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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와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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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1
관계 상실의 시대
영국 ‘레가툼 연구소’의 2023년 세계번영지수(The Legatum Prosperity Index)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경제’는 세계 9위입니다. 보건과 교육 수준은 모두 3위로 놀라운 성장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지수(social capital)’는 107위로 조사 대상 167개국 가운데 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국민 서로 신뢰하지 않고, 각자도생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에서는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10만 명 당 24.6명으로, 하루 평균 36.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이는 OECD 평균 자살률의 두 배입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을 제외하고 20년 넘게 매년 자살률이 OECD 가운데 1위입니다.
한국 사회 청년 고립도 사회 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고립되어 지내는 청년 수가 전체 청년 인구의 3.4%, 약 37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인간관계 버리고 쓰레기 모으고..방안에 숨은 '청춘'> (MBC 뉴스, 2022.5.24.))
이런 청년이 서울에만 13만 명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방 밖에도 안 나가, 서울판 은둔형 외톨이 13만 명> (MBC 뉴스, 2023.1.18.))
중년 남성의 고립사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어르신들의 외로움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습니다.
청소년의 자살률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18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아동, 청소년의 삶 만족도 OECD '최하위'> (EBS뉴스, 2023.4.25.))
청소년들은 외로울 때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둘레 사람이 없다는데, 이런 취약한 관계망이 극단적 선택을 쉽게 하는 이유일 겁니다.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전 국민 10명 중 1명이 고독사 고위험군일 수 있다는
추측(‘전체 국민의 최소 6.1%, 최대 11.3%가 고독사 고위험군으로 분류’ (세계일보, 2023.3.20.))이 나올 정도로
외로움이 우리 사회 큰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시대입니다. 사막처럼 건조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사막이 되어버린 도시 살이에 낙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둘레 사람과 관계·소통이 사라지며 삶의 윤기를 잃어갑니다.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지도 모릅니다.
사회복지사라면 2018년 영국에서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이 처음으로 임명된 이야기를 모르지 않을 겁니다. 영국은 ‘외로움’을 질병 수준의 문제로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국가 차원에서 이를 해결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이런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합니다.
‘외로움과의 처절한 싸움’ 英 990만 명 고통 속에서…
외로움과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6400만 명 인구 중 약 14%인 990만 명이 외로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고령화와 빈부격차로 인해 사회 및 가족과 단절, 외로움을 느끼는 독거노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에서는 지난해 ‘외로움 대응 부서’설립 등 구체적인 대응전략을 마련, 눈길을 끈다. (매일경제, 2019.2.17.)
영국 외로움 대응 부서의 구체적 내용이 궁금하여 조금 더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활동의 핵심은 친구나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정책과 서비스의 결과로 개개인의 사회적 관계가 튼튼해지는 데 뜻을 두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이와 동일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 "하루 15번 흡연만큼 해롭다" 몰랐던 외로움의 위험성 - 중앙일보, 2023.5.3.) 비베크 머시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단장에 따르면, 고립됐다는 느낌이 불안감, 우울증, 치매와 연관되고, 바이러스 감염이나 호흡기 질환에 더 취약한 상태를 만든다고 합니다. 미국도 외로움을 질병으로 보기 시작한 했습니다. 외로움은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29% 높이고, 역시 이는 매일 담배 15개비씩을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 뜻입니다. 심장병 위험도 29%, 뇌졸중 위험도 32% 커집니다. 이제 국가 차원의 대책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 지원 대책의 핵심은 예상대로 자원봉사 조직이나 스포츠·종교 모임 같은 프로그램과 대중교통*·주거·교육정책, 도서관·공원·운동장 같은 물리적 바탕을 마련하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였습니다.
* 따라서 어르신 지하철 무료 승차는 다른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르신 지하철 이용에 비용을 부과하면 분명 어르신의 외출은 줄어들 테고, 이는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겁니다. 사회적 비용은 더욱 증가할 겁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며 사람들의 외로움이 깊어졌습니다. 전체 국민 가운데 우울증 고위험군이 무려 24%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 2021년 3월 기준.)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질병으로까지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수치입니다. 우리 복지기관이 담당하는 지역사회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지역 주민이 느끼는 여러 어려움 가운데 관계의 상실로 인한 질병 수준의 외로움이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취약한 관계망’이 여러 문제의 바탕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느 예능프로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집을 정리하는 전문 청소 업체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년 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이의 마지막을 보면서 느낀 바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쓸쓸하게 떠나간 분들 집을 정리하다보면 술병 밖에 없어요. 취미 하나 정도 있었다면 삶이 달랐을 겁니다.”
(유퀴즈온더블럭 ‘특수청소전문가 김새별’ - tvN, 2020.9.)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도 선뜻 뜻 맞는 사람을 혼자 찾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다양한 만남을 주선하고 거들어줄 존재가 필요합니다. 대가 없이 오직 우정과 인정이 넘치는 사회를 열망하며 적극 나서줄 중개인이 절실합니다. 사회사업가가 그런 일을 맡아주면 좋겠습니다.
이제 외로움은 다양한 삶의 개인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감옥으로 보내집니다. 사회에서 떼어 놓는 벌을 주는 겁니다. 감옥 안에서 또 죄를 저지르면 이때는 독방에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형벌이 바로 혼자이게 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 적지 않은 사람이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모임 사회가 건강할 리 없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알려진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이 깊어진 대중이 결국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를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 상태로, 사회에 소속되지 못한 개인은 쉽게 이용당할 수 있는 맹목적 군중으로 길러진다고 했습니다.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한길사, 2006))
외로움이 깊어가는 시대, 사람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더라도 때때로 기댈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모임을 생각합니다. 들고 나기 어렵지 않은 모임, 사람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모임이 절실한 때입니다. 함께하고 싶은 주제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는 만남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습니다.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 말도 있지만, 좋은 사람과 대화는 하루 사과 한 개를 먹는 것 이상으로 건강에 좋다는 말도 있습니다.
첫댓글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형벌이 혼자이게 하는것.. (일단 저부터도) 외로움을 피하고, 관계를 주선할 수 있도록 일터나 생활에서 더욱 살펴야 할 것 같네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주명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여덟 번에 걸쳐 칼럼을 썼고,
이제 엮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