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부여
사람들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를 쓰죠.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게 애쓰는 것이 삶이니까.
자아의 꽃을 피우는데 온갖 열정을 쏟는 것이 삶이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든 자아의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고 성취감과 약간의 행복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온갖 감정이 일어나게 하고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기도 하므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수많은 의미부여가 일어납니다.
어떤 대상에 좋아함이라는 의미부여를 하면 갈애와 집착이 일어납니다.
어떤 대상에 싫어함이라는 의미부여를 거부감과 혐오감, 짜증과 미움이 생겨납니다.
어떤 대상에 거룩함, 성스러움, 위대함, 권능이라는 의미부여를 하면 굴복하고 복종하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족, 친척, 같은 국민,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부여를 하면 간섭하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자아에게 의미부여를 하면 마음에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몸에 의미부여를 하면 부서지고 손상을 받을까 두려워합니다.
상대방이 우월하다는 의미부여를 하면 존경심이 생기고, 열등하다는 의미부여를 하면 업긴 여기게 됩니다.
의미부여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이 괴로움을 일으킵니다.
이 의미부여가 바로 관념 conception, 산냐, 빤냣띠(관습적 실재)입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의미부여를 한다는 뜻입니다.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면 마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의미부여가 없는 것이 무아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 허무주의 nihilism가 아니냐고,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무슨 樂으로 사냐고 항변하실 겁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어떤 대상이든지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 그럼 어떻게 보아야 하냐고 질문할 것입니다.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하냐고 아무 의미가 없는 공허한 것으로 보아야 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아’라는 단어에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무아라는 의미부여를 한 것입니다.
의미부여는 소유에 집착하게 하고 잃는 것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무아 또는 공이라는 단어에 강한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괴로움을 겪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의미부여를 하지 말고 보라는 것이지, 텅 비어있는 것으로 공한 것으로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라는 의미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마음에 고요함과 평화가 찾아오고 해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첫댓글 사두 ! 사두! 사두!
"의미부여" 라는 게 "인연맺음" 이라고 볼 수 있네요. 인연이 닿으면 의미부여가 생기니까요. 가족과 국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면서 연결되는 인연이고요. 친구, 직장, 학교는 자신이 선택해서 만들어지는 인연이고요. 이 경우는 의미부여를 취소할 경우 인연이 끊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의미를 부여하면 간섭하게 된다."
그럼 생긴대로 살게 내버려둔다는 뜻인데요.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해 준다" 는 뜻으로 볼 수 있네요. 이렇게 하면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든가. 자녀가 말썽을 피운다든가. 이럴 경우 자연의 법칙대로 흘러가면서 소동이 저절로 소멸될 지는 좀 미지수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