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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미국의 한 부흥강사가 집회를 인도할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입구에서 다리를 쓰지 못하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집회 시간까진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오셨나요?” 그러자 여인은 부흥강사인 줄 모른 채 대답했습니다. “집회하시는 목사에게 기도를 받고 병 고침 얻으려고 왔습니다. 저는 기도를 하고 마음에 낫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타고 온 자동차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강사는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아니, 자동차를 돌려보내다니요? 집에 갈 때 어떻게 가시려고요?” 여인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나아서 걸을 텐데 자동차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걸어서 집으로 가면 되지요”
이 말을 들은 목사는 여인의 눈을 보며 물었습니다. “자매님, 꼭 나을 줄 믿습니까?” 여인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답니다.” 그러자 강사는 손을 붙들며 말했습니다. “자매님, 집회 시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군요. 제가 바로 부흥강사입니다” 그리고 여인의 손을 붙들고 기도한 후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앉아있던 여인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병 고침의 소문이 마을에 퍼졌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다리를 못 쓰는 다른 여인이 집회에 참석했다. 부흥강사의 기도를 받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자매는 강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도 믿음으로 나으려고 자동차를 돌려보냈는데 왜 낫지 않습니까?” 그러자 강사는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자매는 아직 일어나실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침 받은 자매는 하나님으로부터 고침 받는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자매는 아직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았으니 나도 자동차를 보내면 낫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셨군요. 자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믿음이 임하여야 낫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들의 소식을 듣고 따라 합니다.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것들을 빼먹습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우리의 일상에서의 삶의 중요성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그 말씀에 기록한 것이 그대로 나에게, 내 가정에, 내가 섬기는 기업과 나라에 똑같이 역사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동경하고 그 믿음을 본받기를 원하고 베드로가 가졌던 반석과 같은 믿음과 그 위에 세워진 교회와 그 축복을 동일하게 나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나가 가졌던 고민과 아픔을 고스란히 우리가 느끼기는 어렵지만 그녀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 기도하고 또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에 그녀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나누면서 나에게도 우리 가정에도 공동체 안에도 동일한 역사를 기대합니다.
첫째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어느 때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의 선배들의 영적 고백을 귀담아 들어보면 그들은 진심으로 기쁨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를 잃고 매를 맞고 동역자들 조차 핍박을 하고 힘겨운 상황이 연속이었지만 그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어둠과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들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뻐할 수 있다고 외친 것은 다름 아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이 시간은 곧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강릉을 가기 위해 양양고속도로를 달리면 터널이 너무 많습니다. 터널 개수는 총 63개입니다. 가장 긴 터널은 인제 양양 터널로 무료10,962m (약 11km)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똑같이 느끼겠지만 터널이 몇 개인지 세다가 포기하고 맙니다. 너무 많아서요. 또 너무 긴 터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터널을 지나면서 지루해하거나 실망하거나 싫증을 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터널이 있음으로 서울에서 양양,강릉,속초 바다를 가는데 시간을 단축해 주기 때문입니다.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터널을 지나며 오히려 감사합니다. 신기해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그걸 아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을 너무도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도 기뻐하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즉 도우심을 기대하며 감사하며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제 한나가 그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그녀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늘 함께 계셨지만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입으로 고백을 했지만 그러나 그의 삶의 현실은 하나님의 은총과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살아계셔나 나를 지켜주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제거해 주시고 언제든지 내게 힘이 되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겁고 기쁜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그렇다고 고백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고통과 괴로운 상황들이 연속되면, 나의 예배는 늘 제자리에 있고 내 기쁨은 이미 과거에 추억에서나 찾을 수 있는 기간을 지나게 될 때에 하나님으로 기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한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긴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에 응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며 그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시고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찬송가 85장에 구주를 생각만 해도 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1.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5.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로부터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아멘
하나님이 늘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생기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전에 한나는 우울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여긴 브닌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브닌나였습니다. 그녀가 격분시키므로 더더욱 그녀로 마음에 분노와 슬픔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나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의 분노는 기쁨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가지지 못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빼앗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나의 행동을 달아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분하고 원통함을 악한 것으로 다시 갚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께 기도로 대신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녀는 얼마든지 자신을 놀리고 못되게 구는 브닌나에게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은 그녀의 고백을 믿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말에 무게감을 알고 있는 진실한 여인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고백하고 행동으로는 거짓되게 합니까? 말이 새의 날개 깃털 같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든 것을 달아보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서원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나는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에 가치를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의 평소의 삶이 진실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평소의 말한 것을 쉽게 파괴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함부로 하고 말을 함부로 하며 사는 사람의 무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함량 미달입니다. 하지만 한나의 삶을 분명 말과 책임을 동반하는 무게감을 가진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사무엘을 낳았을 때입니다. 그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에 집에 드린 것입니다.
삼상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렇지요. 한나의 평소의 삶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리면 더 키우거나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서원을 분명하게 지켰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분명 반대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더구나 남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명령하고 결정하던 시대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남편을 설득시키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말의 무게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은 삶의 자리를 바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역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계획을 다 갖고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며 삶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실망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다른 부인 브닌나에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가슴을 찌르던지 통곡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남편의 위로를 들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꼭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영역에 걸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예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없다고 쉽게 무시합니다. 사람들은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무시합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무시합니다. 얼마든지 그런 상황은 많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놀라운 일을 본인이 체험한 후에 그 체험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없는 일을 듣기 좋게 하기 위해서 포장해서 고백한 기도가 아니라 실제로 나의 삶의 자리에 나타난 것을 그대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의 주인공들은 얼마든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서 총리가 된 이야기를 예로 들면 좋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어떤 처녀가 17세에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하다가 19세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운명도 더럽게 타고났다 할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를 보면 "에게게..! 꽃이 피다 말았네!"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아직도 어린나인데 안됐다" 하면서 동정하는 말들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무조건 서울로 올라와 어느 부잣집 가정부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그 집에서 열심히 일했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주인집 어르신께 두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는 야간 학교에라도 가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일날이면 꼭 교회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여 허락을 받아 이화여자 보통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고학을 하며 대학을 마치고 본국으로 건너와 당시 조선총독부 장학사가 되어 일하다가 해방과 함께 학교를 세우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숙명여자대학 초대학장이 된 임숙제 선생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한나의 고백과 같은 일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똑같지 않아도 비슷한 사실을 고백하며 간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신앙생활을 하며 주일을 지키고 믿음 안에 기도하며,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은 믿음의 선배들이 체험하고 알려준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광야와 같은 시간을 지날 때도 어떻게 하면 이 환경에서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그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넘어질까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새기고 그의 길을 따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연단시키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의 주인공 한나처럼 그 주인공이 이제 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서 나와 우리 가정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언제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행동하고 기도하며 복을 누리라고 말입니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이렇게 소개되고 그리고 누군가 따라 하는 일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길을 묵묵하게 걸으며 하나님과 참된 교제의 주인공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