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식구를 내 편으로 만든 이야기
꿀 같은 신혼 생활의 첫번째 조건. 시댁 식구와의 갈등이 없어야 한다는 것! 여기 지혜로운 선배 주부들의 `시댁식구 내 편으로 만든 이야기`를 듣고 참고하세요~
case 1. 나의 장기와 능력을 100% 어필했어요
결혼 전 증권회사에서 일했던 나. 증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편이고, 안전 위주의 투자를 하다 보니 큰 이익은 없지만, 비자금 정도는 스스로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환갑이 넘으신 나이에도 시아버지께 용돈을 타 쓰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게 됐다. 비자금을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평생 살림을 아껴 모으신 금액이 1천만원 정도 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주식 투자를 도와드리겠다고 제안했다.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아 하셨지만 조금씩 불어나는 저축액에 지금은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시는 어머님. 함께 비자금을 챙기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시어머니와 함께 증권회사에도 다니고, 신문이나 tv에 나온 정보를 교환하다 보니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지가 되어 버렸다.
case 2. 배우고, 가르치고…필요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세요
우리 시어머님의 별명은 신세대 멋쟁이. 매일 아침 수영을 하시고, 주말에는 친구분들과 등산을 다니시는 것은 물론 운전면허도 10년 전에 따셨을 만큼 적극적이고 활동적이시다. 그러던 어머님에게 얼마 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을 해보다는 것. "모든 사람이 인터넷, 인터넷 하는데, 이제는 인터넷을 모르면 까막눈 아니냐?"하시며, 여성복지회관에서 교육하는 컴퓨터 강좌에도 나가시고 열심히 공부를 하셨다. 그러나 평생 처음 대하는 컴퓨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으신지 고생을 많이 하시는 눈치였다. 눈치 빠른 이 며느리, 주말마다 시댁으로 가 보충 교육을 해 드렸더니 어느날 날아온 이메일 한 통. "네 덕분에 이렇게 컴퓨터로 편지를 쓰게 되었구나, 고맙다…" 그 후로 나와 시어머님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고부간의 정을 쌓아가고 있다.
case 3 곰보다는 여우짓!
연애할 때부터 남편에게 들은 시아버님은 가부장적이면서도 엄격한 모습이었다. 집안 일은 당연히 여자가 하고, 남자는 과묵하고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게 시아버지의 신조라나? 나도 모르게 시아버님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서로 결혼 말이 오가면서는 내심 걱정이 많았다. 별 문제 없이 결혼식을 치렀지만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이대로 평생 시아버지 앞에서 벌벌 떨 수는 없는 노릇. 핸드폰으로 안부전화 드리기, 좋아하시는 한과 한아름 사다드리기 등 거리 좁히기에 열중하던 중 알게 된 정보 하나. 무엇보다도 고스톱을 가장 좋아하신다는 것이었다. 고스톱의 여왕이던 이 며느리의 앞날에는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시아버님과 환상의 고스톱 멤버로 엮어진 나는 그때 이후 지금까지 시어머님의 질투(?)를 한몸에 받고 있다. "얘야, 아버지가 내일 고스톱 치러 오라신다~"
case 4. 주변에 내 편을 많이 만들었어요
다른 집 시동생들은 형수를 무지무지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시동생의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혼했다. 남편과 중매로 만나 6개월만에 결혼했는데, 그사이 시동생은 열심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기 때문. 결혼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제대한 시동생과의 관계가 어찌 그리 서먹하던지… 생각 끝에 나는 복학한 시동생과 대학 후배들과의 미팅을 주선하기 시작했다. 과 후배, 동아리 후배, 친구 동생 등 모든 인맥을 동원해 노력한 결과 시동생은 나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평소 내가 아끼던 후배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진 후로는 거의 구세주를 대하듯 한다는 기쁜 사실. 아직 학생인 두 사람에게 물질적인 지원까지 아끼지 않는 나.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평생 큰소리 뻥뻥 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case 5. 깍듯하게 존대하면 세상이 다 편하답니다
남편과 나는 대학 1학년 때 만나 9년간의 연애 끝에 지난 해 결혼했다. 남편은 3형제 중 둘째. 두살 터울의 형보다 우리가 먼저 결혼식을 올렸고 시아주버님은 얼마 전 맞선을 보고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시아주버님의 결혼 상대가 나보다 3살이나 어렸던 것. 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평생 나이어린 형님을 모셔야 한다니 화도 나고, 손위동서라며 대우받기만 원하는 깍쟁이면 어떡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맡은 일 잘 하고, 나만 예의바르면 문제 없으리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형님과의 첫 상견례날,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앞으로 깍듯이 형님으로 모실께요~"라고… 다행히도 우리 형님은 내가 존대하는 것 조차 얼굴 붉힐 정도로 순둥 타입이었다. 동서라고 부르긴 하지만 모든 면에서 선배 대접을 해주는 형님.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며 우애를 나누는 우리는 다들 부러워하는 동서지간이 되었다.
case 6. 선물 싫다 할 사람 세상에 없어요!
우리 집안은 시댁을 중심으로 전방 1km 이내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손위 시누이와 막내인 우리는 아예 같은 빌라의 2, 3층에 나란히 살고 있다. 빌라가 시아버지 소유이기 때문에 싼 가격에 전세를 들어 살고 있는 것. 처음 결혼해서는 왠지 부담스럽고 눈치가 보였지만 생활해 갈수록 시누이한테서 여러 가지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마움도 표시하고, 좀더 잘 지내보겠다 생각한 나는 시누이의 결혼 기념일날, 평소 시누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표를 사서 선물했다. 그리고 그날 하루만큼은 베이비 시터가 되어 조카들을 열심히 돌보았다. 센스 만점 며느리로 확실하게 인정받은 것은 당연한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