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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使云(국사운) : <국사(國史)>에서 말했다.
眞興王大淸三年己巳(진흥왕대청삼년기사) : "진흥왕 때인 태청 3년 기사(549)에
梁使沈湖送舍利若干粒(량사침호송사리약간립) : 양(梁)나라에서 심호를 시켜 사리 몇 알을 보내왔다.
善德王代貞觀十七年癸卯(선덕왕대정관십칠년계묘) : 선덕왕 때인 정관 17년 계묘( 643)에
慈藏法師所將佛頭骨(자장법사소장불두골) :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唐)나라에서 부처의 머리뼈와
佛牙(불아) : 어금니와
佛舍利百粒(불사리백립) : 부처의 사리 100알과
佛所著緋羅金點袈裟一領(불소저비라금점가사일령) : 부처가 입던 붉은 비단에 금색 점이 있는 가사 한 벌을 가지고 왔는데,
其舍利分爲三(기사리분위삼) : 그 사리를 셋으로 나누어
一分在皇龍塔(일분재황룡탑) : 하나는 황룡사 탑에 두고,
一分在太和塔(일분재태화탑) : 하나는 대화사 탑에 두고,
一分竝袈裟在通度寺戒壇(일분병가사재통도사계단) : 하나는 가사와 함께 통도사(通度寺) 계단(戒壇)에 두었으나,
其餘未詳所在(기여미상소재) : 그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壇有二級(단유이급) : 통도사 계단에는 두 층이 있는데
上級之中(상급지중) : 위층 가운데에는
安石蓋如覆鑊(안석개여복확) : 돌 뚜껑을 덮어서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과 같았다.
諺云(언운) : 속설에 이렇게 말했다.
昔在本朝(석재본조) : "옛날 본조(本朝)에서
相次有二廉使(상차유이렴사) : 전후로 염사(廉使) 두 사람이 나타나
禮壇擧石鑊而敬之(예단거석확이경지) : 계단에 절을 하고 공손히 돌솥을 들어 경건히 보았는데,
前感脩蟒在函中(전감수망재함중) : 처음에는 긴 이무기가 돌 함(函) 속에 있는 것을 보았고,
後見巨蟾蹲石腹(후견거섬준석복) : 다음 번에는 큰 두꺼비가 돌 밑에 쪼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自此不敢擧之(자차불감거지) : 이로부터는 감히 이 돌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한다.
近有上將軍金公利生(근유상장군금공리생) : 요새 상장군 김공(金公) 이생(利生)과
庾侍郞碩(유시랑석) : 유시랑(庾侍郞) 석(碩)이
以高廟朝受旨(이고묘조수지) : 고종(高宗)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指揮江東(지휘강동) : 강동을 지휘할 때
仗節到寺(장절도사) : 부절(符節)을 가지고 절에 와서
擬欲擧石瞻禮(의욕거석첨례) : 돌을 들고 절하려고 하니
寺僧以往事難之(사승이왕사난지) : 절의 중은 지난 일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난처하게 여겼다.
二公令軍士固擧之(이공령군사고거지) : 두 사람이 군사를 시켜 돌을 단단히 들게 하니
內有小石函(내유소석함) : 그 속에 작은 돌 함이 있고,
函襲之中(함습지중) : 함 속에는
貯以瑠璃筒(저이류리통) : 유리통(瑠璃筒)이 들어 있고,
筒中舍利只四粒(통중사리지사립) : 통 속에는 사리(舍利)가 단지 네 알뿐이었다.
傳示瞻敬(전시첨경) : 이것을 서로 돌려보면서 경례했는데
筒有小傷裂處(통유소상렬처) : 통에 조금 상한 곳이 있었다.
於是庾公適蓄一水精函子(어시유공적축일수정함자) : 이에 유공(庾公)이 마침 가지고 있던 수정함 하나를
遂奉施兼藏焉(수봉시겸장언) : 시주하여 함께 간수해 두게 하고,
識之以記(지지이기) : 그 사실을 기록해 두었다.
移御江都四年乙未歲也(이어강도사년을미세야) : 이때는 강화도(江華島)로 서울을 옮긴 지 4년이 되던 을미년(1235)이었다."
古記稱(고기칭) :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일컬었다.
百枚分藏三處(백매분장삼처) : "사리(舍利) 100개를 세 곳에 나누어 두었더니,
今唯四爾(금유사이) : 이제는 오직 네 개뿐이다.
旣隱現隨人(기은현수인) : 그것은 숨겨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여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니
多小不足怪也(다소불족괴야) : 수효가 많고 적은 것이 괴이할 것이 없다."
又顔云(우안운) : 또 속설(俗說)에는 이렇게 말한다.
其皇龍寺塔災之日(기황룡사탑재지일) : "황룡사(皇龍寺) 탑이 불타던 날에
石鑊之東面始有大班(석확지동면시유대반) : 돌솥 동쪽에 처음 큰 얼룩이 생겼는데
至今猶然(지금유연) : 이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卽大遼應曆三年癸丑歲也(즉대료응력삼년계축세야) : 그때는 바로 요(遼)의 응력(應曆) 3년 계축(953)이요,
本朝光廟五戴也(본조광묘오대야) : 본조(本朝) 광종(光宗) 5년으로,
塔之第三災也(탑지제삼재야) : 탑이 세 번째로 불타던 때였다.
曹溪無衣子留詩云(조계무의자류시운) : 조계(曹溪)의 무의자(無衣子)가 시를 남겨 말하기를,
聞道皇龍災塔日(문도황룡재탑일) : "들으니 황룡사탑이 불타던 날,
連燒一面示無間(련소일면시무간) : 번져서 탄 한 쪽에도 틈이 없었네"라고 한 것이
是也(시야) : 바로 이것이다.
自至元甲子已來(자지원갑자이래) : 지원(至元) 갑자년(1264) 이후로
大朝使佐(대조사좌) : 원(元)나라 사신과
本國皇華(본국황화) : 본국 황화(皇華)들이
爭來瞻禮(쟁래첨례) : 다투어 와서 이 돌함에 절했으며
四方雲水(사방운수) : 사방의 운수(雲水)들도
輻湊來參(폭주래삼) : 몰려들어 참례했는데,
或擧(혹거) : 돌함을 들어보기도 하고
不擧(불거) : 혹은 들지 않기도 했다.
眞身四枚外(진신사매외) : 진신(眞身)의 사리 네 알 외에
變身舍利(변신사리) : 변신 사리가
碎如砂礫(쇄여사력) : 모래알처럼 부셔져서
現於?外(현어력외) : 돌함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而異香郁烈(이이향욱렬) : 이상한 향기를 강하게 풍겨
彌日(미일불헐자) : 여러 날 동안
比比有之(비비유지) : 없어지지 않는 일이 이따금 있었으니,
此末季一方之奇事也(차말계일방지기사야) : 이것은 말세에 있는 한 지방의 기이한 일인 것이다.
唐大中五年辛未(당대중오년신미) : 당(唐)나라 대중(大中) 5년 신미(851)에
入朝使元弘所將佛牙(입조사원홍소장불아) : 당나라로 갔던 사신 원홍(元弘)이 당에서 가지고 온 부처의 어금니와
(今未詳所在新羅文聖王代(금미상소재신라문성왕대) :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의 일이다))
後唐同光元年癸未(후당동광원년계미) : 후당(後唐) 동광(同光) 원년 계미(923)
本朝太祖卽位六年(본조태조즉위육년) : 곧 본조(本朝) 태조(太祖) 즉위 6년에
入朝使尹質所將五百羅漢像(입조사윤질소장오백라한상) : 당(唐)나라로 보냈던 사신 윤질(尹質)이 가지고 온 오백나한(五百羅漢)의 상(像)은
今在北崇山神光寺(금재북숭산신광사) : 지금 북숭산(北崇山) 신광사(神光寺)에있다.
大宋宣和元年己卯(대송선화원년기묘) : 송(宋)나라의 선화(宣和) 원년 기묘에
(睿廟十五年(예묘십오년) : 예종睿宗 15(4), 1119) )
入貢使鄭克永(입공사정극영) : 입공사(入貢使) 정극영(鄭克永)과
李之美等所將佛牙(이지미등소장불아) : 이지미(李之美) 등이 가지고 온 부처의 어금니는
今內殿置奉者是也(금내전치봉자시야) : 지금 내전(內殿)에 모셔 둔 것이 바로 이것이다.
相傳云(상전운) : 서로 전해 내려오는 말은 이러하다.
昔義湘法師入唐(석의상법사입당) : 옛날 의상법사(義湘法師)가 당나라에 들어가
到終南山至相寺智儼尊者處(도종남산지상사지엄존자처) : 종남산(終南山)의 지상사(至相寺) 지엄존자(智儼尊者)에게 가 있었는데,
隣有宣律師(린유선율사) : 이웃에 선율사(宣律師)가 있어서,
常受天供(상수천공) : 항상 하늘의 공양을 받고
每齊時天廚送食(매제시천주송식) : 재를 올릴 때마다 하늘 주방(廚房)에서 먹을 것을 보내 왔다.
一日律師請湘公齋(일일율사청상공재) : 어느날 선율사는 의상법사를 청하여 재를 올리는데
湘至坐定旣久(상지좌정기구) : 의상이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오랜데도
天供過時不至(천공과시불지) : 하늘에서 보내는 음식은 때가 지나도 오지 않는다.
湘乃空鉢而歸(상내공발이귀) : 의상이 빈 바리때만 가지고 돌아가자
天使乃至(천사내지) : 비로소 천사(天使)가 내려왔다.
律師問今日何故遲(율사문금일하고지) : 선율사가 "오늘은 어찌해서 늦으셨소"하고 묻자
天使曰(천사왈) : 천사는 대답한다.
滿洞有神兵遮擁(만동유신병차옹) : "온 동네에 가득히 신병(神兵)이 막고 있어서
不能得入(불능득입) :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於是律師知湘公有神衛(어시율사지상공유신위) : 이에 율사는 의상법사에게 신의 호위가 있는 것을 알고는
乃服其道勝(내복기도승) : 그의 도(道)의 힘이 자기보다 나은 것에 탄복하고는
仍留其供具(잉류기공구) : 하늘에서 보내 온 음식을 그대로 두었다가,
翌日又邀儼湘二師齋(익일우요엄상이사재) : 이튿날 또 지엄(智儼)과 의상(義湘) 두 대사를 재 올리는데
具陳其由(구진기유) : 청해다가 그 사유를 자세히 말했다.
湘公從容謂宣曰(상공종용위선왈) : 의상이 조용히 율사에게 말한다.
師旣被天帝所敬(사기피천제소경) : "율사는 이미 천제(天帝)의 존경을 받고 계신데,
嘗聞帝釋宮有佛四十齒之一牙(상문제석궁유불사십치지일아) : 일찍이 듣건대 제석궁(帝釋宮)에는 부처님의 이빨 40개 중에 어금니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爲我等輩請下人間(위아등배청하인간) : 우리들을 위해서 천제께 청하여 그것을 인간에게 내려보내어
爲福如何(위복여하) : 복이 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律師後與天使傳其意於上帝(율사후여천사전기의어상제) : 율사는 이 후에 천사와 함께 그 뜻을 천제에게 전하니
帝限七日送與(제한칠일송여) : 천제는 7일을 기한하여 이를 보내 주니
湘公致敬訖(상공치경흘) : 의상은 경례를 다한 뒤에
邀安大內(요안대내) : 맞이하여 대궐에 안치했다.
後至大宋徽宗朝(후지대송휘종조) : 그 후 송(宋)나라 휘종조(徽宗朝)에 이르러
崇奉左道(숭봉좌도) : 좌도(左道)를 믿으니,
時國人傳圖讖曰(시국인전도참왈) : 이때 나라 사람들은 도참(圖讖)을 전하여 퍼뜨리기를,
金人敗國(김인패국) : "금인(金人)이 이 나라를 망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黃巾之徒(황건지도) : 황건(黃巾)의 무리들이
諷日官(풍일관) : 일관(日官)을 충동하여
奏曰(주왈) : 위에 아뢰기를,
金人者佛敎之謂也(김인자불교지위야) : "금인이란 불교를 말하는 것이니
將不利於國家(장불리어국가) :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입니다"하였다.
議將破滅釋氏(의장파멸석씨) : 이리하여 조정에서는 장차 불교를 없애고
坑諸沙門(갱제사문) : 중들을 구덩이에 묻고
焚燒經典(분소경전) : 경전(經典)을 불사르고,
而別造小舡(이별조소강) : 따로 조그만 배를 만들어
戴佛牙泛於大海(대불아범어대해) : 부처의 어금니를 실어 큰 바다에 띄워
任隨緣流泊(임수연류박) : 인연이 있는 곳으로 흘려 보내려 했다.
于時適有本朝使者至宋(우시적유본조사자지송) : 이때 마침 고려 사신이 송나라에 갔다가
聞其事(문기사) : 그 사실을 듣고는
以天花茸五十領(이천화용오십령) : 천화용(天花茸) 50령(領)과
紵布三百疋(저포삼백필) : 저포(紵布) 300필을
行賂於押舡內史(행뢰어압강내사) : 배를 호송(護送)하는 관원에게 뇌물로 주고
密授佛牙(밀수불아) : 남몰래 부처의 어금니를 받고
但流空舡(단류공강) : 빈 배만 흘려 보내게 했다.
使臣等旣得佛牙來奏(사신등기득불아래주) : 사신들이 부처의 어금니를 얻어 가지고 와서 왕에게 아뢰자
於是睿宗大喜(어시예종대희) : 예종(睿宗)은 크게 기뻐하여
奉安于十員殿左掖小殿(봉안우십원전좌액소전) : 십원전(十員殿) 왼쪽에 있는 소전(小殿)에 모시고
常鑰匙殿門(상약시전문) : 항상 소전 문을 잠그고
施香燈于外(시향등우외) : 밖에는 향과 등불을 설치하여
每親幸日(매친행일) : 왕이 친히 거둥하는 날에만 .
開殿瞻敬(개전첨경) : 대궐 문을 열고 경례를 했다
至壬辰歲移御次(지임진세이어차) : 임진년(1232)에 서울을 강화(江華)로 옮길 때
內官悤遽中(내관총거중) : 내관(內官)들은 총망한 중에
忘不收檢(망불수검) : 잊어버리고 이를 거두어 챙기지 못했다.
至丙申四月(지병신사월) : 병신년(丙申年) 4월에
御願堂神孝寺釋蘊光請致敬佛牙(어원당신효사석온광청치경불아) : 왕의 원당(願堂)인 신효사(神孝寺) 중 온광(蘊光)이 불아(佛牙)에 경례하기를 청하므로
聞于上(문우상) : 왕에게 아뢰니
勅令內臣遍檢宮中(칙령내신편검궁중) : 왕은 내신(內臣)을 시켜서 두루 궁중(宮中)을 찾아보았으나
無得也(무득야) : 보이지 않았다.
時栢臺侍御史崔沖命薛伸(시백대시어사최충명설신) : 이때 백대(栢臺) 시어사(侍御史) 최충(崔沖)이 설신(薛伸)에게 명하여
急徵于諸謁者房(급징우제알자방) : 급히 여러 알자(謁者)의 방을 다니면서 물었으나
皆未知所措(개미지소조) : 모두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內臣金承老奏曰(내신금승노주왈) : 내신(內臣) 김승로(金承老)가 아뢰기를,
壬辰年移御時紫門日記推看(임진년이어시자문일기추간) : "임진년(壬辰年)에 서울을 옮길 때의 <자문일기(紫門日記)>를 조사해 보십시오"하므로
從之(종지) : 그 말을 쫓아 조사해보니
記云(기운) : 일기(日記)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入內侍大府卿李白全受佛牙函云(입내시대부경이백전수불아함운) : "입내시대부경(入內侍大府卿) 이백전(李白全)이 불아함(佛牙函)을 받다."
召李詰之(소이힐지) : 이백전(李白全)을 불러 물으니
對曰請歸家更尋私記(대왈청귀가경심사기) : 대답하였다. "청컨대 집에 돌아가서 다시 저의 사사 일기(日記)를 찾아보게 해 주십시오."
到家檢看(도가검간) : 집에 가서 찾아보고
得左番謁者金瑞龍佛牙函准受記來呈(득좌번알자금서룡불아함준수기래정) : 좌번알자(左番謁者) 김서룡(金瑞龍)이 불아함(佛牙函)을 받았다는 기록을 갖다가 바쳤다.
召問瑞龍(소문서룡) : 김서룡(金瑞龍)을 불러 물었으나
無辭以對(무사이대) : 대답을 못한다.
又以金承老所奏云(우이금승노소주운) : 또 김승로(金承老)가 아뢰는 대로
壬辰至今丙申(임진지금병신) : 임진년(壬辰年)에서 지금 병신년(丙申年)까지
五年間(오년간) : 5년간의
御佛堂及景靈殿上守等囚禁問當(어불당급경영전상수등수금문당) : 어불당(御佛堂)과 경령전(景靈殿)에 수직한 자들을 잡아 가두고 심문했으나,
依違未決(의위미결) : 아무런 결말도 나지 않았다.
隔三日(격삼일) : 그런지 3일이 지난 날
夜中(야중) : 밤중에
瑞龍家園墻裏(서룡가원장리) : 김서룡의 집 담 안으로
有投擲物聲(유투척물성) : 무엇을 던지는 소리가 나므로
以火檢看(이화검간) : 불을 켜 조사해 보니
乃佛牙函也(내불아함야) : 바로 불아함(佛牙函)이었다.
函本內一重沈香合(함본내일중침향합) : 함은 본래 속 한 겹은 심향합(沈香合)이고
次重純金合(차중순금합) : 다음 겹은 순금합(純金合)이고
次外重白銀函(차외중백은함) : 그 다음 바깥 겁은 백은함(白銀函)이고,
次外重瑠璃函(차외중류리함) : 다음 바깥 겁은 유리함이고,
次外重螺鈿函(차외중라전함) : 그 다음 겹은 나전함(螺鈿函)으로
各幅子如之(각폭자여지) : 각 함(各函)의 폭은 서로 꼭 맞게 되었었다.
今但瑠璃函爾(금단류리함이) : 그런데 지금은 다만 유리함뿐이었다.
喜得之(희득지) : 김서룡은 찾은 것이 기뻐서
入達于內(입달우내) : 대궐로 들어가 아뢰었다.
有司議(유사의) : 그러나 유사(有司)는 죄를 의논하여
金瑞龍及兩殿上守皆誅(금서룡급량전상수개주) : 김서룡과 어불당(御佛堂)과 경령전(景靈殿)의 수직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하니
晋陽府奏云(진양부주운) : 진양부(晉陽府)에서 아뢰었다.
因佛事(인불사) : "불사(佛事)로 인하여
不合多傷人(불합다상인) : 사람을 많이 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皆免之(개면지) : 이리하여 모두 죽음을 면했다.
更勅十員殿中庭(경칙십원전중정) : 다시 십원전(十員殿) 안뜰에
特造佛牙殿安之(특조불아전안지) : 특별히 불아전(佛牙殿)을 지어서 불아함(佛牙函)을 모시게 하고
令將士守之(령장사수지) : 장사(將士)들을 시켜 지키게 했다.
擇吉日(택길일) : 길일(吉日)을 가려서
請神孝寺上房蘊光(청신효사상방온광) : 신효사(神孝寺)의 상방(上房) 온광(蘊光)을 청해다가
領徒三十人(령도삼십인) : 승도(僧徒) 30명을 거느리고
入內設齋敬之(입내설재경지) : 궁중에 들어가 재를 올려 정성을 드리도록 했다.
其日入置承宣崔弘(기일입치승선최홍) : 그날 입직(入直)했던 승선(承宣) 최홍(崔弘)과
上將軍崔公衍(상장군최공연) : 상장군(上將軍) 최공연(崔公衍)·
李令長(이령장) : 이영장(李令長)과
內侍(내시) : 내시(內侍)·
茶房等(다방등) : 다방(茶房) 관원들은
侍立于殿庭(시립우전정) : 대궐 뜰에서 왕을 모시고 서서
依次頂戴敬之(의차정대경지) : 차례로 불아함(佛牙函)을 머리에 이고 정성을 드렸는데
佛牙區穴間(불아구혈간) : 불아함 구멍 사이에 있는
舍利不如數(사리불여수) : 사리는 그 수를 알지 못할 만큼 많았다.
晋陽府以白銀合貯而安之(진양부이백은합저이안지) : 진양부(晉陽府)에서는 백은(白銀) 상자에 그것을 담아 모셨다.
時主上謂臣下曰(시주상위신하왈) : 이때 왕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朕自亡佛牙已來(짐자망불아이래) : "내가 불아(佛牙)를 잃은 후로
自生四疑(자생사의) : 스스로 네 가지 의심이 생겼었소.
一疑(일의) : 첫째 의심은,
天宮七日限滿而上天矣(천궁칠일한만이상천의) : 천궁(天宮)의 7일 기한이 차서 하늘로 올라갔을까 하는 것이고.
二疑(이의) : 둘째 의심은
國亂如此(국난여차) : 국난(國亂)이 이러하니,
牙旣神物(아기신물) : 불아는 신물(神物)이므로
且移有緣無事之邦矣(차이유연무사지방의) : 인연이 있는 무사(無事)한 나라로 옮겨 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오.
三疑(삼의) : 셋째 의심은,
貪財小人(탐재소인) : 재물을 탐낸 소인(小人)이
盜取函幅(도취함폭) : 그 상자를 도둑질하고
弃之溝壑矣(기지구학의) : 불아는 구렁에 버렸으리라는 것이오.
四疑(사의) : 넷째 의심은,
盜取珍利(도취진리) : 도둑이 보물을 훔쳐가기는 했으나
而無計自露(이무계자로) : 이것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匿藏家中矣(닉장가중의) : 집 속에 감추어 두었으리라는 것이었는데
今第四疑當之矣(금제사의당지의) : 이제 네 번째 의심이 맞았소"하고
乃放聲大哭(내방성대곡) : 이내 소리를 내어 크게 우니
滿庭皆洒涕(만정개체) : 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獻壽至有煉頂燒臂者(헌수지유련정소비자) : 헌수(獻壽)하는데, 심지어 이마와 팔을 불에 태우는 사람도 있어서
不可勝計(불가승계) :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得此實錄於當時內殿(득차실록어당시내전) : 이 실록(實錄)은 당시 내전(內殿)에서
焚修前祗林寺大禪師覺猷(분수전지림사대선사각유) : 향(香)을 피우며 기도하던, 전지림사(前祗林寺) 대선사(大禪師) 각유(覺猷)에게서 얻은 것이니,
言親所眼見(언친소안견) : 그는 자기가 친히 본 것이라면서
使予錄之(사여록지) : 날더러 기록하라고 했다.
又至庚午出都之亂(우지경오출도지난) : 또 경오년(庚午年; 1270)에 강화(江華)에서 환도(還都)할 때의 난리는
顚沛之甚(전패지심) : 진패가 몹시 심하여
過於壬辰(과어임진) : 임진년(壬辰年)보다도 더했다.
十員殿監主禪師心鑑(십원전감주선사심감) : 십원전(十員殿)의 감주(監主)인 선사(禪師) 심감(心鑑)은
亡身佩持(망신패지) : 자기의 위태로움을 잊고 불아함을 가지고 나와
獲免於賊難(획면어적난) : 도둑의 난리에서 화를 면하게 하였다.
達於大內(달어대내) : 이 사실을 대궐에 알리니
大賞其功(대상기공) : 왕은 그 공을 크게 칭찬하고
移授名刹(이수명찰) : 이름 있는 절로 옮겨 살게 하여
今住永山寺(금주영산사) : 지금 빙산사(빙山寺)에 살고 있다.
是亦親聞於彼(시역친문어피) : 이것도 역시 각유(覺猷)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다.
眞興王代天嘉六年乙酉(진흥왕대천가육년을유) : 진흥왕(眞興王) 때인 천가(天嘉) 6년 을유(乙酉; 565)에
陳使劉思與釋明觀(진사류사여석명관) : 진(陳)나라에서는 유사(劉思)와 중 명관(明觀)을 시켜
戴送佛經論一千七百餘卷(대송불경론일천칠백여권) : 불경(佛經)·논(論) 1,700여 권을 보내왔으며,
貞觀十七年(정관십칠년) : 정관(貞觀) 17년(643)에는
慈藏法師戴三藏四百餘函來(자장법사대삼장사백여함래) : 자장법사(慈藏法師)가 삼장(三藏) 400여 상자를 싣고 돌아와서
安于通度寺(안우통도사) : 통도사(通度寺)에 안치했다.
興德王代大和元年丁未(흥덕왕대대화원년정미) : 흥덕왕(興德王) 때인 태화(太和) 원년 정미(丁未; 827)에는
入學僧高麗釋丘德(입학승고려석구덕) : 당(唐)에 간 학승(學僧)인 고구려 중 구덕(丘德)이
賫佛經若干函來(재불경약간함래) : 불경(佛經) 몇 상자를 가지고 오니
王與諸寺僧徒(왕여제사승도) : 왕은 여러 절의 승도(僧徒)들과 함께
出迎于興輪寺前路(출영우흥륜사전로) : 나가서 흥륜사(興輪寺) 앞길에 가서 맞이했다.
大中五年(대중오년) : 대중(大中) 5년(851)에는 .
入朝使元弘(입조사원홍) : 당나라에 보낸 사신 원홍(元弘)이
賫佛經若干軸來(재불경약간축래) : 불경(佛經) 몇 축(軸)을 가지고 왔고,
羅末普耀禪師再至吳越(라말보요선사재지오월) : 신라 말기에 보요선사(普耀禪師)가 두 번이나 오월국(吳越國)에 가서
載大藏經來(재대장경래) : 대장경(大藏經)을 싣고 왔으니,
卽海龍王寺開山祖也(즉해룡왕사개산조야) : 그는 곧 해룡왕사(海龍王寺)의 개산조(開山祖)이다
大宋元祐甲戌(대송원우갑술) : 송(宋)나라 원우(元祐) 갑술년(1094)에
有人眞讚云(유인진찬운) : 어떤 사람이 선사(禪師)의 진영(眞影)을 찬(讚)해 말했다.
偉哉初祖(위재초조) : 거룩해라, 개조(開祖) 스님이시여!
巍乎眞容(외호진용) : 빼어났구나 저 참 모습
再至吳越(재지오월) : 두 번이나 오월(吳越)에 가,
大藏成功(대장성공) : 대장경(大藏經) 가지고 오는 데 성공했네.
賜銜普耀(사함보요) : 보요(普耀)라는 직함 하사하시고,
鳳詔四封(봉조사봉) : 네 번이나 조서(詔書) 내리셨으니,
若問其德(약문기덕) : 만일 그의 덕 묻거든,
白月淸風(백월청풍) : 밝은 달 맑은 바람 같다 하리.
又大定中(우대정중) : 또 대정(大定) 연간(1161∼1189)
漢南管記彭祖逖留詩云(한남관기팽조적유시운) : 한남 관기(漢南管記) 팽조적(彭祖적)이 시(詩)를 지어 남겼다.
水雲蘭若住空王(수운난약주공왕) : 물과 구름 조용한 절에 부처님 계신데,
況是神龍穩一場(황시신룡온일장) : 더구나 신룡(神龍)이 한 지경을 보호하네.
畢竟名藍誰得似(필경명람수득사) : 마침내 이 좋은 절 어느 누가 이어받을까,
初傳像敎自南方(초전상교자남방) : 처음 불교는 남쪽에서 전해왔네.
有跋云(유발운) : 발문(跋文)이 있는데 이러하다.
昔普耀禪師始求大藏於南越(석보요선사시구대장어남월) : 옛날 보요선사(普耀禪師)가 처음으로 남월(南越)에서 대장경(大藏經)을 구해
洎旋返次(계선반차) : 가지고 돌아오는데
海風忽起(해풍홀기) : 바닷바람이 갑자기 일더니
扁舟出沒於波間(편주출몰어파간) : 조각배가 물결 사이에서 뒤집힐 것 같았다.
師卽言曰(사즉언왈) : 선사가 즉시 말하기를, "에
意者神龍欲留經耶(의자신룡욕류경야) : 생각이것은 신룡(神龍)이 대장경을 여기에 머물러 두려는 것이 아닐까"하고
遂呪願乃誠(수주원내성) : 드디어 주문(呪文)으로 정성껏 축원하여
兼奉龍歸焉(겸봉룡귀언) : 용(龍)까지 함께 받들고 돌아오니,
於是風靜波息(어시풍정파식) : 바람도 자고 물결도 가라앉았다.
旣得還國(기득환국) : 본국에 돌아오자
遍賞山川(편상산천) : 산천(山川)을 두루 구경하면서
求可以安邀處(구가이안요처) : 대장경을 안치할 곳을 구하다가
至此山(지차산) : 이 산에 이르렀는데
忽見瑞雲起於山上(홀견서운기어산상) : 갑자기 상서로운 구름이 산 위에서 일어나는 곳을 보고
乃與高弟弘慶(내여고제홍경) : 이에 수제자(首弟子) 홍경(弘慶)과 함께
經營蓮社(경영련사) : 연사(蓮社)를 세웠으니,
然則像敎之東漸(연칙상교지동점) : 그러니 불교가 동방으로 전해 온 것은
實始乎此(실시호차) : 실로 이때에 시작된 것이었다.
漢南管記彭祖?(한남관기팽조?) : 한남 관기(漢南管記) 팽조적(彭祖逖)은
題(제) : 제(題)한다.
寺有龍王堂(사유룡왕당) : 이 해룡왕사(海龍王寺)에는 용왕당(龍王堂)이 있는데
頗多靈異(파다영이) : 자못 신령스럽고 이상한 일이 많았다.
乃當時隨經而來止者也(내당시수경이래지자야) : 당시 용왕은 대장경(大藏經)을 따라와서 여기에 머물러 있었는데,
至今猶存(지금유존) : 용왕당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又天成三年戊子(우천성삼년무자) : 또 천성(天成) 3년 무자년(928)에
黙和尙入唐(묵화상입당) : 묵화상(默和尙)이 당에 들어가
亦載大藏經來(역재대장경래) : 역시 대장경을 가지고 왔으며,
本朝睿廟時(본조예묘시) : 본조(本朝) 예종(睿宗) 때에는
慧照國師奉詔西學(혜조국사봉조서학) :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조서를 받들고 중국으로 유학가서
市遼本大藏三部而來(시료본대장삼부이래) : 요본(遼本) 대장경 3부(部)를 사 가지고 왔는데,
一本今在定惠寺(일본금재정혜사) : 그 한 본(本)은 지금 정혜사(定惠寺)에 있다
(海印寺有一本(해인사유일본) : (해인사海印寺에 한 본本이 있고
許參政宅有一本(허삼정택유일본) : )허참정許參政댁에 한 본本이 있다).
大安二年(대안이년) : 대안(大安) 2년(1086)
本朝宣宗代(본조선종대) : 본조(本朝) 선종(宣宗) 때에는
祐世僧統義天入宋(우세승통의천입송) : 우세승통(祐世僧統) 의천(義天)이 송(宋)나라에 들어가서
多將天台敎觀而來(다장천태교관이래) :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많이 가지고 왔으며,
此外方冊所不載(차외방책소불재) : 이 밖에도 서적에 실리지 않은
高僧信士(고승신사) : 고승(高僧)과 신사(信士)들이
往來所賫(왕래소재) : 왕래하면서 가지고 온 것은
不可詳記(불가상기) : 이루 자세히 기록할 수가 없다.
大敎東漸(대교동점) : 대체로 불교가 동방으로 전해 오는 데는
洋洋乎慶矣哉(양양호경의재) : 그 앞길이 양양(洋洋)했으니 경사스러운 일이로다.
讚曰(찬왈) : 찬(讚)해 말한다.
華月夷風尙隔烟(화월이풍상격연) : 중국과 동방은 오히려 안개로 막혔고,
鹿園鶴樹二千年(록원학수이천년) : 녹원(鹿苑)의 학수(鶴樹)는 2,000년이네.
流傳海外眞堪賀(유전해외진감하) : 이 땅에 전해 오니 참으로 하례할 일이로다
東震西乾共一天(동진서건공일천) : 동진(東震)과 서건(西乾)이 한 세상 되었네.
按此錄(안차록) :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義湘傳云(의상전운) : 의상전(義湘傳)을 상고해 보면 이러하다.
永徽初(영휘초) : "의상은 영휘(永徽) 초년(650)에
入唐謁智儼(입당알지엄) : 당나라에 들어가 지엄선사(智儼禪師)를 뵈었다"한다.
然據浮石本碑(연거부석본비) : 그러나 부석사(浮石寺) 본비(本碑)에 의하면,
湘武德八年生(상무덕팔년생) : "의상은 무덕(武德) 8년(625)에 태어나
卯歲出家(묘세출가) : 어려서 중이 되었다.
永徽元年庚戌(영휘원년경술) : 영휘(永徽) 원년 경술년(650)에
與元曉同伴欲西入(여원효동반욕서입) : 원효(元曉)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려고
至高麗(지고려) : 고구려에 갔다가
有難而廻(유난이회) : 어려운 일이 있어서 그대로 돌아갔다.
至龍朔元年辛酉(지룡삭원년신유) : 용삭(龍朔) 원년 신유(辛酉; 661)에
入唐(입당) : 당에 들어가
就學於智儼(취학어지엄) : 지엄법사에게 배웠다.
總章元年(총장원년) : 총장(總章) 원년(668)에
儼遷化(엄천화) : 지엄법사가 죽자
咸亨二年(함형이년) : 함형(咸亨) 2년(671)에
湘來還新羅(상래환신라) : 의상은 신라로 돌아와
長安二年壬寅示滅(장안이년임인시멸) : 장안(長安) 2년 임인(壬寅; 702)에 죽으니
年七十八(년칠십팔) : 나이 78세였다"했다.
則疑與儼公齋於宣律師處(칙의여엄공재어선율사처) : 그렇다면 지엄과 함께 선율사(宣律師)가 있는 곳에서 재를 올리고,
請天宮佛牙(청천궁불아) : 천궁(天宮)의 불아(佛牙)를 청하던 일은
在辛酉至戊辰七八年間也(재신유지무진칠팔년간야) : 신유(辛酉; 661)에서 무진(戊辰; 668)까지의 7, 8년 사이가 될 것이다.
本朝高廟入江都壬辰年(본조고묘입강도임진년) : 본조(本朝) 고종(高宗)이 강화(江華)로 옮기던 임진년(壬辰年; 1232)에
疑天宮七日限滿者(의천궁칠일한만자) : 천궁의 7일 기한이 다 찼다고 의심한 것은
誤矣(오의) : 잘못된 것이니,
忉利天一日夜(도리천일일야) : 도리천의 1주야는
當人間一百歲(당인간일백세) : 인간(人間) 100세에 해당되는 것이다.
且從湘公初入唐辛酉(차종상공초입당신유) : 또 의상이 처음 당에 갔던 신유년(辛酉年; 661)에서부터
計至高廟壬辰(계지고묘임진) : 계산하여 본조(本朝) 고종(高宗) 임진(壬辰; 1232)까지는
六百九十三歲也(육백구십삼세야) : 693년이니
至庚子年(지경자년) : 경자년(更子年; 1240)에 이르러야
始滿七百年(시만칠백년) : 비로서 700년이 차며,
而七日限已滿矣(이칠일한이만의) : 7일 기한도 차는 것이다.
至出都至元七年庚午(지출도지원칠년경오) : 환도(還都)하던 지원(至元) 7년 경오(1270)까지는
則七百三十年(칙칠백삼십년) : 730년이니,
若如天言(약여천언) : 만일 천제(天帝)의 말과 같이
而七日後還天宮(이칠일후환천궁) : 7일 후에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다고 하면
則禪師心鑑出都時(칙선사심감출도시) : 심감선사(心鑑禪師)가 환도(還都)할 때
佩持出獻者(패지출헌자) : 가져다 바친 것은
恐非眞佛牙也(공비진불아야) : 필시 진짜 불아(佛牙)가 아니었을 것이다.
於是年春出都前(어시년춘출도전) : 이해 봄 환도(還都)하기 전에
於大內集諸宗名德(어대내집제종명덕) : 왕은 대궐 안 제종(諸宗)의 이름난 중들을 모아서
乞佛牙舍利(걸불아사리) : 불아와 사리를 빌어 구하여
精勤雖切(정근수절) : 비록 정성과 부지런함을 다했지만
而不得一枚(이불득일매) : 하나도 얻지 못했으니,
則七日限滿(칙칠일한만) : 필경 7일 기한이 차서
上天者幾矣(상천자기의) : 하늘로 올라간 듯 싶다.
二十一年甲申(이십일년갑신) : 지원(至元) 21년 갑신(1284)에
修補國淸寺金塔(수보국청사금탑) : 국청사(國淸寺)의 금탑(金塔)을 보수(補修)하고
國主與莊穆王后(국주여장목왕후) : 충렬왕(忠烈王)은 장목왕후(莊穆王后)와 함께
幸妙覺寺(행묘각사) : 묘각사(妙覺寺)에 거둥하여
集衆慶讚訖(집중경찬흘) : 신도(信徒)의 무리들을 모아 경하(慶賀)하고 찬미(讚美)했다. 이것이 끝나자
右佛牙(우불아) : 심감(心鑑)이 바친 불아와
與洛山水精念珠(여락산수정념주) : 낙산(落山)의 수정염주(水精念珠)와
如意珠(여의주) : 여의주(如意珠)를
君臣與大衆(군신여대중) : 군신(君臣)과 여러 신도(信徒)들이
皆瞻奉頂戴(개첨봉정대) : 모두 쳐다보고 경배한 뒤에 함께
後幷納金塔內(후병납금탑내) : 금탑(金塔) 안에 안치했다.
亦預斯會(여역예사회) : 나도 역시 이 모임에 참석해서
而親見所謂佛牙者(이친견소위불아자) : 불아라고 하는 것을 친히 보았는데
長三寸許(장삼촌허) : 그 길이는 세 치 가량 되고
而無舍利焉(이무사리언) : 사리는 없었다.
無極記(무극기) : 무극(無極)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