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구월산을 가다]
-단군의 정기 간직한 겨레의 땅-
북한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三聖祠)가 분단 반세기만에 남측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지난달 개천절남북공동행사 방북단이 삼성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측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모신 삼성사의 굳게 닫아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김일성외에는 ‘신격화’를 금기시하는 북측이 단군할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신전을 개방, 참배를 허용한 것은 가히 ‘사건’이라는 평이 방문현장에서 나왔다. /편집자주
평양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김일성 주석궁’이던 금수산기념궁전-남포갑문-구월산 삼성사-공산당에 맞선 재령봉기 현장-사리원 등을 8시간여동안 순회하면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아픔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황해도 은율군과 안악군 경계에 있는 구월산은 우리에게 꽤 의미가 있다.
임꺽정의 활동무대였으며, 의적 장길산의 활빈도들이 이곳에 집결했다.
6,25전쟁때 치열한 싸움끝에 목숨을 잃은 유격대원들의 한맺힌 영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또 중요한 역사가 있다.
국조인 단군할아버지가 평양성에 이어 도읍을 옮겨 장기간 다스리고 산신이 되었다는 아사달산(阿斯達山)이 바로 구월산이다.
‘아사’는 우리말로 아홉과 음이 비슷하며 달은 월(月)과 음이 같다.
가깝게는 1916년 음력 8월15일 대종교의 교조인 홍암 나철 선생이 조식법(대종교 특유의 호흡법)으로 스스로 숨을 끊어 자결한 곳이다.
일제는 이후 단군의 정기가 흐르는 이 곳을 폐쇄했다.
이시영, 박은식,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대종교신자로서 단군할아버지를 통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뜻도 있었다.
분단이후 북측의 김일성 우상화 전략속에 삼성사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갔다.
그러나 북측이 1993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단군할아버지를 실존인물로 자리매김하면서 삼성사는 다시 단장됐다.
지난달 2일 개천절을 하루 앞두고 남측 방문단 앞에서 삼성사의 문이 반세기만에 열렸다.
건물 곳곳에서 칠이 묻어나는 것으로 미뤄 남측 방문을 앞두고 성급히 준비했던 것 같다.
어쨌든 삼성전 내부 북쪽벽면에는 왼쪽부터 환인, 단검, 환웅의 순으로 초상화가 걸려 있고 그 아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문화보존지도부 고려미술창작사 미술가들이 수개월동안 솔거의 그림을 토대로 단군할아버지의 초상을 그려낸 것이라고 북측 안내원은 설명했다.
북측이 이렇게 단군할아버지에게 정성을 쏟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동강문명’ 정립을 통해 김일성 주체사상의 역사적 깊이를 심화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군왕검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아직까지 우리민족의 홀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성종실록에는 태종때 삼성사를 폐하여 평양 단군묘에 합쳤더니 황해도 안에 나쁜 병이 번지자 백성들이 단군에게 제사를 올리게 해달라고 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은 삼성사를 지키기 위하여 관원을 파견하고 매달 1, 15일에 분향케 하는 한편 봄과 가을에는 제향을 지내게 했다고 한다.
일제때는 홍암 대종사가 제자들을 데리고 삼성사에 와 당실을 수리하고 동서북 3벽에 떼어서 따로 모셨던 위비(位卑)를 북쪽 한벽에 모셨다.
중앙에 환인을, 그 왼편에 환웅을, 오른편에 단군왕검을 모셨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북측은 단군을 더 중시했기 때문인지 단군을 중앙에 모셨다.
삼성사의 단군초상은 솔거의 초상보다 인자해 보인다는 평이 있다.
단군할아버지를 표현하는 기법이나 주변 장식이 다를지 모르지만 삼성사는 이데올로기로 갈린 남북양측이 한 겨레임을 확인시켜주는 ‘고향’과 같은 존재이다.
고려시대때 구월산은 불교의 중심지였다.
9세기초 신라 애장왕 때 건립된 패엽사 부지가 남아있고, 통일신라 월정대사가 창건한 월정사는 17세기 중엽에 중수돼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황해도 5대산성의 하나인 둘레 5.23km에 이르는 구월산성의 옛터와 고려시대에 청자를 굽던 가마터 등 유서깊은 유적이 많지만 북한은 이를 모두 잊은 듯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의 활동을 선전하는 곳만 강조한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각자 지향하는 가치가 달라 50여년간 떨어져 살면서 남북은 일부 용어가 서로 통하지 않는 지경에 달했다.
이런 마당에 “우리의 근본은 같다”는 사실을 양측이 비로소 삼성사에서 확인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단군대-어천석-사왕봉 등 단군의 ‘발자취’가 남은 곳을 돌아보지 못하고 일정에 쫓겨 구월산을 떠나야 하는 발길이 이내 아쉬웠다. /박영순 기자
2003-11-03 오전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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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정기 간직한 겨레의 땅 /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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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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