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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2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박 후기
유배 자청自請 - 미조항 멸치잡이
유배자청 - 돌담이 무너진 까닭
유배자청 - 벽련포구
유배자청 - 동백처럼 지다
유배자청 - 그늘과 그물
유배자청 - 보리암
유배자청 - 유자 약전藥箋
유배자청 - 질풍, 노도
유배자청 - 갈화리 느티나무
유배자청 - 관음포 당부
남해도 전별시첩餞別詩帖 - 서포 김만중을 생각함
남해도 전별시첩 - 자암 김구를 생각함
남해도 전별시첩 - 약천 남구만을 생각함
남해도 전별시첩 - 후송 유의양을 생각함
남해도 전별시첩 - 소재 이이명을 생각함
유배자청 / 박후기
- 그물과 그늘
물건리 사람들에게는
그물과 그늘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닙니다.
이곳 사람들은
그물보다 먼저
방풍림 그늘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늘은 물고기를 부르고
사람들은 성긴 그물로
그늘을 건져 올립니다.
터진 방조제안,
길 잘못든 숭어가
찢긴 그늘 사이로
은비닐을 반짝이며
뛰어 오르기도 합니다.
그물의 어원은
그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물맥이 모여 잎을 이루고
그 잎이 나무가 되고
다시 숲이 되어
물건리 앞바다에
그늘을 펼쳐 던지니 말입니다.
나 또한 잎사귀 같은 손 들어올려
그물을 던지듯
그늘 깊은 세상을 향해
악수를 정하곤 합니다.
제2회 김만중문학상 은상
최헌명
웃음에 관한 고찰
제8요일 - 가난한 그들에겐 또 하나의 요일이 있어야 했다
난을 치다
비상(飛翔)을 위하여
질경이
무등산
말씀
웃음에 관한 고찰 / 최헌명
1.
백무동 첫물이 물안개 뚫고 내리며 무연한 참꽃
마주쳐 곁눈으로 훔치다
헛디딘 발목을 끌고 바위에 미끄러지는 소리
2.
처마 낮은 지붕 아래 다저녁 내릴 무렵 시집 간
첫째 딸이 손자 안고 들어설 때
앉혀 둔 찰옥수수가 솥뚜껑 여는 소리 3. 가을볕 목덜미에 잔광이 빌붙기 전 콩이야 팥이야 하늘 바라 말리는 시간 깻단이 성질 못 참고 제물에 터지는 소리 ※ 제2회 김만중 문학상 수상작품(시부문 은상, 500만원)으로 시조임. - 최헌명 시인 약력 소개 본명은 최영효, 1946년 경남 마산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등단(시 - 감자를 캐면서), 시집으로 "무시로 저문 날에는 슬픔에도 기대어 서라"가 있다. 시조로 읽는 구운몽 / 이교상 ―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슬 내린 새벽 혼자 달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물푸레나무 그림자처럼 사람의 생애生涯와 비의悲意를 낭창낭창 짊어지고 강 건너 고개 넘어 굽이굽이 흘러온 남해에서 검붉은 욕망의 사설辭說 파도 위에 던지고, 던지고 1 안개에 둘러싸인 꽃의 밀담密談 들어본다. 옛날, 아주 옛날 중국 당나라 때 이야긴데, 서역 천축국에서 건너온 신선 같은 고승高僧 육관대사가 사방팔방 기기묘묘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단풍나무 소나무 박달나무 삼나무 등나무 녹나무들이 우거질 대로 우거진 남악 형산 일흔 두 개 봉우리 중 연화봉에 터 잡아 그윽하게 법당 짓고, 날이면 날마다 산문 활짝 열어 동굴처럼 세상 어두워지지 않도록 솔향기 은은히 날려 보내고 옥구슬 같은 폭포수 끝없이 흘려보내며 불법을 베풀었는데. ……혼란한 전국시대였던가, 간신의 모략으로 유배당해온 굴원이 장편 서정시 ‘이소離巢’를 읊었고, 두보가 동정호의 아름다운 악양루에 올라 ‘등악양루登岳陽樓’의 시를 단숨에 토해냈던 그때, 2 누구나 우러러본 선지자先知者가 있었으나 겨울이 흘러가고 다시 봄이 찾아와도 떠도는 바람과 구름 발(足)을 갖지 못했으니 3 두문불출, 고요히 법당에 앉아 있어도 육관대사는 천리만리를 보고, 눈을 감고도 세상 구석구석 박혀 있는 좁쌀 같은 어둠까지 모두 읽었으니. 그 염력念力 하도 신통하고 방통해 이내 소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잣거리를 벗어나 온천지에 자자하게 퍼졌는데. 어느 날, 양자강 하류 더 넓게 펼쳐진 동정호의 용왕이 육관대사 설법 한 번 들어보려고 만사 제쳐두고 철갑상어 은어 붕어 미꾸라지 메기 금강모치 독중개 돌마자 두렁허리 무지개송어 참갈겨니 버들치 가물치들을 거느리고 연화봉을 찾았는데. 그에 육관대사가 제자 성진을 보내 고마움을 전할 때, 형산에 살고 있던 고고한 선녀 위 부인도 급히 팔선녀를 대사에게 보내 여차저차해서 법회에 참석하지 못했음을 사과하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는데. 그날이었지, 용왕의 환대로 거나하게 술에 취한 성진은 마치 구름 위에 올라탄 것처럼 아롱아롱 그렇게 혼자 한껏 흥에 겨웠는데. 때마침 연화봉 구경하며 돌아가던 아리따운 팔선녀를 석교에서 본 순간 번쩍, 정신이 든 성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말 섞으며 희희낙락 놀았는데. ……그래, 예나 지금이나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짜릿하고 감질疳疾나게 재미있는 것은 꽃놀이패, 그 붉고 물컹하고 달콤하고 쫄깃하고 시큼한 음담패설 같은 농담. 고것이 그 어떤 산해진미山海珍味보다도 맛있고 또 씹으면 씹을수록 입에 착착 달라붙는 봄도다리 육질 같아, 성진은 세상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줄 모르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인 줄 모르고 난생 처음 사랑에 흠뻑 빠지게 되었는데. 낮과 밤 구별 없이 겁도 없이 복사꽃 같은 팔선녀의 얼굴 부처의 몸에 날마다 그리고 그렸는데. 적막강산 같은 시간 질겅질겅 씹으며 세상 부귀와 공명 몰래 꿈꾸다가 꿈을 꾸다가 그만 육관대사에게 그 사실 들켜 팔선녀와 뿔뿔이 흩어져 지옥으로, 온갖 금수禽獸가 우글거리는 속세俗世로 쫓겨났는데. 그렇지, 한 번 맛본 그 맛 어디 쉽게 잊었겠나? 4 망초꽃 같은 밤이 얼마나 또 흘렀는지 세상에 비가 왔는지 바람이 불었는지 화들짝, 눈 뜨고 보니 거기 낯선 내가 있었다 5 나는, 회남 수주현 양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다시 태어났지. 아버지는 신선이 되려고 집을 떠나고, 홀어머니 품에서 일찍 철든 나는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 당당하게 살아남기 위해 열다섯 살 먹었을 때 가슴에 큰 뜻 하나 알처럼 품고 과거보러 가던 중 화음현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어여쁘고 귀엽고 얌전하고 정숙한 진어사의 딸을 보고 반해 어린 나이였지만 조숙할 대로 조숙한 나는 채봉과 굳게 혼인을 약속했는데. 그러나 그해 나라가 어수선하여 구사량이 난을 일으켜 과거고 뭐고 남전산으로 급히 몸을 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세상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아무도 몰래 몸속에 숨겨놓은 칼 녹슬지 않게 날마다 갈고 갈며 도사에게 배운 음률 주문처럼 읊조리고 또 읊조렸는데. ……그렇게 한 해를 속절없이 보내고 이듬해 다시 과거 보기 위해 경사로 가던 중 배도 고프고 몸 피곤해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낙양 천진교 시회에 참석했는데. 몸보다 마음이 더 허전하고 허기졌던지 그날 밤 그만 나도 모르게 기생 계섬월의 치마폭에 풀썩, 힘없이 쓰러져 아주 요상스러운 꿈을 꾸었는데. 아뿔싸, 칼집에서 잘못 뽑힌 칼이 허공을 벴으니……. 6 휜 구름 잡아먹은 황사비 울대 같은 엄나무 목덜미에 불거진 핏대 같은 천지간, 바람이 불어 세상은 늘 아득하고 7 마침내 경사에 도착한 나는 어머니의 친척 두련사의 주선으로 발랄하고 영특한 처자 경패를 만났지. 그해 과거에 급제하고, 정도사의 사위로 찍혀 어쩔 수 없이 경패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며 미적거리고 있을 때 화가 난 경패는 내가 거문고를 탄다는 핑계로 여자 도사로 꾸며 접근한 것이 괘심해 시비를 선녀처럼 꾸며 날 유혹하게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애교덩어리 가춘운과 함께 밤이슬 내리고 달이 지는 줄도 모르고 아침이 올 때까지 입김과 향기로운 살내음에 흠씬 취하고 젖었는데. 그때, 마침 하북에서 역모의 조짐이 일어 단숨에 절도사로 임명된 나는 세 왕의 불만을 다스리고, 다시 계섬월을 만나 반가움에 원앙 베개와 비취 이불 깔 아놓고 뜨겁게 아주 뜨겁게 정을 나누었는데. 다음날 깨어나고 보니 계섬월은 안보이고 내 옆에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가 한 떨기 모란꽃처럼 방그레 웃고 있었는데. ……경사로 돌아온 나는 우연히 오래전에 잡혀와 궁녀가 된 채봉을 보고 가슴 끙끙 앓다가 애를 태우다가, 어느 날 황제가 베푼 환선시紈扇詩에 차운次韻하여 다시 채봉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러던 중 달 밝은 밤에 문득 난양공주의 퉁소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에 화답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부마駙馬로 정해졌지만, 경패와의 혼인 약속을 핑계로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다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때마침 토번왕이 쳐들어와 나는 다시 대원수가 되어 출전하게 되었는데. 그날 밤, 날 죽이기 위해 토번왕이 보낸 여자 자객 심요연을 단숨에 굴복시켜 인연을 맺고. 그 와중에 백룡담에서 용왕의 딸 백릉파를 도와줘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또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는데. 8 흰 구름 바라보다 나른해진 몸을 안고 낮달 둥둥 떠다니는 허공을 끌어안고 훨훨훨, 꿈속을 날며 삼켜먹은 꽃이라니! 9 부귀도 권세마저 하나씩 내려놓고. 우여곡절 끝에 영양공주가 된 정경패와 난양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고향에 계신 노모를 모시고 와 그동안 연을 맺은 진채봉 계섬월 적경홍 가춘운 심요연 백릉파와 함께 오붓하고 조용하고 느릿하게 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생일날 종남산에 올라 팔선녀와 한가롭게 가무를 즐기며 놀다가 문득 먼저 살다간 영웅들의 황폐해지고 잡풀 무성히 덮인 무덤을 본 그날부터 자꾸 몸 노곤해지고 기운이 빠지고…… 되돌아보니, 내 모습 이리저리 뭉게뭉게 떠다니는 구름이었고, 온갖 욕망이 칼춤 추는 세상은 곰팡내와 지린내 가득한 감옥이었고, 시시때때로 골짜구니 휘감아 오른 삶은 매 순간 정신과 육신을 칼끝 위에 세우는 선무당 바람의 모습이었으니. 그때 호승이 찾아와 날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면, 몸에 깊이 박힌 수많은 칠흑의 가시 뽑아내 적멸寂滅로 가는 길 선명하게 보지 못했다면 나도 팔선녀도 영원히 극락세계에 들지 못했을 터, 절대. 오늘도, 남해금산 보리암 풍경風磬소리 세상 멀리멀리 퍼지고 [심사평] 실시 3년째가 되는 김만중 문학상은 1회와 2회 수상작들을 참고해서 그런지 어느덧 대다수의 작품이 패턴(pattern)화 되어 실망스럽기도 했다. 당선작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쓰면 되겠다는 요령을 익히기보다는 김만중의 문학정신이나 유배객으로서의 회한과 절망, 그것을 뛰어넘는 절치부심의 각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시 부문 심사는 ‘김만중’ ‘유배’ ‘남해’ 소재의 시와 그렇지 않은 일반시를 나누어 후보작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김만중문학상’이라는 상의 타이틀과 무관한 작품 중에 좋은 것이 보이면 올해는 파격적으로 그런 작품에 상을 주자고 논의하면서 심사에 임했지만「늙은 무녀」「겨울 대숲을 지나며」정도가 후보로 거론되었을 뿐 방외(方外)의 작품 중 당선을 겨룰 우수작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밖에 우리가 눈여겨본 작품은「서포(西浦) 소전(小傳)」「노도 가는 배」「남해에게로의 유배」「유배문학관 매화」「꽃이라 부르지 마라」「서포 만가」「유배문학관 매화」「앵강 물속을 건너온 그 밤의 엽서」「서포일기」「유배지 아이들」「남해 12경」등이었다. 예년 같으면 이 중에서 금상이나 은상이 나올 수 있었겠지만 이들 작품에는 공통적인 약점이 있었다. 정일근의「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나 고두현의「유배시첩」등 기존 작품의 잔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었다. 예년에 이 상을 탄 하수현ㆍ공광규ㆍ이상원ㆍ박후기 시인의 수상작의 영향을 받은 작품도 없지 않았다. ‘김만중 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이기에 소재와 주제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얼개와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영향’이나 ‘흉내’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 정말 많았다. 게다가 20행 이상의 시가 연 구분 한 번 없이 지속되거나 호흡이 너무 긴 산문시는 시가 아니라는 강한 반발심까지 불러일으켰다. 우리는「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에 들다ㆍ1」외 19편의 연작시를 그중 낫다며 뽑기는 했지만 사실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한자와 각주가 너무 많다. 21세기인 지금 우리들의 삶에 이들 시가 어떤 의미로 와 닿을까, 고민을 하며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였다. 다만 한 가지 사줄 점은 시에 들인 공력이 만만치 않고, 편편의 시가 갖고 있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여타 응모자의 시보다 확실히 나았다. 언어의 경제적 운용과 고전 소재에 대한 감각적인 접근이 그래도 다른 응모자들과 변별되는 점이어서 입상작에 올리기로 했다. 20편이 모여서 이룩한 그림은 어느 정도 품격을 갖추고 있고, 시에 대한 자세가 진지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유배문학은 우리 국민문학의 전통을 이어오며 한 민족의 성정에 잘 맞는 시조문학과 가장 가까운 장르이다. 이런 관점에서 시조작품을 눈여겨보았다. 자유로운 주제로 창작한 시조작품에서도 시조의 정형을 지키면서 신선감을 주는 좋은 작품이 있었다. 그러나 서포 김만중의 삶의 궤적에 초점을 맞추고 절해고도 남해를 노래하고 서포의 깊은 의중을 찾아가는 장편의 연작시조에서 더 우수한 작품성을 볼 수 있었다. 옴니버스 형식을 빌려 사설과 단시조로 구성하면서도 절제미와 균형미를 잘 살린「시조로 읽는 구운몽」은 응모한 작품 중 대어감이었다.「서포, 길을 나서다」도 끝까지 입상작과 겨룬 우수작이었다. 시 분야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시조로 읽는 구운몽」과「서포, 길을 나서다」를 읽고 올해는 시 분야 최우수작보다 시조 분야 최우수작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장시에 가까운「시조로 읽는 구운몽」도 위풍당당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지만 함께 투고한 다른 시조가 날림으로 쓴 것이 없이, 하나같이 시인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정형을 지킨 시조가 있는가 하면 파격으로 나간 시조도 있었다. 전통 고수와 언어 실험을 번갈아 하면서 우리 시조의 영역을 지키고 넓혀간 투고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당연히 시조「시조로 읽는 구운몽」이 금상을, 시「매화초옥도에 들다」가 은상을 받게 되었다. 비록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투고해준 많은 분들에게 후일을 기약해보시라는 격려를 보낸다. - 심사위원 : 안도현, 이승하, 이처기
5회 당선작/ 해변에서 외 2편
김유섭
물이 끓고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피운 불이
옛이야기로 타올랐다
해변에서 주운 게들의 살이
익으면서 풍겨오는 냄새,
'맛있겠다' 나에게
내가 속삭여보았다
바람도 없는 밤하늘에 별이
눈물을 머금은 채 날아다녔다
어디에서 멀어진 것일까
나는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한낮 햇살의 손길로
모래가 나를 감싸주었다
귓속으로 파도소리가 밀려왔다
그러다, 멀어져 갔다
전학 간 아이
오래 숨을 참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속에서는
먼 곳의 소식
세상의 온갖 이야기
다 들린다고 했는데
북극성 은하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몸이 떠오르려고 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가쁘게 숨을 쉬었다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떠보았지만
냇물만 흘러갈 뿐
그 아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도 봄이었다
화장장은 새벽부터 붐볐다
뒤편 산자락에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화로에 불이 붙으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울었다
죽은 사람은 불 속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상조회 사람이 "어머니 불났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라고
소리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따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시들해졌다
사람이 타는 시간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라고 했다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는 일 분이었다
걸어온 발자국이라고 아니 어머니라고
뼛가루가 든 작은 나무상자를 끌어안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늦었다며 서둘러 매장지로 가야 한다고
서두르는 몸짓들이 일렁거렸다
진달래 구경 가자고 어머니,
아침 햇살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불러보았다
봄이었다
『제5회 김만중문학상 당선 작품집』,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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