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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24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마가복음1장1-8절)
성경말씀은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8절까지 봉독합니다.
[마가복음 1장]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여기 마가복음에 있는 대부분은 마태복음 안에 있던 내용이어서, 마태복음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복습하는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역시 모범생들은 복습을 잘하는 거죠.
들었던 얘기를 또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우리에게 진리가 다져진다고 봅니다.
마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12사도에 들지 않은, 12제자가 아니고 12사도가 아닌데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어떻게 12제자가 아닌데 기록했는가? 그런 생각하겠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처음 성령이 강림하게 되면서 어쩌면 신약의 교회가 탄생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분도 있어요.
마가 요한의 집 2층 방에서 교회가 출범한 것이 아니냐..
그 이전까지는 예수님께서 한 3년간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것이고, 정식으로 교회가 출범된 것은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성령이 끌어가시는 교회가 출범했다..
그렇게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그 집이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마가 요한이라는 사람의 집이었다 하니까 그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성경은 소상하게 기록하지 않고 일단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거기에서 드셨고, 거기에서 한 1주일간 전심으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강림하시게 되는..
그리고 처음에 거기에서 모여서 여러 가지 일이 진행되었는데, 그 이후에 그 집 2층 홀이 지속적으로 얼마만큼 사용되었는지는 찾을 길이 없어요.
그러면서 이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되는 사람이죠. 생질..
그러니까 마가 요한의 어머니가 바나바의 누나이든지 누이동생이든지 그런 입장이죠.
그래서 바나바도 아마도 70인 제자, 12제자 외에 70인 제자 그룹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찌해서 그런 구도가 생겼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아마 구약시대 같으면 12지파의 지파대표가 있는 것처럼 12사도가 있고, 70인 장로회의 이른바 산헤드린처럼 70인 회의가 있는 것처럼 그러한 모형틀에서 12제자 70인 제자 이렇게 초대교회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70인 제자 이야기도 마가복음에도 안 나오고 마태복음에도 안 나오고 요한복음에도 안 나오고, 나중에 우리가 공부할 누가복음에서만 70인 제자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마가 요한도 70인 제자에 들었느냐 하는 것은 확실히 확언할 수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런 가능성이 있겠다는 거죠.
70인 제자라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도 요한이 지도했던 사람들이 있어요.
사도 요한의 직계제자 중에 폴리캅이라든지 익나티우스라든지 파피아스라는 분이 3대 제자라고 하는데, 이 파피아스라는 분이 ‘마가가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봉사를 했다.’ 그런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그렇다면 틀림없겠죠.
그 다음에 베드로 순교전후, 순교가 있었던 전후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베드로와 순교를 만약에 67년이나 68년 그 어간에 베드로가 순교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그 때를 전후해서 한 68년에서 70년 이전, 왜냐하면 여기에도 보면 예루살렘 멸망이 미래형으로 예언형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70년 예루살렘 멸망 그 전에 기록되었는데, 베드로의 순교 직전에서 직후 어간..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보면 마가복음이 기록된 연대는 빠르게 잡으면 65년, 그리고 좀 늦게 잡으면 68년 69년 정도. 이렇게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초대교회 교부였던 이레니우스라는 초대교회 교부가 그런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짐작을 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길이가 짧습니다.
길이가 짧고 굉장히 아주 전진감 있게 박진감 있게 빨리 빨리 진행되는, 그리고 많이 요약하고 생략해버리고 아주 핵심적인 부분만 다루는 그런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어요. 읽어보면..
굉장히 이야기를 빨리 능률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한편으로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오랫동안 통역하다보니까 마가의 머리속에 그냥 다 그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짧으냐 하면 베드로의 기억력의 한계일 수 있고 베드로의 성품일 수 있어요.
어제 제가 서울 밑에 과천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 목사님이 결혼식 주례를 하는 것을 보니까, 어떻게 답답한지..
결혼식 참여해서 졸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너무 쓸데없는 말이 많은 거야. 사회할 때마다 대목마다 주저리 주저리 힘도 없는 말로..
결혼식 참여해서 졸다니.. 세상에..
그게 서울에서 인물이 안 난 이유가 말에 힘이 없어요.
여자말도 아니고 여자말은 힘이 있죠.
여자말에 남자가 움직이는데.. 이것은 여자말도 아니고 남자말도 아니고..
그런데 말이 힘이 있을려면 짧아야 돼요.
너무 주저리 주저리 길면 힘이 없다는 거야.
베드로는 아주 단순하게 투박하게 그렇게 하면서 설교를 했을 것으로 봅니다.
반면에 누가 말을 길게 하느냐?
바울이 좀 길게 해요.
바울 이야기는 정신 안 차리면 알아듣기 어려울만큼 문장이 길어요.
공부를 하면 점점 말이 길어지고 용어가 어려워져서 사람들에게 전달이 안 되어서 신학을 하면 할수록 힘이 빠져버립니다.
이런 것도 처음 듣죠?
신학은 많이 할수록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힘이 자꾸 없어져요.
그런데 공부를 안 한 사람들 보면 말이 단순하고 힘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도 어디가서 이야기 할 때 너무 길게 하지 말고 짧게 할 필요가 있어요.
마가복음은 굉장히 힘이 있는 그런 복음서인데, 보통 우리가 그냥 요한복음에 너무 취해가지고 마가복음을 예사로 무시해왔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마가복음을 보면서 굉장히 박진감 있게 기록된 책이다. 그런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딱 처음에 시작하면서,
[마가복음 1장]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여러분 이 용어가 전부 까다롭게 하면 하나님 이야기, 하나님이란 어떤 분이냐? 하고 한시간 해야 돼요.
하나님의 아들은 또 어떤 분이냐?
그 다음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있죠?
그 다음에 이름이 예수인데, 예수는 누구냐?
그리스도는 또 누구냐? 이렇게 하면 한절을 가지고 한시간 해야 돼요.
보통 그렇게 하는 교회들이 일반교회가 보통 그렇게 해요.
그러니까 나중에 다 듣고 나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요. 너무 길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알고 있고, 그 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기름부음 받은 자이시다 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리고 복음의 시작이다.
복음이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오는데, 잘 아시는 대로 마태복음에는 복음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때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주 사람들이 ‘음? 이 흉흉한 세상에 기쁜 소식이라니..’ 하면서 금방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 여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렇게 시작한 것은 굉장히 아주 우리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역시 단순하게 해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2절 3절은 조금 어쭙잖게 기록된 거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나오는 게 아니라고. 이게..
말라기 3장 1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게 오락가락 한 거죠.
그리고 3절,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것은 이사야서에서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2절 3절을 바꾸든지 했으면 좋을뻔 했는데,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하면서 말라기에 있는 말부터 인용하게 되니까 좀 그렇죠?
대개 구약성경을 정확하게 가지고 구절, 그 때는 장절이 없을 때이니까 기억하기 어려워요. 사실은..
..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그래서 요한의 세례의 성격이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다. 하고,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자, 여기 우리가 조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세례받을 때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받는 일이 별로 없죠?
이게 지금 문제라는 거야.
그래서 죄를 자복하지 않고 그냥 ‘본인이 예수님 피로 씻어야 할 죄인인 것으로 인정합니까?’ 하면, ‘예’ 그렇게 하고 어물쩡 넘어가는 거야.
반면에 어떤 교단에서는 일생 지은 죄를 다 자복해야 세례주는 데가 있어요.
그러다보면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나서 교회에서 말썽이 일어나는 거야.
그래서 상당히 삼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어떻든 침례교 계통의 어떤 교회는 세례받을 때 무슨 죄를 지었고 무슨 죄를 지었고 다 일일이 자백을 하는 그런 경우가 있고,
또 잘 아시는대로 1907년에 평양에서 성령의 불이 떨어졌던 그 때 어떤 장로님이 나와가지고 자기가 지은 죄를 자복하면서부터 막 ‘나도 죄를 지었다, 나도 무슨 죄를 지었다’ 이렇게 자백하는데, 성령이 내려오셔서 충만해졌다..
오늘 우리가 죄를 잘 자복하지 않는 것은 참 심각한 거예요.
그래서 아마도 지금 세례요한이 요단강에 들어서서 있었고, 한 사람씩 들어와서 세례받고 하는데, 사람이 물 속에 세워놓고 일생 지은 죄를 다 낱낱이 자백하면 언제 다 받겠어요?
제가 볼 때 모든 죄를 다 자복한 것 같지는 않고, 잘못 살아온 삶을 자복하지 않았겠는가..
‘사실 저는 이런 못된 짓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도둑질 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죄를 자복하면서 세례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요한을 잠깐 스케치 하는데,
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약대 털옷’이라는 것은 고급옷이 아닙니다.
우리 같으면 모피코트를 입으셨다. 이런 게 아니고 그 당시에 그 쪽에서 좋은 옷이라는 것은 세마포 옷이예요.
고운 세마포 옷이 부자가 입는 것이고, 아니면 비단옷이라든지 고운 옷이고,
약대털은 아주 천한 옷이고 질기고 오래 입고 냄새나고 그런 거죠.
..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아 고급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메뚜기’ 같은 것은 단백질 공급원이고 ‘석청’은 당질이 있고 비타민도 있겠죠.
목숨을 연명하는데는 지장이 없는 정도, 그런 정도이지 고급이 아닙니다.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냥 막연합니다. 어떤 분인지 모르겠는데,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그래서 ‘세례’ 라는 말도 자주 드리는 말씀이죠?
세례라는 게 ‘벱티조, 벱티스’라 할 때 그 말은 원래는 ‘잠긴다. 물에 잠긴다.’ 그래서 그것을 놓고 이 말 때문에 침례교가 생긴 거예요.
물을 머리에 끼얹거나 하는 것 갖고는 너무 약하다는 거야.
그래서 물에 그냥 풍덩 집어넣어야 된다.
침례교가 그래서 나온 거예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좀 침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물을 머리에 조금 끼얹으니까 그것을 별로 부담스럽지 않게 세례를 받는 거야.
물에 집어넣으면 다르게 생각해요.
생각해보고 세례받지 않겠나. 적어도..
그래서 우리 헌법에는 옛날에는 침례하면 안 되는 것처럼 물을 그저 관수리에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헌법이 바뀌어서 우리 장로교도 침례할 수 있는 것으로 헌법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얼마든지 우리 장로교회도 침례해도 누가 문제삼을 사람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제가 ‘이번 세례는 침례로 합니다.’ 한다 할 때 놀라거나 슬퍼하지 말고, ‘아 이번에는 특별이구나.’ 하고, 침례를 하되 가능하면 강 가운데 가서 들어가서 물 밑으로 들어가서 물 바깥으로 나가게.. 완전히 죽은 걸로..
정말 물에 잠겨서, 여러분 사람이 물에 잠기면 죽는 거죠.
‘옛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다.’ 그런 의미가 있는 거죠.
여러분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어요. 죽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잡아먹을려고 덤벼들던 검찰도 노무현이 죽어버리니까 ‘끝!’ 그래버리죠.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정말 물밑으로 들어가서 죽어버리면 죽은 사람은 정죄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정죄할 수 없는 이 회개의 세례라는 것을 너무 우리가 가볍게 물을 머리에 한방울 찍어버리니까 별로 옷도 안 버리고 하니까 그냥 받아놓자 젠장..
이렇게 세례를 너무 헤프게 받는 것 같아요. 받는 사람이..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혹시 제가 물론 당회에서 결정하겠습니다만 침례를 하겠다 할 때에 노여워 할 필요가 없어요.
옛 사람이 죽었다는 거예요.
세가지예요.
첫째는 ‘죄를 씻는다’ 하는 의미가 있고,
둘째는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냈다’ 하는 거예요.
셋째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다’는 거예요. 연합..
그래서 이 세가지 의미를 가지고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에 연합되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연합된다는 의미가 있고, 교회는 그 사람이 우리 교회에 연합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하는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몸처럼 돌봐야 돼요. 세례받은 사람을..
그 다음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 할 때에 우리가 옛날에 속설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 그냥 ‘주먹세례를 받았다’ 그런 말을 하죠?
뭐 그냥 ‘돌맹이 세례를 받았다’ 이런 말도 쓰잖아요.
거기에 그냥 완전히 잠겼다. 퍼부어졌다. 이런 뜻이 되는데,
연합되었다는 게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께 연합되었다.
옛 사람이 죽었고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예수님과 연합되어서 살았다 그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9절,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지난번에는 말씀드렸죠? 대관식 용어라고..
예수께서 메시야 곧 기름부음 받은 자 이신 것을 여기에서 확실히 보증하시는 건데, 여기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물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고..
그래서 여기에 보면 삼위가 함께 나타나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에,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굉장히 짧게 쓰는데,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 넣으셨어요.
여러분 우리 중에 신앙생활 하시는 가운데 완전 광야로 내몰리듯이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마음에 어떤 다짐을 하거나 아니면 서약을 하거나 했는데, 곧바로 만사형통 되는 게 아니라 만사 불통이고 완전 광야로 내몰리고 그런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에 훈련하고 시험하고 연단한다고 생각해야 될텐데, 거꾸로 생각하면 예수 믿고 나서 얼마 안 가서 믿고 세례받고 정상적으로 믿겠다는데 바로 광야로 내몰려서 어려움 당하는 수가 있어요.
잊지 말아야 돼요.
예수 안 믿을 때는 세상 만사가 다 편안 했는데, 예수 믿고 나서 이렇게 힘들어졌다.
그게 정상입니다.
저도 예수님 믿기 전에는 잘 나갔거든요.
돈만 못 벌었다 뿐이지 범사에 제가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예수 믿고 나니까 돈 못 버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다가 전도사가 되어 나가니까 한달에 봉급이 5천원이야.
세 식구가 살아가야 하는데, 5천원이 뭐야?
그 때 공무원들이 그 당시에 30여 년 전인데, 공무원이 면사무소의 직원이 초봉이 13만원 17만원 이렇게 할 때인데, 전도사가 되어서 한달에 5천원을 준거야.
그야말로 광야죠. 광야..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요.
그리고 친구들 내가 버렸죠. 차라리.. 그 사람들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버리고 떠났으니까..
부모님들 아예 우리집에 발도 안 대었죠.
친구도 없고 부모 형제도 내가 떠나버리고 그야말로 광야처럼 된 거야.
그래서 저는 다 커서 믿었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형제도 자매도 친구도 교우도 아무도 없는 거야.
저를 이렇게 밀어주고 후원해주고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광야에 가서 예배당도 없는 거야.
예배당도 없는 곳에 가서 개척하러 부임을 한 거야. 시골에..
80세 넘은 할머니 혼자 성냥통 만한 함석지붕으로 된 예배당을 쓸고 닦고 있는 그런 곳에 갔는데, 가족도 우리 집사람도 안 따라온대요.
제가 전도사로 갔는데 ‘갈려면 당신이나 가라. 나는 못 간다.’는 거야.
‘사명 받았으면 당신이 받았지, 내가 받았나?’ 하면서 안 따라온대.
그래서 저 혼자 갔어요.
큰 방에는 할머니가 자고, 저는 작은 방에서 자는데 흙으로 된 벽에다가 벽지를 얼마나 여러 번 발랐든지 두꺼워져서 바람불면 떨어져나와요.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흙냄새가 물씬 나는데..
할머니가 밥을 해주는데 하여튼 온 동네 파리가 와서 다 뽀뽀를 해가지고 파리가 아예 침을 질질 흘려. 내가 볼 때..
밥을 다 빨아먹고 고갱이만 남은 거야. 보리밥이..
이것을 먹어야 되는가 하면서 그때부터 금식을 했어요.
그 때 제 나이가 28살쯤 되었을 때인데 한창 먹을 때인데, 먹어도 배가 고플텐데 얼마나 못 먹었으니까..
그 때 제게는 정말 광야중에 광야였어요.
그래도 포기하거나 절망하거나 비관하거나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따라갈려고 할 때 결단했을 때 예수님도 광야가 있는데, 우리도 있죠.
사도바울도 광야가 있었어요.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예수님도 40일간 광야에 있었다는 것은 완전히 세상적인 것을 포기한 겁니다.
하나님의 길을 갈려고 할 때 세상적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되는 그런 과정이 있었다는 거야.
혹시 우리 젊은 분들 중에 앞으로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했는데 이런 광야같은 삶이 다가왔을 때 슬퍼하거나 포기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예수님도 광야가 있었다는 거예요.
개인적인 얘기를 할려면 끝이 없어서 지나갑니다.
14절에 바로 세례요한이 잡혔어요.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또 복음이 나왔죠.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 ‘때가 찼고’할 때, ‘때’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때가 아닙니다.
날마다 오는 그런 때가 아니고, 여기에서 ‘때’라는 말이 ‘카이로스’라는 때인데, 24시간 1년 365일 쭉 흘러가는 것은 ‘크로노스’라는 시간이 있고, 크로노스라는 시간 안에 하나님의 때가 영원에서 시간 속으로 ‘카이로스’ 하나님의 때가 침투해 들어오듯이 하나님의 때가 됐다는 거예요.
그 때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가 울고 불고 보채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때를 바라보고 인내하고 믿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님의 때가 찼고,
..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회개’라는 말만해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회개, 영어로는 리펜턴스(repentance)로 번역을 했는데,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야 돼요.
여태까지 세상에서 살아오던 그런 마음과 생각으로는 안 되고,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확 완전히 메타노이아 완전히 초월해서 바꿔 버려야 돼요.
제가 볼 때 교회 다니면서도 세상에서 살아오던 그 방식 그대로 고집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 안 돼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돼요. 생각을 바꾸어야 돼요.
목적도 바꾸고 삶의 목적, 삶의 방식 전체가 달라져야 돼요.
특히 어떤 죄와 악을, 욕심을 위해서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서 죄와 악을 행하던 것 있으면 바로 그날로 잘라야 됩니다.
그것을 중단하고 복음을 믿어야지, 그것 계속 하면서 죄와 악을 계속 연장하면서 낮에는 죄짓고 밤에 와서 또 회개하고 자복하고 이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 밖에 아닙니다.
잘못된 것 같으면 잘라버려야 돼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게 베드로가 나중에 사도행전 공부할 때 또다시 나올 얘긴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래서 요한의 회개의 세례가 먼저이고, 그 뒤에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오늘 교회들이 하는 것을 보면, ‘회개하고’ 라는 말은 거의 다 무시해버리고, 그냥 무조건 믿으라 믿으라 해가지고 무조건 성령 불로 불로 그러고..
아주 잘못된 거예요.
반드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 부분은 사도행전에 가서 베드로 설교를 들을 때 다시 한번 더 짚고 넘어갈 겁니다.
16절,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제가 전에 남해 혹은 거제도 혹은 한산도 호두섬 이런 데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했던 적이 있는데, 제가 보시는 대로 설교나 제가 사경회 한다고 해서 고함지르는 것 없습니다.
조용조용 이야기 하니까 그 교회 담임 교역자가 뭐라고 하느냐?
첫시간 끝나고 나서 ‘목사님 그런 식으로 이 사람들에게 말하면 다 좁니다.’ 그러는 거야..
무슨 말이냐 하면 여기는 고함을 냅다 질러야 된다는 거야.
배에서 살다보니까 어떤 경우는 선원들 중에 자기 아버지가 있는데 ‘이놈의 새끼들!’ 그런 다고 해요. 뱃사람들이..
거친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조용조용히 말하면 다 누워자니까 좀 세게 외치라는 거예요.
내가 제일 못하는 게 세게 외치는 건데..
아마도 처음에 갈릴리 사람들 투박한 그런 성품의 소유자 하면 대표적으로 베드로 아니겠어요? 베드로..
놀랍게도 이 남해 출신들 거제 출신들 섬 사람들 바닷가 출신들 이런 분들 중에 인물들이 나와요.
거친 파도와 싸우는 어떤 사나이 기질이라든지..
맨날 시멘트 콘크리트 아스팔트 아파트 데파트 이런 데에서는 인물이 안 나는 거야.
그래서 대개 거제도 그런 데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나온다든지..
저 목포나 이런 데에서 용팔이라든지..
거칠게 터졌다 하면 부마 사태가 터져야 사건이 해결되죠.
이런 식으로 바닷가 아니면 섬 사람들이 강해요.
도시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돼요.
서울 사람들 중에서 큰 일 하는 사람 잘 안나와요.
항상 보면 경상도 보리문댕이 큰일 저지르는 거죠.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 가서 12사도 택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이 갈릴리 호숫가에 어부를 택했는데, 그 중에 제일 먼저 부른 게 베드로 안드레죠.
18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여러분 이 마가복음 1장 안에 ‘곧’ 하는 말이 10번인가 나와요.
‘유두스’라는 말이 ‘곧 하고 곧 하고 곧 곧..’
뭐든지 곧 이렇게 역사가 일어나는 그런 스타일인데, 곧 그물을 버려두고 쫓으니라.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곧 응답해야지, 질질 끌고 애먹이는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 못해요.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렇죠? 또 ‘곧’ 하고 나오죠.
..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두 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두 가지 사람이 있는 거예요. 크게..
첫째는 자기가 하던 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가서 예수님의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 중에 하나겠죠.
제가 하던 일이 있거든요. 꽤 많았어요. 일이..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어요.
그런데 그것을 다 버렸습니다. 다 버리고 주를 따라가야 할 사람이 있어요.
반면에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다 그런 것 없습니다. 두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21절,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여러분 예수님의 교훈과 서기관들 교훈이 어떻게 차이 나느냐?
그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은 끝없이 해석에 해석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해가지고 과잉해석하는 거야.
보통 오늘 기성교회와 비슷한 건데, 성경 한절 가지고 온갖 말장난을 해가지고 힘이 하나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주 권세있는 자와 같이 짧게 그리고 힘있게, 진리 그 자체를 말씀하시는 거야. 다른 거죠.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여러분 이 귀신들이 안대요. 뭘 자꾸..
그렇죠? 뭘 안다하는데..
안다고 하면서 너무 많이 알아가지고 점쟁이 되는 거야.
그래서 자꾸 뭘 알아 맞힌다 이런 것 참 위험합니다.
항상 귀신들은 뭘 안대..
또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제일 먼저 알아본 게 귀신이야.
아직도 제자들도 잘 모르는데 귀신은 보자마자 귀신같이 알죠.
바로 그냥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그 때,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여러분 귀신과 괜히 오래 상담해봐야 남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잠잠하고 나와!’
귀신들에게 물어봐야 그 대답이 믿을만한 대답이 없으니까 그냥 ‘잠잠하고 나와라!’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중에 제일 먼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게 귀신이 쫓겨나는 거예요.
오늘 교회가 진리를 가지고 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 귀신이 나가야 됩니다.
우리는 어릴 때 어렴풋이 듣기를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귀신이 꼼짝을 못한다.’ 그런 말을 들었어요.
교회 안 나가도 들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믿는데 기독교인은 안 믿는 것 같아요. 놀랍게도..
여러분 귀신을 쫓아내는데 목사가 되어야 쫓아내는 것 아닙니다.
제가 보니까 목사도 전혀 쫓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야.
언제 귀신이 쫓겨나느냐? 초신자때..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귀신아 나가라’ 해 보세요.
길게 말할 것도 없어. 잠잠하고 나와라.
저는 처음으로 연습으로 했는데 나가더라고..
어제도 제가 귀신 쫓아낸 질녀를 만났는데, 지금 물어보니까 54살이나 되었다고 해요.
장질려죠. 큰형님의 큰딸이니까..
그 여자 아이가 중학생 때에 괜히 궁시렁 궁시렁 말이 많고 불평과 원망과 얼굴에 항상 어두운 그늘이 있었어요.
그리고 허리가 자꾸 아프대..
지가 애도 안 낳았는데 왜 허리가 아프겠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내가 시덥잖아서 ‘아무래도 너 속에 이상한 게 있는 것 같다..’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예수님 이름으로 너 속에 귀신을 쫓아내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그래서 ‘이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하니까 ‘나갈께.’ 하는 거야.
내가 놀랬잖아요. 나는 연습으로 한 건데..
진짜 초신자때 그랬어요.
그러고 나서 밝아져서 지금까지 아무 변함없이 신앙생활 잘 해요.
부산에 사직동 교회에 나가는데..
그래서 그 때부터 귀신이 우리가 굉장한 능력을 받아야 나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 이름에 권세가 있는 것이구나..
단순한 믿음에 그런 권세가 있는 거예요.
그냥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힘이 없어요. 보니까..
박력도 없고 믿음도 없고 오래 믿을수록 힘이 없어요.
우리가 처음 단순한 믿음일 때 그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어린 아이처럼 단순할 때..
..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여러분 소문이라는 것은 굉장히 빠르게 퍼집니다.
아침에 제가 집에서 출발할 때 못봤는데, 지금 여기 교회에 와서 보니까 우리 홈페이지에 파라과이, 여러분 파라과이가 어디에 있는 줄 아세요?
우리 한국에서 그냥 큰 드릴을 가지고 지구를 확 뚫으면 파라과이 그 근방이 나와요. 남미 저 우리나라 정 반대편이예요.
그런데 선교사로 갈 때 누가 보나마나 불법 CD겠죠. 하나 주더래요.
그래서 안듣고 있었는데, 현장에 가서 보니까 기가 막히는 거야. 답답하고 아무 것도 아는 게 없고..
뭐 거기가서 배울 때도 없고 그래서 읽어보고 들어보고 하다가 큰 충격을 받고, 우리 홈페이지에 글이 올라와 있어요. 파라과이 선교사의 글이..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진리가 살아있는 진리이기만 하면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안 퍼지는 소문이 있어요.
그게 예수님 믿는 복음은 참 잘 안 퍼져요.
2천년 되었는데, 아직도 이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니까..
그래서 저는 볼 때 들을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고 깨닫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참 복이 있는 거야.
지구 반대편에서도 듣는데, 못 듣는 사람은 우리 교회에 앉아서도 못 듣는 사람이 있다니까.. 여기에서도..
지난번에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부산에서 성경강좌에 오는 한 자매가 18번째 왔대요.
17번째 18번째 올 때까지 안 들렸대요. 하나님 말씀이..
제가 그것을 기적이라고 했어요.
어떻게 앉아 있는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17번 18번 들었는데 안 들렸는가..
더 기적인 게 안 들렸으면 왜 옵니까? 안들리면 그만 두지..
그런데 17번 18번 와서 그 때에야 들리기 시작한다는 거야.
이제 들린다는 거야.
그래서 결론은 ‘아 이것은 하나님이 그 자매를 붙드심이로다.’ 그렇죠?
하나님께서 들을 때까지 끌고 다닌 것 같아요.
그 얼마나 하나님이 애가 탔겠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요즈음도 계속 생각을 바꾸고 있어요.
나는 한번만 하면 뻥 뚫리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17번 씩이나..
제가 강원도에 어떤 목사님이 7번째 와가지고 알아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 속담이 틀린 게 아니야. 10번은 찍어야 돼요. 그렇죠?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분은 한번만 듣고 뻥 뚫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제가 제일 충격받은 게 17번 18번 와서 들리고 열렸다..
지금도 그 사람 때문에 가슴이 아주 짠 해요. 야 이게 참 사람 애먹이는 사람도 있구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지방에 퍼지니라..
29 회당에서 나와 곧,
또 ‘곧’이죠. 28절에도 곧, 29절에도 곧, 30절에도 곧.. 계속 곧이죠.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이 병고치시는 것을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고, 어떤 경우는 손을 잡고 일으키시니까 그냥 병이 낫는 거예요.
어떤 경우는 침을 퇘 해가지고 흙에다가 침을 뱉어요.
의사들이 보면 질겁하겠죠.
가뜩이나 눈이 안 좋은데, 흙에 침을 뱉어서 눈에 발라서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는 거예요.
바르지 말고 씻지 말지 그래..
예수님이 그냥 고칠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한 게 있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가시지 않고 원격으로 그냥 왕의 신하의 병을 고치는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가다가 예수님께서 편히 가라 했는데, 가는 도중에서 10명의 나병환자가 나은 것이 있어요. 그렇죠?
어떤 사람은 손을 대시며 나병환자 손을 대면 안 되는 건데,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니까 예수님 하신 방법이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녜요.
그래서 예수님 하시는 방법을 여러 가지 다 봐야지 한개만 보고 그것 고집하면 안 돼요.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병자 따로 있고 귀신들린 자 따로 있어요.
두가지가 한꺼번에 귀신들린 병자도 있어요.
33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에는 맨 먼저 귀신이 쫓겨나가는 역사와 병이 낫는다. 이것이 원시복음이예요.
원초적 복음, 원시복음에는 예수님께 나가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그리고 병에서 놓이고 강건하게 된다. 자유하게 된다. 그리고 죄사함 받게 된다.
이런 것이 원시복음이었어요.
35절,
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얼마나 사람들이 모여드는지 새벽기도 끝나자 사람들이 몰려와요.
38절에,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자, 거기 38절은 제가 아주 강조하는 구절인데, 거기 줄을 그으세요.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지금부터 84년 85년 정도면 25년 전쯤 되었죠?
25년 전쯤인데, 진주에서 대학생들이 모이는 곳이예요.
SFC라고 들어보셨나요?
거기에 어떤 목회를 하지 않은 목사님이 있었어요.
나는 목사님은 다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하는 줄 알았는데, 목사님인데 일반 목회를 하지 않고 SFC라는 학생들만 지도하는 그런 분이 있었어요.
보니까 우리 고향 후배예요.
고향 산청 초등학교 출신이고 우리 후배인데 강영순 목사님이라고 부인이 약사예요. 약국을 하는데, 약국에서 돈벌잖아요.
버는데 그 돈번 것을 가지고 남편되는 이 강영순 목사님은 학생들에게 다 퍼먹이고 그 학생들 가르치고 이렇게 하는 거야.
거기에 제가 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할 때 본문이 38절이예요.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 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우리가 맨날 예배당 안에만 갇혀있지 말고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하시는 주의 음성을 진작 들었는데, 우리 한국교회는 벌써 한국 전체가 복음와 되었을 것이다.
맨날 천날 예배당 안에 갇혀 있으니까 한국교회가 이 모양 아니냐..
지금은 열정이 있는데, 그때는 대단했죠.
그래서 거기 대학생들은 철이 없으니까 못 알아들었지만, 그 강영순 목사님은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런 말이 있는 줄 몰랐대.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 하는 말씀을 한번도 생각을 못해봤다는 거야.
그래서 제가 돌아오고 난 후에 그 강영순 목사님이 자기가 지도하던 학생들을 몇사람씩 팀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어가지고 교회 없는 마을에 주일마다 파송한 거야.
정자나무 밑에서 아이들 불러가지고 전도하고 어른들 만나서 인사하고, 이렇게 복음을 전해가지고 그래서 그 활동을 자꾸 확산시켜가지고 선교회를 만들었는데, ‘서부경남 선교동지회’예요.
이 마가복음 1장 38절,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지금 사람들이 막 몰려오는데, 몰려오고 병고치러 오는 이런 것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내가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서 왔노라.
이 말씀 때문에 서부경남 선교동지회가 생겼고, 그 서부경남 선교동지회가 나중에 커서 활동을 많이 해가지고 지금 진주에 있는 복음병원을 그 서부경남 선교동지회에서 몇 사람이 마음을 모아 만든 거예요.
그리고 꽤 많은 교회가 개척되었어요.
그 서부경남 선교동지회 때문에..
왜냐하면 그 때 우리가 ‘지리산 선교동지회’가 있었거든요.
지리산 선교동지회의 표어는 ‘가든지 보내든지’ 이것이 표어였고, 그 서부경남 선교 동지회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이것이 표어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여러 인물들이 배출이 있었는데, 최근에 저와 교제가 잘 안되고 있어요.
제가 여기 와버렸으니까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어떻든 교회가 다시 발견해야 될 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
제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 권사님 중에 한분이 함안에 가서 샤론교회라고 하면서 모임을 갖잖아요.
그 정신이 뭐냐?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여기에서 가득차가지고 하나님 말씀 듣는 것 참 감사해요.
그런데 맨날 예배당 안에 갇혀있다면 곤란하다는 거야.
어느 정도 배워서 실력이 생기면 얼마든지 혼자가면 힘들죠.
한 두가정이나 세가정쯤 해가지고 가까운 다른 마을들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여기에서 이 예배당 안에 있는 사람들만 샤론교회로 생각하지 않고, 거기 가까운 마을들로 가서 예배하는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 거기에서 몇 사람이 모였었다. 하고 거기도 샤론교회 예요.
샤론평야가 굉장히 넓어요.
저 가이사랴부터 해가지고 밑에 욥바까지 쭉 펼쳐진 전체가 샤론평야이기 때문에 우리 샤론교회는 굉장히 넓습니다.
울산에서 시작해가지고 광양까지 전부 다 우리나라 동남 해안 쪽의 평야가 다 샤론평야 이니까..
거기에서 모여서 흩어져서, 모이고 흩어지고 복음 전하면 다 샤론교회라고 할테니까..
우리 교회에 오면 좋고 안 오면 더 좋고..
다 성장하고 장성하면 여기오면 좋고 안 오면 더 좋고..
흩어져서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는 거예요.
제가 진작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들인데, 참 사람들이 용기를 잘 못 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우리 교회에 오시겠다하면 감사한 일이고, 가시는 것은 여비해서 보내 드려야돼요.
가까운 다른 마을들로 가는 것이니까..
이게 우리 선교부에서 부단히 추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여러분 그렇게 전도하러 가서 믿음을 가지고 가면 틀림없이 여러분 앞에 귀신이 쫓겨나는 것부터 나타나요. 역사가..
믿음없이 그냥 앉아있으니까 안 나가지..
정말 믿음을 가지고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교회 없는 곳에 가서 일 하다보면 귀신들이 쫓겨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40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42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병 나았으면 묶어 매지 말고 보내야 돼요. 집으로..
기도원 같으면 안 보내고 묶어놔요.
그 조직에 얽어매어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곧 집으로 보내야 됩니다.
44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이것은 레위기 14장 2절에서 32절까지 보면, 나병이 나았을 때 어떤 절차로 결례를 행하고 공동체에 다시 영접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절차가 있었는데, 그대로 하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했는데,
45절,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예수님의 사역이 단지 병고치는 데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병이 나았다하면 온 이스라엘 땅에 나병환자가 전부 나와서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야.
그것은 참 안타까우니까 예수님이 고쳐주시고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지,
단지 병 고치는 그 일에만 매이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서 피하시고 아무 말 말라하시고 그렇게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소문, 그러니까 초대교회의 어떤 귀신이 쫓겨나고 이적이 일어나는 것은 초대교회 종소리였다. 그런 말이 있어요.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종소리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무엇으로 모이게 하느냐?
‘병자가 나았다. 귀신이 나갔다.’ 하는 이적의 소문이 초대교회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종소리와 같았다. 하는 해석도 있는데,
오늘도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단순히 믿고 영적인 안목이 열려지고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가 낫고..
이게 정상입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야 될 것을, 병원에 가면 금방 나을 것을 병원에 가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것도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약 먹는 것을 믿음 없다고 하면서..
여러분 배고플 때 먹는 약이 밥이예요.
그 밥먹는 것이나 약먹는 것이나 나중에 약에 대해서 시간나면 이야기 하고 싶은데, 여러분 약이라는 것은 하나의 양식이예요.
대부분 영양이 모자라고 불균형 되어서 낫게 하는 게 많은 거야.
실제로 우리 무슨 균을 없애는 약도 있지만, 대부분 뭐가 조금 모자라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것은 우리 몸을 속이는 것도 있어요. 속이는 약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로 약먹는 것을 믿음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배고플 때 먹는 약 짬빵’ 그러잖아요. 우리가 군에 있을 때 밥이 약이예요. 영양이니까..
수많은 약이라는 게 영양이 대부분이고, 우리가 꼭 영양 아니라도 미량요소나 이런 것들이 몸에 있는 것이니까..
약도 안 먹고 고집을 부리는 것 좋은 신앙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약으로 안 되는 게 있어요. 귀신들린 것은 약으로 안 돼요.
지구상에 있는 약을 다 가져와도 귀신 안 나갑니다.
귀신들린 것은 귀신 쫓아내고 또 영양이 부족하면 영양을 보충하고, 약 먹어야 되는 것은 약 먹고, 수술 받아야 되는 것은 수술 받는 게 좋아요.
오늘 마가복음 첫부분을 보면서 굉장히 아주 박진감 넘치게, ‘곧 이렇게 되고 곧 이렇게 되고’ 이런 말이 10번이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마가복음을 우리가 짧기 때문에 빨리 끝날텐데, 이것은 그 책의 성격 자체가 아주 박진감 있게 나가는데, 또 교육이나 설교를 너무 길게 루즈하게 끄는 것 보다는 특강없이 앞으로 쭉 그저 16장까지 나갈려고 생각을 합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예수님이 하신 일은 전도하시고, 교육하시고, 그 다음에 축사(逐邪),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치유하셨다. 하는 것으로 요약이 될 수 있습니다.
2장은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곧 예수님께서 전도하시고 교육을 하시고 또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을 치유하시면서 천국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말씀을 증거하심으로 권세있는 새 교훈이 그들에게 보여졌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샤론교회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가서 이 사람들이 와서 주의 말씀을 듣고 전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하시고, 또한 병들이 치유되며 귀신들이 쫓겨나며 우리가 맑은 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그런 복된 교회, 참 하나님 말씀을 단순히 믿고 능력으로 행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또한 우리가 예배당 안에 갇혀 있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찾아 나가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