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855]제주 무량정사 대웅보전주련
모든 것 부처라는 도리 깨달아야
‘법화경’에 담긴 부처님 말씀
수행자 보리심 일으켜 뜻 세워
법 실천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처님이고 극락 아닌 곳 없어
제주 무량정사 대웅보전
-- 글씨 소암 현중화(素菴 玄中和 1907~1997).
諸法本來寂滅相 佛子行道當作佛
제법본래적멸상 불자행도당작불
本佛成道無量劫 常住靈山而不滅
본불성도무량겁 상주영산이불멸
如來付囑諸菩薩 流通宣說無悋惜
여래부촉제보살 유통선설무인석
모든 법은 본래부터 적멸한 상(相)이니
불자가 이러한 도를 행하면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다.
본불의 성도는 무량겁 전에 이루어졌으며
영산(靈山)에 항상 계시는 부처님은 없어지지 아니하셨도다.
여래가 모든 보살에게 부촉하기를
불법을 유통하고 널리 설하기를 인색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주련은 제주도 애월읍 대원정사와 서귀포 무량정사에 걸려있으나
어느 것이 모본(模本)인지 알 수 없다.
대원정사의 것이 무량정사 번각으로 보이며
주된 내용은 ‘법화경’을 바탕으로 지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문의 일부는 ‘법화경’에 나오는 게송에 덧붙였다.
첫 구절은 ‘법화경’ 제2방편품에서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이르기를,
모든 법은 본래부터 언제나 저절로 적멸한 모습이다’에서
따온 내용이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이란 표현은 아주 중요하다.
이는 모든 존재하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참다운 모습을 말한다.
자신의 감정대로 느낌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닌 만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경지를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이 각자 나름으로 가진 근본성품이니
이는 곧 법신불을 말하기도 한다. 적멸상은 곧 열반상이다.
열반의 모습을 제대로 안다면 불도를 구하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이다.
까닭에 수행자는 보리심을 일으켜 반드시 큰 뜻을 세워야 한다.
두 번째 구절도 방편품의 게송
‘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불자들이 이러한 도를 행하면 오는 세상에 부처님 되리라’를
변형했으며 앞서 설명한 게송에 이어 나오는 내용으로
이를 합해 ‘법화경’ 사구게라 한다.
작불은 성도 또는 성불과 같은 표현이다.
‘법화경’ 사구게 말씀은 곧 안목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현상의 모습은
본래 그대로 부처님의 세상이며 열반의 세상이라는 의미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이 법을 실천하면
다음 세상에는 부처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부처가 아님이 없으며 극락이 아님이 없다.
다만 우리들의 두 눈은 밉다 곱다하는
집착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간다.
‘법화경’ 사구게를 더 쉽게 말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에 싫다,
좋다는 마음을 붙이지 말고 본다면 모든 것이 부처라는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라는 말씀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모든 의혹을 다 풀어 버리고 일승의 가르침에 의지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왜냐하면 일승의 길이 아니면 성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불성도무량겁 상주영산이불멸’은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여래수량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실한 성도가
이미 구원겁전’이란 것을 밝히는 내용이다.
이 품은 ‘법화경’의 중심이며 모든 중생 성불의
근본을 밝히는 중요한 품이다.
여래부촉제보살은 ‘법화경’ 제22 촉루품에 나오는
말씀을 추렸다. 촉루는 부처가 제자에게 그 가르침을
넓히도록 위탁하는 것이기에 즉 위임이라는 의미다.
유통은 부처님 말씀의 보고인 경전을 널리 펴는 것이고
선설은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설하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법화경’을 마무리하는 총결이지만
‘법화경’ 곳곳에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부촉하신 내용이기도 하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593호 / 2021년 7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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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족(酒不足)>, 35.3×137.1cm, 종이에 먹, 개인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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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올해는 소암(素菴) 현중화 선생(1907∼1997)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또한 선생이 우리의 곁을 떠난 지 10주기다. 선생을 떠나 보낸 지금….
우리는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어떻게 조명하고 있으며, 그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그의 제자들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제주가 낳은 한국서예의 대가 현중화 선생을 재조명하고 세인들에게 한국서예계에서
그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알리는 것은 제주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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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석 그림 <玄中和(1907-1997) 초상>, 1993년, 220.8×114.3cm, 紙本彩色, 개인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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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소암 탄생 100주년이란 그 의미만큼이나 선생을 기리는 기회가 이어진다.
예술의전당과 소암현중화기념사업회는 오는 30일부터 6월17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소암 현중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연다.
‘서귀소옹의 삶과 예술 - 먹고 잠자고 쓰고’展이다.
예술의전당은 이번 전시에서 서예술의 정화인 행초서(行草書)분야에서 우리시대 최고 대가였던
소암의 예술완성기인 70세대 초부터 90세 작고 때까지 ‘서귀소옹(西歸素翁)’시절 대표작
100여점을 엄선, 선을 보인다고 밝혔다.
예술의 전당은 다음과 같이 선생을 소개하고 있다.
“소암은 30∼40대 일본유학을 통해 당시 20세기 한중일 근현대 서예사의
시대서풍(時代書風)인 육조해(六朝楷·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중 북위(北魏)시대 정자(正字) 글씨,
야성미(野性美)와 비정형(非定型)의 다이나믹한 동세(動勢)가 뛰어남)를
가장 먼저 체득한 사람으로 당시 한국서단의 선구(先驅)라고 할 수 있다.
또한 50∼60대 ‘국전(國展)’을 무대로 행초서(行草書)를 육조해로 재해석,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펼치며 한국서예의 ‘이채(異彩)’로 평가받았다.
이를 토대로 소암예술의 절정기라 할 70∼80대 ‘서귀소옹’시절 야취(野趣)와
전형(典型美)를 한몸에 녹여낸 가히 ‘소암체(素菴體)’라 할 행초서를 완성해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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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시선(醉是僊)>, 1976년, 400.0×180.0cm, 종이에 먹,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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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은 ‘일본시대’, ‘국전시대’를 거쳐 ‘서귀소옹’시대에 완성된 소암예술의 성격과
한국 근현대 서예 전개 맥락에서의 그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을 전시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글 국한문혼용 전예(篆隸) 해서(楷書) 행초서(行艸書) 파체서(破體書) 등
소암이 구사한 모든 종류의 서체와 작품 중 100여점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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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잠(陶潛) 「음주(飮酒) 5」> 부분, 1992년, 30.5×22.4cm, 종이에 먹, ≪소암취서(素菴醉書)≫, 개인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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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암예술의 완성기인 70∼80대 ‘서귀소옹’시절의 대표작으로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 이이의 ‘욕기사(浴沂辭)’, 도잠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노자 ‘도덕경(道德經)’1·2장 등이 선을 보인다.
또 소식 ‘춘소(春宵)’, 조식 ‘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 이황 ‘습서(習書)’, 이백 ‘파주문월(把酒問月)’, 도잠 ‘음주(飮酒)5’‘주부족(酒不足)’‘취시선(醉是僊)’등이 전시된다.
전시구성도 이채롭다. ‘먹고 잠자고 쓰고’라는 주제에 따라 글씨조형이나 서예사적 맥락은 물론 예술가로서 소암의 삶이 예술창작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 가를 살펴보기 위해 △소암서예의 형성과정 △소암글씨의 서체별 비교 △취필(醉筆)과 묵선(墨禪) △한글 △고전명언 등으로 구성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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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만리(白雲萬里)>, 1988년, 46.0×204.5cm, 종이에 먹, 개인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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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소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예술정신을 재조명하고 그를 기리기 위한 움직임은 이어진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오는 11월 서귀포소묵회와 한학자 오문복씨가 기증한 작품으로 ‘소암 현중화 선생 서예작품전’을 계획중이다.
제주소묵회는 오는 12월 열리는 추모전을 탄생 100주년 기념전으로 기획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생의 거처였던 서귀포시 서귀동에 지어지고 있는 ‘소암 현중화 기념관’이 오는 10월 준공, 12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암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작업은 지금껏 계속돼 왔다. 지난 2003년 소암선생추모기념사업회가 발족돼, 의욕을 갖고 여러 사업을 벌이려 했었고, 2002년엔 제1회 소암예술제가 열리기도 했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으며, 아쉬움을 주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소암 선생 탄생 100주년이란 의미가 보다 힘을 불어넣는 분위기다. 제자들 사이에선 보다 의욕적으로 선생의 주신 가르침의 참 뜻을 이어보자 라는 의욕들이 생기고 있어 환영할만한 일이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 있겠다. 앞으로 개관될 기념관을 어떻게 잘 꾸려나갈 것인지, 소암 선생의 정신을 후세에게 어떻게 알려나갈 것인지에 과제가 우리들 앞에 놓여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소암 선생의 한 제자가 건넨 말은 깊은 의미를 전해준다.
“이제부터가 (스승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정신을 잇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많은 일들이 시간에 쫓겨서도 안되겠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제자들과 후세가 어떻게 (스승의)정신을 이어갈지 함께 고민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