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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바깥/박준성
저녁놀이 시퍼런 칼날처럼
거리 위로 사정없이 내려찍히는 시간.
목 꺾인 가로등들은
묵묵히 진득한 불빛을 쏟아내고 있다.
싸하게 식은 팔각정에 둘러앉은 노인들은,
쪼글쪼글한 입술로부터
뭉개진 발음들을 뱉어 수다를 만들어냈다.
틀니로 점거된 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쓴웃음.
몇 번이고 자식들과 며느리의 험담을 나눌 때면
노인들의 안면근은 환형동물처럼 꿈틀거렸다.
남들과 부대끼는 삶의 즐거움을 알기에
아무도 남보다 일찍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침묵은 그림자처럼 쉴 틈 없이 들러붙는 것.
식탁 구석에 앉혀져서 먹는
눈칫밥도 지긋지긋하고
달마다 아들 녀석에게
주름 가득 돋아난 손 뻗기도 싫다.
밤공기가 가득 따라지지 않았기에
해골처럼 선이 가느다란 노인들은
아직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실루엣만 남겨진 나무들이 뿌리는
잎사귀들은 허공에서 스산한 비명을 지른다.
우수수수수수
팔각정 바깥으로 무수히 쏟아지는 침묵.
한껏 턱을 벌리며 낄낄대는 저 노인들은
침묵마저도 하나 둘 주워 먹을 것이다.
저녁의 떠들썩한 거리로부터
침묵이 하나둘씩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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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바깥/박준성
박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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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14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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