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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조선시대 남성의 표상 갓.
이장희 추천 0 조회 64 14.06.03 19: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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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은 언제부터 착용되었을까?

갓은 순수한 우리말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소립素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구려 감신총龕神塚벽화를 통해 모자와 양태의 구별이 뚜렷한 패랭이형의 갓을 착용하고 있는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인접 국가인 중국과 교류를 통하여 수용되고 계속 착용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유교관에 따라 성인남자들이 의관을 정제할 때 착용하는 중요한 품목이 되었으며 이 시대의 심미성도 함께 반영되었고, 흑립이라 불리기도 했다.

흑립은 조선시대 성인남자의 관모를 대표하는 갓의 대표적인 명칭으로 평상시나 외출을 할 때, 심지어는 집에 기거할 때에도 착용하였다. 흑립은 흑색을 기본으로 하여 용도에 따라 색을 달리 하기도 하였다.

붉은 옻칠을 한 주립朱笠은 문신 당상관의 융복에 착용하였고, 흰색 포로 싼 백립白笠은 상복喪服에 착용하는 관모로 국휼國恤에 국민이 사용하여 상喪 중임을 나타냈다. 이러한 갓은 1884년 고종의 의제개혁에 따른 복식제도의 간소화에 따라 기존의 큰 갓이 낮고 좁아지는 변화가 초래된다. 이후 개화기시대에도 계속 착용되다가 서구복식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차츰 사라졌으나, 현재는 관례나 제례, 전통축제마당, 영상매체인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조형미와 정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우리 고유의 전통 관모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헌기록에 나타난 조선시대의 갓

갓의 총칭인 흑립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게 발달하다가 조선시대 중기에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성종실록』을 보면 당시에 유행했던 갓이 승려의 갓과 유사하기 때문에 갓의 모양을 개정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중종실록』에는 높고 좁은 갓이 유행하여 갓 체제를 갑자기 고친다면 폐단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갓의 높이인 대우가 높은 것만 금지하였고, 갓의 규정품을 만들어 정식화하여 위배한 자가 있으면 갓 만드는 사람까지 아울러 죄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효종실록』에는 모자가 너무 높고 넓어 문을 드나들 때 방해가 될 정도여서 갓의 양태가 너무 넓은 것을 금지시키도록 하였을 정도로 조선시대 갓은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거론이 될 정도의 내용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갓을 뒤쳐 쓰지도 말고 끈을 움켜잡아 매지도 말고, 귀에 내려오게 매지도 말라’하여 갓의 착용법에 관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갓은 조선시대 중요한 복식의 일부로 성인남성의 신분을 구별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풍속화를 통해 본 조선시대 갓 문화

조선시대에는 갓의 높이와 크기가 여러 번 변화를 거듭하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 표상으로서 의관정제를 중시하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과도 연관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모자가 아무리 중요해도 높은 사람 앞에 나설 때는 반드시 모자를 벗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갓을 벗기는커녕 도리어 더 단단히 쓰고 나아가는 것을 예절로 여겼고 임금 앞에서도 갓을 벗지 않고 갓을 쓴 채 엎드려 절하였다. 그만큼 조선시대 사람들은 갓을 예의의 표상으로 삼았고 갓을 사랑하고 숭상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갓집. 갓통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대표적인 관모(冠帽)인 갓을 넣어 보관하던 통이다. 조선시대에는 의관(衣冠)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므로 사용하지 않을 때는 갓통에 넣어 보관하였다. 

백립(白笠). 백립은 상중(喪中)에 쓰던 흰 갓이다. 백립이라는 이름은 갓을 싸는 싸개의 색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흑립을 만드는 방법과 같이 가늘게 쪼갠 죽사로 갓을 만든 후 그 위에 베를 입혀서 만든다. 이러한 조선시대 사대부의 표상은 의관정제를 중시하는 풍속과 예를 중시하는 그 시대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에서 갓을 착용하는 인물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정조시대의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선비가 착용한 갓의 선은 심미적이고 상징적인 용도로 양태는 가볍고 투명한 느낌을 주면서도 대우와 직선적인 선이 조화를 이루어 내는 정제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갓은 도포와 함께 선비 기질의 정신적 면모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의관이며, 조선시대 예를 중시했던 선비에게 있어서 갓은 쓰개의 단순한 용도를 넘어 상징적 과시였을 것이다.

반면 술에 취해 갓을 바르게 쓰지 못한 인물은 양반의 신분임에도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것임을 김홍도는 풍속화에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갓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모를 나타내며 한국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관모였다.


 

 

 

 

 

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교의 영향으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머리에 쓰는 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다. 특히 여러 관 중 흑립은 우리나라 고유의 갓인 동시에 양반부터 중인계층까지 착용하였던 가장 보편적인 갓이기도 하였다. 갓을 쓰는 것은 다른 관(방립, 팽량자, 초립 등)처럼 햇볕이나 비를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용도가 아닌 관례를 통해 사회적인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낼 만큼 우리나라 정신문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신분계층의 구별이 확실했던 조선시대에 갓은 성인남성의 자존심이었으며, 예의를 갖춘 중요한 복식인 정장의 일부였다. ‘갓 쓰고 망신당한다.’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이는 한껏 점잔을 빼고 있는데 뜻하지 아니한 망신을 당하여 더 무참하게 되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속담은 갓을 사랑하고 갓의 위엄을 아는 국민만이 그 묘미를 절실히 맛 볼 수 있는 속담이 아닌가 싶다.


글·김은정 전남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사진·문화재청, 국립민속박물관, 간송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패랭이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흑립과 백립

 

 

 

국립민속박물관소장. 초립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소장. 조바위.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볼끼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소장. 남바위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풍차

 

출처 : 부여 생활사 박물관

 

 

 

 

갓장인

 

갓을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갓은 햇볕이나 비를 가리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한국 전통의 관모이다.

기본적으로는 방립형[方笠形:대우(모자집)와 양태(입첨:갓의 테) 두 부분의 구별이 없이 모정(帽頂)에서 입첨이 밋밋하게 내려온, 원시적인 형태이다. 삿갓, 방갓 등이 이에 속한다],

평량자형[平凉子形 : 형태상 대우와 양태의 구분이 분명하다. 초립(草笠), 흑립(黑笠), 백립(白笠), 전립(戰笠) 등이 이에 속한다]의 2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그 중에서 흑립(黑笠)은 갓의 발달과정에서 볼 때 마지막에 정립된 입제(笠制)로서, 조선시대 500년을 이어오는 대표적 관모이다. 따라서 갓이란 광의로는 방립형, 평량자형에 해당하는 모든 종류의 것을 말하나, 협의로는 흑립을 지칭하는 것으로, 후세의 '갓'이란 흑립을 말한다.

 

갓의 재료인 말총은 제주가, 갈대는 낙동강, 한강, 금강, 재령강 유역이 주산지였고, 갓의 명산지는 통영(統營)이었다. 지금의 서울 중구 입정동(笠井洞)은 조선시대 서울 장안의 갓방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라고 하며, 그 동네에 공동우물이 있었으므로 '갓우물골(갓방이 있고, 우물이 있는 동네)', 즉 입정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갓, 갓집 (黑笠)

 

국적/시대 : 한국(韓國) 광복이후(光復以後)

재질 : 피모(皮毛) 말총(말총)

크기 : 지름 : 28 cm / 높이 : 11.5 cm

용도기능 : 의(衣) 관모(冠帽) 입(笠) 흑립(黑笠) 의(衣) 관/복함(冠/服函) 관/복함(冠/服函) 갓집(갓집)

소장기관 : 학교(學校) / 조선대(조선대)

 

 

 

 

 

기품과 절조의 미학 '갓'

 

한국국학진흥원 박창영 초청 특별전

 

 

 

▲ 진사립(眞絲笠)은 최상품에 해당하는 갓이다. 이 진사립은 대나무와 말총으로 만든 대우와 양태에 촉사(蜀絲, 명주실)를 덧대어 일일이 한올 한올 등사(?絲)하여 붙이고 먹칠을 한 후 옻칠로 마무리를 하여 제작 되었다. 또한 정꽃을 대우 앞부분에 붙여 화사함을 더했고, 갓끈인 영(瓔)은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평생도'의 '판서행차도'에서 보이는 것을 재현하였다.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수집과 보존을 통하여 한국학 연구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취지에서 중요무형문화제 제4호 입자장 박창영 선생을 초청하여 '기품과 절조의 미학 ― 갓'이란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

 

오는 24일부터 경북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박창영 선생의 작품과 국학진흥원 소장품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상징인 갓의 세계를 조명하게 된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계속된다.

 

 

'트집을 잡는다'-양태의 완만한 곡선과 화사함

 

 

 

▲ 박쥐 문양 갓(??紋笠)은 양태가 크고 총모자를 대올만 사용하여 만든 죽사립이다. 대우의 제작도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며, 부분부분에 흠집 하나 없는 최고의 작품이다. 이 갓은 보통 평민들은 사용할 수 없고 부호나 귀족, 사대부들이 사치로 사용하였다.

 

갓은 조선시대 남자의 관모(冠帽)를 대표하는 장식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사전적인 뜻풀이 일뿐 갓에 담긴 문화사적 맥락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한다’는 말에서도 보듯이, 갓은 예로부터 선비의 인격이 배어나는 단정한 매무새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갓은 독특한 형태적인 특징과 아름다움을 지닌 전통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것이 잘 드러나 있는 대표적인 요소는 갓의 차양에 해당하는 양태의 완만한 곡선과 화사함이다. 흔히 ‘트집을 잡는다’고 불리는 양태의 제작 과정은 인두로 미려한 곡선을 잡아주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그 화사함은 갓의 종류에 따라 머리카락보다도 가늘게 세공된 대올[竹絲] 또는 촉사(蜀絲)를 한올한올 붙이는 섬세한 제작 공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양태의 부드러운 곡면은 곡선미를 추구하는 우리 고유의 조형적 특징을 그대로 담아낼 뿐만 아니라 반투명의 검은 빛 광택에서 느껴지는 격조 높은 화사함은 일상복인 도포의 풍성함과 대비를 이루면서 선비의 기품과 절조를 오롯이 드러내준다.

 

특히 섬세하게 만들어진 갓의 양태 위에 내려앉는 햇살과 반투명으로 걸러진 그 햇살이 연출하는 얼굴 위의 은은한 그림자는 열림과 닫힘의 절묘한 조합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미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백미이기도 하다.

 

 

'진사립', '죽사립', '전립'에서 17-19세기 다양한 전통 갓까지

 

 

 

▲ 전립(氈笠)은 조선시대에 무관이 착용하던 갓으로, 전립(戰笠)이라고도 부른다. 전립의 기원은 고려시대로까지 올라가는데, 본격적으로 착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선조 때 들어와서이다. 보통 모직으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조선후기로 오면 대나무로도 만들었다. 이번에 전시된 전립은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철종의 어진(御眞)에 나오는 것을 재현한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박창영 선생의 작품을 주로 하고 여기에 국학진흥원 소장품을 곁들이는 형식으로 개최된다. 박창영 선생의 작품은 모두 18점으로 점으로 여기에는 후계자인 아들 박형박씨의 작품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전시된 갓의 종류는 최상품인 진사립(眞絲笠)에서부터 음양사립(陰陽絲笠), 죽사립(竹絲笠), 포립(布笠), 백립(白笠), 전립(戰笠) 등으로 다양하며, 다복의 상징인 박쥐 문양 넣은 박쥐문양갓 과 백로를 옥으로 조각한 장식을 단 옥로립玉鷺笠 등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국학진흥원 소장품은 모두 4점으로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다양한 전통 갓의 세계를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회에서는 갓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각 단계의 소재들을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또 갓일에 사용되는 도구들도 함께 전시함으로써 갓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번 전시회는 이처럼 갓에 모든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갓 특별전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으로 넘어오면서 유행하던 갓이다.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대우(모자 부분)와 넓은 양태가 특징인 19세기 초기 갓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박창영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입자장(笠子匠)이다. 갓을 만드는 일은 보통 총모자장(總帽子匠)과 양태장(凉太匠), 입자장으로 크게 나뉜다. 총모자장은 말꼬리털이나 목덜미털을 사용해 갓의 대우(모자 부분)을 만드는 것을 가리키고, 양태장은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잘게 쪼개 만든 대올을 둥글게 얽어 양태(차양 부분)를 만드는 일이다.

 

입자장은 이렇게 만들어진 대우와 양태를 결합하여 기본 형태를 갖추고, 거기에 여러 재료를 첨가해서 다양한 종류의 갓을 만든 뒤 옻칠을 하여 완성시키는 작업이다. 즉 입자장은 갓일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박창영(64) 선생은 옛날부터 통영, 제주와 함께 갓 제작지로 유명했던 경북 예천출신으로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가업을 이어받아 갓일을 시작하였다. 박창영 선생 집안은 증조 때부터 갓일에 종사한 역사가 깊은 집안이다. 현재 선생의 두 아들까지 갓일에 뛰어듦으로써 5대째 갓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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