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 한율아,
이곳 나래실농원의 숲속우체국에도 어느새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무척이나 화사하단다. 오늘이 3월 3일, 봄이 막 시작되는데 올해는 봄이 조금은 일찍 찾아오는 듯하구나. 여느 해보다는 조금 빨리 잠자고 있던 모든 것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 같단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폭신폭신’, ;말랑말랑‘해지고, ’꼬물꼬물’ 아지랑이도 피어오른단다.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또랑또랑’ 들려오고...
그런데 숲속우체국의 야생 정원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 뭔지 아니? 일찍 꽃을 피우는 양지꽃, 꽃다지, 제비꽃, 괭이눈, 올괴불나무와 생강나무 따위가 꽃을 피우기 전에 제일 먼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 있단다. 그것은 도랑 가 여기저기에 자라고 있는 버드나무지. 버드나무가 버들개지 또는 버들강아지라고 부르는 버드나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지. 참 그러고 보니 한비와 한율이가 좋아하는 동물이 강아지이기도 하지? 율이는 새끼 고양이 키티(kitty)를 가장 좋아하지만, 비는 강아지 퍼피(puppy)를 제일 좋아하는 거 맞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와도 같은 버들강아지도 한율이나 한비가 아주 좋아할 것 같구나. 영어로 이 버들개지 또는 버들강아지를 보통은 새끼 고양이를 뜻하는 퍼시(pussy)라고 부른다고도 하는구나.
사실 버드나무 꽃은 이것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게 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하단다. 버드나무는 주로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데, 잎이 나기 전의 버드나무는 그 모습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모습이란다. 매초롬한 버드나무 가지에 줄지어 피어나는 버드나무 꽃도 그렇게 두드러진 모습은 아니지. 그런데 버드나무는 그 종류가 참으로 많아. 세계적으로는 수 천 종, 우리나라에도 300 여 종류가 자란다고 하는구나. 나래실농원과 그 주변에도 꽤 여러 종류의 버드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그리고 그 버드나무의 이름이 한결같이 귀엽고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의 토박이말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해. 그 이름들이 무척 정겹게 느껴져. 긴잎자매버들, 쌍실버들, 여우버들, 내버들, 왕버들, 갯버들, 떡버들, 호랑버들, 개키버들, 섬버들, 난장이버들, 뚝버들, 고리버들, 분버들, 산버들, 좀꽃버들, 능수버들, 콩버들, 닥장버들, 선버들, 들버들, 붉은키버들, 새양버들, 노란버들, 수원버들, 문산버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또 다른 버들이 있지.
이 무렵부터 버들개지가 피어나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면 아주 재미있단다. 버들개지의 모습이 귀엽고 부드러워서 마치 복스러운 강아지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단다. 그래서 버들강아지라는 이름으로 버드나무 꽃을 부르기도 했던 듯해. 버드나무는 버들가지의 꽃눈을 감싸고 있던 겉껍질이 떨어져 나가면서 작지만 뽀송뽀송한 솜털의 버들개지 몸통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지. 그리고 한비나 율이의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로부터 시작해서 두 마디 크기만큼까지도 자라더구나.
솜털이 보송보송한 은회색 버드나무 꽃송이에서는 아주 조그만 꽃술이 솟아난단다. 그 색깔이 연두색인 것도 있고 노랑이나 붉은색인 것도 있어. 또 함께 힘을 합쳐서 씨앗을 만드는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 달리는 버들개지는 보통은 수꽃의 색깔과 모습이 더 화려하단다. 어떤 버드나무는 아주 작은 수꽃이 처음에는 빨간 껍질을 쓰고 있다가 이것이 떨어져 나가면서 샛노란 꽃가루가 생겨나더구나. 한편 버들개지는 먼저 꽃이 핀 뒤에 버드나무의 잎, 버들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단다.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이 버드나무에 간직해 둔 추억이 아주 많단다. 꽁꽁 얼음이 언 시내에 나가서 썰매를 타다가 작은 여울 가에 핀 버들개지를 보았던 기억이 새롭기도 해. 겨울인데도 버드나무 꽃눈이 맺혀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버들개지가 활짝 피면서 버들가지에 물이 오를 때쯤이면 그 줄기를 잘라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는구나.
잔뜩 물이 오른 새끼손가락 굵기의 버들가지 하나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살짝살짝 비튼 뒤 나무줄기를 빼낸 겉껍질로 버들피리인 호드기를 만들었지. 입에다 대고 부는 부분 겉껍질의 바깥 부분을 살짝 벗겨 내서 떨림판을 만든 뒤 조심스럽게 불면 ‘삐삐~’ 또는 ‘호득호득’하는 소리를 낼 수 있었어. 호드기를 불 때 버들피리에서 느껴지던 쌉싸래한 맛이 지금도 입안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구나.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산촌에서 전해주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보내면서 오늘 쓴 편지의 주제인 버드나무의 꽃 버들개지의 우표 몇 장을 함께 전해주마. 편지에 붙인 우표라고 생각해도 좋고 편지에 담긴 봄꽃 소식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앞으로도 이렇게 편지의 주제와 관련되는 우표 속의 꽃이나 나무 모습을 함께 보내주마. 사진의 모습보다도 우표라는 아주 작은 창에 나타나 있는 모습이 훨씬 더 그 특징 따위를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아. 또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외국 여러 곳의 모습도 이 우표를 통해서 만나볼 수 있기도 하고 말이야. 아마도 외국의 우표를 통해서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거야.
한비, 한율아,
내일이면 비와 율이 어느새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구나. 마음이 많이 설레지? 입학을 축하하며 이곳 산골 도랑의 버들개지가 전해주는 새봄의 소식을 이 편지로 전해주마. 크게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귀여운 꽃을 피우는 버드나무의 버들개지를 한 번 유심히 관찰해보기 바란다. 새봄의 느낌과 함께 잘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게 될 은빛 또는 연둣빛의 수수한 아름다움도 느껴보기 바래.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고 다음에 또 이곳 산촌 농원의 소식 전해주마. 안녕~
(2019.3.3.)
첫댓글 쌍둥이 손녀 사랑이 대단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뿌리를 잊지않고 조상의 은덕을 가르치며, 직접 체계적인 가정교육까지 시키니 그 정성이 알찬 열매가되어 큰 보람을 느끼겠어요~ 할아버지를 빼닮아 공부뿐만 아니라 그림까지도 잘 그리니 그간 교육한 기쁨이 얼마나 큰가요? 사실 우리나라는 최근에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해외동포들이(특히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처럼 높아져 대우받고 사는 것이 신기하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다만 교육면에서는 아직도 개선할 점이 많지요~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을 소홀히 하고 모두 사교육을 선호하니! 순우의 모범적인 손녀교육에 동감하며 두 손려가 훗날 동량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좋은글은 세심한 관찰과 일물일어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언어의 선택이 중요한 것 같군요. 손주교육에는 나도 관심이 있는데 자율학습, 자연학습, 인성교육, 적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싶네요. 나래실농원 봄소식 잘 읽었습다.
할아버지의 다정다감한 모습이 버들 피리 소리처럼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3년 전 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는 글에서 할아버지의 애잔한 정을 느낍니다. 아이들에게 조부모와 부모가 함께 있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이지요. 나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순우의 글을 통해 간접 경험해 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할애비가 손녀에게....
할아버지의 손주에 대한 자상한 애정
을 느낌니다.
나는 큰아들이 지난 2월 6일 이사간
후 이번 토요일 손주들 보러 갑니다.
작은 손녀 유아원 입학 소액의 축하
금(할머니 장학금)을 전할까 합니
다.
그곳 나래실 농원의 버들개지 소식을
듣고 봄소식을 느끼니 나 역시 한참
자연의 기운을 받는것 같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손주들과 같이 지내시며 교육에까지 세심하신 할아버지의 그림이 너무 잘 멋지고 부럽네요. 멋진 할애비가 되고 싶지만 어쩌다 한번 보는 손녀이다 보니 칭찬만 하게 되더군요. 때론 따끔한 말도 해야 하는데 애들 그릇이 크지 않으니, 또 안 오겠다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좀 그렇네요. 새봄과 더불어 손주들을 애틋이 바라보는 할애비 순우를 상상하며 웃습니다.
순우의 손녀사랑에 경의를 표합니다.이번에 태어난 손녀에게 인생에 지침이될 가르침을 생각하고 있는데 참고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