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낙마 사고로 시력 잃은 내과의사 서연주 씨
- “한쪽 눈으로 보는 새로운 세상의 반가움 담아… ‘씨 유 어게인’!”
삶은 예측 불가능한 여정이라 했던가. 하지만 젊은 날 예기치 못한 큰 사고를 겪는다면 누구나 크게 상심할 것이다. 내과 진료전문의 서연주 씨는 2022년 11월, 낙마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멈춰버린 일상과 좁아진 시야…. 하지만 그는 환자에게서 배운 대로 꿋꿋이 아픔을 삼켰고, 스스로 ‘한쪽 눈이 감긴 윙크의사 서연주’라 말하며 세상을 마주했다. 지난해에는 에세이 ‘씨 유 어게인’을 통해 장애를 수용하고 삶의 본질을 알아차린 과정을 담담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사고 후 여덟 번째 수술을 앞둔 그를 만났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A. 안녕하세요?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응급진료전문의, 그리고 청라 우리베스트내과의원 내시경 검진의로 일하는 내과 전문의 서연주입니다. 저는 의사로서의 본업과 함께 강연, 인터뷰를 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운동과 독서, 사람들과의 만남도 빠트리지 않으려 하고요. 최근에는 ‘윙크루’라는 러닝 크루를 만들어 사람들과 5km씩 함께 달리는데, 달리기만큼 전신 체력 단련에 좋은 운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아파 일상을 멈춰야 하는 경험을 하지 않도록 삶을 잘 정돈하려 해요. ‘평온, 정돈, 돌봄’처럼 ‘이달의 키워드’를 세 가지씩 정해 지키고 있어요.
Q. 많은 사람들이 ‘윙크의사 서연주’라고 부르더군요.
A. 낙마 사고 직후 안구 운동 신경이 마비되고 부기가 심해 한쪽 눈꺼풀이 떠지질 않았어요. 친구가 보더니 “한쪽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꼭 윙크를 하는 것 같아”라면서 ‘윙크의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어요. 신기하게도 윙크의사로 불리니 되레 자주 웃게 되더라고요. 심각한 순간 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었고요. 비록 시력을 되돌릴 순 없지만, 어느 순간 기적처럼 눈이 짠 하고 떠졌어요. 진료를 봐 주신 성형외과 교수님도 “이렇게 빨리 회복한 환자는 평생 처음 본다”고 말씀하셨어요. 윙크의사만큼이나 친숙한 수식어가 ‘연주당’입니다. 저는 사고 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왔는데요, ‘훗날 언제든 편히 어울릴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자’는 뜻으로 인연 연, 술 주, 집 당의 한자를 조합해 채널명을 만들었어요.
Q. 낙마 사고로 의사에서 환자가 되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사고는 2022년 11월 6일 일요일 오전에 발생했어요. 토요일 저녁 세미나를 참석한 뒤 강원도로 가서 외승(승마장 바깥에서 말을 타는 프로그램)을 하던 중 사고가 났죠. 말에서 떨어지고 5m 정도 끌려갔는데, 의식을 잃어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온몸이 피투성이였는데, 헬멧과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으나 상태가 매우 심각해 연고지와 인접한 병원, 그러니까 제가 근무하던 곳으로 이송됐어요. 의사로서 병원 문을 나선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 환자가 돼서 온 것이죠.
Q. 부상이 매우 심각했다고 들었어요.
A.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강한 충격으로 얼굴 뼈 아홉 군데 이상이 부러져 있었어요. 낙마 당시의 큰 충격으로 왼쪽 눈이 뭉개지고 호흡을 관장하는 뇌의 바로 앞까지 밀려난 상태였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뒤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실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안과 교수님께 “안구 이식이 가능한가요?” 하고 여쭸는데, 진료실에 탄식이 흐르더라고요. 교수님께서는 망막이 찢어지는 등 심하게 손상되어 이식도, 시력을 살리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 미련이 사라졌어요. 한쪽 눈의 실명을 받아들이고, 남은 한쪽 눈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흙 위에서 다쳤기 때문에 감염되거나 염증이 심해질 경우, 남은 한쪽 눈도 적출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 후, 갑자기 다친 눈이 혼탁해졌어요. 감염 징후일 수 있어 급히 응급 수술을 받았어요.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1년 6개월 동안 일곱 번이나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는데요, 다행히 왼쪽 눈은 안구가 남아 있어 봉합 수술로 모양을 살릴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싫었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서연주 씨는 인터뷰 이후인 2월 말, 여덟 번째 수술을 받았다.)
Q. 삶의 큰 변화를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겠습니다.
A. 그렇지요. 한쪽 시력을 잃고 좁아진 시야에 적응해야 했으니까요. 거울을 통해 매일 보게 되는 흐려진 눈동자, 잘 떠지지 않는 한쪽 눈꺼풀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마주하니 온갖 어려움도 몰아닥치더군요. 운전 중 접촉 사고가 나기도 하고, 물을 흘리기도 하고, 배드민턴을 하던 중에 옆에 있던 강아지를 친 일도 있었어요. 많이 좌절했어요. ‘이런 내가 혹시 남에게 피해가 되진 않을까’, ‘장애로 인해 거절당하는 상황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어요. 몸이 불편한 사람도 배려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배려와 존중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할까요.
A. 우선 장애인 등록 과정이 매우 힘들었어요. 절차가 복잡하고 정보도 부족하거든요. 신체 기능을 상실한다는 건 누구한테나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장애 등록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아예 등록을 포기하는 분도 많더라고요. 또한 ‘심하다’, ‘심하지 않다’라는 주관적 표현으로 장애를 구분하는 상황이 가슴 아팠어요. 외관상 드러나지 않는 영역이 외관상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훨씬 더 다양하기 때문이죠. 가령 어떤 사람은 시야가 어둡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흐리고, 좁아요. 어떤 사람은 작은 글씨가 안 보이고요. 상태에 따라 필요한 도움이 각기 다른데,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와 ‘다름’에 대한 이해 폭이 좁은 것 같아요. 모든 신체 기능이 온전한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고 할까요. 중도장애는 누구한테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노화로 인해 신체 기능은 서서히 떨어지기 마련이고요. 우리 모두 잠재적 장애인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좋겠어요.
Q. 재활을 하면서 도움받은 부분이 있다면요.
A. 저는 그간 실패나 좌절이라는 걸 잘 모르고 지냈어요. 공부도 잘했고 좋은 직업도 갖고 있었죠. 어쩌면 자만하거나 이기적인 면이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상태가 되니 달라지더라고요. 가족의 돌봄이 없었더라면 이처럼 빨리 회복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연주 선생님이 겪은 시련에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남긴 유튜브 댓글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느꼈습니다. 제게 닥친 어려운 시간을 잘 삼키고 기록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빅터 프랭클이 쓴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저자는 나치 홀로코스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의학 의사인데요, 수용소에 갇히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들은 살아남았대요. 모든 시련은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찾아내면 사람이 더 강해진다는 걸 배웠어요. 몸과 마음이 다 회복되면 타인을 돌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직접 환자가 되어 보니 환자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돼요. 지금 이 순간에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Q. 지난해 에세이 ‘씨 유 어게인’을 펴내기도 했어요.
A. 변화된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일기처럼 남긴 글이 있었어요. 책을 낼 생각은 아니었고 오롯이 자신을 위한 기록이었어요. 저의 상황을 궁금해하고 걱정해 주신 분들을 위해 SNS에 공유하려는 문장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같은 병원에서 의사로, 그리고 환자로 동시에 느낀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 아니니? 책으로 내보는 게 어때?” 하고 용기를 주었어요.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글로 정리하다 보니 수없이 좌절하고 다시 극복하려 애썼던 과정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으니까요.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더라고요.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면서 고통의 시간과 상처 어린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아요. 낙마 사고로 생긴 흉터 같다고나 할까요. ‘씨 유 어게인’이라는 제목은 다시 보게 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Q. ‘장애청년드림팀’이라는 활동도 하셨더라고요.
A. ‘장애청년드림팀’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최하고,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국내 최초 장애 청년 해외연수 프로그램이에요. 정식 명칭은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입니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이한 프로그램인데, 지금까지 1,000여 명의 청년들이 해외 38개국을 방문했어요. 제가 속한 ‘원스팀’은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사회통합으로의 과정 탐구: 교육과 고용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8일간 스페인에 머물렀어요. 세 명의 시각장애인과 세 명의 비장애 청년으로 구성되었는데, 시각장애인의 경우 한 명은 전맹, 한 명은 저시력, 저는 단안 실명으로 장애 정도가 달랐어요. 스페인은 ‘ONCE(온세)’라는 거대한 시각장애인단체가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요, 그곳에서 배운 시각장애인 관련 정책, 교육, 고용, 복지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내과 전문의로서 당부할 부분이 있나요.
A. 건강검진을 꼭 받으세요. 장애인분들은 거동이 힘들다 보니 정말 아플 때가 아니면 병원에 잘 못 오시더라고요.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인력을 잘 갖춘 병원이 전국에 많지도 않고요. 국가 검진조차 제때 받는 분이 많지 않아 걱정입니다. 잃어버린 건강을 다시 회복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젊고 기력이 있을 때 잘 관리하는 것,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건강한 삶을 늘리는 첫 번째 단추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 등 국가에서도 장애인 의료 접근성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시각장애인 의료 접근성 개선 및 재활 연계 사업’ 등을 계획하며 의료인으로서 보탬이 되고자 노력해요.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꿈과 계획은 무엇인가요.
A. 더 건강해지는 것이 첫 번째 목표고, 다른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도록 돕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 건강 문제 때문에 조절해 왔던 진료 세션을 추가로 열어볼 계획이에요.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건강관리 꿀팁을 올려볼까 싶고요. 무엇을 해도 즐겁고 설렐 것 같아요. 모두가 더 건강해지길 윙크의사가 응원하겠습니다.
김수정·김태형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주)도서출판 점자 제작 협력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통권 209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