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체포 _정몽주
臨路翬飛起小亭 (임로휘비기소정)
길가에 날아갈 듯한 처마의 작은 정자 세우고
官家置簿又留兵 (관가치부우류병)
관청에서 장부 비치하고 병사도 주둔시켰네.
一封遠至金鈴響 (일봉원지금령향)
문서 한 통이 멀리서 이르면 금방울이 울리는데
十里相望雪脊明 (십리상망설척명)
십 리 간에 마주 보며 흰 등마루 밝구나.
走布上恩頒縣邑 (주포상은반현읍)
달려가서 주상의 은혜를 현읍마다 반포하고
又傳邊報達京城 (우전변보달경성)
또 전해 받은 변방의 경보를 경성으로 배달한다. * 전달할 달
盛朝政令流行速 (성조정령유행속)
성세의 나라 정령은 베풀어 행함이 빨랐기에
四海如今見太平 (사해여금견태평)
천하가 지금같이 태평성대 되었네.
* 急遞鋪: 각 역에 준비된 驛馬를 교대로 갈아타고 이어 달리게 하여 급한 공문서를
먼 데까지 빨리 전하던 제도. 元나라의 제도를 본떠 만든 것이다.
10리에서 25리 마다 鋪 하나를 설치하였고, 각 포마다 鋪司 1인과 鋪兵 4~10인을 두었다.
* 翬飛: 꿩이 훨훨 나는 모양. 《詩·小雅·斯干》의 “如翬斯飛”에서 나온 詩語이다.
건물의 기둥이 우뚝하고 추녀가 휘어져 멋지게 올라간 모양을 말한다.
그 모습이 마치 꿩이 양쪽 날개를 활짝 펼치고 훨훨 날아오르는 듯하다 하여 생긴 표현이다.
* 雪脊明: 눈처럼 흰 용마루가 밝다.
급체포는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게 높다란 곳에 설치하되,
지붕의 용마루에 흰 석회로 칠하였다.
* 邊報: 邊境에서 들려오는 警報.
* 盛朝: 융성한 조정.
* 政令: 정치를 행하는 법령이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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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圃隱集에 게재된 순서로 보면 "姑蘇臺"의 다음, "宿湯站"의 앞이다.
湯站은 遼東의 鳳城(鳳凰城)과 義州의 중간에 위치한 역참이니,
포은이 명에 사신으로 갔다 미처 고려 강역으로 들어오기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시기와 위치에 따라서 시에서 언급한 "上恩"과 "聖朝"가 明이 될지 高麗가 될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상 명을 칭송하는 시로 봄이 타당하다.
변방과 왕성을 잇는 주요 요지마다 설치돼 있는 急遞鋪에 대하여 그 형태와 기능,
성과를 읊으며 명나라의 盛世를 칭송하고 있다.
제7구의 "盛朝~流行"은 임금님이 德으로 정치를 펼치는 것을 칭송한 것인데, 이 구절은 《孟子》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孔子曰 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 (공자왈 덕지유행 속어치우이전명) 공자가 말하길, "덕이 세상에 널리 퍼져 행하여지면 파발마로 명령을 전하는 것보다 빠르다고 했다. 《孟子 公孫丑上 제1장》 |
急遞鋪가 초기의 형태라면, 후에는 규모가 커지고 숙식과
驛馬까지 해결하는 驛站으로 발전하였다.
시는 庚韻으로, 율격기준에 잘 부합한다.
鄭夢周 (1337 ~ 1392)
본관 迎日(옛 延日). 자 達可. 호 圃隱. 시호 文忠.
본가는 포항 烏川이며, 외가인 永川에서 태어났다.
1357년(공민왕 6) 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 藝文檢閱·수찬· 衛尉寺丞을 지냈다.
1363년 동북면도지휘사 韓邦信의 종사관으로 女眞族 토벌에 참가하였고,
1364년 典寶都監判官을 거쳐 典農寺丞· 禮曹正郞兼成均博士· 成均司藝를 지냈고,
1371년 太常少卿寶文閣應敎兼成均直講 등을 거쳐 成均司成에 올랐으며,
이듬해 正使 洪師範의 書狀官으로 明나라에 다녀왔다.
1376년(우왕 2) 成均大司成으로 李仁任 등이 주장하는 排明親元의 외교방침을 반대하다
彦陽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사신으로 일본 규슈[九州]의 장관에게
왜구의 단속을 청하여 응낙을 얻고 잡혀간 고려인 수백 명을 귀국시켰다.
1379년 典工判書· 進賢館提學· 禮儀判書· 예문관제학· 전법판서· 판도판서를 역임,
이듬해 助戰元帥가 되어 李成桂 휘하에서 왜구토벌에 참가하였다.
1383년 東北面助戰元帥로서 함경도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
다음해 政堂文學에 올라 聖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긴장상태에 있던 對明國交를 회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1386년 同知貢擧가 되고 이듬해 다시 명나라에 다녀온 뒤 水原君에 책록되었다.
1389년(창왕 1) 예문관대제학· 문하찬성사가 되어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옹립하고,
1390년(공양왕 2) 壁上三韓三重大匡· 守門下侍中· 都評議使司兵曹尙瑞寺判事·
景靈殿領事· 右文館大提學· 益陽郡忠義伯이 되었다.
이성계의 威望이 날로 높아지자 그를 추대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알고
이성계 일파를 숙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392년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黃州에 드러눕자 그 기회에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다 芳遠(太宗)의 기지로 실패하였다.
이어 정세를 엿보려고 이성계를 찾아보고 귀가하던 도중 善竹橋에서 방원의 부하
趙英珪 등에게 피살되었다.
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개성에 5부 學堂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도모했다.
그리고 성리학에도 밝아 《朱子家禮》에 따라 사회 윤리의 기반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1392년(공양왕 4)에는 고려의 기존 법률 체계와 원나라의 법률,
1367년에 새로 제정된 《大明律》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新律》을 편찬해
고려의 법률 체계를 재정비하려 했다. 나아가 외교와 군사에도 깊이 관여하여
국운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신흥세력인 이성계 일파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 〈丹心歌〉 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고려 三隱의 한 사람으로 1401년(태종 1) 영의정에 추증되고 益陽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중종 때 文廟에 배향되었고 개성의 崧陽書院 등 11개 서원에 제향하고 있다.
문집에 《圃隱集》이 있다.
[참고자료]
- 포은집(한국고전번역원. 박대현. 2018.11.20 초판발행.)
-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https://www.krpia.co.kr/
- 한국고전종합 db ---- https://db.itkc.or.kr/
[출처] 25. 急遞鋪 (급체포) _鄭夢周|작성자 맑은마음
원문=圃隱先生文集卷之一 [詩]
急遞鋪
臨路翬飛起小亭。官家置簿又留兵。
一封遠至金鈴響。十里相望雪脊明。
走布上恩頒縣邑。又傳邊報達京城。
盛朝政令流行速。四海如今見太平。
포은집 제1권. / 시(詩)
급체포〔急遞鋪〕
길가에 나는 듯한 작은 정자 서 있으니 / 臨路翬飛起小亭
관가에서 장부 두고 병사도 주둔시켰네 / 官家置簿又留兵
한 통 문서 멀리서 이르며 금방울 울리고 / 一封遠至金鈴響
십 리 간에 마주 보며 흰 용마루가 밝네 / 十里相望雪脊明
주상 은혜 빨리 펼쳐 현읍에 반포하고 / 走布上恩頒縣邑
변방 보고 또 받아서 경성에 전달하네 / 又傳邊報達京城
성조의 정령은 유행이 신속하니 / 盛朝政令流行速
천하가 지금 태평 시대를 보노라 / 四海如今見太平
[주-D001] 급체포(急遞鋪) : 금(金), 원(元), 명(明) 시대에 문서를
전송하기 위하여 설치했던 역참이다.
10리 혹은 15리 또는 25리에 포(鋪) 하나를 설치하였고,
각 포마다 포사(鋪司) 1인과 포병(鋪兵) 4~10인을 두었다.
관청의 문서가 도착하면 즉시 전달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바람에도 지체 없이 전송하였다.
[주-D002] 십 …… 밝네 : 급체포는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게
높다란 곳에 설치하고 흰 석회로 지붕을 칠했다고 한다.
[주-D003] 성조(盛朝)의 …… 신속하니 : 명나라 조정이 덕(德)으로
정치를 펼치는 것을 칭송한 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덕의 유행이 파발마로 명을 전하는 것보다 빠르다.
[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라고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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