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戒盈杯), 최인호 작가의 ‘상도’와 거상 임상옥
"계영배’(戒盈杯)란, 문자적 뜻은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이다. 과음을 조심하기 위해, 잔에 술이 70% 이상 차 오르면, 술이 다 흘러버리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절주배’(節酒盃)라고도 한다. 인간의 끝 없는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는선조들의 지혜로운 교훈이 담겨 있는 잔이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왕과 백성들의 과욕을 제어하여 길이 태평성세를 이루어달라고 하늘에 제사드리면서 이 잔에다가 70% 미만의 술을 부어 올리기 위해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선배 현자 제(薺)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다던 이잔을 보고, 그 유래를 듣고서, 이를 본받아 공자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수학자요, 철학자 피다고라스가 개영배와 똑 같은 뜻에서 "피다고라스 컵"을 만들어 두고 자신의 과욕을 절제했다고 하니, 진리는 동서고금이 다 통하는 가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후기에 대표적 실학자 하백원(河百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계영배가 특히 감명을 주는 것은 조선시대의 의주 거상(巨商) 임상옥(1779~1855)이 이 계영배를 늘 곁에 두고 과욕을 다스리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정도로 돈을 벌었는데도, 그렇게 역사에 남는 거상이요, 거부가 되었다는 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구한말의 사학자 문일평(文一平,1888.5.15~1939.4.3)씨가 ‘한국사에서 존경받는 학자나 정치가는 많은데, 왜 존경받는 상인(商人)은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동기가 되어 쓰게 된 짧은 평전 속에서, 최인호 작가가 발견해 낸 ‘임상옥’을 눈여겨 보고는, 소설을 구상, ‘상도’(商道)라는 소설을 써서, 그 '상도'에 임상옥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최인호 작가는 이 소설에서 21세기 경제의 새로운 철학을 펼치고 싶었던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이데올로기도 사라지고, 국경도 사라진 이 시대야말로 경제의 세기이고, 올바른 ‘상도’(商道)를 터득한 ‘상업의 성인’을 통해서 한국사회 경제 철학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설 ‘상도’가 그렇게 은은한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
상업에 있어서의 높은 가치, 깊은 철학 ‘상도’가 무너져서 IMF 통제 파동도, 기타 경제 파탄도, 다른 모든 사회 문제도 일어나는 것이다. 정말 -다른 가치관과 함께- 상도가 바로 서야 모든 게 바로 서는 것이다.
돈만을 우상처럼 사랑하고 좇으며 섬기는 게 큰돈을 벌게 하는 게 아니다. 도를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즉 ‘상도’를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거상이 되고 거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 거상 거부라야, 졸부가 아닌 진짜 거부답게 그 돈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꾸준히 ‘계영배’를 곁에 두고 욕심을 제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