 ‘인성론’. 26세에 펴낸 대작이다.
1711년 에딘버러의 소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조숙한 천재 스타일. 대학을 졸업한 15세에 기존 학문에 ‘참을 수 없는 반감을 느끼고’ 18세부터 집필에 들어간 작품이 영어로 쓰여진 철학서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인성론이다.
칸트를 ‘오랜 독단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던 인성론은 정작 흄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교회에서 금서로 꼽을 만큼 무신론적 내용을 담아 교수직에 번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귀족의 개인교사, 군 장성의 비서, 도서관 사서 등을 전전하면서도 틈틈이 책을 쓰던 그는 43세부터 8년간 집필한 ‘영국사(전6권)’가 히트한 덕에 돈과 명예를 얻었다.
경제 분야에서는 중상주의이론을 공박해 고전학파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현대 경제학의 통화론과 신제도학파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국부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미스가 막 탈고된 국부론 초고를 들고 달려간 곳도 흄의 집이다.
국부론이 나온 지 5개월 후인 1776년 8월25일 흄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사망(65세)했을 때 스미스는 이런 추도사를 읊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한 지혜와 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
(권홍우 편집위원.서경.2007)
⑪ 패러데이(Michael Feraday ; 1791.9.22 - 1867.8.25) : 영국의 화학자인 동시에 물리학자.
⇨9월 22일.
⑫ 헨리 모건(Henry Morgan) : 카리브해를 주름잡던 해적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해적으로도 손꼽힌다.
일개 해적에서 영국령 자메이카의 부총독에 올랐으니까.
재테크를 잘한 덕분이다.
희대의 해적, 모건의 어린 시절은 불분명하다.
1635년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설과 계약노동자로 바베이도스로 이주했다는 설이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그가 스스로 말한 대로 ‘공부보다는 싸움이 좋아 일찌감치 학업을 접었다’는 점뿐이다.
모건이 자메이카에 들어온 1658년은 영국이 스페인을 몰아내고 점령한 직후. 전시 분위기 속에서 1662년 시민군의 장교로 임명되고 사략(적국에 대한 해적행위) 권한을 얻은 그는 소함대를 이끌며 스페인의 식민도시들을 약탈해 악명을 쌓았다.
모건의 특징은 공격 대상 선정과 투자. 스페인의 보물선 대신 주로 도시를 털었다.
해상 약탈은 전리품의 절반을 영국 국왕에 바쳐야 했던 반면 육지 공격은 규정이 없어 수익이 컸기 때문이다.
약탈한 보물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다른 해적들과 달리 그는 농장을 구입해 재산을 불렸다.
최대의 성과는 1671년 초 파나마 약탈. 18세기 이전까지 미주대륙 최대의 전투였던 파나마 약탈을 당한 스페인이 새로 건설한 뉴파나마가 오늘날의 파나마시티다.
잔혹행위 혐의로 본국에 송환됐을 때도 그는 처벌은 고사하고 사면에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4년 뒤에는 자메이카의 부총독 자리까지 꿰찼다.
부동산 투자로 쌓아올린 재산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1688년 8월25일 53세로 사망할 때까지 대부호로 군림했던 모건은 아직도 회자되며 부를 낳고 있다.
해적 소설로는 최초의 히트작인 ‘미국의 해적들(1684년)’에서 세계적인 흥행작 ‘카리브해의 해적’에 이르기까지 모건은 주인공이거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권홍우 편집위원.2008.서경)
⑬ 기타 오늘의 인물 ⑭⑮ ⑯⑰⑱⑲⑳
1270 카페 왕조에서 가장 인기있던 프랑스의 왕(1226-1270 재 위) 루이 9세 사망
1282 캔틸루프 사망. 개혁주의자며,교육자이자,영국국교 고위성직 자 및 주교 그리고 배런전쟁에서 중요한 중재자였으며,성공 회 사법권의 수호자.
1530-1584 차르 체제하의 러시아황제 이반 4세 출생
1551 샤펠러 사망.남독일 종교개혁자.루이시뵐과 생 갈에 있는 생 망에서 설교자가 되었다.
1556 요리스 사망.네덜란드의 재세례파.그는 종교개혁을 열렬히 받 아들였으며,찬송가 책자들들을 보급함.
1586(조선 선조 19) 지천 최명길 태어남
1725 발흐 출생.요한 게오르크 발흐의 장남.그는 그의 고향에서 대 학교를 졸업하고,그곳에서 주석학의 사강사가 되었다.정통신 학에 관심을 기울임.
1741 바르트 출생.18세기의 통속적인 합리주의의 풍자가.1766년 뛰 어난 성서문헌학 교수가 되었다.
1744 헤르더 출생.18세기의 독일의 비평가,철학자,루터교회 신학 자.훌륭한 저술들을 통해 독일의 사상사에 커다란 영향미침.
1752 버튼 출생.회중교회 목사.그는 60명의 젊은이들을 목사로 양 성해냈다.
1759 기네 출생.프랑스 동양학자.1784년에 기네는 중국주재 프랑스 변리공사와 광동지방의 영사로 임명되었다.중국어사전 편집 인으로 지명됨.
1791 분젠 출생.독일의 학자요 외교가.마르부르크와 괴팅겐에서 신 학과 문헌학을 연구하였다.
1799 랭 출생.스코틀랜드장로교 목사.시드니에서 스코틀랜드교회를 설립함.
1800 하제 출생.독일의 루터교 신학자.그는 다섯차례에 걸쳐 부총 장을 역임함.
1823 블런트 출생.영국 국교회 학자.그는 목회를 위해서 사업을 포 기하였으며,1855년에 사제직에 서품되었다.그의 저술로는 신학및 성서 개요들이 있다.
1838 볼프 출생.덴마크의 성직자.1861년 셈어 분야에서 최우수 논 문상을 수상하였다.
1841 스위스의 외과의사 코허 출생 - 1909년 갑상선 연구로 노 벨상 수상
1849 프티니콜라 출생.프랑스 출신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순교 자.한국성은 박.1856,3,27 내한.새남터에서 참수당함.
1852 뉴먼 출생.침례교인.남침례교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음.신학에 있어서 뉴먼은 온건파 보수주의 학자이다.
1854 틸레트 출생.남감리교 목사.신학에 있어서 자유적이며 진보적 인 보수주의자.
1865 힌슬레이 출생.제2차 세계대전 중에 파시스트에 강력히 반대 하였던 추기경이자 웨스트민스터의 제5대 대주교였다.
1884 프랑스 제4공화국 초대 대통령 오리올 출생
1908 방사능 발견한 프랑스 물리학자 헨리 베크렐 사망
1912-1994 독일의 정치가 에리히 호네커 출생
1913 미국 풍자만화가 월트 켈리 출생
1917 영화 `전쟁화 평화' 주연 배우 멜 퍼러 출생
1918-1990 미국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태어남
1930 007시리즈 주연 남우 숀 코널리 출생
1930 홍종만 출생.장로교 목사.교육가,선교사.1976,9,20일 충현교 회 재정후원과 총회파송 선교사로 홍콩에 부임.
1894-1956 '킨제이 보고서'를 낸 알프레드 킨제이 사망
1956 미국의 발명가 조지 워싱턴 피어스 사망
1958 뇌염으로 전국 국민학교에 휴교령. 638명 사망
1967 미국 나치지도자 조지 링컨 로켈 버지니아주서 암살당함
1968 독립운동과 농촌운동에 진력했던 배만수 목사 별세
1992 전 민중당 대표 김낙중씨 등 4명 보안법 위반 구속
2001 황용주 전 MBC 사장 타계
2001 단사천 한국제지 회장 별세
오늘의 샘터
① 니체의 말 : "정말 남자다운 남자는 위험과 놀이, 두 가지를 좋아한다.
그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장난감 중에서 여자가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한번도 내 아이를 낳게 하고 싶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영원' 말고는.
오 영원이여!
너를 사랑한다.
영원이여!"
② 생 쥐스트의 말 : "혁명정부 그 자체가 혁명적으로 구성되지
않는 한, 혁명법이 시행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③ 경종실록(景宗實錄) : 경종 재위기간인 1720년 6월부터 1724년 8월까지의 역사를 수록한 책.
활자본. 15권 7책.
영조 초인 1726~1732년에 이루어졌다.
일반적 내용은 다른 국왕대의 실록과 같으나, 경종대의 노론을 국왕에 대한 역(逆)으로 규정한 소론측의 입장을 반영하였다는 데 특징이 있다.
경종대에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고조된 가운데 국왕의 동생인 연잉군(延?君:후의 영조)에게 대리청정시킬 것을 주장하던 노론을 크게 숙청한 사건(신임사화)이 있었는데, 그 명분이 유지되어 이 책에서는 노론의 입장을 비판하고 그 중심인물들을 처형한 것을 정당화하였다.
그러한 편찬 원칙에 대해서 작성 당시부터 노론측의 비판이 계속되어, 결국 노론이 정권을 잡게 된 후에 《경종수정실록》을 다시 편찬하였다.
의 졸저<원저 편저자 (1973년도 초판)> 평택 소통 김평탁입니다.
1973년 초판 이래 조선일보를 비롯 각 신문들과 각방송국 특히 ytn 을 비롯하여 컴퓨터 인터넷.......오늘까지도 각 방송들과 신문 인터넷의 덕택으로 원저자의 보람을 온 국민들과 함께 만끽하며 감사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소생은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개인<일기>를 60여년 동안 지금까지 쓰고 보존해 오면서,
오늘의 국민 소통 운동과 우리 한민족 한가족 소통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으며 다행히도 박근혜정부<한민족미래창조과학기술부>의 탄생을 한없는 기쁨과 소원<소망>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국민 여러분 !
그리고
국내외 동포<가족> 여러분 !
어서빨리 동서남북 우리나라 남북 평화 통일을 이루십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
2013년 0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CCCC C-man 평택 소통 김 평 탁 올림
(국민소통운동본부.017-727-3863,(031)692-3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