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골목] <11> 헝가리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100년 넘은 전통시장이 이렇게 웅장하고 우아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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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장한 지 116년 된 헝가리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우리의 개념으로는 도대체 시장처럼 보이지 않을만큼 건물 외관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이랑주 씨 제공 |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3시간을 달려 헝가리 부다페스트 동역에 도착했다.
동역에서 예약해 놓은 민박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키 큰 유럽인들이 타기에 지하철 입구는 너무 좁고 천정이 낮았다.
장난감 기차 같았다.
정말 사람이 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지만 우리는 목적지까지 잘 도착했다.
■김치는 참을 수 없는 유혹
우리 부부는 여행을 시작했을 때 한 가지를 약속했다.
가능하면 교포들이 운영하는 숙소는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교포 숙소가 가장 편하겠지만 그곳에서 그 나라 문화를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겠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현지인 숙소만을 일부러 찾았다.
하지만 식습관은 의지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6개월을 잘 버텼는데, 어느날 꿈에 김치가 나타나면서 이에 대한 갈망이 매일 더 깊어졌다.
김치가 아니라, 김치찌개 한 숟가락만 떠 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감기로 몸이 아프거나 여독에 시달릴 때면 더 그랬다.
그 갈망이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 우리는 아침을 한식으로 제공하는 민박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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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얼굴 모양의 양파피클. |
■ 육개장 닮은 '굴라시' 전통음식
민박집 아저씨는 여행코스까지 친절하게 짜주었고
헝가리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과 봐야 할 장소도 알려주었다.
세계여행 이후 한국어로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한 것도 처음이었다.
부부간 대화를 빼고….
특히 그 아저씨가 추천한 품목 중에는 '굴라시'라는 헝가리 전통음식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색깔이 비슷한 토마토 수프였다.
물론 매운 맛은 없었다.
굴라시는 양치기가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다.
'목동'을 뜻하는 단어로 쇠고기, 양파, 감자, 파프리카가 들어 있다.
굴라시를 먹고 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기 위해 '시체니 다리' 앞으로 갔다.
시체니 다리는 2010년 한국 영화 '아이리스'의 배경이 된 곳으로, 여주인공인 승희(김태희 분)가 이곳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했다.
시체니 다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부다와 페스트, 두 도시를 잊는 상징적인 교량으로 의미가 더 크다.
다리를 기준으로 서쪽을 부다, 동쪽을 페스트지역으로 나눈다.
■ 아버지 임종 지켜보지 못하고
부다는 귀족과 부호의 영역이고, 페스트는 상인의 활동무대였다.
19세기 후반에야 두 도시가 합쳐지면서 지금의 부다페스트가 됐다.
그 유래를 들어보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부다에 살고있던 부호 시체니 백작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새벽에 페스트에 살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배를 타고 페스트지역으로 가려 했지만 불어난 강물로 배가 떠나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백작은 그 일을 계기로 지금의 시체니 다리를 완성시켰다.
일몰을 보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서 부다페스트 시내로 향했다.
남포동이나 서면과 비슷한 바찌거리는 부다페스트 최대의 번화가다.
이곳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끝부분에 부다페스트 최고의 전통시장인 부다페스트중앙시장을 만나게 된다.
■ 개장 100년 훌쩍 넘은 중앙시장
1897년 개장한 중앙시장은 전통시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웅장하고 우아했다.
겉모습으로는 결코 시장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로, 1층은 고기, 야채, 빵, 초콜릿, 향신료, 헝가리 술(토커이와인, 벌린커), 캐비어 등을 팔고, 2층과 3층에서는 옷, 액세서리, 그릇, 음식 등을 판매했다.
하지만 이들 상점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지하 1층의 헝가리 김치가게들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김치와는 달랐다.
이른바 피클이라는 김치로, 헝가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끼니마다 이를 먹는다고 했다.
■ 피클 하나에도 혼 담은 장인정신
피클은 맛있다는 표현에 앞서 '예뻤다'란 말이 더 어울렸다.
그만큼 디자인을 중시했다.
양파피클에 고추를 잘라 사람얼굴의 미소를 만들고, 후추로 눈을, 파프리카로
머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 같은 미소피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통에는 코 큰 아저씨, 튤립 혹은 나비 모양의 피클이 잔뜩 담겼다.
피클 하나에도 혼을 담는다는 헝가리 피클상인들의 상술이 감동적이었다.
우리도 좀 더 친근한 모양의 김치로 세계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을 위한 소포장 미소양파피클을 하나 맛보았다.
피클의 눈을 빼 먹을 땐 약간 미안했지만, 먹는 내내 행복감이 들었다.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