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부잣집이라고 할수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의 물심양면적 지원하에 컸는데,
종종 그런 복받은 환경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을까 망상할때가 있음.
엄마가 나중에야 말해줬는데,
내가 초딩때 학교에서 수업도 안듣고 친구도 없고(관계에 대한 욕구자체가 없고) 맨날 만화만 그려서
엄청 어릴때일때도 쟤가 일반적으로 직장다니고 회사다니는게 도저히 상상이 안돼서 걱정이 많이 됐고,
저렇게 오타쿠처럼 만화만 그리게 냅둘바에는 차라리 아티스트라고 포장이라도 할수있는게 낫게 느껴지셨는지,
(의외로 자의와 무관하게)
엄마가 시켜서 미술학원에서 예중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진학할때도 엄마가 홍대 한예종 개극혐하고
서울대 이대를 선호했는데
(나 입시할때 국민대는 디자인만 좋고 서양화는 아직 폼이 안 올라왔을때여서 예고출신들이 비선호했음)
그 이유가 홍대 한예종의 "예술외길" 이 느낌을 극혐했기 때문이었음.
항상 범용적인 무언가를 보험처럼 껴두길 원했음.
그리고 부모의 이런 사고관이 나도 모르게 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혀서
내 인생의 가장 큰 뒷배에 문제에 생겼을때
직업적으로 확실한 라이센스를 따서 보험삼고 싶어했던거 같음.
뭔가 부모의 케어와 물심양면적 지원하에 범용적인 능력치를 원래 캐파보다 더 키울수 있었던것 같고,
스스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할수 있었던것 같음.
만약에 우리집이 개넌한 앰생집이었으면 내 인생은 어케됐을까...
나는 예중예고 애들과 성향이 잘맞았어서 안정적이고 즐겁고 두근두근한 유소년기를 보냈지만
내 원래 성향을 고려해봤을때
인문계 애들과 그렇게 이물감 없이 잘 녹아들어갔을것 같지 않고
지금보다도 훨씬 덜 다듬어지고 사회성이 더떨어지는 미성년자 시키에
집단에서 겉돌때 그 대응을 절대 잘했을것 같지않음
그리고 내 유소년기는 아주 어두운 기억으로 박살났겠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도피처로 만화를 줮나 그리고 트위터를 겁나했을것 같음.
환경이 열악할수록 이거저거 시도해볼 기회는 없고 여러 능력치를 두루두루 기를 여유는 없기때문에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캐파인 미술적인 재능과 열정 원툴로 세상을 헤쳐나가려고 했겠지
내 환경이 더 열악했다면 트위터에 맨날 만화나 올리다가 만화가를 하거나 게임원화 쪽으로 빠졌을것 같음.
그리고 트위터하다가 겸디갹같은 사고를 반드시 1회 이상 쳤을것으로 확신한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