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한샤오궁(韓少功) 몇 차례 비행 중 공중 추첨을 한 적이 있다. 당첨된 여객은 다음번 여행을 무료로 할 수 있는 티켓을 얻었다. 아주 흥분되는 일이다. 사회자가 당첨자의 좌석번호를 전문가답게 상기된 어조로 크게 부르면, 수풀처럼 일어선 사람들이 결국 어느 한 얼굴에 집중하게 되고 곧이어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재미있는 것은, 그 순간 낙담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가장 낙담한 사람은 분명 당첨자의 옆좌석에 앉은 이일 것이다. 내 친구가 그 사람이었다. 어깨를 스쳐지나간 행운에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쉬워했다. “바로 내 옆자리였어. 하나만 옆이었어도……” 사실, 하나만 옆이 아니었어도, 행운아가 그에게서 백 미터 떨어져 있었어도, 결과는 똑같지 않은가? 그 당첨자가 조금만 더 멀리 있었더라면 적어도 실망은 덜 했을 것 아닌가. 거리는 실망을 낳고 어쩌면 미련을 낳기도 한다. 불륜에 대해 쓴 어느 외국 작가는 여주인공이 외지 여행 때에만 애인과 밀회를 원한다고 쓰고 있는데, 왜냐하면 남편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쾌락에 대한 흥미와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남편이 방 두 칸 옆에 있든 두 블록 옆에 있든 혹은 이백 킬로미터 바깥에 있든, 그 자리에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왜 거리의 원근으로 인해, 도덕적 ‧ 감정적 압박을 완화하는 것일까? 공간은 사물의 존재방식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 위치한 사물은 완전히 같지 않다. 상식은 우리에게, 두 사람이 대화할 때의 거리와 위치를 무시하지 말라고 말한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무릎과 발이 닿고’ 심지어 ‘귓불이 맞닿을’ 정도가 되면, 분명 그것은 외교상의 담판이나 상업적 교류는 아닐 것이다. 한편, 마주 앉은 양편의 위치가 재판관과 피고처럼 높낮이가 분명하다면, 분명 청춘남녀의 밀회는 아닐 것이다. 많은 회의나 접대석상의 좌석 순서는 대체로 이런 정치적 기하학을 따른다. 한편, 병원, 우체국, 항공사와 같은 서비스 업체에서는 요즘 창구의 높이를 낮추고 칸막이를 없애고 있다. 이런 공간 개혁에는 물론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팔고 사는 쌍방 간의 편안한 분위기와 친밀한 관계는 평등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기하형식 속에서만 피부로 와 닿기 때문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모리스Desmond Morris는 『인간동물원』(1969)이라는 책에서 사회 충돌의 최고 심층 원인은 생존공간의 협소화라 말했다. 이익쟁탈이나 사상대립은 그에게는 충돌의 일부거나 그 변명에 불과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반복적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환경에서 생활하는 동물에는 대량으로 동족을 상해하는 습관이 없”음을 발견했다. 원숭이의 상호 학살, 사자의 상호 학대, 공작의 상호 격투, 가시고기들의 상호 공격은 “통상 가장 밀접한 울타리 속에서 발생한다.” 밀집이야말로 적의와 폭력의 최대 화근이다. 모리스는 인류란 “서로 다른 복식을 한 나체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류 사회, 특히 인류 도시사회는 지나치게 밀집한 ‘슈퍼 부락’이다. 이 부락 안의 인구수는 이미 적정한 생물학적 기준치를 한참 벗어났으니, 그 결과 전쟁, 폭력과 같은 대규모의 살인형식을 피하기 어렵다. 노예제, 감금, 거세, 유산, 독신주의 등으로 인구 압박을 이완하기는 이미 역부족이다. 아무리 잔혹하고 비이성적으로 이런 수단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모리스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는 아주 어렵다. 더 밀집한 도시들이 지구상에 출현하고 있고, 더한 적의와 폭력의 위험지대를 향해 사람들은 여전히 달려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 슈퍼 부락으로 들어가 창조적 기회와 지배적 지위를 찾고, 또 집단 합작이나 독자적 자유를 구한다. 그들 중에는 필경 성공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적해야 할 것은, 많은 경우 성공 또한 성취감일 뿐이고 공간 대비 심리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종종 나는 어떤 도시인들이 자신의 거주지에 대해 우쭐해하는 것을 본다. 도시 속의 유명한 마천루, 박물관, 대극장, 콘서트홀, 유명한 거물들을 나열하지만, 사실 분주한 삶 속에서 그런 시설을 향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평생 가야 유명 인사를 만날 일도 없다. 시골 사람과 다를 게 뭔가. 그러나 그런 것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 바로 담벼락 옆에 있다는 것, 길 하나 건너면 있다는 것, 이런 것들로 인해 그들은 자신감과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는 해외로 꿈을 찾아 떠나는 이에게도 이어진다. 그들에겐 국외의 좋은 것을 접하거나 소유할 기회가 거의 없으며, 심지어는 생활 수준이 국내 경우보다도 못하다. 그러면서도 맨해튼 가까이 산다거나 루브르박물관 근처에 살면, 최소한 마음속에 합당한 위안이 생긴다. 보아하니, 이른바 도시란 바로 수많은 좋은 것들을 내 근처에 두는 방식을 말하는 듯하다. 바로 점유이다. 점유란 수많은 좋은 것들을 내 근처에 두는 방식이다. 소량의 소비품을 제외한다면 그렇다. 액세서리 가게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는 하지도 않는 물건을 산다. 아마 나중에 집에서 달아볼 것이다. 어떤 남자는 갖고 다니지도 못할 골동품을 산다. 그도 집에서는 그것을 감상할 것이다. 여기에는 장소의 변환만이 있다. 여기, 엄청난 수전노가 있다. 하루 세 끼 밥만 먹고 방 한 칸만을 쓰면서, 번 돈을 쓰지 않고 집, 보석, 통장을 수시로 꺼내 주판을 굴리며 싱글거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사실 그들은 장소를 통째로 바꾸어, 대로에 나가 온 세상이 자기 재산이라 치고 주판을 굴리며 즐거워하는 게 낫다. 어차피 쓰지도 않고 다 쓰지도 못할 물건을, 길거에 늘어놓은들 집 안에 늘어놓은들,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요즘은 사진도 있고 텔레비전, 박물관도 있고 교통수단도 편리해졌다. 금괴든 은괴든 어떤 것이든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으니, 그것을 집 안으로 옮겨올 필요도 없고 집에서 봐야만 제 맛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류는 그저 요 모양 요 꼴이다. 대대로 사람들은 대문바깥에서 대문 안이라는, 이 괴상한 공간의 거리 사이에서 속을 끓인다. 그래서 수많은 전란, 정쟁, 탐욕, 음모, 논쟁, 조급증, 금융위기 등등의 골칫거리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기하학적 각도에서 본다면, 정신은 늘 물질의 공간 상태에 대한 반응이며 역사는 늘 재부 운반업에 종사하는 이삿짐센터라 할 수 있다. 어떤 물건을 가까이 뒀다 멀리 옮겼다 하는 데 값비싼 비용을 치르는. -수필집『암시』에 수록 지은이 : 한샤오궁 韓少功 1953년 1월 1일 중국 호남성 장사시에서 태어났다. 1968년 초급 중학교 졸업 후 호남성 멱라현에 하방되어 강제 노동에 종사했으며, 1974년부터 현의 문화관에서 일했다. 1978년 호남사범대학 중문과에 합격해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았다. 1981년 첫 번째 소설집 『월란』을 출간하였고, 이후 전국 우수 단편소설상을 수상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다」를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5년 《작가》에 「문학의 뿌리」라는 글을 발표하여 이른바 ‘심근 문학’을 주창하였으며, 같은 해 호남성 작가협회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87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번역했고, 1988년에 해남성으로 내려가 《해남기실》 주편, 《천애》 잡지사 사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대부터는 「성전과 유희」, 「성이상적 미실」, 「세계」 등의 글을 발표하며 소비 시대의 여러 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는 문화 비평가로 활동했다. 1996년 ‘심근 문학’과 제3세계 문학의 영향하에서 자신의 창작 방법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의 결과물로 장편소설 『마교 사전』을 발표했다. 2002년에는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문예 기사 작위를 받았고, 수필집 『산남수북』으로 2007년 루쉰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유혹』, 『빈 성』, 『모살』 등이 있다. 현재 그는 창작과 문화 비평 이외에도 해남성 문협 주석으로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위화, 모옌과 더불어 현대 중국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는 매년 중국 소설학회가 선정하는 우수 소설 일순위에 오르며, 가오싱젠 이후 중국의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