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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456(중도이폐(中道而廢))-8
혁린강은 난장판으로 변한 본영(本營)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흑풍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곳곳에 타다만 군막(軍幕)과 마차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기습(奇襲)에 대비하여 주력(主力)이나 다름없는 혈영대를 배치했다. 비록 천마공자일행에 비해 숫자는 적으나 개개인의 실력이 우수하고 좁은 협곡(峽谷)만 지키면 되니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충 보아도 군막(軍幕)의 절반이상이 잿더미로 변하고 힘들게 가져온 식량과 무기도 삼분지 일정도가 망가졌다. 혁린강은 입술을 깨물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흑풍대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군막(軍幕)으로 향했다. 반 시진정도 지나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을 쟁반에 받쳐 벽안환요가 들어왔다. 탁자에 음식들을 내려놓고 바라보니, 혁린강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었다.
“공자님!”
환요의 부름에 혁린강이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왔어요.”
“그래요. 이건 뭡니까?”
“저녁식사. 식사시간이 지났잖아요.”
“다른 분들은 드셨습니까?”
“지금 먹고 있어요. 공자님도 드세요.”
혁린강이 숟가락을 들어 밥 한술을 먹더니 환요를 바라본다.
“환요님은 드셨습니까?”
“공자님 드시면 먹어야죠.”
“기다릴게요. 환요님 것도 가져오세요.”
“괜찮아요. 먼저 드세요.”
“제가 불편하세요. 저랑 밥 먹기 싫어요.”
혁린강의 말에 환요가 눈을 흘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져올게요. 기다리세요.”
환요가 음식을 가져오자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를 끝냈다. 환요가 빈 그릇을 치우고 차를 내오자 혁린강이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피해상황은 점검해 보셨습니까?”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했던 환요의 표정이 굳어지며 잔을 내려놓았다.
“일천구의 강시들 중에서 삼백오십구 조금 넘게 돌아오지 못했고, 혈영대와 흑풍대도 일천내외 사망(死亡)한 것으로 파악됐어요.”
“부상자(負傷者)와 재물(財物)피해가 빠졌군요.”
“음! 부상자(負傷者)라고 하긴 뭐하지만 강시들 중에서 백구 이상이 망가진 상태로 왔고, 혈영대와 흑풍대도 오백이상이 전력(戰力)에서 이탈했어요. 그리고 절반정도의 군막과 삼분지 일정도의 식량과 무기가 소실(燒失)된 것으로 파악됐어요.”
“가볍지 않군요.”
“마련의 피해에 비하면 선전(善戰)했다고 평가해도 되지 않나요?”
“단순계산하면 그렇죠. 하지만 마련은 계속해서 아군(我軍)이 증원되고 있는데 반해 우린 지금 가진 것이 전부라는 겁니다. 특히 식량과 무기가 소실(小失)된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겁니다.”
“전투가 끝나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어요. 밤도 깊었고, 지금은 공자님도 쉬셔야 해요.”
환요의 말에 혁린강이 피식 웃더니 다시 찻잔을 들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미치지 않은 이상 마련도 오늘은 도발(挑發)하지 않을 것이다. 환요 말대로 모든 생각지우고 오늘 밤은 쉬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혁린강의 이런 바람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축시(1시~3시)가 지나자 대충 정리를 끝낸 배화교 무사들 대부분이 잠자리를 들었다. 그런데 적막(寂寞)을 깨고 요란한 비상종소리가 울렸다.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자고 있던 흑풍대와 혈영대가 헐레벌떡 밖으로 솟아져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무슨 일이야.”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일마(一魔)가 짜증나는 표정으로 질문하자 멀리서 흑풍대 무사가 달려왔다.
“저기........마영대가 돌아왔습니다.”
“뭐? 마영대? 확실해?”
“저쪽에 기다리고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시죠.”
일마(一魔)가 반신반의(半信半疑)한 표정으로 무사의 뒤를 따라가 보니 높은 절벽 밑에 이백정도의 무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편 시끄러운 종소리에 힘들게 잠들었던 혁린강도 깨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의자에 앉았는데 군막 밖이 시끄럽다. 누군가 떼거리로 몰려온 모양이다.
“험험~ 공자님!”
목소리를 들어보니 일마(一魔)다. 일마(一魔)까지 나선 것을 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벗어놓았던 겉옷을 걸치고 나가보니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일마(一魔) 뒤쪽으로 2명의 여자와 이백정도의 무사들이 모여 있다.
혁린강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몽환염희(夢幻艶喜)나 쌍련(雙戀)을 지켜보았기에 웬만한 색공(色功)에 내성(耐性)이 생겼는데, 지금 눈앞의 여인들을 보자마자 피가 끓어오른다. 몽환염희(夢幻艶喜)나 쌍련(雙戀)처럼 색공(色功)을 익힌 것일까?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인위적인 염기(艶氣)는 아니다.
“험험~ 누굽니까?”
“마영대가 돌아왔습니다.”
“마영대?”
깜짝 놀란 혁린강이 눈을 크게 뜨고 여인들 뒤편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꼴들이 말이 아니지만 마영대가 확실하다.
“마영대장은 어디 계시죠?”
혁린강의 물음에 하얀 수염이 가득한 노인이 해골에 가죽만 씌워놓은 무슬을 안고 나왔다. 어떻게 된 것일까? 무슬은 십대마왕보다 강하다. 중원 무림에서 마수마랑을 제외하고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는 것이다. 독(毒)에 당한 것일까? 배교의 술법에 당한 것일까? 많은 것이 궁금하지만 지켜보는 눈들이 많으니 여기서 꼬치꼬치 물어볼 수는 없다.
“무슬님을 대신하고 있는 책임자가 누구죠?”
“1조 조장입니다. 제가 마영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그래요. 잠시 기다리세요. 흑풍대장님! 계십니까?”
혁린강의 부름에 흑풍대장님 달려와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마영대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그리고 조장님이라고 하셨죠. 무슬님과 여인들 대리고 따라오세요. 아참! 일마(一魔)님은 사마(四魔)님을 모시고 함께 들어오세요.”
혁린강이 먼저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가자 일마(一魔)가 나머지 무사들을 해산시켰다. 혁린강이 차를 마시고 있으니 일마(一魔)가 무슬을 안고 있는 조장과 여인들을 대동하고 군막으로 들어왔다.
“다른 마영대는 어떻게 하셨죠?”
“흑풍대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숙소를 정해줄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하(手下)들은 해산시켰습니다.”
“잘 하셨어요. 사마(四魔)님은 언제 오시죠.”
“사람을 보냈으니 곧 달려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장님! 무슬님을 침상에 눕히세요.”
조장이 무슬을 침상에 눕히니, 혁린강이 맥을 짚어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단전이 텅 비고, 정기(精氣)가 고갈(枯渴)됐군요. 조장님! 설명해 보세요.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혁린강이 돌아보며 질문하자 조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여인들을 쳐다본다.
“이 여인들에게 물어보시는 편이 빠를 겁니다.”
혁린강이 고개를 돌려 현교자매를 바라보았다. 옷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짧은 천을 두르고 있는데, 허벅지와 쇠골이 그대로 드려나 있다. 한마디로 치부(恥部)만 가리고 있을 뿐이지 벗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들은 표정이 없다. 마치 돌로 조각한 석상(石像) 같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아무런 표정도 없는 그녀들에게 숨 막히는 염기(艶氣)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여인들이 정기(精氣)를 갈취한 겁니까?”
“오해(誤解)가 있으시군요. 우린 주인님께 순결을 빼앗겼어요. 그리고 주인님의 뜻에 따라 몸과 마음을 받쳐 모셨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말이 없던 현교가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조장님! 이 여인의 말이 사실입니까?”
혁린강의 질문에 조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린다.
“이봐! 공자님께서 물어보시잖아.”
일마(一魔)의 다그침에 조장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벽안환요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늦었어요.”
혁린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현교자매를 다시 바라본다.
“환요님! 오시자마자 죄송한데, 이 여인들 데려가셔서 살펴주세요.”
“예? 뭘 살피라는 거죠?”
“쌍련(雙戀)과의 차이점.”
“쌍련?”
환요가 의아한 표정으로 현교자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거기 두 분 따라오세요.”
현교자매가 조장을 힐끗 쳐다보고 환요를 따라 나갔다.
“조장님! 이제 말씀해 보세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혁린강이 다시 질문하자 조장이 배교에 도착해서부터 현교자매를 만난 이후의 일까지 가감 없이 이야기 했다. 조장의 설명이 끝나자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혁린강이 침상에 누워있는 무슬에게 다가가 맥을 짚어보았다.
“일마(一魔)님께서 한번 살펴보세요.”
혁린강이 자리를 비켜주자 일마(一魔)가 무슬의 맥을 짚어 보았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군요.”
“소생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아니요. 지금 죽어도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숨만 붙어있는 시체입니다.”
“조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다른 분들도 여인들과 몸을 섞었다고 하셨죠.”
“예! 저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원 전부 해당됩니다.”
“알겠습니다. 피곤하시죠. 늦었으니 조장님도 쉬세요.”
“예!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조장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혁린강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천외자를 비롯한 배교 수뇌부가 이곳에 있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다.
“마영대 전체가 요녀(妖女)들에게 정기(精氣)를 빼앗긴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일마(一魔)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혁린강이 한숨을 쉬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 내일 다시 확인해봅시다. 일마(一魔)님도 그만 돌아가서 쉬세요.”
“마영대장은 어찌 하실 겁니까?”
“그냥 두세요. 제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려가겠습니다.”
일마(一魔)가 물려가자 혁린강이 침상에 앉아 무슬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단전이 텅 비었고, 온몸에 눈곱만큼의 생기(生起)도 없다. 조장의 말을 종합해보면 기(氣)를 갈취당한 것이 분명한데, 여인들에게 색공(色功)을 익힌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벽안환요보고 살펴보라 했으니 내일쯤이면 결론이 날 것이다. 문제는 믿었던 마영대가 배교의 함정에 빠져 절반 이상이 사망(死亡)한 것으로도 모자라 나머지 절반도 어떤 상태지 모른다는 것이다.
“휴~ 되는 일이 없군.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혁린강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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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은 시간, 좁은 침상에 혼절(昏絶)한 풍운이 누워있고, 머리맡 의자에 제갈무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새벽인데, 초저녁에 혼절(昏絶)한 임은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는다.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 어깨와 허벅지의 상처가 깊다고 하나 특별한 내상은 없다. 무엇 때문에 깨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무경은 물을 적신 천으로 풍운의 얼굴을 닫아주었다.
“음~~”
풍운이 신음소리를 내며 옆으로 돌아눕는다.
“운랑! 정신이 드세요.”
무경이 조심스럽게 불려보았으나 대답이 없다. 잠꼬대를 한 모양이다. 무경은 풍운의 손을 잡고 침상에 엎드렸다. 불안하고 초조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목이 말라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군막 틈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온다. 눈을 가리기 위해 손을 올리려는데 짜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반대편 손으로 어깨를 만져보니 하얀 천이 둘둘 감겨 있고, 침상에 누군가 엎드려 있다. 잠시 생각해보니 어제 혁린형제가 물려가자 제갈무경의 품에 쓰려졌다. 날이 밝은 것을 보니 밤새도록 무경이 간호한 모양이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머리까락을 쓰다듬자 무경이 고개를 들었다.
“운랑! 정신이 드신 건가요?”
“미안! 나 때문에 고생했지.”
“고생은 무슨? 이렇게 깨어나신 것만도 고마워요.”
“저기 목이 마른데, 혹시 물 없어.”
무경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세요. 금방 가져올게요.”
무경이 밖으로 달려가자 조심스럽게 일어나 침상에 앉았다. 허벅지와 가슴이 따끔거린다. 마혼절삭이 관통(貫通)했는데 생각보다 상처가 깊지 않은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침상에서 내려왔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긴 해도 못 걸을 정도는 아니다. 침상에서 조금 떨어진 탁자로 이동하여 의자에 앉으니 무경이 물을 채운 가죽주머니와 그릇을 가지고 들어왔다.
“좀 더 쉬시지. 몸은 괜찮아요?”
무경이 그릇에 물을 따르며 질문한다. 풍운은 그릇을 받아 물을 마시더니 팔을 움직여 보았다.
“좀 불편하긴 해도 움직이는데 지장 없어.”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네요.”
“앉아봐. 어제 전투(戰鬪)는 어떻게 끝났어?”
무경이 눈을 흘기며 자리에 앉았다.
“몇 달 만에 만났는데, 제 안부보다 전투(戰鬪)결과가 더 궁금하세요.”
“이런 미안해. 무경도 잘 지냈지.”
“엎드려 절 받기네. 네네! 잘 지냈어요.”
“하하하! 삐졌어?”
“치~ 됐어요. 혁린형제와 강시들이 물려가자 나머지도 모두 후퇴(後退)했어요. 그 후 우리도 돌아왔죠.”
“결과는 어때?”
“운랑 간호하느라 저도 파악하지 못했어요.”
“그렇군. 날이 밝았는데, 별다른 일은 없어?”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특별히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아요.”
“다행이군.”
풍운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제 전투가 치열하여 배화교나 마련 모두 재정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저기 무경. 무경은 어제 내가 싸우는 모습 봤어?”
“예! 봤어요.”
“그럼 손에서 회전하던 기(氣)의 덩어리도 봤겠네.”
“네! 봤어요.”
“정령이 그걸 무극(無極)이라고 하던데, 무경은 무슨 뜻인지 알겠어?”
“무극(無極)이요. 주역(周易)에 나오는 그 무극(無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태초의 우주 어쩌고 했으니, 그 무극(無極)이 맞을 거야.”
“또 뭐라고 하던가요?”
“성질이 상이한 기(氣)가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해 한 점을 이루고 회전하고 섞이어 혼돈(混沌) 또는 무극(無極)이 되었으며, 무극(無極)은 창조와 파괴의 힘을 지닌 완전체이면서도 불완전체라고 했어.”
“저번에 정령이 천상(天上)의 무공을 알려주신다고 하셨죠. 그 무극(無極)이라는 것도 천상의 무공인가요?”
“아니야. 인간의 무공이라고 했어.”
“그래요. 상이한 힘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그게 뭐죠?”
“각 차크라에 잠들어 있던 수라마령신공의 수라기(修羅氣), 사사연무신공의 사기(邪氣), 아수라참마신공 마기(魔氣), 빙백신공 빙기(氷氣), 만독신공 독기(獨氣)야. 그걸 한 번에 끌어올린 거야.”
무경이 흘려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풍운을 바라본다.
“뭐가 궁금하신 거죠?”
“이직 정제(淨濟)되지 않고 제어(制御)할 수 없지만 무극(無極)에는 파괴와 창조의 힘이 동시에 있다고 했어. 창조의 힘이 있다면 아가씨와 누님을 치료할 수 있어. 그런데 난 아직도 무극(無極)이 생겨난 이유도, 다시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어.”
무경이 잠시 고민하다가 손가락으로 그릇의 물을 찍어 탁자에 글자를 쓴다.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 되고 태극(太極)이 4괘가 되고 4괘가 8괘가 되고, 이렇게 자꾸자꾸 나누어져 우주, 즉 만물이 생겼다고 해요. 이걸 좀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인데, 이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이렇게 5가지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요.”
“...........!!”
“운랑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가지도 익히긴 힘든 5가지 신공을 익히셨고, 그 기(氣)들을 차크라는 곳에 각각 저장하고 계시다가 별도로 혹은 동시에 사용하실 수 있어요.”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운랑께서 익힌 신공들을 오행으로 분류해보면, 극양(克陽)인 수라기(修羅氣)는 화(火)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부드러운 사기(砂氣)는 토(土)의 성질을, 단단하고 뜨거운 마기(魔氣)는 금(金)의 성질을, 물의 결정체인 빙기(氷氣)는 수(水)의 성질을, 나무나 생물을 기본으로 한 독기(獨氣)는 목(木)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또한 기(氣)는 빛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섞으면 섞을수록 투명하게 변해요. 운랑은 이 오행의 성질을 가진 5가지 기(氣)를 한데 모으셨고, 오행이 서로 상응(相應)하여 섞이며, 태초의 모습 즉 무극(無極)이 된 것이 아닐까요.”
무경의 설명이 끝나자 풍운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드린다. 정령의 설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풍운은 손을 펼치고 5가지 기(氣)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웅~”
기(氣)들이 서로 충돌하며 회전하다가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운랑! 그만!”
무경이 그릇과 물주머니를 붙잡고 소리쳤다. 무극(無極)이 주변에 있는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풍운이 기(氣)를 거두자 ‘퍽’소리와 함께 무극(無極)이 사라졌다.
“직접 해보니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빠르군.”
“휴~ 또 궁금하신 거 있어요?”
무경의 말에 풍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없단 말씀이죠. 운랑은 배고프지 않으세요. 우린 밥 먹어요.”
무경의 말을 듣고 보니 허기가 밀려온다. 생각해보니 며칠 동안 건량으로 배를 채웠고, 그나마 어제 점심 식사 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무경도 식사 전이야?”
“운랑 간호하느라 정신없었어요.”
“그래. 우리 밥 먹자.”
“기다리세요. 챙겨올게요.”
무경이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음식을 챙겨 다시 왔다. 거동이 불편한 풍운을 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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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 [五行]
[네이버 지식백과]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목(木)ㆍ화(火)ㆍ토(土)ㆍ금(金)ㆍ수(水). 이 5종에 의해서 자연현상이나 인사현상의 일체를 해석해서 설명하려는 사상을 오행설이라고 하며, 중국 고대에 성립하였다. 이들 5종이 특별히 선택된 이유를, 고전 주석가는 하늘에서는 오기(五氣)가 유행(流行, 순환)하고, 땅에서는 백성이 행용(行用,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기가 유행한다고 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5원소로 생각되는데, 백성이 행용한다고 하면 자연계에 통상적으로 발견되며, 일상생활에 필수한 기본적 물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행설 성립의 초기에는 후자의 의미가 주였다고 생각된다. 『서경』의 감서편과 홍범편 오행이라는 이름이 나타나며, 특히 홍범편에서는 한나라의 우왕이 하늘에서 받았다는 9종류의 천지의 대법, 즉 <홍범구주>의 첫 번째로 오행을 들었으며, 각 오행의 성질을 수(水)는 윤하(潤下, 물질을 윤택하게 해서 낮게 흐른다), 화(火)는 염상(炎上, 타서 위로 올라간다), 목(木)은 곡직(曲直, 휘거나 똑바로 된다), 금(金)은 종혁(從革, 자유롭게 변형한다), 토(土)는 가색(稼穡, 파종과 수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홍범편이 성립된 시대를 확정하는 것은 어려우며, 오행설의 창시자로서는 전국시대의 제(齊)의 사상가 추연(鄒衍)이 생각된다.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라고 하는 추연의 오행설에서는 일대의 제왕은 오행의 어느 한 가지의 덕을 갖추며, 왕조는 오덕의 순서에 따라서 교대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오행은 화→수→토→목→금의 순서하에, 각각 전자에 이겨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며, 상극설(또는 상승설(相勝說))이라고 하였는데, 그후 오행이 목→화→토→금→수의 순서하에 차례차례로 생성한다고 생각하는 상생설이 탄생하였다. 이와 같이 원래 정치사상으로서 발생했다고 생각되는 오행설은 마침내 왕조의 교대 이외의 여러 가지 자연현상이나 인사형상의 설명에 응용하게 되어, 오행의 배당이 행하여지게 되었다. 즉, 모든 자연현상이나 인사현상은 범주마다 5가지씩 정리되고, 각각이 오행의 어딘가에 귀속한다고 본 것이다.
오행의 배당에 관해서는 『여씨춘추』(기원전 3세기) 등에 그 원초적인 형태가, 그리고 『백호통(白虎通)』(1세기) 등에 의해서 더 한층 정리된 형태가 나타났다. 또한 한 초의 복생의 『홍범오행전』에는 『서경』 홍범편에 보이는 오사 ㅡ 모(용모)ㆍ말ㆍ시(눈의 작용)ㆍ청(귀의 작용)ㆍ사(사고)ㅡ와 서징(庶徵) ㅡ 비ㆍ창(가뭄)ㆍ오(더위)ㆍ추위ㆍ바람 ㅡ 이 오행과 관련되어서 언급되며, 또한 동중서의 『춘추번로』에는 상극설과 상생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상세하게 된 오행의 이론은 음양 이론과 함께 한대 사상의 일대 조류를 형성하였다. 동중서를 좋은 예로서 유가사상도 오행의 이론을 대폭으로 도입하면서 면목을 일신하고, 또한 천문학이나 의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기본적인 5가지의 도덕을 오행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경우,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오상이 해당되는 것이 보통인데, 1973년에 마왕퇴로부터 발견된 면서의 하나, 『면서오행편』에서는 인ㆍ의ㆍ예ㆍ지ㆍ성(聖)이 오행으로 불렸다.
음양오행설 [陰陽五行說]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음양설과 오행설은 원래 독립되어 있었으나 대략 기원전 4세기 초인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결합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었다. 제(齊)나라의 추연(騶衍)이 체계적으로 결합시켰다고 전해오나 입증할 만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한대(漢代)가 되면서 두 관점이 하나의 정합적인 이론으로 통합된 것은 확실하다.
어원으로 보면 음(陰)·양(陽)이라는 두 문자는 각각 어둠과 밝음에 관련되어 있다. 음이라는 글자는 언덕[丘]과 구름[雲]의 상형(象形)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이라는 글자는 모든 빛의 원천인 하늘을 상징하고 있다.
원래는 가장 오래된 천문기계인 구멍 뚫린 구슬 원반 소유자를 나타내거나 비스듬히 비치는 태양광선 또는 햇빛 속에서 나부끼는 깃발을 나타내고 있었다. 결국 음은 여성적인 것, 수동성·추위·어둠·습기·부드러움을 뜻하고, 양은 남성적인 것, 능동성·더위·밝음·건조함·굳음을 뜻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두 개의 상호보완적인 힘이 서로 작용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을 발생시키고 변화, 소멸시키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음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3세기에 편집된 듯한 ≪국어 國語≫에 나타나 있다.
주(周)나라 태사(太史)인 백양보(伯陽父)의 지진에 대한 설명으로 양기(陽氣)가 숨어서 나오지 못하면, 음기(陰氣)가 눌려서 증발할 수 없으므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역경≫ 계사(繫辭)에 “일음일양 그것이 도이다(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여 우주에는 두 가지의 힘 또는 작용이 있어 때로는 한쪽이, 어느 때는 다른 쪽이 물결과 같이 계기적으로 우세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묵자 墨子≫·≪장자 莊子≫ 및 ≪도덕경 道德經≫에도 음양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음양사상에는 상반(相反)과 응합(應合)의 논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상반은 +와 -의 대립이고 응합이란 상반이 단순한 대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상호의존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반응합의 사상은 음양사상에 이르러 비로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강유(剛柔)의 이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강유의 이론을 소급해 올라가면 ≪역경≫의 십익(十翼)으로부터 ≪도덕경≫을 거쳐 ≪서경≫의 홍범(洪範)에 이르게 된다.
<홍범> 구주(九疇)의 여섯번째에 삼덕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삼덕의 사상이 강유의 이론으로 강과 유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음양설은 주로 ≪주역≫과 연관되어 있는데, 효(爻)와 괘(卦)에서 획선(劃線) ○은 양을, 절선(絶線) ○은 음을 나타낸다.
팔괘(八卦) 중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각각 ○과 ○로서 양과 음의 특별함을 상징하고, 나머지 6괘는 음양의 효가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이것은 음·양 교역(交易)의 과정을 도획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천지 만물의 생성을 나타내고 있다.
계사에 “천지의 기운이 서로 감응합일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번영하며 남녀의 정기가 결합되어 인간이 화생한다.” 하는 구절이 있는데, 천지와 인간이 서로 구별되지 않고 대우주-소우주의 상관관계로서 서로 밀접하게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행설의 기원은 서기전 4세기 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오행설의 최초 언급이라고 하는 옥검(玉劍)의 손잡이 새김글에 “오행의 기가 가라앉으면 응축(凝縮)을 발생시킨다……(行氣?則○).”라는 구절의 연대와 같은 시기이다.
오행설에 관한 또다른 근거가 되는 출처는 ≪서경≫의 홍범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문헌은 은왕조의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전한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지금은 여러 시대에 걸친 단편적인 글들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져 있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관련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오행에 관하여 그 첫째는 수(水)이고, 둘째는 화(火), 셋째는 목(木), 넷째는 금(金), 다섯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물체를 젖게 하고 아래로 스며들며, 화는 위로 타올라 가는 것이며, 목은 휘어지기도 하고 곧게 나가기도 하며, 금은 주형(鑄型)에 따르는 성질이 있고, 토는 씨앗을 뿌려 추수를 할 수 있게 하는 성질이 있다. 젖게 하고 방울져 떨어지는 것은 짠맛[鹹味]을 내며, 타거나 뜨거워지는 것은 쓴맛[苦味]을 낸다. 곡면(曲面)이나 곧은 막대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맛[酸味]을 내고, 주형에 따르며 이윽고 단단해지는 것은 매운맛[辛味]을 내고, 키우고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은 단맛[甘味]을 낸다.”
이와 같이, 오행의 개념은 다섯 종류의 기본적 물질이라기보다는 다섯 가지의 기본 과정을 나타내려는 노력의 소산이며, 영원히 순환운동을 하고 있는 다섯 개의 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음과 양은 교대로 계기(繼起:잇달아 일어나는 일)하는 두 가지 흐름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 계기의 순서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나, 오행설이 발전하면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진(秦)나라 이래 우주의 사물을 다섯 가지로 나누게 되어 사계(四季)의 순서나 공간적인 방위(方位), 신체의 기관, 색깔·냄새·맛 등에 모두 적용했다.
이에 오행을 여러 가지 경우로 배열할 수 있는 두 개의 중요한 방법이 나타났다. 하나는 자연계의 운동을 음양이 서로 소장(消長:쇠하여 사라짐과 성하여 자라나는 것)하는 다섯가지 단계의 과정으로 생각한 것이다. 제1단계에서는 양이 성장하고 제2단계에서는 양이 성숙의 경지에 도달한다.
제3단계에서는 양이 소모되나 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제4단계에서는 음이 성장을 시작하며, 제5단계에서는 음이 성숙하여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순환이 반복되나 양이 다시 성장하기 전의 균형상태를 이루는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이 도식은 오행상생설(五行相生說)이라고 불리는데 오행과 관련시키면 [그림] 과 같다. 두번째의 입장은 각 물질의 개별적인 힘을 강조한 것으로, 각 물질과 각 단계가 선행자를 정복한 결과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하므로 오행상승설(五行相勝說)이라고 한다.
목은 금에 지고, 금은 화에 지며, 화는 수에, 수는 토에 지며, 다시 토는 목에 지므로 순서는 목·금·화·수·토의 배열로 이루어진다. 이 입장은 물질세계를 이루는 각 요소간에 끊임없는 갈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포괄적 도식에 맞추어 자연물이건 인공물이건 모든 사물은 다섯 범주로 구분되었다.
따라서, 동서남북은 각기 목·금·화·수에, 중앙은 토에 각각 배정되었고, 춘하추동은 목·화·금·수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명확하게 다섯으로 구분되지 않는 경우에는 자의적인 구분과 선택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오행설은 역사관에도 편입되어 추연은 종시오덕설(終始五德說)과 음양주운설(陰陽主運說)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오행의 덕의 실현이 왕도(王道)의 규범이며 오행의 속성을 군주가 지녀야 할 덕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예컨대 수덕(水德)의 왕은 윤하(潤下)를, 화덕(火德)의 왕은 염상(炎上)을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왕조의 교체도 오덕의 계승과 합치된다고 하여, 황제(黃帝)의 토덕(土德)을 하조(夏朝)의 목덕(木德)이 극복하고, 하조의 목덕을 상조(商朝)의 금덕(金德)이 이기며, 상조의 금덕을 주조(周朝)의 화덕이 이기므로 주왕조 다음 왕조는 반드시 수덕을 가지게 마련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따라 진시황은 모든 면에서 수의 색인 흑색(黑色)을 숭상하여 황하의 이름도 흑수(黑水)라고 바꿀 정도였다. 이러한 음양주운설은 ≪관자 管子≫의 사시편(四時篇)과 유관편(幼官篇)에 전해지고, 이 두 편이 다시 ≪여씨춘추 呂氏春秋≫에 채용되어 ≪회남자 淮南子≫의 시측십이기(時則十二紀)에 이르러서 마침내 ≪예기≫ 월령(月令)의 성립을 이룬 것이다.
월령이란 군주가 일반 백성들에게 내린 월중행사표로서 매달마다 그 달에 알맞은 시령을 행하지 않으면 천시(天時)에 영향을 주어 괴변이 생긴다고 여겼다. 이러한 작업은 정치적·사회적 질서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음양오행론의 이론과 유가적인 정치철학을 결부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교도덕적인 오상(五常), 즉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 오행과 관련된다. 구체적으로 인은 목과 동에, 의는 금과 서에, 예는 화와 남에, 지는 수와 북에, 신은 토와 중앙에 연결된다.
음양오행설이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이 시기에 음양오행설이 전래된 흔적은 고구려나 백제의 고분벽화에서 나타나는 사신도(四神圖), 즉 현무(玄武)·주작(朱雀)·청룡(靑龍)·백호(白虎)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신라 황룡사 9층탑의 심초석(心礎石) 아래의 적심석(積心石) 사이에서 청동거울에 사신(四神)이 양각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 밖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오성(五星)에 관한 기사나 고구려의 오부제(五部制) 등을 통해서도 전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참위설과 풍수지리설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과정도 음양오행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백제동월륜 신라여월신(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이라는 참구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참위설을 믿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후 통일신라 말기에 이르면 참위설과 풍수지리설이 결합된 도참설(圖讖說)이 크게 유행하게 된다.
당시 승려였던 도선(道詵)은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산천순역설(山川順逆說) 및 비보설(裨補說)을 주창함으로써 도참사상을 크게 유행시켰다. 그 요지는 지리에는 곳에 따라 쇠왕이 있고 순역이 있으므로 왕처(旺處)와 순처(順處)를 택하여 거주해야 하며, 쇠처(衰處)와 역처(逆處)는 인위적으로 비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이러한 도참사상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훈요십조 訓要十條>와 묘청(妙淸)의 양경지덕쇠왕설(兩京地德衰旺說)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조선의 건립을 정당화하고 천도문제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고,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鄭汝立)의 난 때에는 “이씨는 망하고 정씨가 일어난다(木子亡, 奠邑興).”는 참설이 유포되기도 하였다.
후일 ≪정감록 鄭鑑錄≫이라는 비기서에는 이러한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으며, 절대 안전지대라는 십승지지사상(十勝之地思想), 역성혁명관에 입각한 말세사상 등도 모두 음양오행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민중들의 심성을 지배하면서 홍경래의 난 등 숱한 민란과 봉기의 사상적 원동력이 되어온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풍수지리설이나 참위설뿐만 아니라 성리학의 세계관에도 음양오행설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 송대에 성립된 유학사상으로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을 통일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성리학은 음양오행설을 수용하여 우주만물의 법칙과 원리를 규명하고 있는데, 고려 중기 이후 성리학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나라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성리학이 이른바 1―2―5의 구조를 수용하고 있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음양오행설의 영향은 성리학의 대표적 고전 중 하나인 주돈이(周敦?)의 ≪태극도설 太極圖說≫에 잘 나타나 있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도에 이르면 고요하게 되는데,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양이 변하고 음이 합치되어 수·화·목·금·토를 낳는다.”라고 하여 ‘태극―음양―오행’의 구도를 정립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성리학이 지배 사상으로 되면서 생활 구석구석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보급되었다.
조선 중엽에 일어난 일련의 철학 논쟁들, 즉 이언적(李彦迪)과 손숙돈(孫叔暾)의 무극태극(無極太極) 논쟁,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사단칠정 논쟁 및 서경덕(徐敬德)과 조식(曺植) 등의 철학적 주장 등을 통하여 음양오행설이 이미 세계관의 기본원리로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음양오행의 작용을 세계의 원리로 인식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은 이후 실학자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비판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말엽까지 유교적 세계관과 동일시되면서 우리 민족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쳐왔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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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아휴 복잡하네요.
즐독요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